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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올림픽>NYT "베이징 올림픽 주도면밀한 연극" 기사보기

기사 내용은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중국은 자신의 일상까지 바꿔가면서 더럽고 추악한것은 말끔히
지웠습니다. 마치 잡티많고 주근깨많은 미녀가 포토샵으로 백옥같은 피부로 태어난 느낌이죠.
베이징은 지금 거지와 불량건물, 심지어 공해물질 내뿜어낸다고 공장가동도 중단시켰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대형 쇼핑몰이나 심지어 나이트클럽도 올림픽기간동안에 열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마치 우린 이렇게 살어~~ 라고 전세계에 알리는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집들이 한번 할려고  집을꾸미는것을 넘어서 발코니 확장하고  집을 리모델링한 모습이죠.
좀 상식밖이죠. 있던걸 고치고 꾸미는것은 상식이지만  집들이 할려고 리모델링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지금 중국은 그런 모습입니다. 저는 솔직히 개회식 비를 내리지 않게 할려고 인공적으로 비구름을
없앴다고 하는 중국언론의 말에 경악했습니다.  그렇게 올림픽이 중요하고 꼭 성공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과
얼마나 대단한 열정으로 이 올림픽을 준비했나하는 모습도 함께 느꼇습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것은  차량 2부제를 하고 쇼핑몰을 닫고  공장을 닫아도 정작 중국시민들은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이 뉴욕타임즈 기사 말미의 글에 머리에 땡하는 소리가 들리게 하더군요
한편 뉴욕 타임스는 올림픽 보안을 위해 베이징 곳곳에 배치된 경찰병력과 시민들에 대한 그들의 감시를 언급하며 " 경찰봉을 가지고 보행자들을 통제했던 서울 올림픽 때의 도를 넘은 상황만큼 심하지는 않다" (Yet the police presence is not nearly as intrusive as it was at the Seoul Olympics in 1988, when pedestrians were herded along with batons) 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을 비판하다가 88올림픽때의 서울을 걸고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추억의 88올림픽때 우리의 추악한 모습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 추억몇가지를 풀어보도록 하죠


1. 차량 2부제


일명 홀짝제라고도 하죠. 지금보다 차량이 적었던 20년전 88년 서울이지만 그때도 교통정체는 많았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강력하게 차량 홀짝제를 실시합니다.  이 모습 지금 중국과 비슷하네요. 다른 나라 올림픽할때도
이렇게 강력하게 차량통제를 했었나요?  10부제는 좀 이해는 가지만 홀짝제는 큰 불편을 줍니다.
하지만 88년 서울시민은 어느하나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택시기사를 하시는 제 삼촌도 그때 불평안하셨습니다.  나라가 하라니까 묵묵히 했습니다.  저 또한 그 모습이 잘못된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별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쾌적한 환경 외국인들이 교통지옥 서울을 생각하지 않길 바랬던 모습이었죠.
문제는 이게 인위적이라는게 문제였던것 같습니다.  88년전에 미국의 유명한 코메디언인 밥 머시기라고 (기억안남)
하는 미국 백인 할아버지 코메디가  서울이 어떻냐고 하니까   교통지옥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2. 개고기음식점을 숨겨라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한국의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외국인들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먹으면 뭐 어때 하면서 당당하게 말할수 있지만 88년 외국인과 외국언론들의 지적에 우린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개고기음식점을 숨겨라.  올림픽 기간전부터 강력하게 단속하고 계도해서 거의다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개고기를 안판것은 아니죠.  이름을 바꿔서 팔았습니다. 기존에 개고기탕를 보신탕이라고 했다면
사철탕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판매합니다.  이름을 살짝 바꿔서 외국인들의 시선을 피했습니다.
저도 사철탕이 뭔지 몰랐습니다. 어른드이 그러더군요. 사철탕이 보신탕이라고 ㅠ.ㅠ 
뭐  외국인들이 싫다면 숨겨야죠.


3. 불량주택(판자촌)을 없애버려라.

