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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천사의 멜로디를 알려준 음악가 이영훈의 지상에서의 메모(서평 광화문 연가)

by 썬도그 2009.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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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외삼촌이 보내준 산요 카세트플레이어를 보고 왜 소니 꺼가 아닌 소니짝퉁인 산요것을 보내셨나 약간 뽀루퉁 했었습니다. 85년 당시에는 산요라는 제품은 잘 몰랐습니다. 일제라면 무조건 소니만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 일제 카세트를 라디오용으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다 팝을 알게 되었죠. 신디로퍼, 마돈나, 마이클잭슨을 알게 되면서 음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이클 잭슨, 웸, 듀란듀란, 아하, 조이등이 음반시장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팝송 전문프로그램이 인기 있었고팝만 줄창 틀어주는 2시의 데이트, 이종환씨등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2시의 데이트는 최신팝을 자주 소개해주어 청소년들이 방학 때만 되면 애청을 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고요.

가요는 라디오보다는 TV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마추어 작곡가와 무명의 얼굴 긴 가수가 이전에 없던 노래들을 들고 세상에 나옵니다. 한국가요계에서 이전에 듣지 못했던 클래식선율과 바이올린소리 피아노 소리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한국가요계의 판도를 바꿉니다. 그리고 음반시장의 판도를 넘어서 라디오에서 팝보다는 가요를 더 많이 틀게 되는 계기를 만듭니다.

90년대 초인가 어느 외국유명가수가 한국에서 공연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면서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팝송을 듣는데 한국은 가요를 더 많이 듣는다. 그 이상하다는 것은 한국을 추켜세워주는 말이었습니다. 뒤돌아 보면 정말 그렇네요. 80년대 후반 이후 음반시장이나 라디오, TV에서 모두 한국가요가 팝을 누르고 있으니까요.

이런 세상의 흐름을 바꾸게 한 사람이 바로 음악가 이영훈과 이문세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쓴 글 내가 뽑은 이문세 불후의 명곡 베스트 5를 통해 이문세의 곡을 다시 되새김질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 특히 20대나 10대 분들이 좋은 곡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댓글에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그러고 보면 명곡은 시대나 세월을 타지 않나 봅니다.

얼마 전 KBS의 해피선데이의 불후의 명곡을 통해 이문세라는 거물가수의 맨파워를 다시 한번 세상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이문세를 한물간 가수 늙은 가수라고 알고 있지만 그 방송을 통해 감히 요즘 가수들이 범접할 수 없고 복제할 수 없는 아우라를 봤습니다. 이문세라는 가수는 세월이 들어갈수록 더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네요.

그리고 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음악가 이영훈.

제가 작곡가 이영훈이 아닌 음악가라고 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멜로디에 탐복하지만 사실 이영훈이라는 음악가는 작사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노래 부르는 가수를 염두하면서 한 올 한 올 땀을 따듯 작사를 합니다. 그의 노래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멜로디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수준 높은 작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 소녀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녀라는 단어가 한마디 나오지 않고서도 소녀의 감수성과 느낌을 느끼게 해 줍니다


독특한 아트북 광화문연가

서평 광화문 연가

우연일지는 몰라도 음악가 이영훈이 그동안 써왔던 메모와 일기를 추슬러서 낸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2008년 2월에 돌아가신 이영훈 음악가. 그가 남긴 글들이 궁금했습니다. 이 책을 근처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놓고 불후의 명곡에 나온 이문세의 노래를 듣고 그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한통의 메시지가 도서관에서 왔습니다.

희망하신 도서 광화문 연가가 도착했습니다.!!

책을 처음 받아 들자마자 느낀 것은 헉!!이었습니다. 책이 이상하더군요. 뭐지 이건. 레코드판 반 잘라 놓았네.
책이 두 권이라서 두 권을 붙이면 레코드판이 됩니다. 이런 게 아트북이라고 하더군요. 책을 펼치자 책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튼튼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은 두 권으로 한 권은 이영훈이 쓴 곡들의 가사와 미발표곡 가사가 담겨 있습니다. 한권은 이영훈의 일기장과 메모 그리고 아내의 회상의 차분한 글입니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세상 음악가들은 지독한 사랑의 과정과 그 사랑의 터널을 끝나고서 담배 한 개비 물면서 지독했던 황홀했던 사랑을 기억하면서 노래를 만듭니다. 음악가들 뿐이 아니죠. 가수들을 보면 저 가수는 지독한 사랑을 한번 해봤구나 혹은 입으로만 노래를 부르고 마음으로 부르지는 못하는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가수나 음악가에게 있어서 사랑의 경험은 필수덕목입니다. 사랑의 경험도 한번 없으면서 사랑노래를 만드는 것은 가짜입니다. 헛것입니다. 주서들은 사랑을 얼치기로 듣고서 노래를 불러 봐야 사랑노래에 감정이 배어 나오지 못합니다.

