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보려고 몇 번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영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아무리 절세미인이자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엄청난 미모를 가진 정윤희라고 하지만 좀 보다 말았습니다. 그러나 매주 금요일 매불쇼의 시네마지옥에서 칸찬일이 추천한 영화가 <안개마을>이라서 다시 챙겨봤습니다.
같은 영화라고 해도 해상도가 좋으면 더 영화에 몰입하게 되죠. 그래서 영화는 큰 화면으로 봐야 한다고 합니다.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매년 여러 한국 영화를 4K로 리마스터링을 하는데 이 영화가 운 좋게도 4K로 복원되었습니다. 물론 이 <안개마을>이라는 영화는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고전영화> 채널을 운영하는데 여기에 올라온 아주 양질의 한국 영화가 꽤 많습니다.
1983년 개봉한 이문열 원작의 안개마을
연소자 관람불가라서 전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이 1983년 개봉한 <안개마을>은 당시 가장 인기 높은 소설가였던 이문열의 '익명의 섬'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1983년 대종상 남우주연상과 촬영상을 받았고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 작품상, 영화감독상, 남우주연상, 영화 기술상을 받았습니다.
감독은 임권택 감독이고 주연은 정윤희 안성기입니다. 영화 포스터에 '여자는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를 묵인했다'라는 너무나도 촌스러운 문장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게 만드네요. 이 영화는 당시 성풍속도를 아주 잘 그린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980년대 초 한 지방 시골 마을에 버스가 서고 여선생 수옥(정윤희 분)이 내립니다. 국민학교 여교사로 부임받아서 마을에서 하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을이 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모두 같은 성씨인 씨족 부락 같은 마을입니다. 다 친인척이고 다 아는 사이입니다. 이런 곳이 요즘은 흔하지 않지만 이 당시만 해도 꽤 많았습니다.
그렇게 동족 마을에 부임한 수옥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남자를 봅니다.
강렬한 눈빛의 깨철이(안성기 분)입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마을에서 여기저기서 밥 빌어 먹고 잠도 재워줍니다. 그러나 보통은 동네 여기저기서 노숙을 합니다. 영화 <안개마을>은 안개처럼 뿌옇고 의뭉스러운 깨철이를 외지인인 여교사 수옥의 관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다소 촌스럽게 현학적인 내레이션이 계속 이어지는데 이 내레이션 자체가 80년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물론 여교사가 주인공이라서 현학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과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깨철이라는 존재를 관찰하고 깨닫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영화 <안개마을>
수옥은 안개가 자주 끼는 마을에서 운동을 하거나 등하교를 하면서 깨철을 수시로 만납니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머저리라고 하면서 따뜻한 밥을 먹이기도 하고 잠도 재워주는 등 마을 사람의 마음씨를 표현하는 존재로 보이다가도 어느 날은 개 패듯 맞는 깨철이를 볼 때도 있습니다. 마을 여인들은 깨철이에게 야릇한 눈빛과 따뜻한 마음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마을 사람들이 막걸리를 강제로 먹이고 남자들이 성추행을 하는 등 하대하다가 온정으로 대하는 등 정체를 더 알 수 없게 합니다.
이 모든 모습을 수옥이 지켜봅니다. 그리고 영화는 중간에 이 영화에 핵심 내용을 라디오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깨철이를 통해 본 씨족마을을 통해 본 한국의 성풍속도
한국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유교주의가 안개처럼 깔려 있는 나라입니다. 저 강변에 수 많은 모텔들을 보세요. 성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없는데 집에서 할 수 없는 성관계를 저 외곽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합니다. 애정 행각은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많이 꺼려하죠. 또한 여전히 성에 대한 개방감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약한 편입니다.
