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 책을 거의 안 읽습니다. 원래부터 책을 안 읽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책 덕분입니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약 10년 간 한 달에 3권 이상의 책을 읽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많이 샀습니다. 그러나 2014년 이후에는 한 달이 아닌 1년에 10권도 안 읽습니다. 책을 멀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2014년 개정된 도서정가제입니다.
구간이건 신간이건 최대 15% 할인만 허용하는 부분도서정가제
2014년 정부는 신도서정가제를 실시했습니다. 이전에는 출간한지 18개월이 된 구간은 할인 폭을 제한하지 않았고 신간은 10%에 마일리지 포함 최대 20%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신간, 구간 모두 기본 10%, 마일리지나 포인트 포함 최대 15% 이상 할인할 수 없게 했습니다.
신간 서적이 비싸서 사지 못한 도서 가격에 민감한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책이라는 것이 인기 소설가의 책처럼 출간되자마자 읽어야 맛이 좋은 책이 있고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가치가 크게 줄지 않는 스테디셀러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소장해도 가치가 줄지 않는 스테디셀러를 주로 사고 주로 읽습니다. 그래서 18개월이 지나서 30%, 50% 할인할 때 구매합니다.
그러나 2014년 신도서정가제 덕분에 신간 구간 구분 없이 모든 책은 마일리지 포함 최대 15% 할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마저도 온라인 서점에 한한 경우이고 동네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은 정가에 판매해야 합니다. 신간 할인폭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 반대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전 신간 사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구간까지 할인폭을 제한한 것은 저에게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이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은 구간은 책 가격을 다시 설정할 수 있게 해서 보다 저렴한 정가로 구매할 수 있다고 했지만 책 가격을 재 책정해서 다시 출판할 출판사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했고 제 생각대로 구간 가격을 재 책정해서 내놓는 출판사는 예상대로 많지 않았습니다.
이 신도서정가제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래는 도서정가제로 소개하겠습니다)
도서정가제의 문제점
1. 독서 인구를 줄이다
도서정가제가 독서 인구를 크게 줄었다는 지적은 적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독서 인구는 도서정가제를 했건 안 했건 독서 인구는 앞으로도 늘지 않을 겁니다. 어떤 묘안을 짜내고 혜안을 내놓아도 앞으로 독서 인구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에 책을 대체할 오락거리, 정보 취득을 할 채널이 늘었습니다.
80년대를 돌아보면 여가 시간에 할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독서, 음악감상, 영화감상이 전부였다고 할 정도로 여가를 소비할 도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20년 현재는 엄청납니다. 책 없어도 시간 때울 도구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책 읽기를 줄이고 그 시간에 넷플릭스에서 좋은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서정가제가 독서 인구를 줄이는데 큰 역할은 아니더라도 작은 역할을 했습니다. 저만해도 이 신도서정가제 이후로 책 읽기를 줄이다가 지금은 거의 멈춘 상태입니다.
2. 동네 서점은 죽이고 대형 서점은 늘어나다
도서정가제 취지는 알라딘, 예스24같은 대형 온라인 서점과 교보문고, 영풍문고 같은 대형 서점이 동네 서점을 다 잡아먹는 걸 막기 위해서 만든 법입니다. 그런데 2007년 전국 3,247개의 서점은 2013년 2,331개, 도서정가제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2017년 2,050개로 줄었습니다. 반면 대형서점은 278개에서 303개로 늘었습니다. 이 결과만 봐도 도서정가제는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전체 서점의 수는 줄었지만 독립서점이라는 개성 넘치는 서점은 늘었습니다. 따라서 좋아진 점도 있고 나빠진 점도 있습니다. 독립 서점은 늘었지만 중형, 소형 일반 서점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3. 안팔린 재고 서적 폐지로 버려서 출판사도 피해
출판사들은 안 팔린 책을 처리해야 합니다. 도서정가제 실시 전에는 50% 이상의 큰 폭의 할인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할인율이 높을수록 재고 서적을 처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구간 서적마저 할인율을 제한하면서 안 팔린 책을 팔 방법이 사라졌습니다. 이에 출판사들은 안 팔린 책을 폐지업자에게 넘기고 있습니다.
