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을 보면서 신 삼국시대가 떠 올랐습니다. 경상도 세력인 신라가 백제를 압박하던 모습과도 같이 보입니다.
다만 다행이라면 저 뻘건 지역에 사는 사람이 많지 않고 한국 인구의 절반은 서울과 경기도에 산다는 것 입니다.
저는 저 붉은 지역을 보면서 저 지역의 사람 대부분은 나꼼수 같은 팟캐스트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정보를 오로지 신문(특히 공짜로 뿌리는 조중동)과 TV를 통해서만 봅니다. 인터넷이요? 해봐야 포털에서 깔작이다 말죠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농촌 지역에 사는 분들이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제 주장에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경상도나 전라도는 스마트폰이고 뭐고 30년 넘게 저렇게 살던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현재 언론을 장악한 보수들의 주장을 주구장창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언론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동기화 시킵니다.
한국의 사진기자들의 위상은 어디쯤 일까?
'사진은 권력이다'라는 말은 포토저널리즘를 1형식 문장으로 바꾼 것 입니다
사진의 여러 분야중 포토저널리즘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외국 보도사진작가에 대한 찬사이지 한국 보도사진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 글을 읽는 사진기자님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한국 사진기자분들 중에 특종을 내거나 세상의 진실을 캐는 모습이 있는 사진기자분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08년 청계천 촛불시위때 조중동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SBS라는 보수언론도 있었고요
아직도 기억나네요 SBS기자가 취재를 나오니까 촛불시위대들이 몰려가서 SBS 방송차 둘러싸고 욕을 하던 모습을요. 한 시민은 SBS 고참급 기자에게 쓴소리를 막 하던데요. 왜 씨방새라고 부르는지 아냐고
당시는 MBC기자는 무등 태우고 다닐 정도였는데 2011년 완벽하게 바뀌었습니다. MBC기자 오면 저리 꺼지라고 썅욕을 했습니다. 그 자괴감에 MBC기자들은 파업을 했고 아나운서 까지 파업을 했습니다. 이에 KBS의 일부 노조가 파업을 했지만 아나운서들은 파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의 사진기자들은 언젠가는 멸종할 것 입니다.
그 이유는 사진의 품질도 높지 않고(이런 이유로 한국 보도사진전 안갔습니다 볼것도 없고요) 특종이라고 하는 사진들의 수준도 조악합니다.
실제로 한국 사진기자들은 예전보다 더 힘이 떨어지고 있고 많이 짤려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인물을 인터뷰 할때 보통 사진기자를 기자가 대동하지만 요즘은 사진기자가 DSLR 가지고 나가서 인터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종이신문의 명성이 떨어지고 신문사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벌어지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굳이 사진기자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사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젠 사진기자가 아닌 삽화가로 전락한 모습들입니다.
게이트 키핑에 항변도 못하는 사진기자들
슈바이쳐를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성자로 그렸다고 라이프지를 떠난 유진 스미스
슈바이쳐는 성자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분이기도 하고요
어렸을때 이 분의 전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그 슈바이쳐를 읽던 제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이런 슈바이쳐를 라이프지가 유진 스미스에게 찍어 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사진잡지지만 50년대 TV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잡지중 하나가 라이프지였습니다. 라이프지가 키운 보도사진작가들 엄청 많죠
유진 스미스는 매그넘 소속으로 슈바이쳐를 촬영을 하기 시작합니다. 위 사진은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모자와 하얀 턱수염을 가진 슈바이쳐 박사와 그의 어깨에 올라탄 듯(실제로 올라탄 것은 아님)한 강인한 흑인 청년과 마치 슈바이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듯한 검은 손들이 보입니다. 한편의 명화를 보는 듯 합니다. 위 사진을 보면 슈바이쳐가 마치 예수로 묘사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프리카에서 집을 짓고 있는 사진인데요. 예수가 목수였던 것 처럼 슈바이처도 목수로 보여집니다. 그의 오른쪽 손에 들려진 연필을 보면 알 수 있죠
이렇게 슈바이쳐를 마치 성자 처럼 담은 이 사진을 라이프지는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러나 '유진 스미스'는 노발대발 합니다. 자신은 슈바이처를 예수로 묘사하는게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담고 싶었는데 편집자가 자신의 입맛 즉 성자로 묘사하고 싶어서 특정 사진을 크게 부각 시키게 됩니다.
이에 '유진 스미스'는 라이프지를 떠나게 됩니다. 자신의 밥줄이자 명성의 원천인 라이프지를 떠난 '유진 스미스'는 일본의 미나마타현에 가서 공해의 공포를 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끔직스럽지만 현실을 담았습니다. 이타이이타이병으로 잘 알려진 카드늄중독에 걸린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고 이 사진은 일본의 공해문제를 전세계에 각인 시키게 됩니다.
만약 유진스미스가 라이프지 편집장 손에 놀아나고 있었다면 이런 진실을 담을 수 있었을까요?
한국의 사진기자들은 항변합니다. 우리는 다 찍는다고요. 보수나 진보 모든 모습을 담는다고요
하지만 그 사진들중 게이트 키핑된 사진들이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나올때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듭니까?
예를 들어 현장에서는 경찰이 100개의 돌맹이를 시위대에 던졌고 시위대는 단 하나의 돌맹이를 경찰에게 던졌는데 그 단 하나를 던지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신문 메인 사진으로 올려 놓고 '과격한 시위대'라고 적어 놓으면 부끄럽지 않냐 이겁니다
먹고 살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고요? 그건 핑계이고 옹호 받을 수 없는 논리입니다.
솔직히 조중동 모든 기자가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지는 않겠죠. 하지만 적어도 돈 때문에 시각을 바꾼 사람들은 확실합니다. 언론이 세상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제4권력기관의 역활을 하지 않고 행정,입법,사법의 기생충이 된 현 시점에서 언론은 똥에 꼬이는 파리나 구데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한국에는 유명 보도사진작가가 없는지 있어도 왜 80년대에 그 명성이 끊겼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87년 동아일보 정태원 기자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연세대 이한열군을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 때문에 제가 '사진은 권력이다'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목도 했으니까요.
만약 이 사진이 없었다면 이 사진이 없고 이한열군이 그냥 쓰러졌다면 여전히 우리는 독재정권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사진을 이제 우리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87년 동아일보와 현 동아일보는 다른 회사로 보시면 됩니다. 동아일보에서 대량 해고된 분들이 한겨레신문사를 세웠습니다.
게이트 키핑 되는 세상, 언론통제가 심한 한국, 그 언론통제에 한국의 사진기자들도 한 몫을 했습니다. 똥을 보고 치우라고 말하는 기자들이 되십시요. 그 똥에 꼬이는 파리나 구데기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