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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를 만날 수 있는 고희동 박물관

by 썬도그 2025.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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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은 골목이 참 많아서 좋아요. 진짜로 골목이 많아서 좋아요. 미로 같아서 좋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촌을 대로로만 다니는데 그냥 골목길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북촌 골목길

이렇게 어떤 길이 나올지 모르는 골목길을 돌면 

북촌 골목길

작은 계단을 품은 골목이 빼꼼히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름도 있네요. 무슨 희망길이라고 적혀 있고 넘어가는 길이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습니다. 

북촌 골목길

이런 골목길은 주민 아니면 모를거에요. 

북촌 골목길

골목의 허전함을 벽화가 채우고 있습니다. 

북촌 골목길

이 골목을 지나서 원서동이 나옵니다. 

북촌 골목길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온 동네죠. 한옥이 가득한 동네로 북촌의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동네입니다. 북촌 하면 가회동 일대만 둘러보시는데 그 가회동이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최근 과태료까지 물리면서 오전 일찍과 오후 5시 이후에는 통행금지를 시켰더라고요. 그러나 여기 원서동은 아는 사람만 옵니다. 오히려 이 근처에 가볼 만한 곳이 꽤 많습니다. 

 

최근에는 말 많고 탈 많은 예화랑의 창덕궁 100도 생겼더라고요. 말 많고 탈 많다는 일은 이 예화랑이 지난 대선 관련 이슈가 있고 정권이 바뀌면 탈탈 털릴 것으로 보입니다.

북촌 골목길

여기는 자동차 광고를 촬영하던 곳이자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원서동은 창덕궁 돌담을 끼고 있는 동네입니다. 

고희동 박물관

그리고 여기에 고희동 화가가 직접 설계한 한옥으로 된 고희동 박물관이 있습니다. 1918년에 지어졌으니 일제 강점기에 지은 도시형 한옥이네요.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그리고 고희동 박물관

고희동 박물관

고희동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입니다. 

 

춘곡 고희동은 1886년에 태어나 1965년에 돌아가십니다. 

1886년 종로에서 태어나서 관립 한성법어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1907년에 동양화를 배우고 1909년에 미술 연구를 위해 동경 출장을 갔다가 9월에 동경미술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잘 사는 집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또한 시대 순응주의자였기에 일제 강점기를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기 시절 소설 쓰고 그림 그리고 하는 사람 대부분이 순응주의자들이죠.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이건 뭐건 그냥 순응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다만 그럼에도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존경하고 우러러봐야죠. 내가 못한 일을 누군가는 했고 그 일이 훌륭하면 받들어 모셔야죠. 그게 가장 합리적인 행동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1915년 동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양화가로 변신합니다. 이후 중앙, 보성, 휘문고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합니다. 그리고 이집을 1918년에 직접 설계하고 짓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딱히 모르겠네요. 최초라는 타이틀이 강한 분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죠. 자화상은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고희동 박물관

이 오래된 한옥을 현재는 고희동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일반인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고희동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정을 둔 한옥 건물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고희동 박물관

도시형 한옥은 유리를 적극 활용합니다. 비싼 건축 자재인 유리가 일제 강점기에는 수월하게 공급되어서 창호지를 밀어내고 유리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고희동 박물관

들어가면 복도가 있고 중정이 있는 한옥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희동 박물관

복도는 딱 한 사람만 지나갈 정도로 좁습니다. 게다가 다 마루입니다. 창살이 가득한 유리창 너머로 마당을 볼 수 있습니다. 

고희동 박물관

그리고 고희동 화백의 초기 작품 또는 서양화가지만 꾸준히 동양화인 꽃과 새가 노니는 조화도를 많이 그렸습니다. 선조들은 왜 꽃나무와 새를 많이 그렸는지 모르겠어요. 하기야 보이는 게 그게 대부분이고 내가 생각해도 조선 땅에서 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는 꽃과 새겠네요. 