뒤로 호박씨 깐다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성을 더럽고 습하고 추하다고 앞에서 말하면서 뒤에서는 열심입니다. 수옥이 약혼한 남자친구가 오기로 한 기차역에서 거닐 때 이런 라디오 멘트가 나옵니다. 도시는 한 동네에서 벗어나면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공간이 된다면서 도시는 익명성이 강한 공간으로 수많은 불륜을 쉽게 저지른다면서 개탄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비밀 댄스홀 현장을 급습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골은 모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라서 이런 불륜을 저지를 수 없다면서 모든 곳이 시골이었던 그시절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영화 <안개마을>에서 담고 있는 모두 한 식구 같은 씨족마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륜과 성욕 분출구였던 깨철과 술집 작부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시골 사람이라고 성욕이 없는 것이 아니고 불륜인 걸 알면서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익명의 섬은 깨철을 말합니다. 깨철을 내쫓지 않는 이유도 영화 후반 두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소개합니다. 깨철은 그렇게 동네 아낙네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오히려 도시는 앞에서 대놓고 한다면 시골 풍경을 통해서 뒤로 호박씨 까는 당시 한국 사회의 성에 대한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걸 관찰하는 수옥은 어떨까요? 수옥이 가장 이 영화의 주제를 제대로 표현하는 인물입니다. 앞에서는 요조숙녀인척 하지만 M.T때 다른 친구들이 자는 방에서 남자친구와 침낭에서 뒹구는 걸 보면 성에 대해서는 꽤 개방적이고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이런 수옥과 깨철의 관계를 통해서 영화는 우리들이 숨기고 있는 성에 대한 시선 즉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지만 다 그런 상상이나 실제로 하는 이중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화면을 휘어잡아 먹는 정윤희의 미모
이건 말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정윤희 잘 알죠. 제가 어렸을 때 3대 트로이카로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이 있었습니다. 이중 전 유지인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 보니 정윤희를 따라갈 배우가 없더군요. 아마도 정윤희가 한창 활동할 때 중앙하이츠 아파트로 유명한 중도건설 사장과 정윤희가 결혼을 해서인가 봅니다.
재벌과 결혼을 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는데 유부남과 결혼을 해서 당시 연예기사를 다루는 언론사와 썬데이서울로 대표되는 여성잡지들에서 매일 특종으로 올렸습니다. 말이 많은 결혼이었죠. 뭐 정윤희 쪽에서는 별거한 상태에서 만난 것이라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간통죄로 엮이면서 배우의 이미지는 추락합니다. 진실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배우 이미지 자체로는 해방 이후 최고의 미모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초기에는 연기 못한다고 엄청나게 욕을 먹었지만 점점 연기가 늘면서 최고의 얼굴에 걸맞은 배우가 됩니다. 정윤희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멜로나 에로 영화도 꽤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가 정윤희 영화 중에 가장 뛰어난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다른 영화들을 본 적이 없지만 안 봐도 이 배우를 70~80년대에 어떻게 소비했을지는 안 봐도 뻔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시대상입니다. 성에 대한 욕구를 음란물로 해소할 수 없던 시대이다 보니 그 역할을 영화가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성인 에로 영화가 엄청나게 넘쳤습니다. 요즘은 에로 영화 만들지도 않죠. 정윤희의 미모가 영화 전체에 안개처럼 깔려 있습니다. 이런 배우가 요즘 배우였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잠시 해보게 되네요.
<안개마을>은 익명일 때 발동되는 성에 대한 우리들의 호박씨 까는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이를 한 씨족 마을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모두가 아는 사이인 불륜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임에도 일어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의 성 풍속도를 보여줍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형태를 달리해서 음지의 성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깨철은 씨족 마을에서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이는 양성화된 술집 작부와 달리 음지에서 활동하는 움직이는 익명의 섬이었습니다. 이문열이 80년대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하던 모습이 생경스럽네요. 지금은 그 어떤 사람보다 보수주의자가 되어서 사회 비판이 아닌 좌파 비판하는 뒷방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청춘같이 사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가진 돈이 많아지면 보수가 되는 사람도 있네요. 이문열의 청년스러움이 가득했던 80년대 뛰어난 원작과 이걸 임권택과 정일성이라는 단단한 영화 콤비가 만들었고 칸찬일 소개 덕분에 야무지게 다 볼 수 있었습니다. 4K라는 뛰어난 해상도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40자평 : 한국사회의 성에 대한 뿌연 안개 같은 태도
별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