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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결정적 순간을 잡아내는 것은 카메라가 아닌 사람이다

by 썬도그 2012.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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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공산주의로 남을 것 같은 중국, 중국도 동구권 국가 처럼 한때 공산주의가 붕괴 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탱크를 앞세워서 천안문 광장에 있는 국민들을 광장에서 몰아 냈습니다. 만약 그때 중국이 무너졌으면 북한도 무너졌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중국은 탱크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았지만 지금 까지도 전세계에서 인권 후진국으로 욕을 먹고 있습니다.

얼마나 쪼잔한 나라인지 '천안문 광장'을 검색어에서 지우고 있고 중국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쓰는 까칠한 티스토리 블로거들을 강제로 접속 차단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에 못지 않게 인터넷 통제를 하는게 한국이죠. 

위 사진은 1989년 6월 5일 베이징 호텔에 묵고 있던 AP사진기자인 Jeff Widener가 6층 발코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한 중국인이 천안문 광장을 점령 한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탱크를 막아서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공산주의로 은유되는 탱크와 자유 민주주의 또는 중국 시민들의 저항을 나타내는 모습으로 전 세계 언론에 뿌려졌고 이 사진으로 그해 풀리쳐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광경을 Jeff만 본게 아닙니다. 같은 호텔에는 다른 외신기자들이 많았습니다. 왼쪽 위는 Jeff Widener사진이고  오른쪽 위는 뉴스위크지의 Charllie Cole,  왼쪽 아래는 매그넘 소속의 Stuart Franklin 그리고 오른쪽 아래가 로이터 사진작가 Artthur Tsang이 찍은 사진입니다. 

이렇게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사진기자들이 찍은 사진인데 왜 우리는 한 사진 즉 왼쪽 위 사진만 기억하고 가장 널리 퍼지고 상까지 받았을까요?

그 이유는 보시면 아실것 입니다. 왼쪽 위 사진이 가장 구도가 좋고 탱크의 간격도 4대가 똑 바르게 서 있어서 가장 구도가 좋고 함축성도 좋은 사진입니다. 다만 아래 가로등인지가 아쉽게도 보이지만 탱크를 가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다른 사진들은 탱크들이 움직일 때 즉 이동이 다 끝나지 않느 사진들이고 오른쪽 위는 탱크가 3대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요?

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촬영하는 데 누구 사진은 상 받고 누구 사진은 잊혀지나요?
이 차이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건 장소를 몇번 따라가 보면 알겠더군요. 유능한 사진기자는 어떤 일이 발생할건지 미리 예측하는 예지력이 어느정도 있습니다. 대충 분위기를 보면 조금 후에 돌팔매질이나 진압이 있겠구나 생각되면 가장 근접하거나 건물 위에 올라가서 큰 그림을 찾습니다. 아니면 돌을 던지거나 물대포를 쏘고나 하는 그 찰나를 미리 예측하고 가장 좋은 각도와 구도가 있는 곳에 미리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판단은 사건이 진행되기 전에는 할 수 있지만 이미 사건이 진행되고 있으면 사진기자는 흥분하게 됩니다. 1초가 그냥 1초가 아닙니다. 1초의 판단시간에도 사건은 계속 진행되고 결정적인 순간은 사라진 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연사로 막 갈기면 되나요? 그건 아닙니다. 연사로 갈겨도 구도가 꽝이면 좋은 보도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얻어 걸린다고 운 좋게 하나 담길 수는 있지만 그 운은 제어가 안되기에 언제 또 올지 모릅니다.



로버트 카파의 공화국 병사의 죽음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의 '생 라자르 역 뒤에서'


매그넘 소속의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의 사진이 뛰어난 이유는 이런 결정적인 순간을 잘 잡아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브레송은 저 남자가 비고인 역 뒤에서 사다리를 폴짝 뛸 것을 예상하고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게 쉬운게 아닙니다. 저 순간 판단력은 카메라가 좋아서 가져다 주는게 아닙니다. 사진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어야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운도 좀 따라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의 발견력과 함께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 데 이건 카메라가 할 수 없는 오로지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베트콩의 즉결 처형

이 사진은 에디 아담스 기자가 베트남 전쟁 때 건물에서 저격질을 하던 베트콩을 남배트남 경찰이 거리에서 즉결처형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 사진으로 그해 퓰리쳐는 에디 아담스에게 상을 수여합니다. 이 사진은 미국의 반전운동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 곳에 사진기자가  에디 아담스만 있었던게 아닙니다. 동아일보 사진기자도 같이 있었습니다. 저 경찰관이 총을 꺼내자 에디 아담스는 재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했지만 동아일보 사진기자는 너무 끔찍 스럽다며 카메라를 내리고 위 사진 처럼 쓰러진 사진만 담습니다. 

사진기자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일단 찍어야 합니다. 그 사진으로 사진기자가 욕을 먹을 수 있을지라도 현장의 목격자 역활로 시대의 목격자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무조건 기록해야 합니다. 그걸 신문에 싣고 말고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죠

위 사진으로 어떤 반응이 올지는 사진기자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즉결 처형하는데 말릴 생각은 안하고 그걸 찍고 있냐고 욕을 먹을 수도 있죠. 다행히도 욕은 아니고 반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욕은 저 경찰관이 먹었죠. 저 경찰관은 자기 할일을 했을 뿐 입니다. 건물에서 베트남 시민과 군인을 저격총으로 죽이던 베트콩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죠. 물론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저건 불법 행위이지만 심정적으로 이해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저 경찰관에게 심한 삿대질을 합니다.

반면 94년 풀리쳐 상을 받은  위 사진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케빈 카터는 사진을 찍은 후 이 여자 아이를 보호소에 데려다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진만 찍고 자리를 뜹니다.  영화 '뱅뱅클럽'에서 보니 무슨 절벽 넘어에서 찍어서 도와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으로 살짝 담기던데요.  그 이유가 어쨌든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수단의 기아를 생각하고 많은 구호물자를 수단에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사진 찍고 독수리도 안 쫒았다며 케빈 카터를 비판합니다.

케빈 카터는 당황을 하죠. 보통 사진에 대해서  아니 사진기자에 대해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적은 거의 없습니다만 케빈 카터는 많은 비판을 받게 됩니다. 이런 결과가 나올지 카터는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존경해 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입니다. 

카터가 이런 문제 즉 윤리적 문제가 거론될지 예측 되었다면 사진을 찍고 절벽이 막고 있던 말던 어떻게 해서라도 저 소녀를 구호소로 데리고 갔을 것 입니다.


결정적 사진은 운인 것 같지만 치밀한 경험이 있어야만 잡을 수 있는 순간입니다. 또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소명의식도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찍어 둬야 합니다. 판단은 나중에 하면 됩니다.  찍은 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공개 안하면 되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와 경험이 필요로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명의식도 투철해야 합니다. 

카메라가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사람이  사람의 경험과 경륜이 좋은 보도사진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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