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회 입구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의 삶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빅데이터, 블록체인, 인공지능 등의 첨단 기술과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유독 한국에서만 많이 쓴다고 하죠. 제가 느끼는 4차 산업혁명은 마케팅 용어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산업혁명을 정의할 때 그 시대가 지난 후에 그때가 3차 산업혁명이었다고 정의를 하는 것이지 이렇게 현시대에 정의하고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SBS 8시 뉴스에서 김소원 앵커가 하루에 한 번 씩 '유비쿼터스'라고 외치던 2000년대 중반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지금은 사멸 된 단어인 '유비쿼터스', 4차 산업혁명도 언젠가는 사멸된 단어가 틀림 없습니다. 이런 마케팅 용어를 그나마 현명하다고 느끼는 예술을 하는 공간에서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정의하는 초연결성, 초지능화를 통한 기술 융합 시대는 한 책에서 나온 주장일 뿐입니다. 3차 산업혁명에 사물인터넷처럼 초연결성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이라는 초지능화는 혁명이라기 보다는 3차 산업 혁명인 정보화 혁명의 정밀도가 더 높아졌을 뿐입니다.
불온한 데이터 전시회
그렇게 불온한 데이터 전시회 장 서문을 읽다가 미술 권력이 집합한 현대미술관의 전시회 서문을 불온한 태도로 바라봤습니다.
이 '불온한 데이터'전시회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빅데이터라는 데이터를 가공, 소유, 유통하는 주체에 대한 고민과 정보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게 하는 꽤 시의적절한 전시회입니다. 다분히 제가 좋아하는 분야인 IT 쪽 기술과 예술이 만난 전시회입니다.
예술가들은 끊임 없이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현상을 이해하거나 최소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면 그 분야를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꽤 깊게 연구하고 찾아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쪽 분야의 사람들도 이해하고 대중도 이해를 넘어서 공감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나옵니다. 그러나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곡해하고 오해한 후 그 오해를 바탕으로 예술을 펼치거나 표현을 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더 모르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쪽 분야 전문가가 전시장에 와서 이건 잘못된 해석이다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예술 창작 단계에서 전문가와 붙어서 작업을 하거나 끊임 없이 조언을 받아야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불온한 데이터'전시회는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한 데이터에 관한 전시회입니다.
<크리스 쉔의 위상 공간 360>
입구에는 아주 흥미로운 전시품이 있었스빈다. 큰 공간에 공들이 혼자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작은 공들은 로봇 공으로 혼자 브라운 운동을 하듯 불규칙적으로 움직입니다.
로봇공의 개수는 총 360개입니다. 로봇공들의 불규칙한 움직임은 천장에 설치된 모니터가 감시를 하고 공의 움직임은 선으로 기록됩니다. 그렇게 기록한 공들의 선은 LCD TV를 통해서 관람객이 볼 수 있습니다.
이 공들은 우리들을 형상화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우리가 어디에서 몇 분 동안 있었는지 차곡차곡 기록을 할 수 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탄핵 사태 당시 청와대에 들어간 적이 없다 던 분의 안드로이드폰에 저장된 위치 저장 기록을 보니 청와대가 찍혀서 덜미가 잡힌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언제 어디를 몇 시에 갔는지 스마트폰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데이터가 나만 보면 참 편리한데 남들이 보면 문제가 생기죠. 너! 여기도 갔어? 왜 갔어?라고 묻기 시작하면 무섭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개인 정보가 담긴 데이터는 나에게는 편의가 되지만 남들까지 보면 사생활 침해가 됩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빅데이터가 그렇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데이터를 만듭니다. 그러나 그 데이터를 담을 기술도 그릇도 없었습니다. 그릇은 없다기 보다는 비쌌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무의미한 데이터까지도 싹싹 긁어 담을 수 있는 저당매체가 저렴해지면서 온갖 데이터를 담아 놓은 후 인공지능이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무의미 했던 데이터들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만드는 데이터튼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구글과 애플은 개인 식별을 할 수 데이터는 제거하고 무명씨로 기록되기에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업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법이 필요하고 감시가 필요합니다. 이런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그 관리를 누가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빅데이터를 분석한 후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편리함도 있지만 이렇게 사생활 침해라는 불안감도 동시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쉔의 위상 공간 360>은 그 현대인의 디지털 불안감을 잘 담고 있습니다.