4. 책 값만 올려 놓았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할 때 책 가격만 올려놓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이 도서정가제 법을 만드고 비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출판사, 서점, 작가 등 출판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법을 만들 때 가장 목소리가 작은 그러나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이 안 됐습니다. 저는 제 블로그에 이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대해서 2~3번 문제점을 지적했고 제 지적대로 책 가격만 오르고 동네서점은 살리지 못하며 독서 인구 감소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제 주장대로 도서정가제는 대형 서점을 뺀 출판사, 동네서점, 소비자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법이 되었습니다.
도서정가제의 좋은 점
도서정가제가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좋은 점도 있긴 합니다.
1. 베스트 셀러에 신간 서적이 올라서다
도서정가제 실시 전에는 할인율이 높은 구간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간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베스트텔러를 신간과 구간 따로 집계하면 될 일을 오로지 1개의 방식으로만 집계하니 이런 문제가 있었네요.
2. 독립서점이 늘어나다
이 서점이 줄었다는 통계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조사한 결과물입니다. 이 서점조합에서 내놓은 통계에는 요즘 뜨고 있는 독립서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골목길 예쁜 동네에 가면 예쁜 동네 서점들이 꽤 많이 늘었습니다. 이 독립서점들은 출판사에서 거부한 그러나 개성 넘치고 취향 저격의 책을 판매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 독립서점을 통해서 세상에 선보인 책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베스트셀러 책들도 판매하죠. 만약 도서정가제가 없었다면 동네서점이나 독립서점에서 책을 사는 손길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도서정가제의 문제점과 해결책
그럼에도 도서정가제는 폐단이 많습니다. 일몰법인 도서정가제는 2020년 11월 개정을 하거나 폐지될 수 있습니다. 이에 많은 출판사, 서점주인들이 도서정가제를 개정하지 말고 지금 이대로 가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많은 소비자들이 책 가격이 올랐다는 비판을 하자 30년 전 짜장면 가격과 현재 가격을 책 가격 상승률과 비교하거나 같은 문고판 책을 해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가격과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을 비교하면서 책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구간 가격의 상승은 해명할 수 없을 겁니다. 또한 유럽, 미국과 같은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와 한국 책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고 미국은 재생용지를 사용한 저렴한 책과 양장본 책을 모두 출시해서 책 가격에 민감한 저 같은 사람과 책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 모두 잡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쓸모도 없는 띠지 두르고 동일한 판형만 제공합니다.
도서정가제 폐지를 반대하는 분들은 책을 읽지 않는 이유가 책 가격이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가 1위라면서 책 가격이 독서율을 줄이고 책 구입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대로 된 분석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책 가격이 떨어져도 올라도 사지 않습니다. 책 읽는 사람이 더 많은 책을 사거나 줄이지 책을 1년에 1권도 안 읽는 사람은 내년에도 거의 책을 안 읽고 사지도 않습니다.
책 판매를 늘리려면 이런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책을 읽게 만드는 것보다 책 읽는 사람에게 더 많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책 판매량 증가에 더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 책 읽는데 걸림돌이 뭐냐고 물어봐야 합니다. 그 자료를 보고 책을 잘 읽던 사람이 왜 안 읽게 되었는지 왜 책 구매 권수를 줄이는지 봐야 합니다. 이 자료는 알라딘이나 예스 24에 물어보면 쉽게 나옵니다.
