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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옛날 영화를 보다

18년만에 보고 더 좋아하게 된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by 썬도그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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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는 10년 단위로 다시 보라고 하잖아요. 왜 그러냐면 영화는 변하지 않지만 10년 사이 내 경험과 지식의 깊이가 깊어져서 같은 영화가 달리 보인다고 해요. 그래서 좋은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는 10년마다 반복해서 보면 좋아요. 그러나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시대상을 반영한 드라마죠. 대표적으로 영화 <박하사탕>이 그랬어요. 세상 물정 잘 모르던 20대 당시에 본 <박하사탕>과 그 당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난 30대에 본 <박하사탕>은 전혀 다른 영화였어요. 보통 연륜과 경험이나 역사적 지식이 달라지면 같은 영화도 내 식견이 달라졌기에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알면 더 많이 보이는 사회 비판적이고 역사 배경의 영화가 이런 경우가 많죠.

그런데 이 영화는 전형적인 멜로 영화에요. 멜로는 나이를 더 먹고 본다고 해서 달리 보이기가 쉽지 않아요. 사랑이라는 경험은 나이 먹는다고 더 깊어지지도 않죠. 오히려 가장 뜨거운 사랑을 하는 10대에서 30대 사이에 보는 것이 좋고 나이 들어서 보면 다 철부지 시절의 사랑의 불장난 같다고 느낄 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달라요. 20대에 본 영화인데 그 당시는 대충 설렁설렁 봤는데 18년 후 다시 보니 이 영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네요.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도 잘 만든 멜로 드라마입니다. 

용이 감독의 2003년 개봉작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2021년 12월 31일 영화 1편을 보고 자려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이번 주에 올라온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2003년 개봉 당시에 봤습니다. 당시에도 너무 재미있게 봐서 다시 봐도 좋겠다 생각해서 찜을 해놓았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들여다 볼 구석은 참 많습니다. 먼저 넷플릭스의 딸인 배두나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2천 년대 초 엽기라는 단어가 유행이던 그 시절 개성 넘치는 얼굴과 함께 털털한 연기로 주목을 받던 배두나가 주연을 맡았고 지금은 예능인인지 가수인지 작곡가인지 엔터 회사를 이끄는 분인지 구분이 안 가는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윤종신이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영화이자 천재 CF 감독이자 뮤직 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했던 용이 감독의 입봉작 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한 카메라 런칭 행사에서 용이 감독을 봤는데 왕년에라는 말을 꺼내다가 쑥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당시 말은 안 했지만 용이 감독을 알아보는 사람도 여전히 많고 좋아하는 사람도 참 많아요. 그중 저도 한 사람이고요. 용이 감독은 2000년대 초 막 초고속 인터넷이 터지던 그 시절 '유쾌 상쾌 통쾌'라는 카피 문구로도 유명한 메가패스 CF 감독으로도 유명했죠. 당시 계원예전 2학년생임에도 워낙 뛰어난 실력과 감각에 많은 곳에서 용이 감독을 찾았습니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 이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를 다시 봤는데 시나리오에 놀라고 연출력과 감각에 놀라고 뛰어난 O.S.T에 놀랄 정도로 너무나도 사랑스럽운 영화였습니다. 마치 빨간 털장갑을 영화로 만들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할 정도로 감성의 홍수가 터지는 영화였습니다. 

감히 말하지만 2000년초 한국 영화의 제2의 전성기 시절에 터져 나오던 명작 한국 영화들 중에서 이 영화를 빼놓는 것은 용납이 안 될 정도로 너무나도 잘 만든 명작 멜로 영화입니다. <엽기적인 그녀>나 <클래식>과 비견됨을 넘어서 오히려 더 높은 선반에 올려놓고 싶은 영화입니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곰탱이 같이 둔한 현채와 깐부 같은 동하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Frederick stuart church의 봄의 제전

현채(배두나 분)는 춘천 병원에 있는 아빠의 부탁으로 19세기 미국 화가 Frederick stuart church의 그림이 담긴 책을 들고 경춘선을 타고 춘천으로 향합니다. 무료한 기차 안에서 책을 들쳐보던 현채는 곰들이 춤추는 그림 밑에 

'네가 너무 좋아 봄날의 곰만큼'으로 시작되는 메모를 발견합니다. 이 메모는 누군가를 위한 사랑을 담은 메모이고 글 하단에는 다음 책의 청구기호를 표시했습니다. 

현채는 미련 곰탱이었습니다. 너무 둔하고 눈치가 없고 털털해서 미팅을 나가도 번번이 남자들과 인연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화가 나면 물불을 안 가리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맹한 현채는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오늘도 씩씩하게 열심히 3류 소설가인 아빠와 함께 살아갑니다. 

