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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영화 스윙키즈를 탄생시킨 베르너 비숍의 사진 1장

by 썬도그 2018.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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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국 영화 중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영화는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기대되는 한국 영화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1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영화 <스윙키즈>

<과속스캔들>과 <써니>라는 히트작을 연출한 강형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스윙키즈>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연 배우는 도경수, 박혜수, 오정세 등이 출연합니다. 탑 클래스 배우 또는 티켓 파워가 강한 배우들은 아닙니다만 전국 대규모 시사회를 개최하는 모습을 봐서는 상당히 자신감이 넘치는 듯 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본 분들은 호평 일색입니다. 

영화 <스윙키즈>는 1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영화입니다. 


<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 남한 거제 포로수용소, 1952>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세계적인 사진에이전시인 매그넘 소속의 사진가 베르너 비숍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도착합니다. 이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북한과 중공군 포로들을 수용했던 곳입니다. 유엔군이 관리하던 포로수용소에서는 무려 13만 2천명의 포로가 있었습니다. 이 포로 중에는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친공포로와 북한으로 돌아가길 포기하고 남한에서 살고 싶어하는 반공포로가 있었습니다. 

북한과 중공군 포로들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나뉘어서 대립하게 되자 연합군 사령관 보트너 준장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분리 수용합니다. 또 하나의 이념 전쟁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났습니다. 

위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이게 뭐지? 빵 봉투 같은 것을 쓰고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모습도 기이했지만 맨 뒤에 있는 거대한 조형물을 보니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었습니다. 이 사진 속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은 반공포로들입니다. 빵봉투 같은 걸 쓴 이유는 친공포로들에게 얼굴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 쓴 것 같습니다. 이 반공포로들은 유엔군의 주축이 되는 미군이 북한과 중공군들이 반공포로로 전향 시키기 위해서 펼친 문화 선동 행위입니다. 반공포로들이 엄혹한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밝은 행위이자 춤 그것도 사교 댄스로 유명한 포크 댄스를 추는 모습을 보고 반공포로로 전향하길 바랬습니다. 

6.25 전쟁이 교착 상태가 되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의 이념 갈등은 더 심해졌습니다. 북한은 친공이건 반공이건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를 무조건 돌려달라고 했고 UN군은 친공포로만 북으로 보내고 반공포로는 이념 전향 시켜서 남한이나 제3국에 망명할 수 있길 바랬습니다. 이런 소식을 잘 아는 포로 중에 반공포로들은 반공을 외친 상태에서 북한으로 돌아가면 죽을 것이 뻔하기에 더 격렬하게 UN과 미군의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공포로들은 미국의 사교 댄스인 포크 댄스를 추면서 자신들의 이념을 증명하면서 친공포로들에게 자신들의 자유롭과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전향을 권유했습니다. 또한 혈서와 가슴에 태극기 문신을 하는 등 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반공을 외쳤습니다. 

전 위 사진은 내가 본 6.25 전쟁 사진 중에 가장 슬픈 사진 중 하나입니다. 사진 자체로는 춤을 추는 밝은 사진이지만 가면 같은 봉투를 쓰고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자신의 이념을 증명하는 춤사위가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로기수>로 만들어졌고 흥행에 성공합니다. 뮤지컬 <로기수>를 영화로 만든 것이 <스윙키즈>입니다. 영화 <스윙키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로 구성된 댄스단을 결성하는 과정을 담은 휴먼 드라마입니다. 보고 온 분들의 평을 보면 현실의 아픔과 춤의 즐거움이 잘 조율 된 영화라고 호평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베르너 비숍이 촬영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사진은 1장이 아닙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철조망에 걸려 있는 빨래들. 1952년>


<중국과 북한 포로들을 위한 재교육 캠프. 북한 포로의 정치적 재 적응 과정. 1952 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치료를 기다리는 포로들. 1952년>



<거제 포로수용소. 1952년>


<거제 포로수용소의 북한과 중공군 포로들. 1952년>


<자유의 여신상 앞에 있는 반공 포로들. 1952>


<거제로 포로수용소. 1952년>


<몸에 문신을 하고 있는 반공포로.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어린 소년병. 1952년>

UN군과 북한은 휴전 협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포로 송환 문제 때문에 협상이 난항을 겪습니다. 그러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고난 후 친공포로는 무조건 돌려보내는 데 합의합니다.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달랐던 반공포로는 중립국으로 보낸 후 거기서 북한이 귀국할 것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합니다.

이에 이승만 전 대통령은 중립국으로 간 후 다시 북한으로 가는 것은 포로들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이 협의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UN은 이 결정을 밀어부칩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 헌병대가 반공포로들이 수용소에서 탈출할 수 있게 거제도 포로수용소 반공포로 수용소의 전기를 끊고 철조망을 끊어 버립니다. 이때 탈출한 반공포로는 무려 2만 7천명입니다. 

이 탈출 작전이 일어난 직후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지시한 일이라고 당당히 밝힙니다. 이에 격분한 북한과 중공은 크게 항의함을 넘어서 모택동은 2만 7천명의 국군을 사살하라고 지시합니다. 

1953년 7월 UN군과 북한은 휴전 협정을 하고 3년 간의 6.25전쟁은 끝이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본격적인 포로 교환이 시작됩니다. 친공포로들은 휴전선을 넘자마자 UN군이 제공한 옷과 신발을 벗어서 남한 땅에 놓고 북한으로 떠났습니다. 북한군은 거제도와 제주도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송환을 거부하는 북한과 중공군 포로들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남아 있던 7,900명 중 반공에서 친공으로 마음을 바꾼 포로는 188명 밖에 없었습니다. 포로 설득 작업 및 포로 교환은 1953년 12월 23일로 종료됩니다. 

영화 <스윙키즈>는 아픈 우리의 역사를 담은 영화입니다. 실화는 아닙니다. 1952~3년 거제도 포로수용소라는 작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념 전쟁의 장소를 배경으로 춤이라는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소재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재조명하는 가상의 캐릭터를 넣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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