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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개를 통해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담은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by 썬도그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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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감독이 되어버린 봉준호 감독의 입봉작은 2000년 2월에 개봉한 <플란다스의 개>입니다. 당시 이 영화의 예고편을 지금은 출발 스포 여행이라서 보지 않은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봤습니다. 예고편보다 길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지만 너무 많이 보여줘서 영화를 다 본 느낌까지 들게 했었죠. 

<플란다스의 개>는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먼저 두 배우인 이성재와 배두나가 엄청난 인기 스타가 아니었습니다. 티켓 파워가 높은 배우도 아니지만 코미디라고 하지만 딱히 웃기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인상 깊었던 건 아파트 옥상에서 노란 우의를 입고 노란 종이를 날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지만 개 찾아주는 이야기가 전부 같아서 안 봤습니다. 

그리고 흥행에 대실패를 했습니다. 2023년 23년이 지난 지금 볼 만한 게 없어서 안 본 영화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가볍고 재미있는 영화를 찾다가 <플란다스의 개>를 봤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망할 만한 요소가 많지만 그렇게 못 만든 영화가 아니고 오히려 잘 만든 사회 비판 영화입니다. 다만 이걸 돈 주고 보기엔 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의 단편 영화인 <지리멸렬>을 본 분들이라면 꽤 좋아할 만한 영화입니다. 혹자는 명작이라고 하지만 명작은 아닙니다. 명작이 되기엔 미숙한 점이 꽤 많이 보이네요. 

3마리의 개를 통해서 본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먼저 지금의 10,20대들은 <플란다스의 개>하면 70~80년대 TV에서 줄기차게 방영했던 일본 애니 '플란다스의 개'를 잘 모를 겁니다. 그 유명한 네로와 파트라슈를 모르는 세대를 위해서 좀 설명을 하자면 '플란다스의 개'는 1872년 영국 잡지에 발표된 영국 소설가 위다가 쓴 아동 문학이 원작입니다. 이걸 일본이 애니로 만들었고 군사 독재 정권 시절 한국에서 수 없이 방영을 했습니다. 

전 어렸을 때 우유 배달하는 강아지 끌고 다니는 유럽 꼬마 아이 네로 이야기 보단 마징가 Z를 좋아해서 네로 나올 때마다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30대에 우연히 다 봤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와~ 이렇게 슬픈 애니였다니. 루벤스 그림 아래서 잠든 모습이 잊히지 않네요. 

네이버 지식인에 플란다스의 개에서 플란다스가 누구냐는 질문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플란다스는 벨기에 플랑드로 지역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애니로 만들면서 플란다스로 바뀐 듯합니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제목도 좀 그래요. 전혀 그 애니와 연관이 없습니다. 다만 개 3마리가 나오는 점이 제목으로 만든 것 같은데 인기 제목에 의탁한 느낌이 강하네요. 신인 감독이 영화를 알리려면 제목도 중요하죠. 영화는 애니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은 고윤주(이성재 분)으로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백수, 임신한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먹고 삽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교수가 되려면 높은 교수에게 돈을 찔러줘야 합니다. 윤주는 1,500만 원을 찔러주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듣습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교수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높은 교수가 술을 좋아하는데 그 교수와 술을 마신 신입 교수가 술에 취해서 전철역에서 오바이트 하다가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전철에 부딪혀서 사망을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윤주가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단 1,500만 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대로 받고 있는데 아파트 밖에서 개소리가 자꾸 들립니다. 이에 윤주는 의심이 가는 시츄 강아지를 잡아서는 지하 보일러실에 가둡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술이 떡이 되도록 먹고 들어온 그날 밤 자신이 지하실에 가둔 시츄를 찾는 전단지를 봤는데 시츄는 성대 수술을 해서 짖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비 아저씨가 끊여 먹어 버립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소재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지만 당시는 개고기 문화가 꽤 만연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네요. 당시는 이 소재를 두고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개고기 문화에 대해서 뭘 먹든 외국이 뭐라고 할 것이 아니다고 하는 분들과 애견인들 사이에 언쟁과 논쟁이 심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었죠. 그리고 알게 됩니다. 개소리를 냈던 개는 독거노인과 함께 사는 치와와였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 치와와를 납치해서는 아파트 옥상에서 내던집니다. 안 던지겠지 했지만 던집니다. 왔더~~ 주인공 고윤주는 아주 나쁜 인간입니다. 주인공이 이렇게 나쁜 인간이면 영화를 보기 어렵죠. 그러나 보게 하는 반대말 같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여상만 나온 박현남(배두나 분)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배두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연기 참 잘 합니다. 특히 자연스러운 연기 엄청 잘해요. 박현남은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근무합니다. 각종 민원 처리도 하고 강아지 찾는 전단지에 도장을 찍어주는 등 잡일도 합니다. 현남은 순수함 그 자체입니다. 남의 일이라고 넘겨도 될 일도 도와줍니다. 이 현남이 치와와를 옥상에서 던진 빨간색 모자를 쓴 고윤주를 봅니다. 그리고 윤주를 추격합니다. 결국 잡지 못한 현남. 

