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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패터슨. 지루함을 죄악시하는 요즘 세태를 돌아보게 하다

by 썬도그 2018.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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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지루해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루함을 못 견뎌합니다. 조금만 지루해도 스마트폰을 봅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소화하기 편하고 간편한 스낵컬처를 매일 같이 먹습니다. 그렇게 먹다가 지루하면 또 다른 스낵컬처를 먹다가 하루 종일 한 것도 없는데 눈이 벌게지도록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듭니다.

지루함은 견디기 어려워 하는 세상. 우리는 그 지루함을 지울 도구들을 탐닉합니다. 영화도 그 중 하나죠.  


시계처럼 똑같은 일상을 사는 패터슨에 사는 버스기사 패터슨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분)은 뉴저시주의 조용한 도시인 패터슨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간밤에 꾼 꿈이야기를 듣고 시리얼을 먹고 점심 도시락 가방을 들고 걸어서 출근을 합니다. 버스 운전대를 잡고 시를 쓰고 운전을 합니다. 운전을 하면서 버스 승객들이 나누는 대화를 귀동냥으로 듣고 빈 도시락 가방을 들고 퇴근을 한 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후  마빈이라는 강아지와 함께 밤 산책을 합니다. 

동네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잡니다. 하루 일상이 매일이 똑같습니다. 복잡한 도시에 살지만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고 정확한 패턴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마치 농촌 풍경 같습니다. 

영화가 이런 패터슨의 1주일을 담고 있고 별다른 사건 사고가 없습니다. 지루하게 보이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 지루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너무 기존 영화 문법에 중독 되었구나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봤습니다. 심지어 '천국보다 낯선'으로 유명한 '짐 자무쉬'감독이 연출한 영화인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꽤 흥미롭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 반복된 행동을 하는 패터슨을 보면서 혼자 예상을 하다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에 처음에는 좀 뜨악했습니다.

예를 들어 불독 마빈을 데리고 밤 산책을 하는데 오픈카를 타고 다가온 흑인 청년들이 비싼 강아지라고 말하더니 개 훔쳐갈 수 있으니 조심히라고 합니다. 패터슨은 선술집에 들어갈 때 마빈을 선술집 밖에 메어 놓습니다. 청년들의 주의와 밖에 메어 있는 불독. 보통의 영화라면 다음 장면에서 불독 마빈이 사라지고 분노한 패터슨이 불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내용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그냥 불독은 그대로 있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자극이 없는 영화입니다. 사건 사고도 없습니다. 남편인 패터슨이 버스 운전을 하면서 돈을 벌어오는데 반해 아내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컵케잌을 만들고 아주 비싼 기타를 사겠다고 합니다. 철없는 아내처럼 보입니다. 남편은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거나 숨기고 사는데 반해 아내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보통 이 다음 장면에서 패터슨과 아내가 부부 싸움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제가 세상의 때가 가득 묻거나 자극이 가득한 할리우드 영화에 중독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도 아내와 싸우지도 않습니다. 

이때부터 이 영화의 매력이 조금씩 피어납니다. 

지루함을 죄악시하는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패터슨>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쓸모 없는 정보 그러나 유용할 것 같아서 즐겨찾기를 하고 저장을 하는 생활팁들. 하지만 TMI(너무 많은 정보)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할까요? 한 때는 저도 정보광이라서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살펴보고 읽고 소비했지만 정작 그런 정보를 탐닉하는 사이에 소중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많은 정보와 행복은 연관관계가 없고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아서 머리가 아플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많은 정보에서 벗어나 스마트폰을 잠시 끄고 산책을 하면서 생각하고 걷고 하는 것들이 더 행복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그 행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하고 행복감을 느꼈었잖아요. 


스마트폰을 내려 놓으면 보이는 행복들,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을 잠시 잊고 살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 <패터슨>은 아날로그 삶을 살았던 시대의 행복을 되새김질 하게 만들어 줍니다.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10대,20대들은 스마트폰 없고 인터넷 없던 시절에는 지루해서 어떻게 살았대라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 지루한 일상이자 큰 변화가 없는 하루 하루 였습니다. 그러나 지루하긴 해도 변화가 없다는 건 평온함을 기본 마음으로 챙기고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같이 자극이 일상인 시대의 부산물인 불안이 자욱히 깔린 세상보다 지루해도 평온한 그 시절이 전 더 좋았습니다.

