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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추억을 찍어드립니다 1탄. 금천구 시흥동 서울 백산초등학교

by 썬도그 201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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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글을 썼고 그 글을 보신 많은 분들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목사님도 계셨고 전도사님도 계셨고 미국에서 사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한분은 저에게 책 까지 보내주셨는데요. 좋은 책 선물 감사합니다. 

제가 좀 어슬프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번 화가 나면 그 생각을 계속 고수할려고 합니다. 이런 저를 움직일려면 악플이나 인격 모독성의 댓글이 아닌 햇볕 같은 따스함이 절 움직이게 됩니다.  제가 날선 댓글을 달아도 보듬어 주시고 따스하게 받아주시면 어느세 제 마음은 맑게 열립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글을 통해서 제 블로그 독자분이 창조론을 주장하셨고 저와 댓글을 주고 받으면서 제 블로그 독자라면서 금천구 시흥에 관한 글과 사진을 좋아하신다고 했습니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 오랜만에 드립니다.
제 블로그에는 많은 독자분들이 있다는 것 가끔 까먹습니다. 댓글도 잘 안달리고 (아마 제가 다른 블로그에 댓글을 잘 안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까칠한 성격인것을 알기에 그러시겠죠) 반응도 없고 해서 가끔은 막 쓸때도 솔직히 있습니다. 

그럴때 마다 체크해주시고 지적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럴때면 
어! 생각보다 독자분들이 많네라는 생각을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끔 주기적으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하는데  고집쎈 모습만 보여드렸네요. 무언의 독자분들이 많다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닫게 되네요.

금천구 독산동 시흥동에 고향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제 블로그 글을 보고 금천구청의 변화상과 시흥동, 독산동의 변화 모습을 보시면서 가끔 감사한다는 말을 하십니다. 저에게는 매일 보는 그냥 그런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억만리 떨어져 계시거나 지방에 계신 분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검색을 통해서 달래고 있습니다

그럴때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찍은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울을 고향으로 둔 분들은 고향에 대한 기억만 있을뿐 고향집에 대한 기억은 파괴된 분들이 많습니다. 저 또한 제가 살던 허름한 집은 재개발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 대나무 같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가끔 태어난 마을에 가보면 완벽하게 파괴되어서 어디서 부터 추억의 파편을 맞춰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서울은 추억을 불도저로 파괴한 도시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원한것도 있겠죠. 옛것이라면 무조건 부정하고 파괴할려고만 하는 모습들 거기에 부동산 광풍에 돈이 된다면 헌집을 부스고 거기에 아파트 용적율 늘려서 올리고 부가수익에 흐뭇해 했던 물질 만능주의에 환한 미소를 지었던 우리들의 모습도 크게 일조를 합니다. 지금은 아파트도 불로소득을 버는 시대가 지났다고들 합니다. 이런 부동산 광풍과 거품이 꺼진 자리에 우리의 추억어린 건물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조건 새제품만 좋은게 아닌 기존의 쓰던 제품도 보수해서 쓰면 더 좋지 않을까요? 우린 너무 새것 새것만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추억이 파괴된 도시 서울, 이런 서울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곳들이 있습니다. 바로 초중고등학교 건물들입니다. 

뭐 제가 나온 대방초등학교는 몇년 전에 찾아가보니 건물이 다 파괴되어서 어리둥절할 정도로 변했지만 여전히 추억을 간직한 곳들이 있습니다. 제 블로그 독자분이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백산초등학교를 나오셨다고 하시네요

제가 근거리에 살고 있기에 자전거를 타고 지난 주말 그 추억을 카메라로 담아 왔습니다


추억을 찍어드립니다 1탄. 금천구 시흥동 백산초등학교

백산초등학교를 향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전에 제 블로그에 제가 나온 고등학교와 중학교 사진을 찍어서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반응들이 꽤 있었습니다. 동문선배라면서 글 사진 잘 봤다는 분도 계셨고  설립자가 친일파라고 제가 지적을 했더니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학교를 모독하지 말라는 선배분도 계셨습니다.