<레이첼 아라 /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 (자가 평가 예술버전)>
전시장 끝에는 네온 등이 켜진 거대하고 신기한 작품이 켜져 있었습니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네요.
이 작품은 앤도서라는 데이터마이닝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이 작품의 자기 평가액을 숫자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격은 4억4백8십8만2천3백4원이네요. 작품 가격 평가 기준은 이 작품 위에 설치된 2대의 웹 카메라가 관람객 수와 SNS, 작품 거래 사이트, 종합 주가지수인 FTSE100에 작가와 작품이 언급된 회수를 실시간으로 반영해서 작품값을 실시간으로 숫자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원래 파운드였는데 한국 버전에서는 원화 환률 계산을 해서 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가격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작품 가격은 미술 경매 시스템에서 평가를 하는 것이지 관람객이 많거나 SNS에 언급 회수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이 작품을 보니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내 글에 대한 좋아요 갯우에 일비일희하고 좋아요 숫자를 보고 으스대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르네요. 어차피 그 숫자들 사는데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있긴 하겠네요. 마케팅 하는 기업에서는 그 좋아요를 돈 주고 살 수 있긴 하겠네요.
<자크 블라스 / 얼굴 무기화 세트>
홍콩 민주화 시위를 베이징에 있던 BBC 특파원이 중국의 카톡이라고 불리는 위챗에 올렸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이게 무슨 사진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중국은 거대한 통제 국가로 홍콩 시위 같은 자신들에게 민감한 뉴스는 삭제 통제하는 국가입니다. 그래서 천안문 사태 20주년이 지났지만 중국인들은 천안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BBC 특파원은 그 사진을 올린 후에 위챗 계정이 박탈되었고 다시 계정을 활성화 하려면 가짜뉴스를 유포함을 인정하고 벌금을 내라는 명령에 따랐고 계정 확인을 위해서 얼굴 인증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중국은 다른 민주국가와 달라 인권에 대한 개념이 아주 느슨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자국민들의 얼굴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합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 지문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개인 정보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런 개인 정보를 무차별적인 무동의 수집을 통해서 10년 전에 납치된 아이를 찾거나 잃어버린 사람을 찾았다는 미담도 있지만 국가에 대한 불온세력을 색출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얼굴 무기화는 바로 중국을 보면 됩니다.
<자크 블라스 / 얼굴 무기화 세트>는 얼굴을 지문화해서 사용하는 요즘 세태를 비판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뭉갠 가면을 써서 얼굴 인식 데이터 수집에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얼굴 인식을 통해서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푸는 기술이 유용하긴 하지만 그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분석하면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점점 익명의 이로움이 사라지는 요즘 같네요.
<차오 페이 , 룸바 01.02>
이 작품은 좀 슬픈 작품입니다. 높이가 있는 탁자 위에 로봇청소기가 올려져 있습니다. 로봇청소기는 자체 센서를 통해서 바닥이 아닌 면을 만나면 방향을 바꿉니다. 그래서 LG전자는 고층 빌딩 옥상 난간에 로봇 청소기를 풀어서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잖아요. 로봇 청소기를 저리 좁은 공간에 풀어 놓으니 로봇 청소기는 배터리가 다 닳도록 저 공간에서만 왔다갔다 해야 합니다.
로봇이기에 감정도 없고 아무런 느낌도 없습니다. 다만 그런 로봇을 우리가 감정 있게 바라볼 때 감정이 생깁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에서 만든 2족 보행 로봇을 때리고 밀쳐내는 동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로봇 학대라고 항의하는 걸 보면 로봇의 감정을 만드는 건 우리들이라고 볼 수 있죠.
이외에도 블록체인에 관한 전시품도 있었고
<김웅현 / 밤의 조우>
총 6부작의 연작인 작품도 있었습니다. 대체적으로 볼만한 전시회였지만 명징하지 못한 작품도 좀 보이네요. 불온한 데이터 전시회는 7월 28알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합니다. 입장료는 4,000원이지만 토요일 오후 6시 이후에는 무료 입장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