패터슨은 그 인터넷이 없던 시절,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사는 버스기사입니다. 평온함 그 자체인 패터슨은 출근 길에서 만나는 어르신과 인사를 하고 자신처럼 비밀노트에 시를 쓰는 10살 소녀를 만나서 즐거워합니다. 버스 승객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귀동냥하길 좋아하며 자신이 쓰는 시에 감동하고 시집을 내보라고 용기를 주고 자신을 잘 알아주는 아내와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삶이 지루할 것 같은 패터슨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부의 시선이고 도시지만 농촌처럼 하루 일과가 크게 변하지 않고 1년 1년이 크게 변하지 않은 작은 중소도시의 삶과 닮은 패터슨은 그 평범하고 똑같은 일상 속에서 시를 씁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한 때 문학 소년이었고 소설과 시를 많이 읽어서 세상이 모두 소설이나 시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친구가 술자리에서 "너는 참 말을 소설처럼 해"라는 말을 하기도 했죠.

패터슨은 버스기사지만 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인입니다. 시인이라는 것이 직업일 수도 있지만 패터슨은 그가 사랑하는 패터슨에서 태어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처럼 시를 사랑하는 직업인입니다. 시인은 직업이 아닌 마음 가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패터슨, 패터슨을 보면서 옛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시 시를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의 은율이 어렵다면 일상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담는 수필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글을 잘 쓰는 사람, 사진을 잘 쓰는 사람의 공통점은 관찰입니다. 아니 직업인들 모두 관찰력이 뛰어납니다. 관찰력은 그 관찰에 들인 시간에 비례합니다. 관찰을 깊게 하려면 많은 정보 대신 매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을 발견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른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우리는 모두 시인입니다. 소확행이 별 건가요? 비온 후 연두빛 잎을 내는 나무에게서도 위안을 받고 기쁨을 얻고 고통이란 전혀 모를 것 같은 아이의 웃음소리와 내 백팩 가방이 열려 있다고 알려주는 지나가는 사람의 행동에서 행복을 느끼죠. 

그 행복을 느낌을 감정을 시로 담으면 그게 시인입니다. 


아하!라는 순간의 연속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패터슨>

"아하!"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건 사고가 없는 건 아닙니다. 패터슨이 몰던 버스가 고장이 나고 자신이 키우던 불독이 큰 일을 저질러서 평온이 깨졌습니다. 심란해서인지 일요일 아침 패터슨은 일찍 일어납니다. 마음이 잡히지 않아서 집 근처에 있는 폭포를 바라보다가 일본에서 여행 온 일본인 여행객을 만납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일상적이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다시 패터슨은 다시 노트를 폅니다. 그 일본인은 악수를 하고 떠나다가 뒤를 돌아 보더니 

"아하"라고 합니다.

전 이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아하"를 따라했네요. 깨달음의 감탄사 "아하" 매일 같은 일상, 변화 없는 세상이고 실제로 변화가 없는 세상이지만 내가 변하고 내 지식과 경험이 변하면 그 일상도 반짝이는 보석이 될 수 있습니다. 모르고 보면 그냥 일상의 풍경이지만 알고 보면 내 보석이 될 수 있는 게 세상입니다. 

전 이 영화를 다 보고서 작게 외쳤습니다

"아하"

자극을 원하는 분들, 영화를 통해서 재미를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절대 비추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영화를 보고 힐링하고 싶고 평온감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정말 사건 사고가 없어서 지루할 수 있지만 일상의 행복을 보정 없이 담은 담백한 모습이 참 좋네요. 영화 <시인의 사랑>을 통해서 시인의 감성을 느끼려고 봤는데 예상과 다른 스토리 진행이  나와서 황급하게 멈춤을 누르고 영화 보기를 포기한 쓰라린 경험을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도시 버스 기사가 시를 쓰는 모습을 통해서 치유 받았네요. 


버스가 고장나자 회사에 연락을 해야 하는데 스마트폰이 없어서 전전긍긍하자 한 초등학생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빌려줍니다. 그 빌린 스마트폰으로 회사로 연락하는 페터슨. 보통 이런 경험을 겪으면 스마트폰의 유용함을 인정하고 스마트폰을 살텐데 패터슨은 결코 스마트폰을 사지 않습니다. 

얽매이고 구속 받는 것이 싫다는 패터슨. 스마트폰이 없어서 오는 지루함 속에서 피어나는 자박자박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좋은 영화이자 행복은 지루함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해준 영화입니다. 괜찮은 영화네요

40자평 :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지루함과 평온이 공존했던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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