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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아버지의 깃발뒤에 숨겨진 이미지전쟁

by 썬도그 2009.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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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아버지의 깃발이라는 영화는 참 독특한 영화입니다.  한명의 감독이 거의 동시에 두개의 영화를 그것도 같은 소재의 영화를  일본군과 미군의 시선으로 담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 우드입니다.  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 섬에 성조기를 꽂는 로젠탈의 사진한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한장의 사진은  전쟁에 지쳐가던 미국국민들에게 희망의 깃발을 꽂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이오지마섬에 꽂은 첫 성조기는 아닙니다.  로젠탈이  이오지마섬에 도착하기 3시간전에  이미 섬에 성조기가 꽂혔으나  그 성조기가 너무나 작고 볼품없어  큰 성조기로 바꿉니다.  로젠탈은 이 때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진의 배경설명없이 우린 하나의 이미지로만 이 사진을 받아 들입니다.   사진밑에 짧은 캡션 하나가 딸려 있고 이런 자세한 설명대신에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꽂는 미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첫 성조기임을 우리는 지례짐작으로 생각합니다.  이 완벽한 구도의  사진은  미국민들의 마음에 큰 희망을 심게 되고 이 성조기를 꽂은 병사들 중 3명인 위생병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와 인디언 출신의 아이라 헤이즈(아담 비치), 통신병 르네 가뇽(제시 브래포드)는 미국 본토에 가서  미군들에게 줄 보금품 기금마련 행사에 불려다니면서 미국 전체를 돌아 다닙니다.

전쟁영웅이 된것이죠.  그러나 이 3명은  괴로워합니다. 자신들은 전쟁영웅도 아니고  단지  깃발꽂는 지시를 받아서 한것 뿐이죠.
오히려  이오지마에서 죽은 동료병사들이 진정한 영웅들 입니다.

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3명의 만들어진 전쟁영웅,  그들은 만들어진 전쟁영웅놀이에 괴로워 햇습니다.
대중은 영웅을 원합니다.  영웅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우린 영웅을 갈구합니다.  김연아 같은 경우도 김연아 자체보다는  김연아를 영웅시하는 이미지 과잉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김연아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힘든시기에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은데  위로주는 사람을 정치인이 아닌 스포츠인에게서 찾는 모습이죠. 98년 IMF때  박찬호와 박세리가 객관적 평가보다 부풀려서 한국에서 과잉칭송되기도 했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 시절을 견딜수 있는 몰핀주사같은 존재들이였으니까요.

정권은  그런 영웅들을  국정홍보처를 시켜서  국민의 힘을 단결시키는 구심점으로 만듭니다.
반대로 사진한장으로 신을  인간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받고  일본을 독일처럼 분할통치할까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독일과 다르게  일본은 천황이라는  살아 있는 신이 있었습니다.   이 신을  처형하자니  일본인들의 반발이 심할것 같구
그냥 살려두자니  전몰장병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구  고민고민 하다가  히로히토 천황을  인간으로  만듭니다.
천황을  본 일본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그의 존재와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죠.   천황이 지나갈때는  어느누구 하나도  고개를 들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항복문서를 받은 맥아더에게  시켜서 사진 한장을 찍게 합니다.

맥아더의 껑충한 키와 허세를 부리는듯한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조막만한 전형적인 일본인이  바른 자세로 서 있습니다. 이 두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이 사진을 보면   마치 주인과 집사 혹은 하인으로 보일것 입니다. 당연히  히로히토가  집사죠.

이 사진이 일본인들 눈에 들어오고  천황이 신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작은 키의  안경을 쓴 사람임을 확인 하게 됩니다.
미국은 더 나아가 천황부부를 전국을 돌면서 연설을 하라고  지시합니다.  천황의 실체를 확인시키면서  천황에게 주던 무한 애정과 환상을 깨기 위함이었죠.  그런 모습도 이 한장의 사진이 가져온  천황에 대한 이미지 파괴만은 못할 것입니다.

정권은  이미지를 원합니다.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며 때로는  여론을 조작할수도 있습니다.
정권찬양의 이미지를 잘 만들던 국가는  독일나치입니다. 괴벨스의  정권찬양의  이미지 공작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죠.
지금은 그런 정권을 보위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요?  2차대전같이 포스터로 국민들의 심성을 자극하고 애국심을
발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촌스러운 모습이죠.  지금은 바로  이미지를 무한히 생산하고 그 이미지의 영향력이 막강한 방송국과
신문사가 바로 정권찬양의 이미지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그 곳을 장악하면  세상의 여론을 어느정도 자기들 맘대로 바꿀수가 있죠.
모 보수신문은  정권찬양을  상납하다가 이렇게 연출사진이라는 오버질 까지 하게 됩니다. 


교과서에서 본듯한  한국전쟁당시 서울을 수복할때 태극기를 계양하는 사진입니다.
우린 이렇게 알고 배웠죠. 하지만 이 사진은 57년  9.26일날 서울수복 기념하기 위해 수년이 지난후 찍은 사진입니다.
이런 감격스러운 장면하나 없으면 안되기에  보수정권에 의해 만들어지고  왜곡된 사실로 우리에게 알려 진것이죠.

사진은 현장성을 중시하는 매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묘하게 연출된 사진도 참 많습니다. 연출된 사진을 욕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연출 사실을 숨기면 그 이미지는 거짓의 이미지가 됩니다.   그러기에 사진한장을 보더라도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을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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