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영화관 안에서 눈물 콧물 다 흐르게 하지만 영화관 문을 열고 나가면 그 감정이 다 휘발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영화는 영화관 안에서 큰 눈물을 흐르게 하지 않지만 영화관을 나선 후 주인공의 아픔이 서서히 전염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의 결말은 집으로 가는 길에 술을 사서 집에서 마시게 합니다.
이 영화가 그랬습니다. 영화관 안에서도 주인공의 슬픔이 전달되어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지만 집에 도착한 후 그 슬픔이 더 커지고 있네요.
보스턴에서 잡역부로 일하는 삼촌이 아버지를 떠나 보낸 조카를 만나다
주인공 '리 챈들러(캐시 애플렉 분)'는 미국 보스턴에서 다세대 주택의 잡역부로 일을 합니다. 반지하 집에서 살면서 건물의 배관이나 전기 심지어 변기가 막혀도 뚫어주는 잡다한 일을 최저 임금을 받고 근근히 먹고 삽니다. 나이는 중년인데 결혼을 하지 않았는 지 쓸쓸하게 삽니다.
'리 챈들러'는 배관, 전기 등등의 다양한 기술이 있지만 다세대 주택 고용주에게 쌍욕을 하는 등의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가끔 말썽이 일어납니다. 이런 성격은 쉽게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날도 반지하 집 앞의 눈을 치우는데 한 통의 전화가 옵니다. 형이 위독하다는 말에 한 달음에 고향인 '맨체스터(미국에도 맨체스터라는 지역이 있음)'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형은 심부전으로 급사를 하게 되고 임종을 보지 못합니다. 형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장례 절차 등을 챙기고 영안실에 있는 싸늘해진 형의 주검과 작별 인사를 하고 이것 저것을 챙깁니다. 형의 죽음을 모르는 형의 아들인 고등학생인 조카 '패트릭'이 운동을 하고 있는 하키장에 찾아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린 후 조카 '패트릭'을 알뜰살뜰 챙킵니다.
'패트릭'은 아버지의 지병을 잘 알고 있기에 아버지의 죽음에 크게 놀라지 않고 담담해 합니다. 오히려 핸섬한 외모와 인기로 양다리를 거치는 연애 생활을 즐깁니다. 참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지만 10대라는 나이는 사리분별이 발달한 나이가 아니라서 삼촌인 '리 애플릭'은 이해합니다. 그렇게 조카와 함께 장례 절차를 밟는데 형이 동생인 자신을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정한 유언을 변호사로부터 듣습니다.
'리 챈들러'는 이 유언에 옛 생각을 떠올립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세상과 등을 진 '리 챈들러'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고향을 떠나서 잡역부를 사는 '리 챈들러'의 삶을 조용하게 담고 있습니다. '리 챈들러'는 고향에서 형의 가족과 함께 3명의 아이를 낳고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립니다.
이후 이혼을 한 후 고향을 떠나서 맨체스터 근처인 보스턴에서 잡역부로 살아갑니다. 형의 죽음으로 고향에 돌아오지만 고향 사람들은 그 '리 챈들러'라면서 수근거립니다. 앞에서는 반가워 하지만 '리 챈들러'가 떠나면 비난을 가득 쏟아냅니다. 이런 것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리 챈들러'는 형의 장례식이 있는 1주일 동안 고향에서 머뭅니다.
영화는 고향에 돌아온 리가 형의 장례식을 치루면서 옛 생각을 중간 중간 삽입해서 홀로 살고 세상과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를 서서히 보여줍니다. 마치! 일상 생활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적으로 발화되는 기억들이죠. 리는 장례식을 조카와 함께 준비하면서 고향에 대한 추억들로 괴로워 합니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자꾸 떠오르자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리는 세상과 섞이지 않고 겉도는 것 돌기만 합니다. 강력한 방어기제가 펼쳐진 상태입니다. 유일하게 대화를 하는 사람은 조카와 1명의 이웃 밖에 없습니다.
