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을 게 없다고들 하죠. 그럴 때면 이렇게 말합니다. 가족을 찍어보세요. 그 비싼 카메라로 남들 찍어주지 마시고 가족을 찍어줘 보세요. 우리는 항상 멀리서 사진 촬영 소재를 찾고 이야기를 찾아요. 한태의 감독은 가족 중에서도 엄마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의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담아서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웰컴 투 X-월드>다.
자신의 인생이 망했다고 말하는 엄마를 향해 카메라를 든 딸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망했다고 자주 말합니다. 25년 편하게 살다가 결혼하고 나서 망했다고. 그럴 때마다 딸이자 감독은 항상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말해요.. 그러나 엄마의 삶을 보면 망했다는 말이 깊이 공감이 갑니다. 10년 전에 남편을 사고로 잃고 아들과 딸을 키우는데 수제였던 딸은 3수 끝에 대학교 영상학과에 진학을 합니다.
그러나 엄마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시아버지예요. 시아버지는 딱 우리네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같이 살지만 살아온 환경도 배경도 성도 다른 시아버지와 엄마 사이는 그렇게 좋지 못해요. 시아버지가 좀 괴팍하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감독이자 손녀의 입장이고 할아버지는 그냥 평범한 츤데레 할아버지입니다. 다만 10년 전에 받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갑자기 화를 크게 내십니다.
딸 엄마를 삶을 기록하다.
영상학과 재학중인 듯한 감독 한태의는 카메라를 들어서 세상이 아닌 가족을 담습니다. 방송국 VJ들이 많이 사용하는 카메라를 들고 시종일관 엄마를 촬영합니다. 엄마는 집안의 기대주인 딸이 3수 끝에 영상학과에 입학한 것에 처음에는 낙담해합니다. 뭐 잘 아시겠지만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질 확률이 낮은 학과 진학을 좋아할 부모는 없죠. 특히나 넉넉하지 못한 집안은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느 가족이나 마찬가지로 몇 달 후에 엄마는 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됩니다.
그러니 이런 다큐 영화를 만드는데 주연으로 등장하겠죠. 다큐 <웰컴 투 X-월드>의 시나리오는 딱히 없어 보입니다. 그냥 막 찍습니다. 그냥 엄마를 찍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듯 투박하고 날 것 그 자체입니다. 보다보면 이게 영화야? 다큐 맞나? 그냥 유튜버 영상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초기에는 자막이 있는 영상도 있고 없는 영상도 있고 편집도 유튜브와 비슷해서 졸업작품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보면 이런 거 전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흔들리건 말하는 엄마가 프레임 밖으로 나가서 일부만 담겨도 상관 안 합니다. 이 모녀의 알콩달콩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진솔하고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닐까 할 정도로 공감 높은 모습들이 참 많습니다.
아빠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억장이 무너진 엄마가 수면제를 먹으면서 그 나날들을 견디었던 이야기부터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한 불만, 가난에 찌든듯한 무표정해지고 짜증이 기본 태도가 된 엄마를 무심하게 담다가도 딸이자 감독이자 촬영자인 한태의 감독이 직접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속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냅니다.
딸이자 감독인 한태의 감독은 천성적으로 쾌활이 기본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엄마와 항상 긍적적으로 보는 딸이 만나서 불꽃이 일어나는 장면들이 몇몇 있는데 이 장면들에서 뭉클해하고 함께 웃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장원에서 손가락 장난을 하는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네요.
<웰컴 투 X-월드>는 엄마의 자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아버지가 어느 날 집을 비워달라는 말에 엄마는 고민을 하다가 대출까지 받아서 새집을 얻는 과정을 통해서 엄마가 처음으로 내 돈 내산 집 구입기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집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큰 응원을 했고 딸과 직접 도배하고 페인트 칠해서 새집으로 만들어서 만족해하는 모습에 저도 마음이 참 뭉클해졌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얼마나 기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 엄마를 위한 자서전을 영화로 만들어서 선물로 준 것 같네요.
씨월드를 떠난 엄마의 X-월드를 담은 <웰컴 투 X-월드>
어떻게 보면 여자들의 삶을 조명한 다큐가 <웰컴 투 X-월드>가 아닐까 합니다. 아빠의 엄마이자 할아버지의 아내인 친할머니는 따로 살고 있습니다. 그것만 봐도 시아버지가 워낙 꼬장꼬장한 스타일인 듯합니다. 이는 살았던 문화가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입니다. 또한, 남자 여자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사별한 남편의 아버지인 시아비지를 20년 넘게 모시는 며느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걸 다 견뎌냈습니다. 스스로 떠날 생각을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딸은 답답해합니다. 돈이 없어서 못 떠나는구나 생각했는데 왜인걸. 떠날 자금이 있었습니다. 물론 대출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엄마는 변화가 싫었을 겁니다. 매일 짜증을 달고 살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서 스스로 번데기가 되어 버린 듯 합니다. 이에 안에서 껍질을 깨려는 엄마를 위해서 밖에서 껍질을 깨는 줄탁동시를 통해서 엄마의 새로운 삶을 보여줍니다. 그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은 씨월드를 지난 다음 세상인 X월드입니다.
떠나는 며느리와 손녀를 위해서 가져갈 것을 챙겨주고 하나라도 더 주려는 시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비록 문화적 차이 나이 차이 등으로 같이 살기 부대끼지만 가족이라는 온기를 깨지 않은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투박하지만 진솔해서 좋았던 <웰컴 투 X-월드>
투박합니다. 그러나 진솔합니다. 투박함을 이겨내는 것이 진솔함입니다. 진솔함이 워낙 진하다 보니 투박함을 밀어내고 잊게 합니다. 보고 있으면 친구 같은 딸과 엄마의 티키타카 속에서 가끔 뭉클하게 하고 웃게 합니다. 다큐 같으면서도 작은 단편 영화 같습니다. 그냥 이웃집 친한 모녀의 삶에 대한 도전기 같아 보입니다.
이게 이 <웰컴 투 X-월드>의 매력입니다.
2020년 가을에 개봉한 <웰컴 투 X-월드>는
1월 18일까지 KMDB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딸과 엄마의 따뜻한 독립생활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이자 온기 넘치는 우리의 삶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좋은 독립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엄마와 딸의 씨월드 탈출을 위한 즐탁동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