음악가 이영훈에게 있어서 사랑은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노래의 원동력이자 강력한 후원자였던 어머니
모두가 반대한 음악가의 길을 갈 때 어머니는 자신의 월급을 쪼개서 막내아들 이영훈에게 사줍니다.

이영훈은 이문세를 알게 되었고 이문세는 이영훈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둘은 자취방에서 노래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30분 만에 만든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5주 연속 1위 하면 자동 하차였습니다) 라디오 차트 10주 연속 1위를 하고서 이영훈은 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에게 달려갑니다.

정신이 혼미한 어머니에게 아들은 말합니다. 어머니 제 노래가 10주 연속 1위 했다고 알립니다.
이영훈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이영훈이 꼽는 최고의 자신의 노래는 슬픈 사랑의 노래

이 책에서 좀 아쉬웠던 것은 이영훈의 화려했던 시절인 87,88,89년 이때의 일기가 아주 적습니다. 그 화려했던 시절의 뒷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별로 없더군요. 그리고 힘든 시절의 이야기가 길게 그려집니다.

이문세를 멀리하게 아니 대중에게서 잊히게 된것은 그의 한결같은 스잔한 슬픈멜로디가 더 이상 세상에서 원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타령, 슬픈노래 일생이던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을 지나서 서태지로 대표되는 댄스음악이 한국음반시장을 넘어서 음반시장을 석권하고서 그의 스잔한 노래들은 잊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영훈은 이문세와 같이 계속 곡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심야 라디오프로에서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아무래도 계속 같은 스타일의 곡만 만들다 보니 대중들이 외면하고 자신에게도 매너리즘이 왔다고요.

그러나 가끔씩 히트 친 노래도 나옵니다. 옛사랑 같은 명곡은 남들도 모르게 라는 전주만 들어도 눈물이 글썽거리게 됩니다.이문세가 꼽는 자신의 최고의 노래는 무엇일까요? 이영훈이 꼽는 자신의 최고의 노래는 무엇일까요? 이영훈은 책에서 말합니다. 저 멀리 러시아에서 녹음한 슬픈 사랑의 노래 가 자신의 최고의 노래라고요. 하지만 이 노래 철저하게 대중에게 외면을 받습니다. 저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러시아의 눈보라 같은 애잔한 한기가 느껴지는 곡이더군요. 이곡은 92년 10월에 모스크바에서 볼쇼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만 녹음만 합니다. 가사는 나중에 써지게 된 곡인데요. 약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잠들어 있던 곡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흔적은 묻어 있지 않아 보일 정도로 클래식컬한 노래네요.

음악만 알던 이영훈, 세상에  베이다.

서평 광화문 연가

그는 슬픔은 아름답다는 미학론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노래가 대부분 슬픔을 노래하나 봅니다. 음악만 알던 이영훈, 작곡할 때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문을 닫고 작곡을 하는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 매일같이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수시로 아내에게 편지를 써대던 애처가이자 로맨티시스트, 그러나 하루에 커피 40잔을 마시고 담배 3갑을 피면서 작곡, 작사를 하는 음악가. 앨범준비를 하지 않을 때면 여기저기 술을 마시러 다니면서 새벽에 술에 취해 오던 이영훈

그런 그가 사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을 알게 되면서 그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그의 분노는 이 책에 담겨 있더군요. 얼마나 분노가 심한지 점잖은 사람이 욕설을 한 느낌까지 듭니다.선배선배하면서 베껴먹는 알량한고 셈이 빠른 후배들과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을 이영훈을 옥죄이게 합니다. 그의 병은 이때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합니다.