현채에는 유치원때부터 같이 붙어 다니던 동네 친구인 동하(김남진 분)가 있습니다. 동하는 지하철 기관사로 현채를 짝사랑합니다. 짝사랑하지만 숙맥이라서 현채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조차 못합니다. 지금은 지하철 기관 사면 아주 좋은 직업이자 직장인으로 인기가 높지만 2003년 당시에는 그렇게 유망한 직장이 아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현채를 데리고 공항에 가서 자신의 꿈은 파일럿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남자들은 그런게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이 변변하지 못하면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고백을 못합니다. 결혼할 것도 아닌데 사랑 고백을 할 수 있고 지금은 그런 것 신경 쓰지 않지만 좋은 직장이 배경이 되어야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물론 숙맥들의 특징이죠. 

둔해서 곰이라고 별명이 있는 현채는 봄날의 곰이라는 메모가 자기에게 보낸 러브레터라고 생각합니다. 누굴까? 나에게 이런 사랑 고백을 한 사람은? 현채는 그렇게 자신을 짝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봅니다. 마트에거 같이 근무하는 미란(윤지혜 분)은 미술 도록을 좋아하는 의문의 남자를 빈센트라고 부르며 빈센트 찾기를 응원합니다. 도서관 사서 지석(윤종신 분)일까? 아니면 마트 팀장일까? 

아니면 현채가 새벽에 라면 먹고 싶다면 라면을 들고와서 바깥에서 끓어주는 동하일까요?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이 빈센트 찾기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를 너무나도 세련되고 매끄럽게 담은 너무나도 좋은 멜로 영화입니다. 명작의 재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18년 만에 다시 본 영화가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서 좀 놀랬네요. 아니 이 영화를 왜 당시에는 이렇게 좋은지 몰랐을까? 보통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본다고 처음 볼 때보다 더 큰 느낌을 얻기 어려운데 이 영화는 다릅니다. 다시 보니 내가 못 보던 것들이 더 많이 보여서 그런지 더 크게 다가오네요. 그 18년 동안 제가 미술을 좋아하고 사진을 좋아해서 이 영화 속에서 소품으로 등장하는 그림들을 검색하면서 봤다면 확실이 지난 18년 동안 제가 많이 변했고 자랐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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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 나온 그림들

Frederick stuart church 작품 교수를 먹은 호랑이. 1905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그림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19세기 그림들이 많습니다. 먼저 봄날에 곰들이 춤을 추는 봄의 제전을 그린 화가는 미국 화가인 '프레데릭 스튜어트 처치(Frederick stuart church 1842~1924)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삽화가로 동물 우화들을 잘 그렸습니다. 

이솝 우화 삽화가로도 유명한 그는 동물 묘사가 탁월해서 동물의 표정과 기분 감정도 느껴질 정도로 뛰어납니다. 우화만 그린 것은 아니고 동물 풍경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A Young Man At His Window 1875

바보, 나의 사랑하는 바보. 겨우 십 미터밖에 안 되는 고개만 돌리면 마주칠 법도 한데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발코니에서 파리 시내를 바라보는 이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카유보트' 그림입니다.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Paris Street, Rainy Day), 1877

이 그림은 아주 유명합니다. 파리의 일상 기록 사진 같은 파리의 평온한 일상을 주로 그렸던  '귀스타브 카유보트'도 아주 중요한 그림으로 나옵니다. 이외에도 편지를 읽어주는 여자 옆에 남자가 여자의 발을 만지는 그림 등등 그림을 찾아보는 재미도 많습니다. 미술학도나 미술에 관심 많은 분들은 이 영화 무척 사랑스러울 겁니다. 

이외에도 르노와르 등의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도 틈틈이 나오고 이 그림들은 영화 후반에 다시 떠오르는데 이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영화 끝나고 나오는 쿠키 영상 같은 영상을 보면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네요. 

뛰어난 영상 메이커인 용이 감독의 재발견

계원조형예술대학 시절 뛰어난 능력으로 용이 감독의 입봉작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 작품이 된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지금 개봉했으면 최소 200~300만은 찍었을 꽤 잘 만든 작품입니다. 왜 후속 작품이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시 흥행 성적이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나 봅니다. 잘 됐으면 후속 작품도 만들었을 겁니다. 

한국 영화의 제 2의 르네상스가 99년에서 2004년까지 불었고 이 당시 나오는 영화들은 명작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런 명작 열풍 속에서 숨겨진 명작이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입니다. 용이 감독은 CF 감독,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했고 그런 그가 영화 연출까지 하게 됩니다. CF 출신 감독답게 영상미가 아주 뛰어납니다. 

먼저 필름 카메라 시절이라서 그런지 필름의 정겹고 보드라운 느낌의 화면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이외에도 뛰어난 타이틀 시퀀스는 갬성 사진집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영화 곳곳에서 영상을 처리하는 기술력이나 표현력이 진부하지 않고 매끄럽고 사랑스럽게 담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용이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라면가게 그릇까지 참 예쁩니다. 