중국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불량주택 즉 판자촌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제대로 보상이나 해주었나 모르겠네요
공산국가라 쉽게 공권력 동원해서 판자촌을 허물었을것 같습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그런일이 실제로 일어났구요.
하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년전 우리가 그랬습니다.  외국인들이 갈만한 곳은 다 재정돈하고
판자촌이 있는 지역은 공권력으로 마구마구 허물었습니다. 성화가 지나가는 동네에 판자촌이 있다고 상계동의
판자촌은 보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강제 이주시켰슴니다. 전국 200여개의 지역의 판자촌이 이렇게 공권력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안에서 살던 주민들의 삶도 파괴시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경인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에서 땅을파고거기서 기거합니다. 상계동 올림픽이란 영화 아세요?  그 고통이 담긴 단편영화입니다.
자유국가인 우리나 공산국가인 중국이나 별로 다르지 않네요. 어린 저는 그 모습을 잠깐 봤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그런모습을 담지 않았습니다. 당시 어용방송이었던 KBS가 이런걸 방송할리가 없죠.
또한 어느 언론사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중국처럼 올림픽성공에 올인한 나라
였습니다. 상계동판자촌은 가려야 할것이지 알려야 할것은 아니라고 언론도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대학생들이 그 진실을 알릴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궁금하게 있습니다.
매일 데모하던 그 80년대의 대학생들이 왜 올림픽기간에는 데모한번 안했을까요?  어린 저는 그 진실을 잘
모릅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분들은 알겠지요.  어렴풋이 짐작하건데  사복,정복경찰이 서울전체에 쫙 깔렸을
것입니다.그리고 대학생인듯한 사람을 보면 불러 세우고  가방검사를 했고 데모를 원천봉쇄했을것이라는
짐작이 있습니다.  저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실분 댓글로 알려주십시요.


4.  태극기를 휘날리며  88도로를 청소해라


올림픽개최후 88자동차 전용도로가  한강변을 끼고 만들어졌습니다. 그 88도로가 생긴후 저는 한강근처에 있는 강남의 학교라고 해서 토요일 수업이 끝난후 노량진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돌맹이와 쓰레기를 주었습니다.
학생들의 노동력을  한푼도 들이지 않고 나라에서 그냥 퍼다 썼습니다. 당시에 토요일마다 재미있던 미드라마를
해주었는데 덕분에 못봤습니다. 강변 한강둔치를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할때 강건너편에도 한무리의 중학생들이
보이더군요. 저들은 강북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인듯 합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며 짱돌하나 들어서
한강물위로 던졌습니다. 내 울분을 던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성화지나간다고 태극기를 들고 길가에서 흔들었습니다.

뉴스기사를 보니 개막식때 20대 여자도우미가  3시간동안 박수치고 손흔들다가 쓰러졌다고 하더군요.
그 모습이나 내 중학교때 모습이나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마치 장학사 온다고  평소에 딱지 않던 나무로된 복도를 물왁스 칠해가면서 빡빡닦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전세계에서 장학사들이 온다고  서울을 대학생 시위의 나라, 군사정권의 나라를 평화의 나라 꿈의 도시로 만드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그당시는 그게 무슨 잘못인지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모습은 아니였네요.  동양인이라서 그런가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라.
서양인들보다 집단의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게 너무나 쉽고 그게 옳다고 믿는신념들
거대한 군사공화국 같았던 한국이어서 그랬나요? 위에서 까라면 까라는대로 해야만했던 모습들

중국올림픽을 보면서 서울올림픽과 너무나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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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applejadore.tistory.com BlogIcon 사과벌뢰 2008.08.12 05: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살때라 기억이...........
    군데 말 들어보면 우리나라두 그때 지금의 중국처럼 했다고는 하더라구욤

  3. @ 2008.08.12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ㅇㄹ 쓰려면 똑바로 알고 써라

    그거 착시현상 뭐 어쩌구 그런걸로 판명났어 ㅉㅉ

  4. 그때 고딩 2008.08.12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 데모를 안한 것이 아니라.. 대학교 자체를 아예 휴교를 하고 학생들이 학교에 못오게 했어요
    아예 학생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한거죠..
    그때를 돌이켜보니 지금 중국이나 그때 서울이나..뭐..^^

  5. [주전자] 2008.08.12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말씀은 다 맞는데, 차량 홀짝제는 그후로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더군요. 88년 올림픽 때 하는 거 보고 그 다음 올림픽부터는 개최도시들이 당연히(?) 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 당시 저랬던 것은 맞습니다.

