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대한극장이 9월까지만 영업을 할 것이라고 한다
충무로, 을지로, 종로에 주요 영화관이 몰려 있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기분이다
20세기에 세계로 열린 창 역할을 해주었던
단성사, 피카디리, 명보, 스카라, 국도, 중앙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극장들
시대가 사방팔방으로 막혀있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십상이었던 그때 그 사람들에게
영화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주요 수단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를 만끽하는
거의 유일한 문화 수단이었다.
2024년 9월 4일 배철수의 음악캠프 <철수는 오늘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대한극장
퇴근길의 반려자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지는 목소리, 더 좋아지는 맨트로 예전보다 더 자주 많이 듣게 되네요. 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대한극장 종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네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알고 있었죠. 수년 전부터 대한극장이 이상해졌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시설투자를 하지 않고 상영 횟수를 줄이고 직원을 줄이고 대한극장의 장점인 각종 휴게 공간을 없애는 모습에 검색을 해보니 대한극장이 부산의 한 업체가 인수를 했다는 소리에 대한극장이 대한극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여기도 사라지겠구나 했고 예상대로 2024년 9월까지만 운영하고 대한극장이 영업을 종료합니다.
수년 전에 개봉한 영화 간판이 아직도 걸려 있는 대한극장. 대한극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관이고 70mm 필름을 상영하는 초대형 영화관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은 1958년에 개관한 대한극장의 상영 좌석입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이 약간 위로 올려다보는 느낌의 초대형 화면을 보던 그때 그 시절이요.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2층으로 된 관람석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곳이 대한극장이었습니다. 한국에서만 가장 큰 곳은 아니었고 1960년 대 당시는 동양 최대였습니다. 어마어마하죠. 좌석 규모가 무려 2,000석이 넘습니다.
이 좌석이 꽉 찬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별 재미없는 장면도 몇 명만 웃으면 같이 웃곤 했죠.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기립박수를 치던 그 풍경이요. 사라진 영화 풍경이 참 많죠. 록키 4를 보고 기립박수를 치던 사람들을 이제는 볼 수 없습니다. 천만 관객이 들어도 기립 박수는 볼 수 없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기립박수를 본 적은 거의 없네요. 영화가 흔해져서 그런가 봐요.
대한극장은 60년대에 70mm 영화 상영관으로 변신한 후 대형 영화들을 주로 상영합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갈 수 있지만 50~70년대까지만 해도 방화(국내 영화) 상영관과 외화 상영 영화관이 따로 있었어요. 대한극장은 외화 상영관이었습니다.
70mm 필름을 본 적이 있는데 35mm 일반 필름보다 2배나 더 커서 상영관 스크린 자체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맥스 상영관을 제외하고는 내가 본 가장 상영관이 대한극장이었습니다. 영등포 CGV도 크죠.
제가 영화를 처음 봤던 곳은 대한극장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1988년에 개봉한 <피라미드의 공포>라는 영화였는데 영화는 그냥 그랬지만 내가 놀랬던 건 대형 스크린이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스크린에 압도당한다고 할까요? 그때부터 영화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시대가 사방팔방으로 막혀있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십상이었던 그때 그 사람들에게 영화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주요 수단이었다."
철수는 오늘에서 나온 이 문장은 실제였습니다. 80년대, 90년대까지도 아니 인터넷이 터지기 전까지 우리는 세상의 소식을 들을 기회가 아주 아주 적었습니다. 가끔 뉴스에서 해외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뉴스 이외에 접할 수 있는 없었습니다. 뉴스 이외에 유일하게 해외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은 드라마와 영화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을 유럽을 드라마와 영화로 배웠고 알았습니다.
퇴계로 4가 - 을지로 3가 - 종로 3가까지 이어지는 영화관 로드가 사라지다
지금과 많이 달랐죠. 90년대 후반 강변 CGV가 생기기 전까지는 영화관은 딱 1개의 영화만 상영했습니다. 그리고 개봉관과 재상영관이 따로 있었습니다. 또한 영화관도 레벨이 있어서 2차 개봉관, 3차 동시개봉관이 있었죠.
그래서 종로, 을지로, 퇴계로 일대의 개봉관에서 상영한 영화가 2차 개봉관에 내려가고 2차 개봉관에서 내려가면 동네에 많았던 2개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동시 상영관에서 상영했습니다. 저렴한 돈으로 3시간 이상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회전율을 위해서 2시간 영화를 1시간 30분으로 편집하는 동시개봉 사장님 에디션이 많았습니다.
1차 개봉관은 신기하게도 3가 쪽에 몰려 있었습니다.
1988년 친구가 영화 예매를 하고 2시간 정도 시간이 남자 저를 데리고 영화 로드를 소개했습니다. 퇴계로 4가의 대한극장에서 시장해서 바로 밑으로 내려가니 스카라 극장, 중앙 극장, 명보 극장을 지나 을지로 3가의 국도극장을 지나 종로 3가의 단성사, 서울극장, 피카디리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매일신문 맨 끝에 있었던 달려 있던 이름만 들었던 영화관을 직접 봤습니다. 이후 수시로 이 영화 로드를 걸었습니다. 신기하죠 3가 라인에 다 있다는 것이요.
지금이요? 다 사라졌습니다.
피카디리가 그나마 나마 있지만 원래 피카디리 극장은 지상 1,3층까지였지 지금까지 지하가 아니었습니다. 공간만 같지 그 영화관이 아니죠. 단성사는 10년 전에 부도나서 사라졌고 서울극장은 2년 전인가 코로나 중간에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공연장으로 개조하고 있네요. 그리고 대한극장도 공연장으로 개조하고 있습니다. 2024년 9월 대한극장은 이 영화로드의 마지막 영화관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지네요.
