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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왜? 라는 물음과 따짐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by 썬도그 201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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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을 한달에 한번 정도는 들립니다. 새로운 잡지나 여러 신간서적 특히 사진에 관련 된 서적을 보러 갑니다. 국회는 오래된 서적과 수많은 과월호 잡지들이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국회도서관을 많이 들리는데 그 이유가 국회도서관에는 대학생들의 논문이 한부씩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논문을 들쳐볼때 많이들 들리죠

그래서 졸업을 앞둔 학부생들이 많이 들립니다.  
제가 국회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게 있지만 그중 하나는 중고등학생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분명 국회도서관은 중고등학생들이 안보입니다

중고등학생이요?  뭐 저도 그 시절 지냈지만  중고등학생이 도서관에 몰려오면 그 도서관 시끄러워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집근처 구립도서관도 리모델링을 한 후 중고등학생이 많아졌는데 아주 시끄럽지는 않지만 복닥거리고 산만한 것은 많아 졌습니다. 열람실에서 조용히 떠드는 모습도 많고요.  제가 눈치를 주고 안되면 조용히 하라고 직접 말도 하지만  그 호르몬 분비가 용암같은 시절에 자신의 에너지를 참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죠. 또한 도서실이 아닌 열람실이기에 어느정도 소음은 이해합니다. 열람실은 도서실보다 좀 더 느슨하죠.  앞에서 떠드는 고등학생을 보다가도  내 노트북 키보드 소리가 큰것을 알기에 그냥 무던하게 지냅니다.  아주 시끄러우면 음악 들으면 되고요.

그런데 이걸 못참고  토익공부하던 대학생이 떠드는 고등학생에게 뭐라고 합니다. 
내가 보기엔 그 대학생 노트북 키보드소리가 더 크게 들리던데요. 여유가 없어서 그런것이겠죠. 

국회도서관이 중고등학생이 없는 이유는  열람대상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공무원, 대학생및 18세 이상인자가 사용 가능하고  중고등학생은 학교장 추천을 받아야 합니다.
전 이런 사실을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이런 이유로 국회도서관에 중고등학생이 없었군요.
 


 
포털 뉴스를 보니 한 여고생이 이런 중고등학생의 국회도서관 나이제한의 부당함을 따져 물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국회도서관에 나이제한을 두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국회는  입법활동 지원이 주업무라서 청소년까지 입장하면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어설픈 변명을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성인도 들어가지 말아야 하죠.

이 여고생은 이런 이상한 모습을 따져물었습니다. 중고등학생이 입법활동에 지원에 지장을 준다면  전문서적을 모아놓은 열람실만 출입을 제한 하면 되는것 아니냐고 인권위에 따져 물었고 인권위는 국회도서관에 행정권고를 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생이 아니라서 이런 부당함을 생각하지 못했네요.
중고등학생이 성인보다 더 많이 떠드는것 솔직히 좋아하지 않고  중고등학생이 많은 도서관은 일부러 피할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공공도서관에 성인만 들어갈 수 있게 한 국회도서관도 문제지요.  중고등학생이 문제라면  중고등학생용 열람실을 따로 만들어주던지요.  

국회도서관에 가면 열람실이라기 보다는 공부하러 온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자료를 찾고 그 자료를 취합해서 논문을 쓰는 분들도 있지만 다른 여타의 공공도서관처럼 열람실이 도서실화 되었습니다.

보통 열람실은 서재에 꽂혀 있는 책을 책상위에서 읽고 자료를 찾고 해야 하는데 국회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이나 영어회화 동영상 강의듣으면서  스펙쌓기하는 분들이 참 많죠. 원래 열람실은 도서실보다 좀 더 시끄러운게 정상이기도 합니다. 책을 열람하는 곳이고 정보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트북을 사용해야 하는 곳이기에  키보드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이런 국회도서관을 중고등학생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어설픈 논리입니다. 
저 여고생의 왜? 라는 물음과 그걸 지적하는 실천이 인권위의 행정권고를 이끌어 냈습니다. 

세상은 다수가 변화시키지만 그 시작점은 개인입니다. 저 여고생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국회도서관은 중고등학생의 입장을 원천 불허 했을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해보고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따져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왜? 라는 물음에서 멈춥니다. 
원래 그렇데.. 
나 참나~~ 하고 끝이죠

이렇기 때문에 세상의 부당함이 참 많습니다. 
어제 배우 김민준이  사이드카 모는 교통경찰이 손가락으로 오라고 하고 반말을 하는 모습을 트위터에 지적했습니다.
저도 교통경찰이건 경찰 경험을 했지만  이 경찰이라는 사람들은 혀가 반쪽인가 봅니다.  제가 두번의 교통사고때문에 경찰서에 가해자로 피해자로 가봤는데 가해자건 피해자건 무조건 보자마자 반말입니다. 

당시는 경황도 없었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상하게도 경찰들은 무슨 반말 훈련을 받았는지 보자마자 반말을 합니다. 
느닷없는 반말에 처음엔 놀랐습니다.  날 잘 아나? 친근하게 보일려고 그러는건가? 하는 생각마져 들었습니다.

경찰들의 반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넘길 수 있지만  배우 김민준은 그걸 지적했습니다. 용기있는 행동이죠
아시잖아요. 배우나 유명인들이 부당함을 지적하면 그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의식있는 배우로 찍히면  불이익을 많이 받는 다는 것을요.  이렇게 왜? 라는 물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고 그 왜에서 나온 시정요구나 따져물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대학생들이 이제서야 제대로 따져묻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초기 대학생들은 서울광장에 모여서 반값등록금 시위를 했고 그 이후에 대규모 시위를 한번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3년동안  각개전투식으로 하고 있는데  효과가 전혀 없고 정부는 거들떠도 안봅니다. 그래도 시위가 빈번하고 자주있으니 몇몇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는 꿈쩍도 안하죠.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는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대학생들의 주장 정부가 들어줄리 없지요.  다수가 모여서 한목소리를 내고 선거운운하면서 움직이면 한나라당부터 움직일걸요.  솔직히  20대들이 투표를 안하니 20대를 위한 법보다는 노인들을 위한 법을 만들려고 합니다.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투표 안하는 20대 보다는 투표율 높은 60대 이상의 노인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복지를 신경쓰겠어요.


세상은 왜? 라는 물음과 따짐 그리고 뭉침이라는 3단계로 변화해 갑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왜? 라는 것과 따짐은 좀 있지만 뭉침이 없습니다.

여고생 혼자서 국회도서관의 입장제한에 반기를 들었고  공부를 해서 인권위에 진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따짐이 합당하기에 인권위는 행정권고를 국회도서관에 보냈습니다.  뭉치지 못한다면 이렇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이라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좀 더 편리해지고 살기 좋아졌다고 느껴지는 그 이면에는 까칠한 사람들의 따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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