그에게 병이 찾아오다

서평 광화문 연가

2006년 5월 이영훈에게 병이 찾아옵니다. 술을 너무나 좋아해서 시드니로 이사했던 이영훈가족, 남편의 술을 자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영훈은 그 섬세한 성격 때문에 향수병에 걸리고 먼저 한국으로 갑니다. 그리고 혼자 지내던 한국생활에서 병을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지옥 같은 앨범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12집, 13집이 그의 건강을 가져갑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습니다. 20년 지기 이문세에게도 알리지 않죠.
그리고 이문세 씨가 병원에 있다고 해서 그냥 둘렸다가 그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이문세 씨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적게 나옵니다. 오히려 한영애 씨와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좀 아쉽기는 하지만 책에 그걸 넣어야 둘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영훈은 자신의 목소리를 이문세라는 싱어를 통해 말했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노래는 완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문세라는 싱어가 이영훈의 최고의 선택이었냐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안도 없고 제가 보기엔 차선은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영훈의 노래를 이문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불러줄 가수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붐으로 이영훈의 노래를 다시 부르지만 이문세만큼 곡을 음표 하나하나 씹어가면서 또박또박 부르지 못합니다. 옛사랑이란 곡을 수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했더군요. 가수 윤종신도 불렀는데 방금 다 들어봤지만 이문세가 부르는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영훈은 병마가 긴 사투를 합니다. 언론에 처음 알려진 게 사망선고를 받은 후였습니다.
백발이 된 이영훈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기 싫어했지만 기록으로 찍겠다는 언론인들의 말에 허락합니다.
저도 그 언론을 통해 봤을 때 지인과 메신저로 서글퍼만 했습니다. 어쩌다가~~ 내가 이영훈을 너무 잊고 살았구나.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하더군요. 다른 사람 많은데 왜 하필 이영훈이란 말인가? 하는 투정도 해보았지만 나 스스로 반성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동안 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살았을까? 약간의 후회와 반성도 되더군요.
그리고 2008년 2월 그는 하늘을 향해 지휘를 하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그의 병동생활은 힘겨웠지만 항상 그는 웃었습니다. 언론에 노출된 잠깐이 영상에서도 그는 허허허 웃더군요. 그 영상을 보면서 말기라는데 정말 아픈 사람 맞아?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의사도 목사님이시냐고 하실 정도니 그의 인품은 참 고왔던 것 같습니다.

바보같이 맑기만 했던 이영훈. 그를 기억하다



바보같이 맑기만 했던 이영훈. 그를 기억하다


이영훈은 자신의 일기나 메모가 책으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건강했을 때의 일기는 수준 높고 문학성 있는 글들은 아닙니다. 자신만 볼 일기를 쓰듯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 많아서 좀 싱겁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단어도 사건에 대한 전말도 적혀있지 않고 느낌만 적혀있어서 뭔 소린가 하는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글 옆에 아내가 쓴 글이 날줄이 도리어 거들어 줍니다. 아내분이 쓴 글이 오히려 초반엔 길라잡이가 되어줍니다.
그리고 병마와 싸우기 전 2000년도 중반 이후 글들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글도 상당히 좋아집니다. 그리고 결국 내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글들이 계속 나옵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이가 자신의 병을 숨기고 아파도 참으면서 내색 한번 안 하듯 이영훈은 일기에 아프다란 말을 거의 적지 않더군요. 그러나 아내가 쓴 글을 통해 그가 어떤 과정이었는지 살며시 듣게 되고
눈물이 그렁그렁 거리게 되더군요. 전철 안에서 뭔 추태인가 싶어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아프다. 살고 싶다가 아닌 병원에 더 가고 싶지 않다는 말로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보입니다.

그의 노래에서 수없이 나왔던 덕수궁에 정작 본인은 죽기 전에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작곡가,
자신의 노래들로 꽉 채워진 KBS 열린 음악회에서 자신의 곡들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습을 말없이 아내와 손 꼭 잡고 보던 최고의 호사를 받은 이영훈, 그의 노래가 좀 더 오래 대중들에게 호응을 받았더라면 그의 죽음을 조금 늦출 수 있진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지금 드네요

서평 광화문 연가

음악가 이영훈이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난 후 1년 뒤 그의 20년 지기 친구 이문세는  정동길 입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떠난 친구에게 줄 작은 선물을  정동입구에  놓았습니다. 저 하늘에서 친구의 선물에 너털웃음을 짓고 있을것 같네요. 영상을 다시 보니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서평 광화문 연가

저 하늘에서  가로수 그늘아래에서  붉은 노을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시를위한 시를 쓰시길 바랍니다. 음악가 이영훈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눌러서 EBS 지식E채널에 나온 영상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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