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을 참 좋아합니다. 온정이 느껴지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끌어올려서 이게 당신들의 구역질 나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이라서 들뜨지도 과장되지 않은 차분하면서도 강한 시선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자본과 배우와 함께 만든 <브로커>를 보고 실망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 튀어서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시선은 여전히 좋았고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은 이 영화가 얼마나 따뜻한 영화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브로커>로 인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인 <괴물>을 개봉할 때도 최근까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워낙 입소문이 좋고 대단한 영화라는 소리에 뒤늦게 봤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왜 이런 영화를 이제야 봤을까? 나에게 생긴 편견 때문일까? 네 그럴 겁니다. 안 좋은 경험이 좋았던 90% 의 경험을 이겨버렸네요.
'사카모토 유지' 각본을 만나서 괴물 같은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같은 영화이고 이런 영화가 있었나? 할 정도로 엄청난 시나리오를 품은 영화입니다. 흥미롭게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는 자신은 이런 각본을 쓸 수 없다면서 일본 인기 드라마 작가인 '사카모토 유지'에게 공을 많이 돌렸습니다. 각본은 이런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각본을 만났네요.
'사카모토 유지' 필모를 보다가 2018년 제작된 일본 드라마 <아노네>가 있네요. 이 드라마 아주 좋은 드라마예요. '히로스 스즈'가 나와서 무조건 봤는데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와 유사 가족의 따뜻함이 인상 깊었던 드라마입니다.
영화 <괴물>은 1장과 2장을 통해서 관객을 현혹합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괴물은 누구게? 맞춰봐라고 퀴즈를 내죠. 우리는 열심히 퀴즈를 풀면서 쟤가 진짜 괴물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풀다가 3장에서는 바보들! 당신들이 괴물이야. 누굴 그렇게 혐오하면서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불구경 꾼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뒤통수를 칩니다. 이게 한 방에 뒤통수를 치는 것이 아닌 점점 서서히 다가오는 진짜 이야기를 보다 보면 어느새인가 그 진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나를 포함한 우리 세상이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나게 하네요.
1장 10대 아들을 둔 싱글맘 사오리
영화 <괴물>은 상당히 창의적이로 놀라운 각본을 품고 있습니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초등학교 5학년 생인 주인공 미나토를 키우는 싱글맘 무기노 사오리(안도 사쿠라 분)의 시선입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 미나토가 이상 행동을 하자 학교를 찾아갑니다. 아들 미나토는 호리 선생님(나가야마 에이타 분)이 자신을 때리고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학대한다고 말하죠.
가뜩이나 남편 없이 혼자 아들을 키우는데 아들이 학교 선생님에게 맞았다는 소리에 한 달음에 달려가서 항의합니다. 그런데 학교 교장 선생님이나 호리 선생님이나 죄송하다고는 하는데 생기도 진심으로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이게 더 화가 납니다.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고 계속 이상한 일이 반복되자 분노가 더 커집니다. 그러다 호리 선생님이 당신 아들 미나토는 피해자가 아닌 학폭 가해자라는 소리에 놀라죠.
사오리는 전형적인 아들의 세계를 잘 모르는 싱글맘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아들과 친한 것 같지만 동성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들의 심란한 세상을 잘 모릅니다. 오로지 목표는 너를 잘 키워서 장가 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하고 수시로 아빠를 거론합니다. 어떻게 보면 고단한 삶을 사는 싱글맘의 이미지가 너무 잘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빠라는 괴물은 바람 피다가 온천에서 상간녀와 함께 죽은 인간입니다. 저 같으면 바로 아빠 같은 사람을 기억에서 지우겠지만 뭐 좋은 사람이라고 아들과 함께 바람난 남편을 챙기는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절실하고 절절합니다. 답답하긴 하지만 이건 관객입장이고 사오리의 고단한 삶과 고통을 통해서 아들을 이상하게 만든 학교를 지적하게 됩니다.
2장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호리 선생님
영화 <괴물>은 총 3장 구성인데 각 장의 시작점과 끝이 똑같은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시내 건물의 화재라는 불로 시작해서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이 가득한 물의 세계로 끝이 납니다.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의 이상 행동과 미나토가 호리 선생님이 괴롭힌다는 지목을 통해서 학폭 가해 선생님이 됩니다.
2장은 호리 선생님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라쇼몽>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이 영화는 엄마 사오리의 시선과 호리의 시선과 3장 아들 미나토의 시선이 다를 뿐 사건 사고를 왜곡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참 놀랐더군요.
다만 같은 세상을 살지만 모든 것을 목격하고 경험할 수 없고 일부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지례짐작하고 편견으로 바라보는 그 괴물이 된 시선을 고발합니다. 2장에서는 호리 선생님의 시선으로 학폭도 없었고 미나토가 광분하는 걸 말리다가 코를 친 것은 우연한 사고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학교에 말해도 문제를 더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그냥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는 학교의 무신경한 모습에 괴물이 되어가고 언론에까지 학폭 교사로 낙인찍힙니다.
남의 불행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 괴물같은 우리들
영화 <괴물> 초반에 거대한 화재를 보면서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닌 일명 불구경을 합니다. 소방차가 출동하는데 동네 아이들은 뛰어나와서 핸드폰으로 담고 싱글맘 사오리는 아들과 함께 맨션 난간에서 불구경을 합니다. 참 못난 행동이죠. 그런데 사실 우리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수잔 손택의 책 '타인의 고통'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그 전쟁의 고통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음에 대한 깊은 행복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저 사람들은 불행하고 고통스럽지만 난 이렇게 저 고통이 닿지 않은 곳에 있다는 자신의 안전을 떠올리면서 묘한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죠.
