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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천국을 보여줘서 지옥을 상상케 하는 영화

by 썬도그 2024.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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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그 대상이 무엇인지 모를 때 공포는 극대화됩니다. 그래서 괴수 영화에서 괴수가 나오기 전의 울음소리와 각종 파괴음을 들으면서 각자의 공포를 최대로 끌어올립니다.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다르고 상상력이 공포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죠. 정작 그 괴수가 눈앞에 나오면 공포감은 뚝 떨어집니다. 

 

귀신의 집에서 귀신이 나오기 전이 가장 무서운 것처럼요. 

 

아우슈비츠 담장 너머에 사는 사령관 저택만 보여주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

짠 별점으로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가 12년 만에 별점 10점 만점에 9점을 줘서 화제가 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확실히 명작 영화인 것은 맞지만 박평식 평론가가 비슷한 소재의 홀로코스트 다큐인 <액트 오브 킬링>에도 만점을 준 것을 보면 확실히 별점은 취향을 많이 탄다고 느껴지네요. 

 

제가 느낀 이 영화의 별점은 10점 만점에 8점 정도입니다. 네 저도 별 5개는 1년에 1개도 안 줄 때도 많고 해서 8점도 높은 편입니다. 확실히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무엇보다 영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네요. 영화의 아이디어는 아주 간단하지만 그 간단한 아이디어가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영화가 영리하다는 점은 이런 점 때문입니다. 미국 영화계는 유대인 자본이 꽉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을 담은 홀로코스트 영화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역사를 잊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죠. 이 영화도 그런 부류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에 있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많은 유럽의 유태인들이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우슈비츠 영화들은 아우슈비츠 내부를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참상을 목도할 관객은 많지 않기에 대부분은 톤 다운해서 보여줍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 같은 경우 극강의 아웃포커싱이 되는 렌즈를 사용해서 주인공만 선명하게 보이게 하고 주변은 흐리게 처리해서 참상을 가렸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의 사령관인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 분) 가족이 사는 사택만 보여줍니다. 이 사택은 천국과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잘 꾸며진 정원과 온실까지 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아무런 정보없이 보면 과거 어느 유럽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라고 느껴집니다. 실제로 이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배경 음악을 베재하고 과장된 주변음이 가득합니다. 위 이미지처럼 피크닉 장면에서는 실제보다 큰 새소리들을 가득 넣죠. 그러나 이 가족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운영하는 사령관 가족입니다. 

 

이들의 삶은 천국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입니다. 
다만 간간히 들리는 소리와 풍경이 좀 낯섭니다. 예를 들어 평화로운 저택 하늘로 거대한 비행운을 만들면서 지나는 폭격기 편대가 지나가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

회스 중령의 아네인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분)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옷을 흩어 놓고 그중 모피 옷을 입어봅니다. 그리고 하녀들에게 수선하라고 하죠. 이 옷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바로 옆 아우슈비츠에서 왔습니다. 유럽 곳곳에 있는 유대인들을 열차에 태워서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들의 옷들입니다. 섬뜩하죠.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런 식으로 비극과 참상을 절대로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담장 하나 사이로 천국에 사는 회스 중령 가족의 천국 같은 삶을 보여주면서 지옥을 상상하게 합니다. 지옥은 가끔 들리는 총소리와 비명과 울부짖음과 가스실의 연기와 강가에 떠내려오는 부유물로만 보여줍니다. 사람은 상상하게 하면 자신이 가진 감정치의 최대를 끌어올려서 생각합니다. 이게 이 영화의 영리한 점입니다. 

악의 평범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

회스 중령의 행동은 아주 따뜻한 이웃집 아저씨 같습니다. 회의 장소로 향하다 만난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면서 강아지 주인과 덕담을 나눕니다. 회스 중령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실을 가꾸는 인부에게 온실에서 담배를 피우라고 하죠. 마음씨 좋은 마나님 같습니다. 그냥 너무나도 상냥한 사람들 같습니다. 

 

그러나 이 중령 가족이 행하는 홀로코스트 행위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족을 악마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면 악마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평범합니다. 그냥 회스 중령은 히틀러가 시켜서 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냥 자기 일을 하는 것이고 그냥 하나의 직장인 가족이라고 느껴집니다. 실제로 회스 중령은 아우슈비츠에서 떠나지 않기 위해서 여기저기 로비를 해보는 등 근무지를 옮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이 가족에게는 그냥 그게 일상이고 일처럼 느껴집니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죠. '한나 아렌트'는 악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문장으로 보면 회스 중령 가족은 악마가 맞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 우리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 논리를 분쇄할 수 있는 문장이죠. 

