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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추억을 길어올리는 우물

2008년 엄동설한에 80년대 겨울풍경이 생각나다.

by 썬도그 2008.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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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청춥더군요. 시내에서 사진촬영을 좀 하고 들어왔는데 엄청 춥더군요.  얇은 장갑은  단 10분만 효과가 있었구 싸늘하게 손이 식어서 얼어가더군요.   요 근래 이렇게 추운 날씨는 못봤습니다.

정신이 얼얼할 정도로 얼다 들어왔네요.
지금은 포근한 집에 들어와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이 매서운 날씨를 보면서  제 어렸을적  80년대 겨울풍경이 그려집니다. 그 추억을 몇가지만 되새김질 해볼께요.


3한 4온

지금이야 이 단어 거의 쓰이질 않죠. 80년대 일기예보를 듣지 않아도 사람들은 겨울날씨를 예측할수 있었습니다
겨울날씨는 날씨변화도 거의 없었습니다. 동네 어귀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도 겨울날씨를 예측할수 있었죠
3한 4온  말 그대로 입니다. 3일은 춥다가 4일째 되는날 날이 풀립니다. 
3일동안 정말 엄청나게 추웠습니다. 오늘 추위요.  약과죠. 얼마나 추웠는지 30분의 등교시간에
귀가 빨개져서 귀가 떨어져나간다는 고통을 알았죠.  그런데 신기하게 3일이 지나면 날이 풀립니다.
3일의 추위에 동네골목길마져 얼어붙어  아이들은 집에서만 놉니다.  그러다 4일째 되는날  동그란딱지와 네모란 딱지
구슬들을 들고 나와서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합니다. 

지금생각해도 신기해요.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고요.


처마밑 고드름

정말 눈 많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겨울방학의 나태함에 쩌들어 지내면  창문을 열어 젖히면서  눈이 왔다고 외치면
저와 동생들은 내복바람으로 창가에 달라붙었죠. 눈 정말 많이 왔어요.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이 눈이
눈싸움용 눈인지  아닌지 알수 있었습니다.  마른눈 습한눈의 차이를 알수 있었습니다.
같은 눈이라도  마른눈이 오면 낭패입니다. 눈싸움을 할려고 해도  눈이 뭉쳐지지 않는게 마른 눈입니다.
마른 눈은  눈이 건조해서  뭉쳐지지 않고 설탕처럼 푸석푸석했어요. 뭉칠려면 물을 살짝 타야 잘 뭉쳐지거나
체온으로 좀 녹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장갑 벗어던지고  눈을 손의 체온으로 녹여서 눈싸움을 했죠.
그러나 10개정도 뭉치면 손이 꽝꽝 얼어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지붕에 쌓인 눈이 녹을때면  처마에서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고드름이 얼마나 큰지 칼싸움도 했었죠. 지금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고   연립주택도 처마가 있긴하지만 고드름이
열리는 그런 슬레이트 지붕이나  기와 지붕이 아니여서 보기 힘들죠.


눈에 관한 노래들

눈도 참 많이 왔지만 눈노래도 참 많았어요.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 조하문의 눈오는 밤은 애창곡이였죠.
겨울방학때 친구네 집에 모여서 웃풍이 씽씽부는 그 골방에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곤했죠.
웸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도 인기곡이였죠. 지금이야 서울에 눈이 내려도 흙이 보이는 땅이 아니고 아스팔트로 다 포장되어서
내리면 쌓이는게 아닌 녹아버려서 밤새 얼음이 되어버리죠.
중3때  연합고사를 마치고 별밤을 듣다가 눈이 온다는 소리에  혼자 거리를 쏘다나면서  센티해진 마음을 달래기도 한 추억이
생각나네요.  눈사람은 여기저기서 목격이 되었구  밤새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눈사람을  친구와 같이 이단옆차기로  사망케 하기도 많이 했네요.


조개탄 피우던 교실난로


이렇게 생긴 난로는 아니고 뚱뚱한 난로가 11월이 조금 지나면 교실에 등장했습니다.
지금이야 스토브이거나  스팀이 보급된 학교지만 초,중,고 조개탄 난로로 지냈습니다.
조개탄을 때우던 난로는  참 불편했죠.  화력이 너무 좋아서 수업이 다 끝나고도 활활 타고 있으면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 강제로 끄면  화산재같은 연탄재가 교실을
점령하고 교실 책상은 온통 연탄재로 쌓였습니다.  때로는 너무 일찍 꺼진 난로를 보면서  안쓰는 책상을 부셔서 태우기도 하고   영어단어 암기할려고 새까매진 연습장을
태우기도 했죠.  양은 도시락에 물을 조금 붙고 난로위에 올려놓으면 누릉지가 되기도 하고 누릉지 냄새에 수업이 방해되기도 했습니다.

이 난로라는 놈이 중앙난방식이라서  난로주변에 있는 학생들을 여름이고  구석에 있는 학생들은 겨울이었죠.  참 융통성이 없었어요.

국민학교 5학년때 난로 주변에 있다가 난로의 열기에 취해서  조퇴한 기억도 나네요.






찰쌀떡, 고구마

참 구수한 이야기죠. 제가 중학교때도 집 창문너머로  찹살떡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이 소리가 들리더군요.  힘좀 쓰고 침좀뱉고 다리도 떨면서 삥을 뜨는  조폭예비주자같은 급우들이
조례가 끝나면 찹살떡을 돌립니다. 떡공장에서 가져온 그 찹쌀떡을 강제로 친구들에게 팝니다.  10개들이에 1천원에
팔던 기억이 나네요.  아주 비싼것은 아니지만  강제로 강매하는 모습은  험악스러웠죠.

그런 조폭같은 급우밑에 딱까리급의 급우는  학교가 끝나고  찹쌀떡 가방을 들고 동네마다 팔고 다녔습니다.
고구마도 팔구요.  그렇다고  그 당시 찰쌀떡이나 고구마 팔던 학생들 모두가  껄렁껄렁한 학생인것은 아닙니다.
근로장학생이던 제 친구는  가정형편때문에  밤에 찹쌀떡을 팔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거리에서 앳된 학생들이 고구마를  파는 모습을 가끔 봅니다. 
유심히 쳐다보고 선하게 생긴 학생들이면  고구마를 사들고 집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추위에 떨면서 고구마 파는 학생들에게 힘을 주고 싶더군요.


언젠가부터 서울에서 눈보기가 힘듭니다. 눈이 오더라도 쌓은 모습을 볼수 없습니다. 내리자 마자 녹아버리는
모습에 진듯한 면이 없이  바로바로 녹아버리는 눈을 보면서 겨울의 추억들이 쌓이지 않는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젠 눈을 보러 여행을 가야하는 계절이 된것인지 아쉽기만 합니다.

올해 겨울은  서울에도 눈이 많이 내렸으면 합니다.  제 어렸을적 추억을 더 많이 생각났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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