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제2의 르네상스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입니다. 이 시기에는 지금도 거장으로 칭송받는 많은 영화 감독들이 한국 영화 제 2의 중흥기를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칸느 박이라고 불리는 박찬욱 감독과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봉준호 그리고 이창동 감독이 있습니다.
봉준호 장르, 칸 황금종려상을 움켜쥐다
한국 영화 정말 많이 발전했습니다. 기술적인 발전도 발전이지만 좋은 영화들을 아주 잘 만듭니다. 문제는 전체적인 한국 영화의 질은 한국영화 제2의 부흥기였던 2천년대 초반 이후 꾸준하게 쇠락하고 있습니다. 언제적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감독입니까? 이 3명의 감독을 뛰어넘는 젊은 감독들이 나와야 하지만 나홍진 감독 말고는 눈에 확 들어오는 패기 있고 아이디어 좋은 감독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 3명의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입니다. 이중에서 박찬욱과 이창동 감독은 칸과 베니스 같은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반면 봉준호 감독은 대중성 높은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만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니스, 베를린보다 더 인기가 높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을 했습니다.
한국 영화 100주년인 2019년에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는 큰 일이 일어났네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기검색어 순위가 심상치 않아서 터치를 하니 이럴수가!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네요. 많은 언론들이 설레발 치지 말라고 하는 기사를 보면서 다른 때는 온갖 설레발에 국뽕으로 가득한 기사를 쓰면서 올해는 유난스럽게 설레발 치지 말라는 기사가 많을까?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봉준호, 박찬욱 감독은 MB정권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감독입니다. 흥미롭게도 한국을 대표하는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감독 모두 MB정권 블랙리스트에 올랐네요.
이 3명의 감독 중 이창동 감독은 노무현 정권 당시 문화부장관까지 했던 분이라 MB가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왜 블랙리스트에 올랐을까요? 두 감독은 모두 진보정당 당원이었던 전력이 있습니다. 지금도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당원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개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했던 감독입니다. 그래서 찍혔을 겁니다. 칸에서 큰 상을 받고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은 자신에게는 '트라우마'였다는 말을 할 정도로 MB 정권 당시 큰 마음 고생을 했나 봅니다. MB 정권 뿐이겠습니까? 더 심했던 박근혜 정권 때도 마찬가지죠. 그런면에서 보수 일간지와 극우층들은 이번 봉준호 감독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을 듯 하네요.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대상격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이 여러 장르가 섞여 있는 영화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면서 한 기자가 봉준호 자체가 장르다라는 말을 했다면서 그 말이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봉준호 장르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무서우면서도 웃기면서도 슬프면서도 감동이 섞인 복합 감정과 장르가 섞인 걸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영화 <괴물>은 괴수물이라서 공포를 깔고 있지만 수시때때로 웃음 코드를 넣어서 사람을 웃기게 하고 가족의 생이별을 통해서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그럼에도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포근함도 잘 담은 영화가 <괴물>입니다.
영화 <괴물>이 1천만 영화라는 거대한 흥행지표에 현혹되어서 대중성만 높은 쾌락 위주의 영화라고 알고 있지만 이 영화 생각보다 한국 사회를 비꼰 블랙코미디가 참 많았던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내가 본 봉준호 감독 영화 중에 서 최고는 <마더>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의 추억>도 좋았지만 모성의 광기를 철저히 해부한 후에 그 정체가 무엇인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대중성 높은 영화도 잘 만들지만 각 영화들이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그가 사회학과 출신임을 넘어서 정당에 가입하는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감독입니다. 특히 최근 들어 그의 영화 속에서 사회 비판적인 요소는 꽤 짙어지고 있습니다. <설국열차>는 기차라는 수평적 공간을 통해서 빈부격차가 계급화 된 사회를 보여주면서 현 세태를 비판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옥자>는 슈퍼돼지 옥자를 통해서 공산품화 되어가는 육류 소비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건물이라는 수직적인 공간을 이용해서 반지하에 사는 전원 백수 가족과 고급 대저택에 사는 상류층과의 갈등을 블랙코미디로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봉준호 감독은 생각보다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영화 곳곳에 배치해서 쓴 웃음을 짓게 합니다.
봉준호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단편영화 <지리멸렬>
봉준호 감독은 떡잎 시절부터 좋아했던 감독입니다. 1996년 군에서 전역한 후 복학을 준비하다가 친구를 불러서 같이 비디오를 봤습니다. 예술 영화, 대중 영화 가리지 않고 보는 저와 달리 친구는 철저히 대중적인 재미가 많이 들어간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비디오를 빌리러 가기도 귀찮고 아주 재미있게 본 단편 영화 모음집이 담긴 비디오를 틀었습니다.