  6. BlogIcon 이향연 2008.08.12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당시 고3 이었습니다. 송파에서 성남 수진리고개로 가는 대로옆에 판자촌이 있었죠. 지나가는 길에 깨끗해져서 이주시킨줄 알았는데,보로꼬라고 아세요? 블럭의 일본식발음인데 커다란 시멘트 벽돌에 구멍벙벙뚫어서 만든 벽돌 담으로 판자촌을 싹 돌려막고 알록달록 페인트 칠을 해놨었죠. 군데 군데 상점인것처럼 할려고 샷시 미닫이 문을 해놓았구요. 자가용으로 지나갈땐 안보이는데 좀 높은 버스를 타고 가면 그 담넘어 다닥 다닥 붙은 판자촌이 꽁꽁 숨겨져 있었어요. 얼마전 중국에서 짓다만 건물을 커다란 현수막으로 가려 놓았다고 한 기사를 보고 썩소가.... 어쨋건 그땐 20년 전이고 그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중국은 그대로 답습한다는것이 좀 그렇군요.

  7. 은서아빠 2008.08.12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중2학년이었는데요... 동원되서 마스게임에.. 86년 아시안게임하고...
    살이 시커멋게 타서 매일 엄마가.... 등에다 물수건으로 ,,,
    꼭두각시 춤 기억이나 할려나 모르겠네,,,, 올림픽하면 우리도 선진국되는줄알고 부모들도
    아무소리 안하고 묵묵히 지켜만 보던 생각이 나네요,,, 서울올림픽인데
    우리나란,,, 한국 올림픽이었죠... 전국민이... 참 씁쓸하네요 그때 생각한니

  8. 스노우볼 2008.08.12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부제가 역10부제라고 끝자리가 날짜와 일치한 날에만 운행하는겁니다
    그날만 쉬는게 아니라..홀짝제 정도는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듭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한건데요...

  9. 당시초딩 2008.08.12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화봉송 하는 길을 몇미터씩 나누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6-1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6-2반.. 이렇게 계획적으로 동원되었죠. 그때 초딩들한테 모두 올림픽 마크 그려진 티셔츠 나눠줬었는데.. 다른 지역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네요.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거라 여겼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네요. 길거리에 거지들도 모두 사라졌죠.. 어디로 데려갔을려나..

  10. 호루스 2008.08.12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8년에 대학 2학년이었는데...

    대학가는 여전히 노태우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일색이었지만, 대다수 대학생이 88올림픽을 지배층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 라기 보단 세계를 향한 우리나라의 잔치로 인식했기 때문에...

    남북 공동 개최라는 이상적인 의견도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마당에 우리나라 단독으로 올림픽을 잘 치루자는게 다수의 의견이었지요. 즉, 아버지가 맘에 안들기는 하지만, 동네 사람 죄다 불러 잔치하는데 깽판 쳐서는 안된다는 그런 분위기...

    그리고 또 한가지, 지금 10대,20대의 분위기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넷상에서 보이는 의견을 보건데...당시 젊은이들이(대학생층, 지금과 달리 고졸로 사회진출한 젊은이도 엄청 많았음) 훨씬 더 민족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할수 있죠.

    열렬한 민족주의적 성향이 배타적 자국 우월주의로 나타나는건 아마 지금 중국수준보다 크게 높지는 않았던듯.

    그리고 빈민촌 깔아뭉게기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금 중국과 차이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11. asfsd 2008.08.12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정일 그 인간보다 덜하겠죠~~

    그 인간 아리랑축제 하는거 보면.... 아이들 생노동 시키고 있어여~~

  12. 20년전이네요 2008.08.12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 초등학생이라 올림픽 보다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게 더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성화봉송로에 나가서 태극기 흔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 중국인들은 20년전 우리의 마음과 별반 차이가 없을듯 합니다. 나 하나로 인해 국가의 큰 행사가 혹 잘못될까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나 하나의 작은 행동이 올림픽 성공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하며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겠죠.... 허나 그래봐야 헛것이라는거 이제 곧 알게 되겠죠..ㅋㅋ 자유민주주의 나라인 우리도 그렇게 큰 실망을 맛보았는데... 공산주의 나라에선 말다했죠... 그동안 얼마나 일방적인 희생을 감수했겠습니까? 올림픽 끝나면 바로 허전함, 공허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올 것이고 아울러 그동안 애써 외면하며 방치했던 현실의 문제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슬기롭게 잘 극복했고 아울러 국가성장의 밑천으로 승화했는데 중국인들은 어떨지 궁금해지는군요... 어쨌건 근래에 보기드물게 옛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올림픽입니다. 서울 올림픽을 보면서 일본인들이 20여년전 동경올림픽을 추억했듯이 (모든 것이 그때 자신들과 비슷해서 ㅋㅋ)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저도 20년전 우리의 모습이 계속 생각나네요... (20년전 우리를 보는 듯 ㅋㅋ)

