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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남자에게 있어 사랑은 리모델링이라고 말하는 추천영화 '건축학개론'

by 썬도그 2012.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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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에서 친한 친구에게 살짝 보여주었습니다
"누구야?"
"응! 사진동아리 동기야. 어떠냐 예쁘냐?"

첫눈에 반했다는 유행가요 가사를 이해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보고서 바로 이해가 같습니다
쭈볏거리면서 문을 두드린 사진동아리.  그 사진동아리를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그 아이를 보자마자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그 아이가 이 유치하고 지리멸렬한 신입생 환영회를 견디고 계속 사진동아리에 계속 올라오길 바랬을 뿐이죠

그렇게 제 첫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짝사랑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슴앓이를 술로 달래면서 쑥맥 같이 좋아한다고 말도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던 그 90년대 캠퍼스의 봄은 너무나 화사했습니다. 유난히 그해 아카시아향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기억의 장난질일까요?

내가 사는 집과 가까운 신림동에 산다는 그 아이의 말에 너무나 기뻐서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무관심한 척 해야만 했던 그 봄,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딴 사람의 입에서 흘러 나오면 귀는 쫑긋거리면서 시선은 먼산을 향해던 그해 가을, 그 아이와 
단짝이라고 불릴 만큼 친해졌습니다.  



선배나 동기가 휴가를 나와서 술자리를 하게 되면 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그 아이는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술자리가 끝나고 같은 방향인 동기가 저 밖에 없어서 항상 같이 집으로 향했고 전 그 시간이 가장 행복 했습니다.  좀처럼 술에 잘 취하지 않았던 그 아이는 그날은 좀 많이 마셨는지 버스 뒷자리 맨뒤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군요

저도 술에 취했지만 갑작스런 그 행동에 술이 확 달아올랐고 지금까지 그 모습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무척 많이 엄청나게 놀랐던 것 같네요. 놀랄 수 밖에요. 짝사랑 하던 아이가 제 어깨에 기다다니요.

하지만 전 쑥맥이라서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유행가요였던  O15B의 '친구와 연인'이나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의 가사를 꺼내보면 제 심정 이해하실 거예요. 답답한 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랑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무경험자의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고백하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는 사이 2학년이 되었습니다
2학년이 되어서 나이는 나 보다 많은 후배가 사진동아리에 들어 왔습니다. 딱히 사진에 관심있어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후배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와서 그런지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집안도 꽤 좋다고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후배의 차를 자주 타고 다녔고 둘 사이의 썸씽이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습니다. 외면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주제파악을 너무 잘 할 때가 있어요.  아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을 불러서 집에서 놀만큼 떳떳한 집은 아니였습니다.  친한 대학교 친구들과 동기들을 제 집에 데리고 온적도 근처에 온적도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부지 같은 행동이지만 대학교 1학년이 뭘 알겠어요

내 주제를 너무 잘 알다보니 차가 있고 잘생긴 후배가 그 아이에게 접근해도 딱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그 아이 집안이 꽤 좋았습니다. 반면 저는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올 정도도 되지 않았죠.  그때 신분의 격차를 느꼈습니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가난이 죄라고 너무 빨리 배웁니다. 본능인가요
그러다 그 아이가 그 나이 많은 후배랑 사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엄청난 폭음을 했고 친구 앞에서 크게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군대영장을 들고 바로 군에 갔고 전역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졸업을 했고 그렇게 서로 바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처럼 첫사랑이자 외사랑인 그 사랑으로 지은 집은 다시 만나게 된다면 허공속에 사라질것을 잘 알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묻고 싶습니다

"그해 가을 내 어께에 기댈 때 너도 나 사랑했었니?"

했다고 들어도 안했다고 들어도 모두 상처일것입니다. 


영화 리뷰인데 제 이야기를 장황하게 썼네요
제가 낯 부끄럽게 제 이야기를 쓴 이유는 이 영화 '건축학개론'이  어머! 이건 내 이야기야 라고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제 첫사랑 이야기와 너무 흡사했습니다.
 저만 그런것은 아닐 것 입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분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첫사랑에 대한 정밀 묘사가 대단히 뛰어난 작품입니다. 


첫사랑이  나에게 찾아오다


승민(엄태웅 분)은 건축설계사의 사원입니다. 그런 그에게 첫사랑인 서연(한가인 분)이 찾아옵니다.
서연을 못 알아본 승민, 결혼을 앞둔 승민은 오랜만에 만나는 서연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서연이 승민을 찾아온 이유는 자신의 제주도 집을 지어달라는 것 입니다.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죠.
강남 며느리룩을 하고 온 양서연은 메르세데츠 벤츠를 타고 와서 대뜸 자기집을 지어주었으면 한다고 하지만 
돈 많은 것을 유세떠는 꼬라지가 첫사랑이지만 아니꼽게 보였던 승민은 서연에게 쌀쌀맞게 대합니다.
3년전에 결혼했다는 유부녀 서연,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서 둘의 대학 1학년때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서연과 사랑의 집의 반석을 올리게 한 건축학개론
 


서연은 음대생입니다. 승민은 건축공학도였고요
건축학개론 수업에 음대생이자 솜털 뽀송하고 귀여운 서연이 강의를 듣습니다. 
그런 서연을 승민은 곁눈질로 훔쳐 봅니다. 

