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자판기의 나라입니다. 실로 다양한 자판기가 있습니다. 청량음료와 커피는 물론, 담배와 신선한 계란, 꽃 등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제품을 파는 자판기가 있습니다. 이런 자판기가 일본 전역에 5백 5십만 개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자판기가 대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골 마을에도 많고 길가에도 있는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장소에서 자판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자판기 대국 다운 모습이죠.
이 자판기들은 가로등이 없는 시골 길가에도 만날 수 있는데 365일 내내 켜 있기 때문에 밤에는 가로등 역할까지 합니다. 사진작가 Eiji Ohashi는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 북쪽에 있는 홋카이도의 자판기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곳 답게 눈이 자판기 위를 덮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자판기에서 나오는 빛이 눈과 만나서 환상적인 빛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정말 가로등이 없는 시골 거리에 자판기가 가로등 또는 오아시스 역할을 합니다. 새벽 강남 길을 걷고 있는데 유일하게 불이 켜진 편의점의 불빛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모두 멈춘 듯한 모습이지만 편의점의 온기 있는 빛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마치 도시의 등대 같더군요
아마 이 자판기들도 그런 느낌입니다. 가로등 없는 길에서 만나는 자판기는 분명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특히나 눈이 쌓인 자판기는 더더욱 따스해 보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는 사람들'은 현대인의 고독감을 담은 그림입니다. 그 느낌도 들려오네요.
이런 황무지 같은 곳에 서 있는 자판기. 장사가 될까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실제로 이 밤의 등대 같은 자판기가 꺼지려면 매출이 떨어지거나 수익이 나지 않으면 꺼집니다. 그러나 수익이 있고 수익이 있다는 것은 사용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방증이겠죠.
사진작가 Eiji Ohashi는 이 사진들을 로드사이드 라이트라는 사진집으로 출판했습니다. 간단한 소재지만 이렇게 모아 놓으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되네요. 일본의 자판기 같은 존재가 한국에는 뭐가 있을까요? 어딜가나 있고 외로운 현대인들을 달래주거나 대변하는 역할이요. 한국은 편의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