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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문자 홍수시대에 허우적이다 문자중독증을 걱정하다.

by 썬도그 2009.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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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제 블로그에 책 리뷰가 많이 올라 옵니다. 지금도  책을 하나 읽고 있는데 잠도 안오고 눈운 쓰라려 오는데 방금 먹은 커피때문인지 졸리지는 않네요.  그러고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렇게  닥치는대로 책 읽다가 문자중독증에 걸리는것 아닌가?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문자중독증에 걸린  작가인지 작가의 아버지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가게에서  컵라면 하나 샀는데  라면에 물을 넣고 3분동안 기다리는데 컵라면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글들을 읽습니다.  뭐 몇% 뭐뭐가 몇% 들어있다는 글을 읽다가  희망소비자가격까지 읽고
희망에도 가격이 있을까? 하는 내용의 글입니다.  뭐든 읽어야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모습이기에 컵라면의 무의미한  단어들을 읽어대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 이런 비슷한 증상이 있어요.  그냥  닥치는대로 읽습니다. 한번은  아파트 엘레베이터 앞의 마트 전단지를 꺼내들어서 다 읽고 있는 절 발견했죠.  또 거리를 걷다가  거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광고판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전봇대 눈높이에 등장한 새로운 문구    전세 , 월세 원룸 얼마.    그냥 다 읽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왜 저런 문자를 여기에 적어 놓았을까? 하는 머리속 생각회로가 가동되고   제멋대로인 해석을 해놓고 안심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  문자는  더 많아 진듯 합니다. 아침에  메신저로 오는 문자들을 읽고   핸드폰으로 날아오는 문자들을 읽어됩니다.  신문을 읽고  모니터에  점점히 박힌  글짜들을 읽습니다. 그리고 좋은 글은 추천한방

하루종일  한글자의  글을 보고 읽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 합니다. 

이젠 공기처럼 문자없이는  살수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저 멀리 외딴곳에서 하루종일 잠을 잔다면 모를까  12시간 이상 활동하면서 한자의 글도 만나지 않기는 힘듭니다.

문자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한 종류입니다.  말이 가장 확실한  전달수단입니다.  더 정확한것은  사람얼굴과 함께 나오는 말이죠.
하지만  문자는  확실한 의미전달의 수단은 아닙니다.  말에는 어투가 있어서 같은 말도  어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잖아요.
그러나 문자는 어투라는 것이 없습니다.  감정부호로 그 감정의 깊이를  흉내를 내지만  감정부호를 모두 표현하는게 아니고 요즘 귀찮아서 안쓰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적이 있었어요.  내가 타이핑한  문자와  메신저 저편의 사람이 해석하는 의미가 다른적이 있었어요.
선배는 왜 말투가 그래? 
메신저로 후배랑  대화하다가 뜬금없는 질문에  내 말투가 어때서?
시비조 같아!!
응? 난 시비걸려는 한것은 아닌데 그렇게 보였니?
응 시비거는것 같아.  흠.  난 그런것 아닌데 정작 시비조일때는  너 그냥 있더만  ㅎㅎㅎ
그래 문자는 의미이 반만 전달하다고 하더라구 알았어

싱겁게 끝난 대화였지만  이 대화를 통해서 문자가 완벽한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자중독 이야기 하다가  문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장황해졌네요.  주서 담아야 겠습니다.

문자의 시대, 문자의 홍수시대,  문자중독증 걸려가는듯한 내 모습 이게 나쁘다고 할수는 없는데  문제는  문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새로본 물건이나 문화 앞에서  메뉴얼을 먼저 찾고  문자가 없으면 작동불능의 로봇처럼  끼끼끼 기름 안칠한 관절소리나 내는건 아닌지


그래도 책을 읽어야 겠습니다. 책에  문자중독증 치료제가 있을듯 해서요.  중독이라도 아름다운 중독이라고 최면을 걸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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