죽은 치와와를 주인 할머니에게 보여줬고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후에 죽습니다. 지병이 있었지만 마음의 병도 함께 했던 것 같네요. 갈수록 고윤주라는 찌질한 유부남에 대한 분노가 치밉니다. 이렇게만 담는다면 영화는 재미가 없었을 겁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개를 싫어하던 윤주에게 순자라는 강아지가 생깁니다. 이 강아지는 아내가 사온 강아지입니다. 졸지에 강아지 산책이나 시켜주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데 이 순자가 소독차 연기와 함께 사라집니다. 교수가 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아내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강아지를 잃어버렸다. 순자는 교수가 되는 열쇠 같은 존재인데 실종됩니다. 이에 개를 하염없이 찾는 윤주가 나옵니다. 이런 윤주를 현남이 도와줍니다. 현남은 윤주가 치와와를 옥상에서 던진 사람인지 모릅니다. 

2000년대 한국 분위기를 잘 담은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디테일의 차이가 명품을 만들고 명감독을 만듭니다. 봉테일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 영화에도 잘 나옵니다. 좀 말하자면 많은 영화들이 개연성이나 디테일에 대한 고증 오류가 참 많습니다. 요즘 관객들 그런 거 하나 하나 다 봅니다.  따라서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면에서 봉테일이라고 할 정도로 2000년 그 무렵 대한민국 분위기를 아주 잘 담고 있네요. 
먼저 애견 문화입니다. 지금은 길 가다가 유모차인지 알고 보면 개모차라서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너무 많아서 개가 있겠지 하면 아기가 있어서 더 놀랍니다. 애견샵도 많고 애견인도 늘고 애견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2000년 무렵에는 애견 문화가 막 정착되던 시기라서 아파트에서 개를 기본적으로 못 키웠습니다. 키우더라도 성대 수술을 해서 짓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외에도 전철 칸과 칸 사이의 문을 닫고 담배를 피우는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했다가는 바로 뉴스에 나오는 행동도 보여줍니다. 80,90년대는 전철 통로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꽤 있었어요. 그리고 주인공 윤주가 교수가 되려면 내야 하는 급행료 문화 등등 당시 사회 문제를 잘 담고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이 어떤 사회인데 지금도 급행료가 있겠죠. 그렇게 편법으로 성공한 사람이 주변에 수루룩 빽빽한데 쉽게 변할 리가 없습니다. 

지리멸렬과 비슷한 사회 비판 우화인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영화의 톤은 봉준호 감독을 세상에 알린 단편 영화 <지리멸렬>과 비슷합니다. <지리멸렬>은 심야 토론에 나온 3명의 식자층 패널이 노상방뇨하고 남의 집 우유와 신문 훔쳐보고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는 자가당착과 표리부동한 식자층을 비판한 단편 영화입니다. 

