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계곡이 꽤 많죠. 서울 변두리의 높은 산은 다 계곡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심 한가운데도 있습니다. 바로 백사실 계곡입니다. 이전 글에 이어서 씁니다.
2024.11.28 - [여행기/서울여행] - 설국으로 변한 종로 진경산수화길과 청운문학도서관
2024.11.29 - [여행기/서울여행] - 백사실 계곡 가는 가장 좋은 길 백석동길에서 만난 설경
백석동길을 지나면 백사실 계곡 가기 딱 좋습니다.
여기가 백사실 계곡 입구입니다. 백사실 계곡 가는 길은 꽤 많습니다만 전 이길만 알고 이 길이 딱 좋습니다. 부암동이 꽤 조용하고 한적하고 정감 넘치는 동네입니다. 산 높이가 높아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집니다. 마치 강원도 산골 느낌도 들어요. 폭설이 내려서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렸습니다. 설국이 따로 없네요.
백석동천이라는 한문이 적힌 돌이 있습니다. 백석은 북악산을 백악산이라고도 불러서 북악산을 뜻합니다. 이 산이 북악산으로 청와대 뒷산입니다. 그리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합니다. 계곡 흐르죠. 산세가 좋죠. 풍류가 절로 느껴지는 곳이 부암동 일대이고 백사실 계곡입니다.
그냥 숲속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입구 쪽은 그냥 숲길이구나 느낌입니다. 그러나 눈이 오니 또 다르게 보이네요.
고궁 설경을 담으려다가 매번 고궁만 가는 것도 그래서 백사실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페북 이웃분이 원하시기에 급하게 목적지를 바꿨고 덕분에 아주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네요. 마치 강원도 숲길을 갔다 온 듯해요. 올해는 단풍나무에 내린 설경을 보는 독특한 그러나 이게 일상이 될 것 같은 불길한 한 해이기도 합니다.
여기가 백사실 계곡입니다.
청소 도구가 있고 계단이 좀 있습니다.
단풍 설경도 살짝 있네요.
여기가 백사실 계곡으로 눈 녹은 물이 우렁차게 흐르네요.
정말 눈 많이 왔네요. 저기에 작은 돌다리가 있는데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입니다.
눈이 그치고 파란 하늘이 보이네요.
사실 전각도 없고 볼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도심 한가운데서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물이 계속 흐르고 흐르는 소리가 들려서 좋네요. 삼청동에도 계곡이 있긴 한데 콘크리트 하천이라서 감성은 자연 하천인 여기가 더 좋습니다.
약간의 유적지(?) 같은 흔적이 있긴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전각이 있었습니다. 이항복의 별서라는 소리도 있고 추사 김정희의 별서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별서는 별장과 비슷한데 담장이 없는 전각을 별서라고 합니다. 서울 곳곳에 별서가 꽤 많습니다. 종로 일대가 양반들 놀이터였죠. 로또 맞는 것보다 조선시대에 양반으로 태어나는 것이 더 기분 좋았을 듯합니다.
그 흐름이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네요. 요즘 대한민국 보면 대한조선국이 아닐까 할 정도로 소수만 행복하고 권력과 돈 가진 인간들만 이상향인 나라가 되어가네요. 권력과 돈이 있으면 분수를 알고 겸손해야 하는데 갑질하는데 쓰더라고요. 보고 있으면 조선시대의 재림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풍경 앞에서 마음을 정화합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너무 많은 걸 주는 풍경이라서 한참 봤네요.
언제 서울에서 이런 설경을 보겠어요.
그나저나 숲 한가운데 별서를 지어서 지낼 수 있었을까 궁금해요. 나무로 된 집인데 숲에 산불이 나거나 반대로 집에서 나온 불씨가 숲에 붙으면 큰일인데요. 아마도 주변의 나무를 다 자르고 지냈겠죠. 모기도 엄청 많았을 텐데요. 그래도 봄가을에는 지낼만했을 겁니다.
나무가 많이 쓰러졌습니다. 한 5그루 이상 퍽퍽 넘어가 있네요.
계곡을 따라서 쭉 내려갔습니다.
쭉 내려가면 현통사라는 작은 사찰이 나옵니다.
