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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영원히 사는 법을 소담스럽게 담은 영화 판소리 복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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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법을 소담스럽게 담은 영화 판소리 복서

썬도그 2019.11.08 11:08

훅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이 되면 가드를 올려서 막으면 됩니다. 훅이 가장 강력한 펀치이지만 예측이 가능하면 피하거나 막을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펀치는 예측 불가능한 펀치입니다. 판소리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는 듯한 스텝으로 권투를 하는 병구의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드디어 변칙 복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했는데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권투 영화가 아니랍니다. 

바로 실망하고 영화 관람을 포기했습니다. 결국 <판소리 복서>는 10억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고 손익 분기점이 30만 명이지만 이도 채우지 못하고 2만 6천명 정도의 관객만 동원했습니다. 

영화를 관객 동원 수로만 평가할 수 없지만 많은 관객이 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영화가 대중성이 없거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2만 6천이라는 관객은 엄태구,혜리, 김희원이라는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치고는 너무 초라한 성적이네요. 정말 이상한 영화일까요? 

복싱 드라마가 아닌 실패담을 담은 영화 <판소리 복서>

영화 <판소리 복서>는 2014년에 나온 <뎀프시롤 : 참회록>이라는 단편 영화를 장편 영화로 만든 영화입니다. 감독은 단편 영화 감독인 정혁기 감독입니다. 자신의 단편 영화를 장편으로 만드는 것은 짜릿한 경험일 것 같네요. 영화 내용은 단편의 이야기 형태를 그대로 가져온 듯 합니다. 2014년 단편이지만 볼 방법은 없고 유튜브에 5분 짜리 압축 해설 영상이 있는데 그걸 보면 장편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른 점은 주인공 병구의 판소리 복싱의 장구를 쳐주던 인물이 남자가 아닌 여자이자 연인으로 비추어지는 것만 다릅니다. 

병구(엄태구 분)은 노안이 온 박관장(김희원 분)이 운영하는 복싱체육관에서 숙식하면서 허드레일을 합니다. 왕년에 잘나가는 복서였던 것 같은데 말도 더듬더듬하고 쑥맥이고 내성적인 성격에 아이들에게도 어른 취급을 못 받습니다. 이 체육관에는 교환(최준영 분)이라는 유망주가 있는데 이 병구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교환을 상전처럼 모십니다. 

권투를 배우러 온 관원은 없고 살 빼려고 온 초딩 2명만 있습니다. 파리 날리는 복싱 체육관에 민지(혜리 분)라는 여대생이 복싱을 배우러 옵니다. 혜리는 이 우울한 복싱체육관에 혜리는 맑고 밝음을 곳곳에 채웁니다. 혜리는 어리숙한 병구를 코치님이라고 부르면서 무척 따름을 넘어서 좋아합니다.

영화 초반에는 29살 병구와 여대생 민지의 알콩달콩한 사랑 놀음이 펼쳐집니다. 간간히 웃기긴 하지만 웃음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아닙니다. 이점이 참 아쉽더군요. 감독이 코미디에 대한 재능이 없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좀 더 과장을 해서 웃겨도 되는데 웃길 수 있는 포인트에서도 절제인지 크게 웃기지는 못합니다. 아마도 전작이자 원작인 단편 영화의 톤을 이어가려고 하는 듯 하네요. 

병구는 전직 국내 챔피언이었습니다. 병구가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소울메이트이자 연인이자 장구를 잘 치던 지연(이설 분)의 도움으로 국내 챔피언이 됩니다. 그러나 무슨 사건이 터지고 지금은 박관장 체육관의 허드레일을 합니다. 영화 <판소리 복서>는 이 병구의 과거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과연 어떤 식으로 판소리와 복싱이 접목되어서 어떤 파괴력일 보일지 궁금증을 점점 증폭시킵니다. 

여기에 병구와 민지 사이의 러블리한 썸타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영화 후반 허물어집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예상한 그런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아마 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 흐름에 당혹스러운 관객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관객들은 성공담을 좋아하지 실패담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영화는 성공 이야기가 아닌 실패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훅을 예상하고 있다가 어퍼컷이 들어와서 관객이 즐거운 KO를 당해야 하는데 훅을 예상했는데 상대가 미끌어져서 넘어져 버립니다. 