결국은 말 싸움 끝에 다시는 모교라고 부르지 않고 준거집단에서 탈퇴하겠다고 하면서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녔어도 그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다르네요. 아시겠지만 전 내편이라고 감싸고 지적 안하지는 않습니다. 잘못한 점은 지적을 하고 잘한점은 칭찬을 해야지  우리편이라고 내가 나온 학교라고 허물을 덮을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 제 생각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학교를 무조건 좋게만 볼려고 합니다. 더구나 학교 다닐때는 쓴소리도 많이 하고 짜증도 났지만 시간이 흘러서 추억으로 들여다 보게 되면 좋게만 볼려고 하는게 인간심리죠. 이게 무슨 심리학 용어로도 있던데요. 아무튼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움만 남고 추하고 더러운 기억은 세월에 녹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모교를 돌아보는 시선은 항상 따스하고 그윽합니다.  이번에는 제 추억이 아닌 독자분의 추억을 찾아드리거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꽤 많을 것 같네요. 다음뷰가 거리를 다 스캔해서 굳이 추억의 장소에 가지 않아도 안방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대지만 학교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밤의 풍경을 담지도 못하는 맹점이 있죠. 그 맹점을 제가 보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좀 거창하게 시작하겠습니다. 추억을 찍어 드립니다라는 프로젝트를 발동할까 합니다. 
일단 발동만 하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 학교나 카메라 들고 찾아가서 찍는다고 찍어지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즘 초등학교들은 지난번 한 초등학교에 괴한이 난입해서 한 여자 초등학생을 끌고가는 극악무도한 일이 발생한 후에 외부인에 대한 감시감독이 심해졌습니다. ㅠ.ㅠ 

따라서 쉽지는 않겠지만 저에게 부탁을 하시면 서울 남서부 지역이나 종로등 제가 자주 지나가는 초중고등학교는 카메라로 찍어드려볼까 합니다.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면 그 지역에 부탁을 하면 좋을텐데 한국은 지역 커뮤니티가 크게 활성화 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페달을 밟았습니다


금천구는 독산동, 시흥동, 가산동으로 이루어진 서울 남서부 동네입니다. 낙후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데도 금천구 구심개발사업을 LH공사가 하겠다고 하면서 서울시 최대규모가 될것이라고 떠벌리더니 결국은 부동산 거품 붕괴와 LH공사 재정적자로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시흥사거리의 모습입니다. 시흥동은 시흥대로라는 큰 대로가 있지만 그 주변 지역은 고층건물이 없습니다. 얼핏 듯기로는 이 곳에 비상활주로가 있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지금도 공군의 비상활주로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만 저 높은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보니 고도제한은 사라진 듯 합니다.  시흥대로에 고도제한이 있던적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고도제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비상활주로가 아닌 시계경관지구라서 시흥3동은 5층 이하의 건물만 짓게 되어 있네요. 

이 고도제한도 검색을 해보니 풀렸다고 나오네요. 아 그래서 안양시 석수동 인근에 엄청나게 아파트들이 올라섰군요. 
아무튼 금천구 최대 번화가인 시흥4거리의 풍경은 저 멀대 같이 혼자 우뚝 서 있는 모습입니다. 시흥4거리에 저런 높은 건물 보는게 낯설기만 합니다. 언제 저기 옥상에 올라가서 시흥4거리 밤풍경이나 담았으면 합니다


시흥4거리는 위와 같이 낮은 시장건물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나마 디자인거리 사업이라는 전력선 지중화 사업이 있어서 좀 깔끔해 지긴 했죠. 


시장골목을 지나서 백산초로 향했습니다. 이 곳도 서울시가 여행이라고 해서 여자가 행복한 어쩌고 하는 그 프로젝트 일환으로 길을 잘 꾸며 놓았습니다. 

백산초는 대한민국 학교 답게 언덕배기에 있습니다. 



왜 학교들은 언덕이나 산꼭대기에 많을까요? 아마도 땅값이 싸기 때문 아닐까요?
참고로 백산초등학교는 전국에 몇개가 더 있습니다. 이름이 똑같은 초등학교가 많죠. 따라서 정확한 이름은 서울백산초등학교입니다. 서울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야 합니다. 초등학교는 이렇게 학교 이름 맡에 지역을 넣어줘야 정확합니다.

