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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합니다 그리고 이상합니다.해가 넘어가자 예능프로그램을 보는것이 죄스럽습니다.
아니 재미가 없습니다. 예능만 아닙니다. 그 재미있게 보던 '아테나 : 전쟁이 여신'도 재미가 없습니다.
'놀러와'에 소녀시대 여신들이 나왔지만 흥미가 떨어져서 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람이 울리더군요
EBS 마이클 센델 : 정의 라는 메모가 적였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까먹을까봐 알람 설정을 한것이 기억났고 EBS로 채널을 돌렸습니다
그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강의가 시작되더군요
작년 최고의 화두는 정의였습니다. 정의란 무엇일까요? 라는 패널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했던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2007년 겨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정의란 개개인마다 다 다르죠. 나의 정의와 당신의 정의가 다른게 현실이지요
난 이게 선하다고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행동이 악의 행동이라고 불수 있습니다
강의는 시작하자마자 여러가지 현실적 이야기를 다루더군요
그중 하나를 스케치하면
5명의 사람이 장기이식을 받지 못해 죽는다고 가정을 하죠. 그런데 옆방에 신체건강한 남자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왔습니다
남자는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나요?
저 무고한 남자를 죽이면 5명을 살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행동을 반대했습니다.
이 강의는 참 재미있고 훌륭한게 자기 혼자 줄줄줄 떠드는 강의가 아닙니다. 수없이 질문과 답변을 들으면서 강의를 진행해 갑니다.
그러면서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힘을 가진 강의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1명을 죽여서 5명을 살리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실화를 소개합니다.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19세기에 4명의 선원이 탄 배가 난파되고 구명보트에 4명이 옮겨 탑니다.
이 네사람은 망망대해에서 하염없이 표류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구원되길 바라지만 구원의 빛은 내려오지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통조림 두개도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을 물한모금 못마시면서 굶습니다.
3명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1명은 17세의 고아였습니다. 이 고아는 먹지말라는 바닷물을 먹어서 몸이 좀 아픕니다.
편하게, 가정이 있는 사람을 A.B.C라고 하고 소년을 D라고 하죠
A가 제안을 합니다. 제비 뽑기를 해서 뽑힌 사람이 희생을 당하고 나머지 사람이 인육을 먹는것을요
하지만 C는 그걸 거부합니다. 사람을 죽여서 까지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며칠을 또 보냈습니다.
D는 점점 몸이 약해져 가는데 어느날 A와 B가 합심해서 D를 죽입니다.
그리고 D를 먹습니다. C는 살인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인육을 먹는것에 동참 합니다.
그리고 사흘 후 기적같이 지나가던 독일 선박에 의해 3명은 구출이 됩니다
그들은 영국재판정에 섰는데 살인죄로 기소가 되었습니다. C가 증인석에 나와 상세히 그 배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했고 A.B도 인정했습니다.
이때 마이클 센델 교수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A.B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냐고..
어떤 답이 나왔을까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죄를 물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였다면서 죄가 없음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있었습니다. 살인은 살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죽일 수 있냐 라고 항변을 하더군요
또 한 학생은 동의와 절차 과정을 집어냈습니다.
D의 동의를 받았냐. 동의를 받더라도 강압적인 동의가 아닌 자발적 동의가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강의는 동의문제에
초점이 맞추어 집니다.
동의와 절차가 합당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유죄를 외치던 학생들이 동의와 절차가 합당하면 유죄가 아니다 쪽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강의는 이 문제를 3가지로 정리 했습니다
1. 살인은 살인이다
어떤 살인은 용인이 되고 용납이 되고 어떤 살인은 용인이 되지 않을 수 는 없다
공리주의에 입각해서 1명이 희생되고 3천명이 살 수 있다고 해도 그 1명의 기본권도 중요하다. 그럼 이 기본권은 어디서 나왔을까?
전 이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주변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서 희생되는 소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문제는 그런 개념 즉 공리주의가
현명할 때가 많습니다. 다수결원칙 참 우리 자주 애용하죠. 그러나 기본권을 건드리는 최대다수가 과연 도덕적으로 옳을까요?
예를 들어 기본권인 인권, 생명권등을 침해하면서 다수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 옹호할 수 있을까요?
이 강의에서는 두가지 도적적 가치판단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공리주의와 명확한 의무와 권리가 행동을 결정하는 정언적 도덕 추론입니다.
위에서 C가 굶어죽더라도 살인은 안된다고 했던것이 바로 정언적 도덕 추론에 따라 행동한 것 입니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있죠.
가끔 뉴스에 나오는 안락사 문제죠.
이 안락사는 공리주의로 보면 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해 하기 때문에 한명이 희생당하는게 당연시 되지만
정언적 도덕 추론에 의하면 안락사도 살인이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나라마다 참 시끄럽죠
2. 정당한 절차는 모든 결과를 정당화 하는가?
위에서 A는 제비뽑기를 제안했습니다.
C가 반대해서 하지 못했지만 만약 A가 제안한 제비 뽑기를 나머지 3명이 동의했고 D가 선택이 되었다면
과연 A.B.C는 모두 무죄인가? 하는 질문을 하더군요. 결과는 살인이지만 (자살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힘들것 같고)
과정이 합리적이고 정당했다면 결과까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3. 동의는 어떤 도덕적 기능을 가지는가?
문장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대충 메모한것이라서요
위에서 D가 죽여도 좋다고 동의를 했다면 A.B가 무죄라고 한 학생이 참 많았습니다.
동의도 위압적인 상태에서 동의말고 D가 스스로 동의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안락사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죠. 환자가족들이 동의했고 환자 스스로도 동의했다면 안락사는 도덕적 문제가 없을까요?
그럼 안락사 시키는 의사는 살인죄가 아닐까요? 하지만 이 문제는 쉬운게 아닙니다.
학생들은 괜찮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현실에서는 안락사가 위법행위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한 안락사 의사에게
안락사 시켜달라고 환자를 비행기 태워서 가기도 하잖아요. 그 안락사 의사 케보키언은 2급 살인 협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의사는 감옥에서 8년간 복역했죠
동의와 적접한 절차와 있었다고 해도 인간의 기본권을 위배하였기 때문에 안락사가 금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렇게 세상은 복잡한듯 합니다.
책만 사놓고 한줄 읽지도 못한 이 책을 조금씩 읽어봐야 겠습니다.
어떤 SBS 기자의 뉴스를 보니 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칭찬하면서 다만 문제만 제시하지 답을 적어 놓지 않았다고 비평하던데요
오늘 강의를 들어보니 기자가 강의를 안본듯 합니다.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풀지 못하고 답을 내지 못하는 문제들을 1학기만에 옳고 그름을 정리하자고 하는게 아닌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게 강의 목적이라고 하는것 같더군요. 이런 명제와 딜레마는 그때 그때 상황상황
장소에 따라 다르겠죠.
오늘 밤 12시에 또 강의를 한다고 하니 또 기다려 봐야 겠습니다.
졸려서 잘려다가 강의를 듣고 벌떡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쓰게 하네요. 정말 명강의였고 꼭 들어 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마음속이 답답했던것이 내 안의 응어리 진 문제들을 녹여줄 무언가가 없어서였나 봅니다. 답답함을 풀어주는것은 철학같은 거시적인 담론이 잘 풀어주더군요. 어느정도 답답함을 치유해서 좋았던 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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