<플란다스의 개>는 상업 영화라고 하기엔 연출 스타일이나 카메라나 전체적으로 긴 단편영화 느낌이 강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투박한 모습이 꽤 많이 보이는데 이건 일부로 의도 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해요. 중간에 노란 카드 날리는 장면은 상업영화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전체적으로 화려함이 전혀 없어서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항상 지향하는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 기득권 또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또는 어른들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면서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먼저 경비원 아저씨는 초반에 길고 장황하게 보일러실 귀신 이야기를 떠들더만 김원장 KBS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심한 인간이 있는데 바로 주인공 윤주입니다. 윤주는 개를 아주 싫어하지만 밥줄이 달린 개를 키우고 실종하면서 개를 아주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윤주가 순백의 현남을 만난 후에 변합니다. 이 과정이 참 씁쓸하고 마음 아프면서도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세상이 어딘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남은 아파트 사무실에서 해고 당하고 친구와 함께 숲 여행을 떠납니다. 숲은 자연이고 더럽히지 않은 공간으로 묘사되는데 이 창 밖 풍경을 보는 윤주의 모습이 아주 오래 기억될 듯합니다. 

정답을 내고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았던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윤주! 이름만 들으면 어자 주인공 같죠. 아닙니다. 이성재가 연기하는 교수 지망생 남자입니다. 현남. 남자 이름이지만 아파트 여직원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전형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보통 상업 영화라면 이해하기 쉽게 이름도 전형적으로 짓는데요. 

가장 전형적인 장면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권선징악, 인과응보 이런 전형적인 룰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냥 세상은 원래 그런거야 네가 판단해. 윤주처럼 살건지, 현남으로 살건지 네가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현남의 삶이 옳고 윤주의 삶이 틀렸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현남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도덕적인 삶을 살지만 해고가 되고 윤주는 그게 나쁜 것인지 알지만 순응하니 앞길이 잘 열립니다. 이게 현실이죠. 다른 영화라면 권성징악으로 통쾌감을 느끼게 했겠지만 영화관을 나오면 다 잊을 겁니다.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니까요. 제가 주목한건 변화하는 삶이었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실수를 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같이 잘못된 행동인지 알지만 관습이라고 따르는 악습이 참 많습니다. 교수 급행료가 그렇죠. 그러나 그걸 신고하고 고발하는 게 아닌 그냥 그 룰을 따릅니다. 다만 윤주가 보여주는 자기반성이 약간의 희망을 느끼게 합니다. 자신의 이익과 반하는 행동이지만 양심이라는 것이 작동해서 현남 앞에서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현남은 알고도 그런 건지 모르는 건지 구두 한 짝이 없다면서 찾아다 줍니다. 

이런 장면들이 봉준호 감독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교수 급행료를 케잌 밑에 깔아서 줘야 하는데 딸기가 상자에 들어가지 않는 장면 하나에 마음을 쿵하게 하고 구걸하는 아기 엎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케이크에 있는 돈다발 중 1만 원을 꺼내서 주는 장면에서 희망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마음 가짐 하나 하나가 모여서 세상을 변화시키겠죠. 그래서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야만스러운 행동을 당시는 다 그렇게 사니까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는 야만스러운 시대를 지났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야만스럽지고 요즘 나오는 뉴스를 보면 여전하구나 느끼지만 그럼에도 부패를 쉽게 세상이 까발릴 수 있어서 그나마 낫네요.

교통경찰 부츠에 만 원짜리가 한가득했던 시절을 없앤 것은 사람들의 마음 가짐이 아닌 온라인 입금으로 변해서 사라졌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좀 더 착해지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씨가 아닌 거리와 카페와 자동차에 있는 CCTV 같은 감시 카메라의 발달과 내 목소리가 들어가면 녹음이 합법인 나라(이걸 고치려는 국회의원들이 있지만)와 SNS의 발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됩니다. 

투박하지만 잘 만든 영화입니다. 재미적인 요소가 적은 것이 아쉽긴 합니다. 이 영화가 압축해서 단편 영화로 나왔으면 꽤 좋았지만 재미와 이목을 끌 요소가 너무 적다 보니 좀 길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럼에도 지금 봐도 좋은 영화네요. 

별점 : ★★★☆
40자 평 : 개를 통해서 본 우리 사회의 개같음을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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