단편 영화 모음집은 영화 교육기관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작품을 엮어서 만든 단편 영화 모음집이었습니다. 이 한국영화 아카데미 출신 감독 중에 유명한 감독들이 꽤 있고 이곳 출신 감독들의 영화가 90년대 후반, 2천년대 초반 꽤 많이 상영했습니다.
결혼이야기의 김의석, 구로아리랑의 박종원, 게임의 법칙의 장현수, 그대안의 블루의 이현승,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쳐녀들의 저녁식사의 임상수, 도둑둘의 최동훈, 늑대소년의 조성희 등 꽤 좋은 감독들이 이 한국영화아카데이 출신입니다.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감독이라고 하면 봉준호 감독입니다.
1994년에 만들어진 봉준호 감독의 첫 영화인 <지리멸렬>은 졸업 작품이지만 작품 완성도도 뛰어나고 친구와 내가 박장대소하면서 봤던 단편 영화입니다. 이 <지리멸렬>은 6분짜리 단편 영화 4개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1편 바퀴벌레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주인공입니다. 점잖은 교수처럼 보이지만 도색잡지를 즐겨 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수 체면상 대놓고 도색잡지를 보지는 못하고 몰래 숨어서 봅니다. 이런 악취미를 들키지 않고 도색잡지를 탐닉하던 교수가
수업 시간에 자신의 교수실에 있는 책을 가져다 달라고 여학생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심부름 시키고 생각해보니 자신의 책상 위에 도색 잡지가 올려져 있다는 걸 깨닫고 부리나케 자신의 교수실에 올라갑니다. 여학생에게 자신의 악취미를 발각되면 체면이 구겨지기에 필사적으로 이 도색잡지를 숨기는 내용입니다.
2편은 골목밖으로로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주인공입니다.
이 논설위원도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츄리닝을 입고 동네를 조깅하다가 한 대저택 앞에 있던 우유를 자기 우유마냥 거리낌없이 마십니다.
더 웃긴 건 지나가던 신문 배달원에게 옆에 있던 우유를 건네며 마시라고 합니다. 집주인이 주는 우유인 줄 알고 벌컥벌컥 마시죠. 이때 집주인 아줌마가 나와서 이 배달원이 자신의 우유를 먹는 것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냅니다. 배달원은 황당하죠. 어떤 아저씨가 준 우유를 마신 건데 도둑으로 몰리게 되었네요. 아줌마는 조선일보 내일부터 넣지 말라고 합니다.
신문 배달원은 이 이상한 노인을 찾아 다닙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골목길에서 만나고 쫓고 쫓기는 추격을 합니다.
3편은 봉준호 감독과 친분이 있는 김뢰하 배우가 주연을 한 에피소드입니다. 부장검사는 술에 취해서 집으로 향하다 급똥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아파트 지하 관리실에 해결을 합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밥통이 클로즈업 되는데 친구와 깔깔거리면서 봤네요.
에필로그에는 이 3명의 사회지도층이 나와서 최근 일어난 흉악범죄에 대해서 토론을 합니다. 도색잡지를 즐겨보는 교수는 펜트하우스 같은 도색잡지가 국내에 출판될 뻔한 사실에 분노를 하고 우유를 훔쳐먹은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가정교육이 문제라고 지적을 하고 부장검사는 흉악범도 문제지만 경범죄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개,돼지 같은 국민들을 계몽한다면서 잘못된 사회를 꾸짖고 심한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행동을 3편의 에피소드로 잘 지켜봤습니다. 자신들이 평상시 행동이 개,돼지인데 TV 토론에서는 남을 가르칩니다.
봉준호 감독은 대중성 높은 감독입니다. 이 <지리멸렬>은 사회지도층 및 식자층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블랙코미디에 섞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재미도 있으면서도 자기가 할 말은 다 하는 2가지 시선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였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아주 뛰어난 한국 영화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본상 수상에 실패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버닝>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자본주의가 고도화 된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비판한 영화입니다. <버닝>은 웃음끼가 전혀 없는 건조한 느낌이라면 <기생충>은 블랙코미디가 많이 들어가서 웃음이라는 윤활유가 많이 들어간 듯합니다.
빈부격차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고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더구나 자본주의는 돈이라는 생산수단이 돈을 버는 맹점이 있어서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더 벌고 돈 없는 사람은 점점 덜 벌게 되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본주의의 맹점을 영화 <버닝>과 <기생충>은 잘 담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을 본 지 올해로 23년이 지났네요.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12살 소년은 2019년 영화감독의 최고의 영예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사람 안 변한다고 하죠. 맞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떡입 시절부터 그 날카로운 사회 풍자가 돋보였던 감독입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지리멸렬은 유튜브에 에피소드 3편만 빼고 검색해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