중고등학교는 비슷한 이름이 많지 않아서 그럴 필요는 없고요


백산초는 73년에 개교한 학교로 초기에는 13학급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26학급으로 늘었네요 학급수는 늘었어도 학생수는 비슷할 듯 합니다. 지금은 한반에 20,30명 밖에 안된다고 하네요 격세지감입니다. 제가 다니던 80년대에는 한반에 60명은 기본이었는데요


6월이라서 호국보훈의 플랜카드가 나부낍니다. 

 

요즘 초중고에 가면 운동장 구석에 최신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건물이 강당일수도 있고 아니면 다목적관이라서 해서 최신식 컴퓨터가 있는 멀티미디어실이나 세미나실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건물들이 있습니다.  백산초등학교는 다목적관은 아니고 강당을 만들었네요

비만오면 체육을 접고 음악을 했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강당이 있으면 먼지 풀풀나는 운동장 대신에 여기서 강당에서 체육하고 아주 좋겠는데요. 지금이야 흔한 강당이지만 80년대만 해도 강당 있는 학교가 드물었고 강당있는 학교 학생들은 강당이 자랑꺼리였습니다.





한무리이 학생들이 뙤약볕에 축구를 차고 있습니다.  덕분에 쉽게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보통 주말에는 이런 운동장 사용자가 없으면 문을 걸어 잡거 놓기도 합니다. 


학교에 대한 추억중 재미있는 추억은 운동장 보다는 이런 뒷골목 같은 곳이 더 많이 있죠. 뒷골목은 아니고 뒷 운동장 같은 곳인데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네요. 

시흥동의 풍경입니다. 고층빌딩도 고층 아파트도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평화롭네요


이 학교가 오래된 학교임을 알게 해주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새모습으로 수시로 단장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 녹이슨 철제 난간은 이 학교의 오래됨을 보여줍니다


강당건물 올라가지 말라고 철사줄로 막아 놓았네요. 아이들이 저기 기어 올라가는 일이 많은가 봅니다. 호기심이 많은 나이고 객기가 용기인줄 아는 오류들이 많은 나이죠



모래와 미끄럼틀이라는 기본 구조와 시소가 있지만 최신식으로 변했습니다.  예전엔 학교마다 운동기구나 놀이기구가 달랐는데 요즘은 거의 비슷해졌더라고요. 특정한 학교에만 있는 특이한 놀이기구가 좋아서 거기까지 가서 놀곤 했는데 요즘은 놀이터의 동기화가 진행되어서 비슷비슷 합니다. 

공원마다 있는 비슷한 운동기구와 비슷하죠. 


누가 맥주를 까 드셨네요. 학교에서 맥주 드시는것 뭐라고 못하겠지만 먹었으면 좀 치우고 좀 가세요. 더구나 초등학교에서 맥주캔 굴러다니면 학생들이 우리 어른들이 우리 키우느라고 술 많이 먹나보다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요즘은 인조잔디 구장을 갖춘 학교도 많아지고 있는데요. 여긴 여전히 모래 운동장입니다. 운동장에서 축구 한번 차고 오면 하얀 먼지가 눈썹위에 올라타 있기도 했는데요. 그렇다고 인조잔디가 부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인조잔디는 발의 감각은 좋은데 여름에는 고무타는 냄새가 납니다. 전 그게 싫어요



백산초 알림판입니다. 학생들 이름 보고 그 시대를 갸늠할 수 있죠. 30,40들에게는 수로 끝나는 남자이름이 많았고 여자는 영이나 혜로 끝나는 이름들이 많았습니다.  요즘 아이들 이름은 어떤 패턴이 있지는 않네요. 


건물은 2동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건물은 초등학교 건물 뒷건물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건물이 섞여 있습니다. 두 건물은 이렇게 계단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급식실의 굴뚝입니다. 저 굴뚝에서 밥냄새가 참 향기로왔죠. 


뒷건물을 지나서 가보니 창고들이 보입니다. 체육기자재들이 있고 저 안에 공과 매트리스 같은게 많이 있을 듯 합니다.  

4층짜리 건물은 전형적인 한국 초등학교 건물의 모습입니다. 70년대 학교 건물들이 이런 형태인데요. 색으로 세월의 흔적을 지웠네요. 또한 유치창틀 공사를 해서 2중 미닫이 창문으로 바꾼듯 합니다.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 생태체험용 식물들이 꽤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 식물도 어렸을때 열매가 구슬모양이라서 따서 막 던지고는 했는데 이제는 이름도 생각 안나네요.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알고 싶어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래도 추억의 식물입니다.