이런 오버스러운 설정도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로 용이 감독의 미장센에 푹 빠지게 됩니다. 영화에 물주전자 나르는 까까머리 운동부로 잠시 출연하기도 합니다. 용이 감독은 영화 <올드보이>에서 짜장면 배달원으로도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이 뛰어난 시나리오 작품은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쓴 줄 알았는데 각본을 용이 감독과 황조윤 작가가 함께 썼네요. 용이 감독이 스토리도 참여했다는 사실에 좀 놀랬네요. 이 정도의 실력파이면 다시 한번 기회를 줘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다음 기회가 없네요. 

윤종신의 2번째 영화 참여작. 영화 못지 않게 뛰어난 O.S.T

이 영화에는 예능인으로 변신한 윤종신이 배우로 출연합니다. 가수 윤종신을 데뷔 때부터 좋아하고 지금도 좋아하는 가수입니다. 공일오비 객원가수로 출발해서 미성의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로만 알았지만 작곡, 작사 공부를 끊임없이 해서 지금은 작사, 작곡까지 다 하는 싱어송 라이터이자 기획자이자 한 연예기획사의 대표까지 했던 만능 엔터인입니다. 

윤종신의 친구인 장항준 감독의 입봉작인 <라이터를 켜라>에 처음으로 영화 음악에 참여했던 윤종신은 자신의 음악 노예인 유희열과 하림, 김연우 함께 두 번째 영화 음악 앨범을 만듭니다. 그 영화가 바로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입니다. 

대표곡은 윤종신이 직접 부른 '우리 이제 연인인가요?'입니다. 이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윤종신의 대표곡 중 하나입니다. 노래 너무 좋죠. 그런데 이 영화에는 윤종신의 손길이 닿은 음악들이 참 많습니다. 

이 중에서 히트한 노래는 롤러코스트 조원선의 '원더우먼'과 김연우의 '수줍은 사람', 이규호의 상상과 '고백남녀'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시에는 잘 들리지 않았던 노래들이 귀에 팍팍 꽂힐 정도로 노래들이 너무 좋습니다. 원더우먼 노래는 배경음으로 들리다가 자연스럽게 마트 내 방송으로 나오는 노래로 전환되는 전환 표현법도 참 좋네요. 요즘은 영화가 히트해도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이 없거나 배경 음악을 사다 쓰는 경우가 많아서 감흥이 떨어지지만 이 영화는 이 영화만을 위해서 창작한 곡들이고 대부분의 곡들이 참 좋네요. 

영화 후반의 반전과 사랑 가득한 엔딩

배두나는 참 연기 잘해요. 미련 곰탱이 같은 현채를 너무 사랑스럽게 연기를 합니다. 20대 초반의 풋풋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김남진 배우도 참 좋은 배우인데 요즘 안 보이네요. 현채 마트 친구로 나오는 윤지혜 배우도 참 좋은 배우죠.  최근에 넷플 드라마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에서 이주영 검사로 만나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이외에도 권오중과 가수 한영애가 까메오로 출연한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 후반이 되면 동하가 우연히 메모가 적힌 미술 도록을 보다가 현채에게 들킵니다. 그럼 동하가 메모를 담긴 사람일까요? 이후 이야기는 꽤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곰같던 현채가 현실 자각을 합니다. 동하도 그렇고 현채도 자신들의 현재 직업에 대한 한탄을 합니다. 20대라면 다 하는 현실 고민입니다. 그리고 현채가 드디어 동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전달 과정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조금은 닭살일 수 있지만 그게 동하의 현실 모습이니까요.

20대 풋풋한 사랑을 잘 담은 강추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넷플릭스 콘텐츠 특히 한국 콘텐츠들은 참 어둡습니다. 죽고 죽이고 좀비 팍~~ 피 쫙쫙 드라마와 영화들이 많죠. 그래서 일부러 밝은 영화를 찾기도 하는데 잘 보이지가 않아요. 특히 최근 들어서 온통 인기 있는 영화들은 액션물이거나 스릴러물입니다. 달달한 멜로드라마도 너무 달짝지근해서 손 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누구나 가볍고 재미있고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입니다. 이 영화 보고 봄곰 신드롬에 빠진 분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저는 당시가 아닌 18년이 지난 지금 빠지게 되네요. 다시 봐서 더 좋았던 영화 봄곰은 넷플릭스에 지난 주에 올라왔습니다. 연초에 작은 행복 느끼고 싶으면 이 영화 추천합니다. 

곰인형을 품은 듯한 따뜻함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사랑스러운 멜로 동화책 같고 곰인형보다 보드랍고 빨간 털장갑보다 따뜻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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