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좋은 것은 책이 좋은 것과 영화가 좋아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책은 1주일, 영화는 2시간, 예술은 10분 정도에 다른 사람의 경험과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삶을 체험하고 느끼고 다른 시선을 경험하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이 예술 체험을 통해서 영혼이 치유받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상처 입은 제 영혼을 달래 주었던 건 책과 예술품 그리고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술품이 생명체라면 태어나고 자라고 사라지는 과정이 있을까요? 생명체는 아니지만 예술도 탄생, 절정, 소멸의 단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소멸은 소멸인데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고 창고라는 관에서 장시간 누워 있다가 가끔 깨어나서 전시장에 걸렸다가 다시 관으로 들어갑니다. 그 관을 우리는 보통 수장고라고 하죠.
MMCA 2019 올해의 작가 이주요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국립현대미술관과 SBS 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이 열립니다. 그냥 선정 발표하는 방식이 아닌 최종 후보에 오른 4명의 예술가를 선정하고 이들의 작품을 관람객들이 충분히 관람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최종 선택을 합니다. 물론 최종 1명을 선택할 때는 미술 권위자들이 선택을 하지만 관람객 평가도 무시 못할 겁니다.
올해는 이주요 작가의 대안적 미술품 창고 시스템의 모델인 러브 유어 디포(Love Your Depot)가 수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했습니다.
설명서가 있네요. 먼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2 갤러리로 내려오면 러브디 연합이 있고 그 반대편에 창고(Depot)가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나요? 예술 좋아하는 저도 꼼꼼히 읽어 봐도 명확하게 개념이 잡히지는 않습니다. 대충 제 느낌을 적어보면 예술 작가들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아틀리에와 작업을 마치고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를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겁니다.
또한, 예술품을 세상에 알리고 다양한 형태로 홍보하는 것도 함께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술 에이전시와 예술 작가들의 공간인 창작과 보관 공간을 함께 아우르는 시스템(?)이네요. 예술가들는 작품만 만들면 되고 예술품의 제작, 보관, 폐기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담은 창고 개념을 담은 작품입니다. 상당히 독특합니다. 이게 작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요즘 예술계는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가산점을 주는 곳이라서 색다르기만 해도 큰 주목을 받습니다.
이런 새로움을 추구하다 보니 예술을 교과서로 배운 대부분의 일반 관람객들은 점점 난해해지는 현대 미술에 거리를 두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러브 유어 디포'의 이주요 작가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술계의 시선이고 작품 자체는 해석하는데 좀 시간이 걸리고 해석을 포기하고 넘어가는 분들도 많이 보이네요.
작품 설명을 좀 더 알기 쉽게 해주면 좋은데 그런 텍스트가 없는 건 아닌데 쉽지 않네요.
공간은 작업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타워가 있는데 이게 작품입니다.
이것도 작품입니다.
이 작은 정원 같은 것도 작품입니다. 다만 이주요 작가의 작품만 있는 게 아니라 15명의 예술가의 작품이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시가 끝나고 화분은 판매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여기가 사무실 공간이자 작품들을 프로모션하고 외부에 홍보를 하는 공간인가 봅니다. 팀 디포입니다. 여러 예술가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협업을 하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집 근처에 '금천 예술공장'이 있는데 이런 예술가들의 레지던시에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죠.
2015년에 '금천예술공장'에서 작업했던 임흥순 작가의 '위로 공단'이 한국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았습니다. 영화관에서 봤는데 아주 좋은 다큐였어요. 노동과 여성을 주제로 한 명작 다큐입니다. 글이 좀 옆으로 흘렀네요.
다음 장소로 넘어갔습니다. 여기는 디포 즉 창고입니다. 예술품들을 저장하는 창고로 수장고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는 예술품들을 항상 볼 수 있는 작품은 공공 미술과 같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조형물이 대부분이거나 모나리자 같이 아주 유명한 그림이나 사진 아니면 항상 볼 수 없습니다. 매년 생산되는 작품은 어마어마한데 한 작품을 수십 년 전시할 수 없잖아요. 마치 영화처럼 상영 후에 저장고로 들어갑니다. 예술품 입장에서는 며칠 잠시 바깥바람 쐬었다가 수년, 수십 년 수장고에 저장하거나 가치가 없는 작품은 폐기를 합니다.
특히나 화이트 큐브 방식으로 작품을 전시하면서 전시할 수 있는 작품 숫자가 확 줄었습니다. 19세기만 해도 미술품을 벽지 두르듯 벽 전체에 다닥다닥 붙엿습니다. 한 벽에 최대한 많이 붙여서 전시를 했죠. 이런 방식에서 지금의 미술관처럼 작품을 일정 간격으로 눈높이에 전시하는 화이트 큐브 방식으로 전시가 전환되면서 전시 작품 숫자가 확 줍니다.
전시 방식의 전환이 수장고에 쌓이는 작품의 숫자를 늘렸다고 할 수 없지만 이 예술품들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저렇게 뽁뽁이 옷을 입고 관에 들어간 것처럼 있는 것은 안타깝네요.
정말 다양한 작품들이 있네요. 그냥 보면 택배 물류창고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이주요 작가의 러브 유어 디포(Love Your Depot)는 예술의 생산, 유통, 저장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예술품의 탄생과 저장 또는 폐기라는 생애를 다루고 있네요.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팔리지 않은 예술품은 폐기되거나 수장고로 하는데 공산품처럼 팔리지 않으면 할인 판매하거나 연말에 세일 판매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예술이 순수하다고 말하고 돈과 멀어질수록 가치가 더 높다고 말하지만 예술도 수공예 공예품처럼 생각해서 유통, 판매 촉진, 프로모션을 통해서 많이 팔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다음 작품 활동을 하죠. 돈이 있어야 예술을 할 수 있는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기 쉽지 않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시나 정부의 예산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고 경쟁이 심합니다.
예술가들의 1년 수입이 1천만원도 안 된다는 현실도 마음이 아프네요. 미술계도 그렇고 사진계도 그렇고 자기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없는 작가들이 참 많습니다. 쉽게 만들 수 있는 홈페이지도 없는 분들이 많고요. 홈페이지 비용이 없다면 이런 티스토리 공간을 활용해도 되는데요.
그래서 스포츠 시장처럼 예술계도 에이전시 시장이 활성화되어서 예술가를 발굴하고 세상에 홍보하고 소개하고 더 큰 시장으로 나가게 해주는 유통 시스템이 발달했으면 하네요.
이 러브 유어 디포(Love Your Depot)는 2020년 3월 1일까지 전시를 하니 시간 나실 때 한 번 들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