 

그리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이 가지 지구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는 건 타인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행위의 정당성이 있다고 해도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도 유대인이면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수상 소감을 했습니다. 아주 용기 있는 수상 소감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시대보다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이역만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영상으로 보는 시대지만 어떤 시대보다 외부의 고통에 둔감해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초기에만 반짝 관심을 가졌지 2년 지난 지금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유튜버 밀리터리 채널이나 언론이 대부분이고 그것도 그냥 눈요기거리로 군사 무기 소개만 하고 있습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 세태를 담장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로 보여주면서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이자 힘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보여주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태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회스 중령 가족만 보여줬다면 뭘 어쩌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끝날 수 있습니다. 이에 다양한 사람들을 투입해서 우리라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먼저 어머니입니다. 헤트비히 회스는 중령의 아내로 평상시에는 인자하게 보이지만 지나가는 유대인 하녀에게 일 제대로 안 하면 가스실로 보내겠다는 협박을 합니다. 

 

헤트비히 회스는 어머니와 함께 살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가 아우슈비츠 사택에 와서는 잘 가꾼 정원에 놀랍니다. 천국이 따로 없죠. 이 어머니는 옆에 있는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잘 압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가끔 총소리도 들려오죠. 그리고 밤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도 봅니다. 우리 관객과 가장 비슷한 인물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상상하게 되고 어머니는 결단을 내립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인물이 이 어머니가 아닐까 합니다. 이 어머니로 인해서 딸인 헤트비히가 다르게 보입니다. 이전까지는 상냥한 아내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어머니로 인해 저걸 알면서도 나알빠 아니다 식으로 사는 것이 악마라고 느껴지게 됩니다.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 실존 인물인 폴란드 소녀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다 보면 회스 중령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 흑백의 영상이 나옵니다. 이 영상은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으로 열이 나는 곳만 하얗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 한 소녀만 빛이 나는 것이 마치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내는 천사처럼 보이고 실제로 행동도 천사입니다. 

 

이 소녀는 유대인들에게 사과를 나눠주는 폴란드 소녀입니다. 이 소녀는 실존 인물로 실제로 이 당시 유대인들에게 사과를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흥미롭게도 동화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용도로 활용되는데 회스 중령이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 이 소녀가 화면에 나옵니다. 

 

'조나단 글래이저'라는 뛰어난 영화감독

언더 더 스킨 한 장면
언더 더 스킨 한 장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출발해서 놀라운 영화들을 만들기로 유명한 '조나단 글래이저'. 이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게 2014년 개봉한 <언더 더 스킨>입니다. 이 영화는 외계행성에서 지구로 온 외계인이 식량으로 삼을 남자들을 침수시킵니다. 침수시킨다는 표현을 한 이유는 실제로 남자를 유혹해서 빠져들게 합니다. 이 표현이 엄청납니다. 영화는 기존 외계인 영화와 궤를 달리합니다. 

마치 잘 만들어진 실험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음향과 사운드가 기존 영화들과 다릅니다. 제가 현대미술관에서 보는 영상 작품들에게 느껴지는 불쾌함과 불연속 속에서도 우리의 감정을 끌어내는 그런 영상물 같았습니다. 이는 이 감독이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라서 그런지 소리와 음악을 기가 막히게 사용합니다. 천국의 한 장면 같은 아름다운 화단 영상에 소리와 사운드로 불쾌하게 하거나 낯설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소리를 이용해서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을 것을 소리로 보게 합니다. 필터 버블의 세상에서 우리는 시선 차단을 통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편하지만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참 많고 그런 것을 봐야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소리를 통해서 그 애써 외면하는 고통의 소리를 들려주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여러 인물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에 관광지가 된  현재의 아우슈비츠 감옥을 보여주는 비범함도 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참 놀라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참 영리한 영화입니다. 상상을 통해서 감정을 극대화하면서 현재의 우리를 바라보게 하는 거울 같은 영화입니다. 

 

별점 : ★ ★ ★ ★
40자 평 : 천국을 통해 지옥을 상상하게 만드는 거울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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