왜 공연장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명보극장이 공연장으로 변신하는 걸 보고 서울극장도 대한극장도 공연장으로 바꾸는 듯합니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한국 뮤지컬이나 공연들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 정도로 잘한다고 하네요.
한 때 내 아지였던 대한극장의 마지막을 사진으로 담다
대한극장이 내 아지트가 된 시기는 2014년에서 2017년 이 시기였습니다. 대한극장보다는 동네 극장을 찾았죠. 그러다 대한극장을 방문하고 지하철 타고 와도 여길 와야겠다고 느낀 이유는
1. CGV, 롯데, 메가박스보다 1천 원 이상 저렴하다
2. 뛰어난 휴게 공간이 많아서 오래 머무를 수 있다
3. 다양한 포스터 및 이벤트 경품을 받을 수 있다
4. 다양성 영화 및 다양성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런 미니 포스터에 다양한 경품 제공 등등 저렴한 관람료에 다양한 굿즈 제공 그리고 휴게 공간도 많아서 편하게 3시간 이상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관이 늘어나면서 큰 위기를 맞습니다. 이 대한극장 위치가 아주 안 좋아요. 주변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국대학교가 있는데 학생들이 방학에 학교 안 오잖아요. 오히려 영화관은 여름과 겨울 방학 시즌이 피크인데요. 그리고 주차장도 불편합니다. 주차장이 발달하지 못하다 보니 저같이 지하철 타고 오는 사람 아니면 접근성이 떨어졌죠. 물론 명동, 을지로, 종로까지 구경할 수 있어서 저는 잘 애용했지만 영화만 보러 간다면 쉽지 않죠.
여기에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면서 결국 쓰러졌습니다. 이 건물은 2001년 12월에 재개관한 건물로 기존의 건물을 해체하고 다시 짓는데 1년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보통 2년 이상 걸리는데 후딱 지었습니다. 외관도 독특하고 한 때 영화 시사회의 성지였죠. 지금은 건대 CGV와 롯데월드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코엑스로 변했습니다.
9월 30일 종료되지만 이미 제대로 운영을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상영하네요.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은 필름 영화 시절의 충무로 시절이 아닌 디지털 영화 시절이라서 강남이나 상암동 쪽으로 영화 제작사들이 많이 이동했기에 충무로는 인쇄소 골목이지 결코 영화 골목이 아닙니다. 그 영향도 약간은 있을 거예요.
이미 대한극장은 폐쇄 진행 중입니다. 보시면 팝콘 판매하는 곳에 직원이 안 보입니다. 매표는 합니다만 이제 직원들이 안 보이네요.
그래도 관람객은 꽤 있었습니다.
대한극장에는 있고 다른 영화관에 없는 것이 옥상 정원입니다.
이 옥상 정원도 방치한 지 꽤 되어서 잡초가 가득하네요.
여기는 물이 흐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멈췄습니다. 이거 멈춘 지는 10년 이상 되었습니다.
https://film-art.tistory.com/13001640
2001년 재개관한 후 2010년 경 까지는 위와 같은 장미정원이 있었습니다. 저도 대한극장에서 개최되었던 충무로 영화제를 보고 난 후 옥상에 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장미와 테이블이 가득했습니다. 위 링크를 누르면 당시 장미정원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커피와 음료를 팔기도 했습니다. 쇼케이스 냉장고는 그대로 있네요.
거대한 철골 구조물들은 좀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원래는 차양막을 열고 닫는 용도였습니다.
원래 이런 모습이었죠.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네요. 코로나 시기에는 옥상에서 상영회도 했었습니다.
밤에 이 대형 스크린에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었죠. 독특한 상영회였어요.
옥상 너머에는 이런 풍경이에요. 진양 꽃 상가가 보입니다.
장미정원의 공식 명칭은 '하늘 로즈 가든'이었네요. 매점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장미 품종에 사용한다는데 장미가 사라졌어요.
층마다 내려가면서 기록용 사진을 촬영하려고 했는데 여기만 촬영하고 끝냈습니다. 이미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더라고요. 영화관은 1,2,3관 같이 저층 영화관만 남겨두고 나머지 층은 다 공사 중이네요. 공연장으로 개조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이 공간도 독특했죠. 야외 정원 느낌.
이랬거든요. 다 추억이 되었네요. 이런 공간을 제공하는 영화관이 이젠 서울에서 안 보입니다. 뭐 이제 영화광인 저도 영화를 덜 보고 있네요.
어떻게 보면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느낌이 들고 제 청춘이 끝난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 영업종료가 더 쓸쓸한 이유는 영화라는 산업 매체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코로나를 지나면서 대변화가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예전처럼 함께 모여서 웃고 떠들고 아기가 울고 기립박수를 치고 왁자지껄하던 그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집에서 혼자 또는 친구와 가족과 팝콘 먹으면서 변하는 시대로 가는 듯하네요.
왕가위 감독 말처럼 영화는 집에서 나설 때부터 상영이 시작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 모두가 영화라고 하는데 이제는 그런 영화가 가득한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그럼에도 우리는 스토리에 목말라하고 매료되기에 끊임없이 스토리를 탐구 갈구할 겁니다. 다만 그 형태가 영화가 아닌 1분짜리 숏폼 영상으로 전환되고 다양한 영상물이 영화를 대체할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