  13. Favicon of http://iceflower.tistory.com BlogIcon 활의노래 2008.08.12 1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야말로 올림픽 세대라.... -_-;;;(88년 용띠 -_-;; ) 그런일이 있었군요.. 쩝... 하기사 저런일이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지만..

  14. 도토리 2008.08.12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과 암이 다 있는거 같아요..
    전에 ..애틀랜다 올림픽인가, 시드니 올림픽 때 였던가... 한 기자가 88올림픽때가 너무 그립다고 했답니다..
    분명히 어두운 부분도 있겠지만, 밝은 부분도 많았어요..
    전 초 3때라 당시 낮에도 방송하는게 신기했고, 재미없는 운동경기만 보여준다고 생각했죠..
    지금보면 너무 재밌는데 말입니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08.08.12 1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분명 빛도 있어요 제 글중에 올림픽에 대한 찬양글도 있어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죠. 그런데 우린 그 어둠을 알리지 않잖아요. 빛만 보여주지

  15. 해나라인 2008.08.12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그 당시에 유치원다니던 꼬꼬마라 잘은 모르지만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희생을 감수해야한다는 정부와 국민들의 합작인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라면
    그래야겠지만 말이죠.

  16. mui 2008.08.12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부시 미국 대통령이 왔을때 공무원들을 동원해서 길가에서 깃발을 흔들라고 시켰다던데
    1988올림픽에서 한국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보다도 더 큰 일은
    2008년 한국이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17. 후니~ 2008.08.12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고기를 먹는거야 막을수 없지만.. 88당시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현제 중국도 개고기의 수요자지만.. 개고기하면 중국보다 한국의 이미지를 떠올린다고합니다.
    야후에서 'korea'라고 검색했을때 개고기의 이미지(강아지를 정육으로 냉동된..) 가 뜹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개고기유통이 축소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8. 아 그때 2008.08.12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터에 기와장을 언저놓은 담을 쌓고 그 벽에 호돌이 모습을 꾸며 놓은게 막 생각나네욯ㅎㅎ
    성화봉송하는데 단체로 간거 생각나네용~~ ㅎㅎㅎ

  19. 제3막 2008.08.12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당시 상계동에서 살았었는데 성화 봉송때문에 판자촌을 허물지는 않았떤것 같습니다.
    그시절부터 노원구 일대가 재개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판자촌이 허물어진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판자촌뿐만 아니라 많은 집들이 허물어 졌었죠.
    저도 중계동에 살다가 올림픽 전에 조금 일찍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재개발 된 지역에
    분양권을 받아서 나중에 재개발 완료 된후에 다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상계동 어쩌구 하는 영화는 올림픽과 상관없이 다른지역에서 쫓겨나 상계동에 정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그리고 제 기억엔 상계동 부근 지역엔 성화 봉송이 안왔었던거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08.08.12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화봉송은 서울을 다 돌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화가 안지나가더라도 눈에 띄일만한 곳은 가리고 허물고 했습니다. 88올림픽 당시에 막 허물고 한게 아니고 82년도 부터인가 순차적으로 허물었어요. 제대로 보상받는 분들도 많지만요. 그건 집주인들이나 그런것이구 세입자들은 그냥 집에 살다가 집안살림과 함께 집을 허물기도 했습니다. 학교갔다오니ㅣ 집이 없어져서 울던 아이들 생각이 나네요. 88올림픽 바로 전에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20. Favicon of http://iblution.tistory.com BlogIcon zooin 2008.08.12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군 복무 중이었는데...사복입고 도로에 나가서 성화 봉송 환영 인파를 가장한 경호(?) --- 그러고 보니 군인을 그런 일에 동원했었군요. ;;;

  21. gabi813 2008.08.13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 난 논에가서 일하느라 개막식 못봤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