고희동 박물관

이런 풍경화도 그렸네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불어 학교를 다니고 안중식, 조석진의 문하생이 되어서 지필묵을 배웠습니다. 이때 화가로 변신합니다. 이후 도쿄로 유학 가서 서양화를 배우고 옵니다. 도쿄미술학교는 졸업할 때 자화상 1점을 내야 하는데 그때 낸 자화상이 대감 모자인 정좌관을 쓴 자화상입니다. 

고희동 박물관

이 그림이 졸업작품입니다. 이 도쿄미술학교에는 평양 출신의 화가도 많았는데 혼자만 조선 한복을 입고 정좌관을 쓴 그림을 그렸네요. 뿌리를 잊지 않은 모습입니다. 

고희동 박물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유화는 딱 3점 그것도 모두 자화상만 남겼습니다. 왼쪽부터 1915년, 1915년, 1918년 그린 작품입니다. 보시면 개혁을 통해서 상투를 자르고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단발령이 1895년에 내려졌으니 조선 사람 대부분은 청결과 활동을 위해서 머리를 잘랐을 겁니다. 

고희동 박물관

마당에는 장독과 마사토가 깔린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고희동 박물관

대부분의 그림은 이런 조화도가 많았습니다. 색이 아주 예쁜 그림입니다. 이런 동양화들이 슴슴하지만 매혹적입니다. 서양화의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도 좋지만 좀 더 주관적인 느낌이 강하고 여백이 많아서 매력적입니다. 

고희동 박물관

또 한국의 산새가 좀 아름다워야죠. 그래서 언덕의 나라이기도 하죠. 

고희동 박물관

한편에는 체험 공간도 참 많았습니다. 직접 자화상을 만드는 공간도 있는데 AI 자화상 코너가 있네요. 서 있으면 자화상을 그려줍니다. 

고희동 박물관

또한 자화상 엽서 그리기 코너도 있고 

고희동 박물관

나만의 아트배지 만들기 코너도 있네요. 

고희동 박물관
고희동 박물관

아이들 데리고 체험하기 딱 좋네요. 

고희동 박물관

이 공간은 계속 변경되더라고요.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아틀리에를 재현해 놓았는데 이제는 체험 공간으로 바꾸었네요. 

고희동 박물관

원서동 고희동 미술관을 나온 후에 위로 쭉 올라가면 창덕궁에서 나온 계곡 물이 지나는 원서동 빨래터도 있습니다. 여기서 빨래를 했다고 해요. 지금은 여기서 빨래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 복원해 놓았네요. 

고희동 박물관

이 원서동이 창덕궁 돌담을 끼고 있는 동네인데 조용하고 한옥이 많고 동네가 예뻐서 정말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배경이 됩니다. 저는 자주 들리니 딱 봐도 알겠더라고요. 원서동에서 촬영했구나를요. 

 

혁신대학교 태재대

혁신대학교 태재대
혁신대학교 태재대

그리고 여기도 참 독특해요. 현재는 태재 대학교로 활용하고 있는데 박공 지붕이 연달아서 올라가 있습니다. 
2023년에 태재 대학교가 생겼습니다. 이 학교는 독특한 대학교더라고요.  한 곳에 머물면서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닌 미래형 혁신 대학교로 4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오프라인과 메타버스 강의를 통해서 영어로 토론을 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대학이라고 합니다. 

 

서울, 도쿄, 홍콩, 뉴욕 등의 글로볼 도시를 돌아다닌다고 하네요. 교환학생 제도의 확장판 같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대학교면 큰 건물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공간에서 대학교를 만들었네요. 학생이 100명이 넘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대학교 교육, 초중고 교육도 선생님들이 많이 노련한다지만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구닥다리 교육 시스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나이들어서 한국 사람들은 공부를 안 해요. 

혁신대학교 태재대

인재를 만들어야 하는 정부. 그러나 한국이 인재를 잘 기르는 교육 시스템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네요. 지방대학교는 동남아나 중국 학생들 아니면 안 굴러갈 정도이고요. 

혁신대학교 태재대

동네 구경하기 딱 좋은 원서동이고 그 안에 고희동 미술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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