파란 하늘 한가운데 점과 같은 비행기가 지나갑니다. 모습은 점이지만 소리는 웅장합니다. 비행기길 아래에 있는 동네라서 수시로 비행기 소리를 듣습니다.  

수위실 같습니다. 요즘은 방과후나 휴일에 용역업체에서 파견한 수위아저씨들이 학교를 지킵니다. 한국에서 고령 노인분들이 취직할 수 있는 곳중에 많으 부분이 이런 아파트경비원이나 학교 수위로 많이 근무를 하시죠. 

예전엔 남자선생님들이 당직을 서곤 했지만 요즘은 초등학교에 남자 선생님도 많지 않고 세콤 같은 보안시설이 발달해서 수위아저씨 혼자 학교에 계십니다. 


앞건물과 뒷건물을 있는 병목구간이네요. 앞뒤 건물 학생들이 쉬는시간에 많이 교차하고 여기서 이야기들이 많이 피어나죠. 

앞건물과 뒷건물의 높이가 차이나는데 자연스럽게 긴 골목이 생겼습니다. 그 골목에 여러가지 식물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비상벨? 학교에서 비상벨 누를 일이 있나요? 학교폭력 때문 같기도 하고요 좀 씁쓸하네요. 아이들 하나하나가 CCTV며 비상벨이 되어야 하는데 학교폭력을 목격하고도 아무도 신고하지도 않고 맞은 학생은 맞았다고 부모님들에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폭력을 신고하는 것도 큰 용기입니다. 신고를 안하는 이유는 신고하면 보복이 두렵고 우리 사회가 그런 2차 폭력이나 보복에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거기에 폭력학생 부모들이 오히려 당당해진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솔직히 그 부모의 그 자식이지 누굴 탓하겠습니까. 학교교육도 교육이지만 개인의 인성은 학교보다는 부모의 책임이 큽니다. 


열린 창문하나가 보이네요. 병설 유치원 건물이네요

사암,역암등의 돌덩어리들입니다. 이 돌을 보면서 규암, 화강암, 역암, 사암, 이암등을 배운 기억이 납니다. 

이 학교는 매일우유를 먹네요. 지금의 우유는 어떨까요? 80년대에 급식을 했었는데 서울우유는 정말 맛없었습니다. 얼마나 맛이 없는지 아이들 사이에서는 우유에 물을 탄다는 소문까지 들렸습니다. 정말 물을 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우유를 우유가 아닌 보약처럼 마신 기억이 나네요. 


등나무가 바람을 일으키는 에어콘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등나무 밑에는 왜 그리 바람이 솔솔 잘 부는지요.



쩝. 외부인 출입확인서 작성이 두렵기까지 하네요. 이 어줍잖은 추억을 찍어드립니다도 외부인 출입확인서 작성을 해야 할텐데요. 좀 거부감이 들지만 세상이 이렇게 삭막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솔직히 이전에는 정말 아무나 학교 들락거리기 쉬웠습니다. 출입강화를 시킨 모습은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다만 주말에는 주민들의 휴식처로 개방했으면 합니다. 





학교 앞의 시흥대로입니다. 작은 분수공원도 있고요. 저 멀리 고층아파트가 보입니다. 평화로운 주말이었고 다른 분의 추억을 찍어드리는게 여간 기분이 좋네요. 저에게는 그냥 그런 평범한 학교겠지만 이 백산 초등학교 출신인 많은 분들은 그냥 평범한 학교일 수가 없을 것 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나온 초등학교 사진을 찍어 본적이 없네요. 항상 갈때 마다 학교문을 걸어 잠궈 놓던데요. 언제 기회되면 찍어 봐야겠습니다.  방학때는 개방해 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추억이 깃든 학교가 있으면 메일이나 댓글로 남겨 주시면 너무 먼 곳은 힘들겠지만 제 활동반경 즉 서울 남서부(자전거로 이동 가능) 지역이나 종로 인근 지역의 학교는 카메라로 담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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