제주도 출신인 서연은 정릉에서 혼자 삽니다. 승민도 그 근처에 살죠
그렇게 비슷한 곳에 살면서 둘은 친해지게 됩니다.  지리적 거리가 가까운 둘은 심리적 거리까지 가까워집니다


승민의 파인더 안에 들어온 서연 둘은 그렇게 친한 친구처럼 지냅니다. 
그러나 서연은 좋아하는 선배가 있습니다. 교회 오빠 같은 잘생기고 돈이 많아서 차를 몰고 다니는 방송반 재욱오빠를 짝사랑 합니다.  그 사랑을 지켜보는 승민은 짝사랑에서 외사랑이라는 가장 슬픈 사랑단계로 넘어 갑니다.

승민은 이런 과정을 재수생인 친구에게 고민상당을 합니다. 
..  줄거리는 여기까지 적어야겠네요. 더 적으면 민폐수준이 되겠죠




90년대를 그대로 담아서 현재 30대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영화

 
영화의 배경은 90년대 후반입니다. 얼핏 기억나기로는 레포트 학번에 1999라고 적혀 있던데요
그런데 주제가나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이 흘러 나오는 것을 보면  90년대 초로 보입니다.  배경은 90년대 후반이지만 영화의 주제가인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나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등은 94년도 곡입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90년대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90년대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고 꼼꼼하게 담고 있습니다.

서연의 반지하 자취방 앞의 자동차를 유심히 봤습니다. 딱 그 시대의 자동차들을 세워놓았고  버스도 그 시절의 버스입니다.
완벽한 재현이네요. 여기서 부터 제 마음은 이 영화와 동기화 되었습니다.  흡사함을 넘어서 똑같다고 느끼면 사람의 감정의 문은 더 쉽게 열리잖아요. 이 영화는 그 90년대에 20대를 보내고 첫사랑 앓이른 한 사람들을 쉽게 무장해제 시킵니다

저도 영화 시작 10분만에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앙칼지게 볼려다가 다 풀어 놓고 항복했습니다
이 무장해제는 엄태웅 한가인이 한게 아닙니다. 이제훈과 수지 때문입니다. 

이제훈은 영화 파수꾼과 고지전에서 봤는데 차세대 스타입니다. 이 배우 이미 스타가 되었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있는 볼매입니다. 파수꾼에서는 침 좀 뱉는 배우로 나오는데 그 야수성과 순박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참 묘한 젊은 배우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순백 그 자체의 각설탕 같은 청년으로 나옵니다. 서연에게 살짝 키스를 하는 모습이나 
서연이 남자친구가 없다는 소리에 속으로 좋아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모습은 참 이 배우 물건이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수지는 미스에이라는 걸그룹 멤버인데 전 이 영화에서 수지의 연기와 솜털 가득한 모습이 첫사랑의 이미지와 너무 잘 맞더군요.  수지의 연기력에 놀랬습니다.  둘의 호흡이 너무 좋더군요.  첫사랑의 설레임과 떨림을 두 배우는 훌륭하게 소화해 놓았고 30대라는 중년으로 가는 기차를 탄 남자들을 설레이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반면 현재이야기를 이끄는 엄태웅과 한가인씬이 나오면 좀 지루한 면도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사극에서는 욕을 바가지로 퍼 마시던 한가인이 이 영화에서는 그런대로 잘 소화합니다. 워낙 외모 자본이 뛰어난 배우라서 스크린에 움직이는 자체가 설탕 같은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대로 연기를 잘 합니다. 

영화는 90년대 정서를 가득 담았고 첫사랑의 설레임도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무스를 바르고 올빽 머리를 했다가 바로 머리를 감는 모습이나,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1기가 삼성컴퓨터에 평생 써도 되겠다는 말등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유치하고 어리숙한 그 모습들을 잘 담고 있습니다



마음에 빈집이 있었던 승민과 서연


우연히 들어간 빈집에서 둘은 서로의 빈집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가 없는 승민과 어머니가 없는 서연 둘은 그 허전함을 공유하게 됩니다. 영화에서 빈집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마음의 공터였죠. 제주도에서 올라와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서연에게 승민은 자신의 어깨를 빌려 줍니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게 됩니다. 그 서로의 마음을 전해주는 매개체가 있는데 그 매개체가 바로 이 영화의 주제가인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담긴 CD였습니다. 


