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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좋은 상상력으로 시작해서 허풍으로 끝난 영화 흥부

by 썬도그 2018.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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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고전 소설인 '흥부 놀부'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소설입니다. 못된 놀부 형님과 형수님의 온갖 멸시와 괄시에도 착하게 사는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줍니다. 제비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박씨를 흥부에게 주고 흥부는 씨를 심어서 열매인 큰 박을 따서 톱으로 열어봅니다. 그 박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온다는 내용이죠. 

이 '흥부 놀부'를 각색한 영화가 <흥부>입니다.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흥부 놀부를 재해석한 영화 <흥부>

우리가 아는 '흥부 놀부'는 착한 동생 흥부와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놀부 심보의 놀부의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입니다. 이 '흥부 놀부'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넣은 영화가 <흥부>입니다. 흥부(정우 분)는 성인 음란 소설을 쓰는 소설가로 어려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의 탄압으로 놀부 형과 떨어지게 됩니다. 흥부는 놀부 형님을 만나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시대 배경은 헌종 14년으로 무능한 왕과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벼슬아치들로 인해 전국에서 민란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하던 시기입니다. 남사당패들이 조선 관료사회에 대한 풍자극을 하자 관군들이 진압을 합니다. 이 요동치는 민심 사이에 새로운 영웅이 등장한다는 정감록이 큰 인기를 끄게 됩니다. 


형조 판서 조항리(정진영 분)은 성인 음란 소설을 쓰는 흥부에게 '정감록 외전'을 써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정감록 뒷 이야기에 조항리가 떠오르는 인물을 훌륭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조항리 판서의 라이벌인 병조 판서 김응집(김원해 분)가 역적 모의를 한다는 내용을 적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흥부는 흥쾌히 '정감록 외전'을 써줍니다.  흥부는 놀부 형님이 보고 싶지만 어디 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때 김삿갓(정상훈 분)이 놀부 형님의 소식을 들었다면서 반군 세력이자 가난한 백성들을 보살피는 조혁 영감(김주혁 분)을 찾아가 보라고 합니다. 


조혁 영감은 가난한 백성들을 보듬어 키우는 가난한 사람들의 성자입니다. 홍경래의 난을 이어 받아서 왕과 백성의 목숨이 똑같은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입니다. 조혁 영감의 형님은 권력욕에 눈이먼 조항리 형조판서입니다. 형제이지만 둘의 삶은 확연히 다릅니다. 조항리 판서는 동생인 조혁이 운영하는 마을공동체 땅 문서를 찾았담면서 작물을 심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조혁은 백성들이 굶게 된다면서 읍소를 하지만 형인 조항리는 돈을 주면서 동생과의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나가는 길에 형수에게서 밥알이 붙은 쌀주걱을 맞게 되고 빰에 붙은 쌀알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조혁 영감은 형님 소식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흥부에게 세상을 바꿀 소설을 쓰면 형님 놀부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그렇게 흥부는 조항리와 조혁 형제의 이야기를 각색한 '흥부전'을 쓰게 됩니다. 

상상력이 아주 좋은 스토리입니다. '흥부 놀부' 또는 판소리로도 유명한 <흥부전>에 사회의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녹여내는 상상력은 무척 신선합니다. 작자 미상인 흥부전을 쓴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러나 상상력은 좋은데 이 영화 <흥부>를 보다 보면 한 영화가 떠오릅니다. 남사당패의 공연 세상을 비판하는 모습이나 왕 앞에서 공연을 하고 민중의 삶의 괴로움을 담은 2005년 작 <왕의 남자>입니다. 특히 <왕의 남자>에서 왕으로 나온 정진영이 비슷한 악역인 조항리 판서로 나오는 모습 등 <왕의 남자>를 벤치마킹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뛰어난 영화 미장센. 그러나 점점 억지스러워지는 스토리

미술감독이 누구인지 궁금할 정도로 영화 속 한옥 전각이나 풍경들이 무척 아름답고 세밀하게 잘 묘사했습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풍광은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공연 장면의 신명도 잘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흥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토리입니다. 초반의 흥미로운 상상력과 간간히 웃기는 유머 코드는 후반으로 갈수록 과한 설정과 덜컹거리는 은유에 맥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가 주장하는 주제 또한 식상한 주제입니다. 이미 수 많은 영화들이 권력을 가진 권력층을 비판하며 민중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와 백성이 잘 사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내용은 이미 많은 영화들이 다루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켰습니다. 현실로 정점을 찍어서 이런 주제의 영화들이 <1987>처럼 역사적 사실을 환기하는 뛰어난 영화가 아니면 앞으로는 큰 인기를 끌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영화 후반에 급작스러운 스토리 진행은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또한, 현실성 없는 스토리 진행은 계속 미간이 구겨지게 하네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조선 시대에 공화국 선언은 황당하기까지 하네요. 물론, 홍경래의 정신인 백성과 임금의 목숨은 동일하다는 내용을 담기 위한 장면 같기도 하지만 개연성이 떨어지고 이해 안 가는 진행과 허술한 스토리로 인해서 영화에 대한 집중도는 계속 떨어집니다. 이렇게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다 보니 영화 <흥부>는 점점 축축 쳐지게 됩니다. 


영화 <흥부>는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감독 조근현의 성추행 미투 폭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이콧했습니다. 영화 <흥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주혁 배우의 유작입니다. 김주혁은 영화에서 성자 같은 조혁 영감 연기를 아주 잘 합니다. 푸근하고 화사한 미소는 그나마 이 영화가 주는 작은 선물입니다. 이 푸근함은 영화 전체에 잘 깔려 있어서 온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후반의 억지스러운 스토리는 이 영화가 왜 인기가 없었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글로 세상을 바꾸는 그 상상력을 더 키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드네요. 

상상력의 발화는 좋았지만 점점 <왕의 남자>스러워지는 이야기가 <왕의 남자> 리메이크 느낌을 강하게 합니다. 비슷할 수는 있습니다. 더 잘 만들면 리메이크라는 생각을 줄게 하지만 <왕의 남자>보다 훨씬 못 만들다 보니 자꾸 아쉽다는 생각만 드네요. 흥부가 혁명가라니 말도 안되는 상상을 말도 안되게 만든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평 :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일장춘몽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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