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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대학생이 너무나 많은 대한민국

by 썬도그 2008.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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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몇일후에  고등학교 친구들 10명이 한자리에 모인적이 있었습니다.
명목은 친구 한녀석이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는 소식때문이었죠.
이민 가는 친구는 수도권의 이름있는 공대에 입학을 전기에 합격을 하고 바로 캐나다로 떠났다가 졸업식을
할즈음 나머지 짐을 챙기러 잠시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영화를 다 같이 관람하고  술자리를 하러 옮기기로 했습니다.  영화명은 생각이 안나는데  극장은
피카소로 기억이 됩니다.  극장이름이 기억나는것은  유리창을 넘어 들어온 2월의 햇살과 먹었던 자판기
거피의 향이 기억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자리이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캐나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외국이란 세상을 접하지도 듣지도 못한 상황이라(인터넷도 없었던 시절이니) 관심있게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캐나다는  대중교통비가 엄청비싸고 식료품가격이 무척싸다고 하더군요. 우리와 반대였죠
모두 자가용을 몰고다니는 문화다 보니  대중교통도 별로 없고 있어도 무척 비싸다구요.

캐나다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고 있을때 그 친구가 한마디 하더군요.
우리나라는 길에서 보는 젊은이들의 태반이 대학생이라고  비판을 하더군요. 
ㅎㅎ 그 10명의 친구중 반정도는
대학를 진학하지 못한 신분(?)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저 자식 대학합격
했다고 저런소릴하나 고깝게 듣었던것 같습니다.  왜 그런소리를 하나 들어보니  한 사회에서는 여러종류의
사람들을 요구하는데 대학생들이 많은것은 그렇다고 쳐도  그 넘처나는 대학생을 사회가 소화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캐나다에서는 대학생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 얘기를 들을때가 91년 2월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료출처 : 국가통계포탈

도표로 보니 33.2퍼센트의 고등학생이 대학교로 진학하던 시절이었네요.  33퍼센트라는 진학률도
캐나다에 비해선 높은 진학률로 그친구는 봤던 모양입니다.  이 말을듣던 91년 당시는 이해도 안되고
재수걱정에 몸과 마음이 심란한 상황이라서 한귀로 흘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요즘보면  정말 말 그대로 대부분이 대학생이더군요.  대학진학률이 80%를 넘고 있습니다.
길가다가 20대 초반의 남자나 여자에게 이봐~~ 학생 하는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된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생이 저렇게 많이 쏟아지는데  사회에서 대학생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결코 늘수가 없습니다.  대학생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1이라면 고졸인 사람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1 이상이
있어줘야 될텐데요.  고졸출신은 20%도 안되고 대부분이 대학생이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졸이란 신분으로  대졸에 맞는 일자리를 찾다보니  일자리를 구하기 힘듭니다.  이 취직은  일자리의 파이가 커지지 않는이상 제로섬게임입니다.  누군가가 그 대졸일자리에 들어가면 나머지 대졸은 기다려야 합니다.

왜 제로섬게임이냐면 대졸출신이  고졸출신의 일자리에 적극적으로  취직을하고 취업을 한다면
제로섬게임이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상식적으로  고졸들이 할수 있는 일을 대학교 수천만원
등록금을 내면서 졸업했는데  보상심리라도  고졸을 요구하는 일자리에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졸출신이 저렇게 적은데  이 사회가 굴러가는 이유중에 하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졸이나
또는 힘든일을 해주고 있기 떄문입니다. 그 외국인 노동자들이 밑에서 받쳐주니까  대졸자들이 관리직이든
개발직인든 하는 것입니다.  기능직들을 그들이 하는것이죠.
(고졸을 비하하는 내용이 아니니 오해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은  매일 한탄하고 88세대라고 하면서 정부를 욕하고 사회를 원망합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대졸취업률이 늘수가 없습니다.  전부다 대학생인데 이들이 사회를 나와봐야
대졸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명박정부가 내세우는것은 기업을 많이 만들고 경제의 크기를
키우면 대졸자들의 실업을 흡수하면 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커진 경제규모만큼  고졸자들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고졸자들은 너무나 적습니다. 그래서 외국인노종자들을 데리고라도 와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불법체류자들이라고 단속하고  외국으로 돌려보내기 바뿝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불법체류자가 많은것을 알지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고 오히려 일정기간
체류한 사실이 있다는걸 증명하면  가끔 합법화 시켜주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부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할듯 합니다. 한국국적따기는 너무나 힘들고 이중국적도 허용도 안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기형적인 모습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자 10명중 3명만 대학을 가던 시절은 대학교 졸업반만
되면 데리고 갈려는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대졸을 요구하는 일자리와 대졸자 수가 얼추 비슷했는데요
수요와 공급이 잘 맛물려 돌아갔는데 지금은   맞물리지가 안습니다. 대졸자란  톱니바퀴가 기형적으로
커저 버렸습니다.  이러다 보니 대졸자라도  어느대학 졸업했느냐가 중요하게 되고 같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도  토플, 토익점수가 중요하게 된것입니다.   어떤 능력이 그회사에 정말로 필요해서 변별력을 가지고
대졸자를 걸르기보단  정작 취직해서 쓰지도 않는 스킬들을 가지고  대졸자들을 솎아내고 있으니  대학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것입니다.

이런 패러다임으로  사회가 돌아가니  4년제만 들어가면 된다는 예전의 모습에서 이젠 대학은 다 들어가니
더 좋은대학 더 끝발있는 시쳇말로 먹어주는 대학에 들어갈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대학은 서열화를
가속화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기대수준이라는 눈높이가 있습니다. 대졸자를 쏟아내면서 그들의 눈높이를 높여놓고
대졸자들이 사회로 들어가는 구멍은 좁습니다.  그렇다고 대졸자들이  고졸자들이 하는 일을 할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니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소리가 나오는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일은 월급도 적지만 사회적시선도 좋지 못합니다. 그걸 느끼면서 자라가는 청소년들
그들은 자신의 그런 힘들고 어려운일을 하는 사람이 될까봐 하는 공포감도 있습니다.  한번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는 사다리는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인 복지정책도  재활할수 있는 갱신제도도 없는 한국사회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리고 몇년이 지나도  대졸취업률은 오르지 않을것입니다. 한참 일할 나이에 논다는
괴로움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건강한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힘든것 같습니다.

대학직학률을 높이는것보단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격차가 줄어들지 않는한  위로 기어 올라갈려는
모습은 사라지지 않을듯 합니다.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소설 꽃들에게 희망을에 보면 두마리의 애벌레가 나옵니다.  애벌레들이 뭉쳐서 만든 거대한 탑을
올라갈려는 수많은 애벌레들  올라가다가 남을 밀치고 떨어트리고 무조건 올라갑니다.
하지만 두 애벌레는 올라가는걸 포기하고  탑보다 더 높게 날수 잇는 나비가 됩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동화와 같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동화에서는  맹목적으로 탑을 오르는 애벌레들을 비판하지만  한국사회는 올라가는 이유가 뚜렷합니다.  오를수록 편하게 호사를 누리면서 살수 있으니까요.
그걸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칙을 해도 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반칙이요?
그거 인지상정으로 슬쩍 눈감아 줄수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나비가 거의 없는 한국사회에서
대학생들은  애벌레탑을 오르는 애벌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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