대중성 없는 이야기가 아쉽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운 시선만으로 좋았던 <판소리 복서>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판소리 스텝에 맞춰서 뎀프시롤을 하면서 상대의 펀치를 다 피하면서 휘몰이 장단에 핵펀치를 날려서 상대를 날려 버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대중성이 높지 않습니다.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나오지만 이야기는 비주류입니다. 아니 비주류라고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의 힘이 약합니다.

작은 영화라도 소박한 영화라도 명징한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소근거리는 말투의 병구처럼 전체적인 이야기의 힘이 약합니다. 그렇다고 작은 떨림을 담은 감수성이 뛰어난 이야기나 연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연출도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유일하게 좋았던 부분은 판소리 장단에 맞춰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배경 음악은 경쾌하고 흥미롭고 아주 영리하고 멋진 연출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연출이나 스토리가 아쉬운 부분이 많네요. 특히 민지라는 캐릭터가 꽤 비중있게 나오지만 민지라는 인물이 병구를 꾸며주는 역할로만 소비되는 것은 무척 아쉽네요. 두 가난한 청춘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신저가 되기 위해서는 민지를 꾸며주는 이야기가 더 강화되어야 하는데 병구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 아래 단락은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안 보신 분들은 다음 단락으로 넘겨주세요. 



판소리 복서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

<판소리 복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예측이 불가능한 메시지였습니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서 병구가 '펀치드렁크'에 빠져서 점점 기억을 상실하는 치매에 걸린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암울한 설정이죠. 그럼에도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런 메시지는 없습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떠나는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산지는 죽은 자의 영혼에 영원히 산다"는 영화 <미션>의 대사처럼 떠나는 사람이 영원히 사는 방법은 남은 사람 속에 영원히 기억되기입니다. 민지는 한번 뿐인 인생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은 해봐야 병구에게 말합니다. 병구는 민지의 말을 듣고 자신이 해보고 싶은 그러나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판소리 복싱을 시작합니다. 신인왕 대회에 참가한 병구는 천둥 같은 민지 장단에 맞춰서 번개 같은 병구 펀치를 링 위에서 날립니다. 

사라지는 것들의 뒷 모습은 매번 쓸쓸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낙엽과 같습니다. 화려하고 찬란한 한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성기 때의 자신감도 없고 능력도 체력도 안 됩니다. 한 번 경험한 것을 몸과 나이와 여력 때문에 다시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노력으로 다시 그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고 '조지 포먼'처럼 45세 나이에 전성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부의 성공담은 우리 전체의 삶들을 보면 극히 일부입니다. 오히려 무너지고 쓰러지고 미끌어저 내려가는 길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전성기를 지나서 내리막 길을 가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주 같은 영화가 <판소리 복서>입니다. 병구는 민지와 박관장에게 기억되기 위해서 판소리 복싱을 링이라는 무대 위에서 복싱 춤사위를 춥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모습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랍니다. 


독창성은 좋으나 짜임새가 헐거웠던 <판소리 복서>

판소리와 복싱을 접목한 독특한 소재의 영화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가 예상한 변칙 복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달달한 로맨스가 많은 것도 아니고 어떤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힘도 약합니다. 전체적으로 연출이 헐겁고 이야기는 너무 소근거립니다. 판소리와 복싱의 소재는 좋지만 왕년에 잘 나갔던 복서의 이야기는 너무나 흔하고 흔합니다. 여기에 영화 후반 클리세도 꽤 보입니다.

그러나 요즘 누가 권투 보냐는 말처럼 이종격투기에 밀린 권투 자체가 전성기가 지났습니다. 최근 씨름이 다시 인기를 얻는 이유가 철저한 자기 반성을 통해서 젊은 층에게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죠. 그러나 복싱은 자기 반성도 자기 참회도 없습니다. 마치 기억을 잃어버린 병구처럼요. 이는 필름 카메라로 권투를 은유합니다. 요즘 필름 카메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사멸해가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병구처럼 왕년에 잘 나갔던 추억만으로 살아서 자기 반성도 다시 일어나보려고 하지 않는 모습도 있고 컴퓨터가 나오면서 타자기가 사라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영화 <판소리 복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쓸쓸한 뒷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대중성이 높지 않아서 추천하기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꽤 따뜻한 시선으로 사라져가고 버려지는 것을 바라보는 그 온기가 좋습니다.  착한 남자를 좋아하는 민지처럼 착한 것들을 사랑하는 분들에게는 따뜻하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온기 있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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