계급의 벽에 좌절하는 승민


 서연은 선물이라면서 전람회의 CD를 선물로 줍니다. 
그러나 승민의 집에는 CD플레이어가 없습니다. 전 그 장면에서 사랑도 계급 차이가 없어야 사랑을 하는 것이라는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보통의 멜로영화들은 신분과 계급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영화가 대부분이고 그런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우리는 감동을 하거나 대리만족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분명 우리들 사이에는 계급이 있습니다. 자기가 불성실하고 학창시절에 놀아서 생기는 계급의 차이라면 감수하겠지만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잘산다는 이유로 스스로 벽을 만들고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자괴감이라는 벽을 촘촘하게 쌓아올리는게 현실입니다. 물론 이건 소심남들의 특징이긴 하지만 결코 소심한 남자들만 이런 벽을 쌓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GUESS라는 옷과 강북 강남등의 계급사회를 나타내는 메타포를 곳곳에 배치합니다.
세상을 비꼴 의도로 계급의 차이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게 현실인 것 입니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세상이고 그 세상의 순리를 따르는 것 뿐이죠.  



넘버3의 송강호를 연상시키는 납뜩이의 신들린 유머 방언 

 
이 영화 순백하고 담백한 첫사랑을 다룬 영화인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이 영화 상당히 웃깁니다.
승민이가 자신의 사랑의 조언을 구할려고 재수생 친구를 찾아갑니다. 이 친구는 사랑에 대한 조언은 물론 충고를 넘어 코치까지 합니다.  그의 말솜씨에 관객들 빵빵 터집니다.  

보면서 넘버3의 송강호가 연상될 정도입니다. 분명 송강호 연기를 따라한것 같은 느낌이 나지만 너무나 재미져서 쉴새없이 웃었습니다.  조정석이라는 배우인데요. 눈여겨 봐야겠습니다. 씬스틸러가 따로 없네요.  

저 납뜩이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이 영화 좀 싱겨웠을 것 입니다.



삶이 매운탕 같다는 서연, 맑은 지리탕을 맛보다


첫사랑을 나이가 들어서 다시 만난다? 이런 이야기는 수 많은 영화가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도 첫사랑에 대한 영화이고 많은 영화들이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좀 진부한 설정입니다
첫사랑을 나이 다 들어서 다시 만난다?  이런 영화는 배부분 불륜이지만 괜찮아! 라는 묘한 스토리로 진행하다가 그래도 우리는 불륜이야라면서 자각하고 끝이 납니다.

이 영화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단 3줄로 요약해서 보여줄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크게 공감을 가지게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하나씩 갖고 있는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촘촘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를 그려도 어떤 화가는 대충 그려서 별 느낌을 얻지 못하지만 어떤 화가는 사진보다 더 촘촘하게 정밀묘사해서 큰 감동을 주게 합니다.

불신지옥이라는 영화로 호평을 받은 감독 이용주는 이 영화를  봉테일이라는 봉감독 처럼 촘촘하고 정밀하게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영화가 더 기대되는 영화감독이기도 하네요

매운탕을 먹다가 서연이 말합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맵기만 한 매운탕"  서연은 삶의 무게에 폭발하게 됩니다.
그런 첫사랑을 지켜보는 승민, 결혼을 앞둔 승민이지만 남자라는 동물 답게 첫사랑에 헌신을 합니다. 
승민은 서연에게 매운탕이 아닌 맑은 지리탕을 선물합니다. 


 

 이 영화 건축학개론은 여자분들 보다는 30대 남자분들 혹은 첫사랑앓이를 하는 10,20대 남자분들이 꼭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40대 감독이 10대부터 30대까지의 남자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영화에 담겨 있습니다. 

첫사랑, 남자들에게는 평생을 가져갈 사랑입니다.
남자에게 있어 사랑은 여자들의 사랑인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싹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 아닌 첫사랑과 함께 지은 집을 리모델링 하면서 첫사랑을 그리면서 다른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이 사랑인 것 같습니다.

그 남자들의 사랑이라는 집 설계도를 이 영화는 잘 담고 있습니다. 추천합니다. 재미있고 사랑앓이 하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웰메이드 영화네요.  
신도림역 맨 앞칸에서 만나서 학교까지 이어폰 하나로 화이트의 '7년간의 사랑'을 함께 들었던 그 가을이 기억납니다. 
그 아이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그렇듯 과거를 싹 지우고 현재의 집에서 만족하면서 살겠죠. 사랑을 집이라는 건축물에 빗대어 말한 메타포가 진한 영화입니다.  

남자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은 여자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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