저 같은 경우 책가격이 비싸서 안 사는 일도 늘어나고 책을 점점 덜 읽다가 지금은 책을 손에서 놓았습니다. 대신 넷플릭스 같은 대체제에 홀릭하고 있습니다. 좋은 유튜브 채널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책은 분명 좋은 교양 도구이자 쾌락 도구입니다. 그러나 책을 대체할 수 있는 채널이 엄청 늘었습니다. 물론 책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책이 진리와 선이다라는 선민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완전도서정가제를 정착하되 구간은 할인 제한을 없애라
지금 도서정가제는 완전도서정가제가 아닌 부분도서정가제입니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10% 할인이 가능하죠. 게다다 무료 택배도 지원해서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사람은 동네 서점에서 책 들쳐보고 알라딘이나 예스24에서 구매를 합니다. 이건 도서정가제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대형서점이건 동네서점이건 같은 책이면 같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실시해야 합니다. 무료 택배도 절대 금지시켜야 합니다.
아니! 도서정가제 반대하는 소리를 잔뜩 써 놓고 도서정가제를 더 강화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 신간 서적은 완전도서정가제를 실시해야 독립서점, 동네서점을 더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간 서적 가격을 어디에 사던 동일하면 소비자는 동네 서점에 더 가게 되고 마침 동네서점에서 독서 클럽이나 동네 서점 주인이 권해주는 책을 읽고 다음 책을 추천받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생깁니다. 단골이 늘어나는 동네서점이 많을수록 동네마다 예쁜 동네서점이 많이 늘어날 겁니다.
단 구간은 할인 제한을 풀어주거나 30~50%로 풀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책 가격 때문에 구입을 못했던 책 소비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습니다. 도서정가제에는 재정가 제도가 있습니다. 2만원 하던 책을 18개월이 지나면 1만 원으로 가격을 재책정하고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먼저 2만 원 정가를 붙인 책을 1만 원에 팔려면 그 2만 원이 박힌 책을 다 회수해야 하고 1만 원 정가를 붙여서 다시 출판해야 합니다. 그냥 18개월이 지나면 할인하게 하면 될 것을 참 복잡하게 해 놓았습니다.
이런 재정가 제도가 있지만 출판사들은 거의 활용하지 않아서 안 팔릴 책들은 많이 인쇄하지 않아서 신간 서적도 2년이 지나면 구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구간 할인 제한을 풀어서 안 팔리는 재고 서적을 파쇄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사고 싶은 소비자에게 판매했으면 합니다.
도서정가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공급가입니다. 출판사는 1만원 짜리 책을 대형서점에는 6천 원, 동네서점은 도매상을 거쳐서 오기에 7,500원에 납품받습니다. 이 15% 차이가 크죠. 따라서 공급가도 법으로 어떤 서점에 납품하던 동일하게 공급하게 해야 합니다. 아니 책은 어디서 사던 동일하게 사는 취지로 하면서 공급가율은 손을 안 되면 이게 제대로 된 법이겠습니까? 공급 과정은 자본주의 논리로 큰 자본이 더 싸게 공급받게 하고 판매는 영화 같은 문화재로 어디서 사던 동일한 가격에 사게 하는 시선 자체가 동일하지 않습니다. 문화재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가던가 아니면 소비재라면 무한 경쟁에 맡겨야지 두 개를 결합시켜 버렸네요.
도서정가제는 각종 할인으로 책 가격에 거품이 낀 것을 줄여줄 것이라고 시행했습니다. 도서 단통법이라고 할정도로 책 가격을 하락하게 해 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도서 가격이 하락했다고 느끼는 소비자는 많지 않습니다. 최근에 서점에서 책 가격을 좀 둘러봤더니 책 가격이라는 장벽이 높긴 하지만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걸 보면 어느 정도 가격 거품의 하락 느낌은 있지만 그럼에도 책 가격이 하락했다는 느낌도 거품이 없다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2020년 11월 도서정가제는 개선되거나 폐지될 예정입니다. 부디 구간 할인 금지를 폐지하고 신간은 완전도서정가제로 갔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