이걸 한 마디로 전 불구경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내 집이 타면 나의 불행이지만 남의 물건이나 집이 타면 불구경이죠.
이 불구경 태도는 수 없는 남의 불행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아주 나쁜 태도입니다. 그래서 전 '한문철의 블랙박스'도 사고 경각심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보는 것이 불구경하는 것 같아서 안 봅니다.
엄마 사오리만 그럴까요? 호리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호리 선생님 본인이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미나토에게 한부모 가정이라서 그런가? 라는 편견을 가집니다. 이게 무서워요. 자신이 당사자이면서 또 구경꾼처럼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일이 내일이 되니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고 자신은 아무것도 안 했다고 미나토에게 난 방관자로 봐달라고 합니다.
엄마 사오리와 호리 선생님 모두 자신의 마음에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구경을 합니다. 그제서야 세상의 방관과 방치와 구경에 화가 나지만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사가 있어서인지 밉지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확증편향의 세상의 흔한 인물로 보입니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죠.
제가 분노한 사람들은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과 같은반 학생들입니다. 반에서 학폭이 수시로 일어나지만 누구도 이걸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에 매일 같이 자학하고 있는 아이들이 피해를 받습니다.
우리들이 그렇죠. 나에게 영향을 줄 것 같으면 꼬리 내리고 도망칩니다. 호리 선생님의 동료 교사이자 여자 친구가 그랬고 동료 교사들은 너만 참으면 다 괜찮다는 식으로 무언의 폭력을 행사합니다. 미나토 급우들도 참 그렇죠. 그러나 그들을 탓하기보다는 폭력을 봐도 선생님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걸 학교에서 배웠을 겁니다.
그냥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관계가 깨져 있습니다. 도와달라고 할 때 모두 도와주지 않습니다. 매정하죠. 그런데 우리 세상이 점점 더 매정해지고 있습니다. 혐오의 세상을 비판한영화라는 시선도 많고 저도 공감하지만 그보다 전 영화 <괴물>은 모든 관계들이 끊어진 괴물 같은 우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같이 살고 관계 맺기로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 하기에 위대한 동물이지 싱글 플레이 하는 늑대 같이 살면 그게 사람입니까? 우리 무리 아닌 다른 늑대는 다 적이죠.
좀 더 확장하면 2024년은 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고 할 정도로 적대감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영화 <괴물>은 연대 대신 남의 집 불구경이나 하는 당신들의 무지와 혐오감에 물들어서 무고를 남발하는 세상에 대한 준엄한 고발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우리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없습니다.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죠. 이게 나쁜 건 아닙니다. 저 멀리 곰이 다가오는데 곰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곰이 맞는지 확인한 후에 도망치면 죽을 수 있습니다. 곰 같아 보인다 하고 도망치는 사람은 살 수 있죠. 따라서 일부를 보고 전체를 빠르게 판단하게 진화했습니다.
따라서 편견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자신을 위협하는 것도 아니면 최대한 오래보고 많이 보고 판단해야 하지만 우리가 그런가요? 특정 국가와 민족과 지역을 그냥 판정 내리죠. 호리 선생님이 미나토를 그렇게 판단했고 엄마 사오리가 미나토와 호리 선생님을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소문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하죠.
엄마 사오리가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손주를 차로 치어서 죽인 것이 교장 선생님 남편이 아닌 교장 선생님 본인 아니냐고 무례한 말을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호리 선생님이 동료 교사와 사귀는데도 화재가 난 유흥업소를 들락 거린다는 소문을 내죠.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지 말고 직접 물어보면 됩니다. 그럼 아주 쉽게 풀릴 수 있는 것도 우리는 짐작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참 많고 이게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편견이라는 칼로 마구 찌르게 됩니다.
미나토와 요리가 숲속 폐 열차에서 서로의 머리에 그림을 붙이고 서로 설명하면서 맞춰가는 '괴물 찾기 놀이'는 전형적인 편견에 대해서 은유하는 놀이가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교장 선생님의 한마디
가장 의뭉스러운 인물이 교장 선생님입니다. 드라마 <아노네>에서도 나온 '타나카 유코'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교장 선생님은 손주를 잃은 할머니입니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교장 선생님이 차로 손주를 치었고 대신 남편이 감옥에 가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런 소문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뭐가 진실인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은 진실이 진실이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 편견으로부터 오랜 시간 살아온 연륜이 가득한 말을 합니다.
일부의 사람만 행복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행복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마다 각자 정의해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하죠. 미나토가 자신의 비밀을 꺼내자 이 교장 선생님은 용기를 주는 말을 합니다. 각자의 세상 각자의 행복을 찾으면 되지만 우리 세상은 자신의 행복론 또는 세상 보편적인 행복의 선에서 벗어나면 괴물이라고 말합니다.
놀랍도록 현재의 우리 세상을 제대로 후벼 판 영화 <괴물> 강력 추천
3장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겠습니다. 3장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1,2장을 배치해서 그래 당신들 괴물 찾았어?라고 물어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야라고 3장이 열립니다. 3장을 통해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이고 잘잘못을 다 떠나서 세상의 선을 이탈한 존재들에 대한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사람은 돼지라고 말하는 엄마 같은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두 아이의 행복 찾기는 숲으로 폐 열차로 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은하철도지만 그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그곳에서만 두 아이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아이를 통해서 우리 세상을 돌아보게 하네요. 참으로 대단하고 놀라운 영화입니다.
히로카츠 감독이 엄청난 각본이라는 날개를 달아서 하늘로 승천하는 느낌까지 주는 영화입니다.
별점 : ★ ★ ★ ★★
40자 평 : 상식의 괘도를 이탈한 버려진 은하철도 안에서만 행복을 느끼라고 강요하는 불구경꾼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