얼름장 밑을 흐르는 깊은 슬픔
꽁꽁 언 호숫가 얼음 같습니다. 큰 상처를 받은 후에 리는 봄에서 갑자기 겨울이 되었습니다. 사람 자체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산송장처럼 세상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고 날이 잔뜩 서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자신을 쳐다 보지도 않았는데 쳐다 봤다고 생각하고 술집에서 싸움질을 합니다. 또한, 작은 것에 크게 욱합니다.
이런 리의 모습은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은둔형 외톨이'와 비슷합니다. 영화는 리의 이런 상태를 아주 자연스럽게 담고 있습니다. 리는 은둔은 하지 않지만 모든 관계를 스스로 끊어 버립니다. 리의 이런 겨울 같은 상태를 영화는 옛 기억을 떠올리는 리를 따라가면서 서서히 리가 겨울 숲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서서히 서서히 보여줍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자 날이 서 있는 리가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큰 슬픔을 간직한 리. 영화를 보면서 리가 이해가 됨을 넘어서 리와 내가 동일 시가 되다 보니 후반에는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출렁거렸습니다.
관객에게 공감대를 끌어 올리는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는 다큐라고 할 정도로 시종일관 잔잔합니다. 형의 장례식 절차를 치루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다툼들의 나열만 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약간 지루합니다. 그러나 리가 행복한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부터 왜?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어쩌다가 눈이 쌓인 황량한 겨울 숲 같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리의 과거로 향한 회상을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 된 후에도 리는 자신의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슬픔을 담는 방석이 촌스럽지 않습니다. 직접적으로 슬픔을 더 확대하고 퍼 담을 수 있지만 그 슬픔을 담고 터트리는 장면이 인위적이지 않고 흔히 우리들이 갈등과 해소를 하는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이러다 보니 마치 내 이야기! 또는 당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시작합니다. 슬픔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인위적이지 않게 슬픔을 담는 방식이 이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곧 개최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이유가 아닐까 하네요.
슬픔의 얼음장 밑을 흐르는 온기
아버지를 잃은 조카는 양다리를 걸치는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철딱서니 없는 10대 소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냉장고를 열다가 떨어진 냉동 닭을 보고 괴로워 합니다. 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셔서 땅을 팔 수 없자 어쩔 수 없이 날이 풀리는 봄까지 싸늘한 영안실에 모셔야 한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러다 냉동 닭을 보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흐느낍니다.
리와 조카 패트릭은 그렇게 마음 속에 슬픔을 간직한 채 같이 걷습니다. 조카도 삼촌이 왜 이렇게 되었는 지 잘 알고 있고 리도 조카의 슬픔을 잘 압니다. 다만 드러내고 서로를 안아 주지는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무덤덤하고 무관심해진 리. 늘어나는 건 욕과 욱하는 성질입니다. 그러나 이 얼음장 같은 리도 조카 패트릭에게는 아버지 같은 따스함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은근하고 깊게 살며시 도와줍니다. 리는 패트릭과 함께 지내면서 패틀릭을 통해서 다시 어른이 됩니다. 어른의 다른 이름은 희생입니다.
리에게 봄이 올까요? 와야 합니다. 그게 세상 사는 이유니까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큰 슬픔을 아주 자연스럽고 현실적이로 잘 담고 있습니다.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영화 속 슬픔이 스크린 너머의 관객석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잘 전달됩니다. 2시간 20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네요.
'밴 애플렉'의 동생인 '캐시 애플렉'의 연기도 꽤 담담하게 잘 하네요. 영화 제목인 맨체스터는 영국이 아닌 보스턴 근처에 있는 도시 이름입니다. 전 이런 것도 모르고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줄 알았네요.
우리 주변에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입니다. 그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네요.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별점 : ★★★
40자 평 : 얼음장 밑을 흐르는 슬픔 그리고 그 얼음을 녹이는 작은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