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을 한 때 참 좋아했습니다. 2011년 <돼지의 왕>을 보고서 한국에서 다루기 어려운 소재와 연출에 깜짝 놀랐습니다. 상당히 에너지가 강한 애니메이션 감독에 반했습니다. 이후 <서울행>이라는 애니를 투자받기 위해서 만든 <부산행>이 대박이 터지면서 천만 감독이 됩니다. 그러나 <부산행> 이후 연니버스라고 하는 연상호 감독 특유의 다크하고 습한 기운의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지옥> 빼고 딱히 매력적이지 못해서 걱정이 컸습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이 넷플 6부작 드라마 <선산>에서 터졌네요.
선산이라는 유산을 두고 싸우는 이복 동생
1월 19일 넷플릭스에서 오픈한 <선산>은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는 아니고 <부산행>, <염력>, <반도>의 조감독 출신인 민홍남 감독의 첫 연출작입니다. 다만 연상호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에너지도 약하고 질척거리기만 하네요.
보통 넷플릭스 드라마 또는 요즘 트랜드는 1화에 강력한 먹이를 던져서 휘몰아쳐야 2화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극적인 연출이나 소재를 1화에 잔뜩 넣죠. 그러나 <선산>은 1화 마지막 장면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2화부터 4화까지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를 정도로 이야기의 힘도 없고 질척거리고 느리고 너저분합니다. 너무나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한숨만 나옵니다.
연니버스에서 활약하는 배우 김현주가 연기하는 윤서하는 시간 강사입니다. 궂은일은 다 하고 교수 진급에서 항상 탈락합니다. 빽이 약한 것인지 번번이 교수 임용에서 미끄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이 어린 남편은 바람이 났습니다. 삶이 꽉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한 상태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형사의 전화를 받고 찾아갑니다.
작은 아버지 앞으로 선산이 있었다는 말에 잘 알지도 못하는 작은 아버지 장례를 치룹니다. 이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이라고 주장하는 김영호(류경수 분)가 나타나서 선산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윤서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이복동생과 놀고 있던 김영호를 기억합니다.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김영호와 이복 형제인 윤서하가 선산이라는 수십 억이 넘는 재산을 두고 공평하게 나누면 됩니다. 이복동생이라는 DNA 검사도 다 확인되었고요. 다만 김영호는 호적에 등록되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법으로 따져 들어가면 김영호에게 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윤서하가 생각지도 않은 재산이 생겼고 김영호라는 존재가 있는 걸 알았다면 그냥 공평하게 나누면 됩니다. 다만 윤서하는 이 김영호를 아버지가 바람 펴서 낳은 동생인 것을 알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멸시하고 혐오합니다.
주인공이 반듯하고 바른 듯 하지만 김영호에 대한 깊은 멸시와 배척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감독은 이걸 원했겠죠. 겉모습만 보고 알 수 없다. 돈 앞에서는 식자이건 아니건 다르지 않다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김현주가 너무 선하게 생겨서인지 자꾸 김현주 편에 서게 됩니다. 다만 갈수록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할 정도로 의아했고 나중에는 짜증스러워져서 감독의 의도에 부합되지만 반대로 김영호라는 캐릭터가 좀 거칠고 투박하네요.
언제 봤다고 초상집에 대뜸 와서는 괴기스러운 표정을 짓고 누님 누님 그러는지 왜 눈깔을 그렇게 뜨며 이복 누나를 위한다면서 집에 닭피로 부적을 그리는지 참 알 수 없는 인물입니다. 갈등 구조가 너무 단순하고 캐릭터들이 부자연스럽기만 합니다. 드라마가 상당히 거칩니다. <선산>은 무당 등을 이용해서 긴장 갈등 구조를 끌어 올리려고 하지만 오히려 지저분해 보입니다.
감동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듯한 두 형사의 갈등
윤서하의 작은 아버지가 죽은 사건을 최성준 형사(박희순 분)와 최성준 형사의 후배이지만 상사인 반장 박상민(박병은 분)은 사사건건 티격태격합니다. 선배 형사지만 하대하는 모습에 둘 사이의 이야기를 드라마 초반에 보여줍니다. 드라마 <선산>은 초반에 두 형사의 갈등 이야기와 두 이복 형제이복형제 사이의 갈등 이야기가 동시에 출발하다 보니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드라마 6부에서 두 형사의 갈등이 풀어지고 두 이복형제 사이의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오지만 초중반까지 두 이야기가 같이 달리다 보니 어느 이야기에 올라타야 할지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영화 <외계인>이 누가 주인공인지 모를 정도로 이야기가 여러가지라서 난감했던 것처럼 드라마 <선산>도 형사 이야기는 정리하고 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엄청난 감동을 주지도 않고 맥없이 풀리는 갈등에 당혹스럽기까지 하네요. 또한 선산을 두고 싸우는 두 형제 갈등도 다소 황당한 방식으로 푸는 모습에 한숨난 가득 나오네요.
어색한 자극만 남은 선산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은 의미 깊다
전체적으로 어설픕니다.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방식도 이야기도 모두 밀도가 높지 않습니다. 이야기 자체에 큰 긴장감이 없다 보니 무당이라는 무속까지 끌어들이지만 오히려 진뜩거리기만 합니다. 또한 캐릭터들이 너무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네요. 언제 봤다고 누님 누님하고 언제 봤다고 보자마자 배척하고 살인마라고 지목을 하는지 수십 년 동안 서로 보지 못한 사이 치고는 층간 소음으로 십 년 넘게 고통받다 만난 사이처럼 경계합니다.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들이 재미가 없네요. 특히 <선산>은 그중 가장 낮은 재미를 보여주네요. 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무덤을 파면서 윤서하가 누구 무덤이냐는 말에 '가족'이라는 그 한 마디가 주는 힘은 좋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가족은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힘은 크네요.
평점 : ★☆
40자 평 : 가족이라는 애증 관계를 재산 상속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으나 어설픔의 늪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