날이 춥지 않아서 눈이 내린 후 많이 또 녹았습니다.
여기가 현통사입니다.
사찰은 대부분 개방하고 여기도 개방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너무 작아서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불자라면 몰라도 너무 작으니 이목 집중될 듯해서요.
날이 맑아지고 저녁 빛이 내리자 또 다른 풍경이네요.
저 멀리 인왕산 자력 뒤로 해가 지고 있네요.
현통사를 사진으로 담고 내려갔습니다.
현통사는 종로구 신영동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쭉 내려가면 세검정이 나옵니다.
계곡은 이렇게 복개천으로 변합니다.
단풍이 다 들지도 않았는데 눈을 맞아 버렸네요.
여기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했던 자하슈퍼가 있던 곳입니다. 한두 드라마가 아니라서 저긴 어디기에 자주 나오나 했는데 자하슈퍼더라고요. 그러나 작년에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이유는 재개발입니다. 이 근처가 재개발 중이더라고요.
구옥과 최신 건물이 공존하는 종로, 워낙 산이 주변에 많아서 도로나 교통편은 아주 안 좋습니다. 그러나 걷긴 좋습니다.
계곡이 있고
기와 돌담길도 있고요.
소나무와 전나무는 유연성이 없어서인지 습설에 많이 넘어졌지만 오히려 잎이 있는 단풍나무나 이런 버드나무는 휘어지지만 부러지지 않더라고요. 얼마나 눈이 무거운지 가지가 저렇게 쳐져 있네요. 눈을 좀 털어줬는데 간의 기별도 안 가고 가지가 얼어서 잘 부러져서 내버려두었어요.
여기가 세검정입니다. 뭐 인조반정 무리들이 여기서 칼을 씻었다고 하더라고요. 인조반정은 광해군을 폐위시킨 쿠데타인데 이게 명분이 있습니다. 먼저 선조부터 좀 그랬죠. 선조는 방계승통에 서얼이라는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선조 자체가 열등감 덩어리죠. 넷플 영화 '전, 란'이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 정비인 의인왕후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후궁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데 그게 광해군입니다. 자신이 서얼출신이면 광해군도 정비와 낳은 자식이 아니더라도 예뻐해 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미워했어요. 얼마나 미워했는지 세자 책봉을 미루다 미루다 임진왜란 일어나자 세자 책봉을 합니다.
광해군이 임진왜란 때 엄청난 활약을 하자 더 샘을 부립니다. 그러다 50대인 선조가 정비가 없다면서 나이 어린 인목왕후와 결혼을 합니다.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이 영창대군입니다. 적자가 태어났습니다. 이에 선조는 하루 종일 우쭈쭈 하면서 영창대군을 애지중지하고 광해군은 홀대합니다. 이걸 광해군이 모를 리 없죠. 그러나 이미 세자 책봉이 끝났기에 영창대군을 세자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선조는 갑작스럽게 죽자 광해군은 역모로 엮어서 9살의 영창대군을 의문사로 죽이고 인목왕후를 유폐시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반대 세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인조반정이 일어납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문제는 쿠데타로 잡은 세력이 인조 같은 선조보다 더 무능한 왕을 내세워서 몽고군에게 탈탈 털립니다. 선조와 인조 아주 조선 못난이 연달아 나옵니다. 세검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 인조반정이 많고 그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길어졌네요. 지금은 그 역사를 지나서 서울 한가운데서 계곡을 만나는 곳으로 변했네요.
이외에도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초고를 여기서 빨았습니다. 먹으로 쓴 걸 물로 세탁해서 종이는 재활용을 했습니다. 그 세초 작업을 할 때 잔치도 벌였습니다. 바위에 보면 구멍들이 있는데 천막 기둥을 꽂은 흔적입니다. 바위 위에 천막치고 술잔 돌리면 꿀맛이었겠네요.
이 근처에 홍지문도 있는데 1977년에 복원한 소문입니다. 이 종로구와 서대문구가 연결된 인왕산 뒷 동네는 산세가 가파르고 계곡을 낀 동네라서 서울에서 강원도나 경기도 산세 높은 동네 느낌이 나는 독특한 동네입니다. 부암동을 지나서 세검정까지 반나절 도보 여행 코스로 강권하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