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의 일본 애니를 이끄는 2개의 엔진이 있습니다. 하나는 감수성이라는 엔진으로 달리는 '신카이 마코토'이고 또 하나는 스토리라는 엔진을 가진 '호소다 마모루'입니다. 전 두 애니 감독 모두 좋아합니다. 두 사람의 영화 스타일이 크게 다르지만 '신카이 마코토'는 소녀 감성이라서 좋고 '호소다 마모루'는 소년 같아서 좋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호소다 마모루'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 감독이 되었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2006년 이 영화 이후가 아닐까요? 바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 말이에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다시 보다
애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애니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저도 시간을 달려서 30분 전 과거로 가고 싶네요. 리뷰 반 넘게 썼다가 잠시 딴 짓하다가 왔더니 글이 자동저장되지 않고 다 날아갔네요. 나도 호도형 타임머신 있으면 충전해서 1회 사용하고 싶네요.
2006년 제작해서 2007년 개봉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아주 묘한 영화 마케팅을 한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이 애니는 지금도 그렇지만 불법 다운로드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 봤습니다. 이에 CGV는 불법 다운로드로 본 분들이 CGV 홈페이지에 영화에 대한 별점과 감상평을 남기면 고객 전원에게 1천원을 내고 보게 하는 이색 마케팅을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마케팅을 만나기 어렵겠지만 이 마케팅이 시사하는 것은 일본 애니나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 성공을 하기 어려우졌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흥행 1위를 해도 국내에 수입도 안 되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이미 좋은 영화는 불법 다운로드로 다 보니까요. 그러니 헐리우드 영화들이 전 세계 최초 개봉을 한국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황이 이럴 진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박 영화 <너의 이름을>을 2017년 1월에 개봉하는 것은 좋은 선택 같지가 않네요. 각설하고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0년이 지난 지금 재개봉을 했고 앞으로도 가끔 재개봉을 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상암동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는 이 애니를 재상영 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보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0년이 지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박장대소를 하고 즐거워 하네요. 10년이 지나면 인기가 떨어질만 하지만 처음 봐도 그리고 두번 째 봐도 그 싱그러움을 녹슬지 않았네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줄거리
고등학생 마코토는 야구를 좋아하는 여고생입니다. 이 마코토에게는 항상 붙어 다니는 이성 친구인 치아키와 코스케가 있습니다. 항상 붙어 다녀서 전교생이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삼총사 중 마코토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인기척에 과학실험도구가 있는 기재창고에 갔다가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후, 마코토는 빠르게 달리다가 점프를 하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미술복원사 이모에게 털어 놓습니다. 놀랍게도 이모는 이 사실을 사춘기에 겪은 흔한 일이라고 치부합니다. 놀랍죠. 어떻게 시간여행을 그렇게 쿨하게 받아주다니요. 검색을 해보니 이 애니의 원작 소설에서는 이모가 주인공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모도 시간 여행을 경험해 봐서 조카의 고백을 쉽게 받아줍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스킬인 시간여행을 깜찍하게 사용합니다. 보통, 시간여행물은 자신의 과거를 바꾸는데 혈안이 되어 있거나 로또 발표를 보고 숫자를 적은 뒤 6시간 전으로 가서 로또 번호 정답을 적어서 큰 돈을 벌거나 여자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보통,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데 사용하죠. 그런데 이 마코토는 노래방 가서 1시간의 돈을 내고 10시간을 부른다거나 치아키가 사랑 고백을 하자 시간을 되돌려서 그 고백을 못하게 하는데 사용합니다. 깜찍한 소녀죠. 그렇게 시간 여행을 막 사용하다가 자신이 바꿔 놓은 과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받는 부작용도 알게 되고 일이 점점 꼬일 때 시간 여행의 기회가 딱 1번만 남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고장난 자전거를 타고간 친구가 큰 사고를 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 다음은 스포이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가장 발랄하고 상큼한 시간 여행물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재미있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불가역성을 훌쩍 넘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 여행물. 제가 꼽는 시간 여행물은 <파이널 카운터다운>, <빽투더퓨처>,<어바웃 타임> 그리고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입니다.
이 애니는 가장 발랄하고 상큼한 시간 여행물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시간 여행물이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과거로 돌아가서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하고 진지모드라면 이 애니는 여고생의 미소처럼 귀엽습니다. 시간 여행을 노래방에 사용하고 자신에게 사랑 고백한 친구의 고백을 되돌리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합니다. 특히 치아키의 사랑 고백 장면은 좌석이 들석일 정도로 박장대소를 하게 합니다. 정말 사랑스러운 장면입니다.
'마코토'는 치아키와 평생 캐치볼을 하면서 친구로 지내고 싶은데 연인이되면 고스케와 함께 캐치볼을 할 수 없기에 치아키의 사랑 고백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참 순수한 마음이죠. 사실, 이 친구와 연인사이의 갈등은 가장 흔한 사랑 소재입니다. 그런데 이걸 사랑을 쟁취하려는 목적이 아닌 피하려는 모습 자체가 사랑스럽습니다. 여기에 '마코토'가 워낙 개구지고 개그집니다. 엄청난 활력과 오지랖도 넓어서 고스케와 치아키를 짝사랑하는 여자 후배와 연결시켜 주려고 노력하죠. 캐릭터 자체가 활력 그 자체입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아직도 인기 있는 이유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애니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마코토 때문입니다. 마코토의 활력이 애니 전체를 쥐락펴락합니다. 번쩍 날아서 데구루르 구르는 마코토의 활력에 마음이 쏙 빼았겨 버립니다. 게다가 마코토는 참 순진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나중에 타임머신의 주인이 나타나서 나쁜 곳에 사용할까봐 노심초사 했는데 다행히도 마코토는 자신이 아닌 친구들을 위해 대부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학원물이라서 인기가 많은 듯하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되돌아갈 수 있다면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책임질 것이 없고 항상 소속감이 가득하고 주변에 친구들이 엄청 많은 그 시절을요. 저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중학교는 양아치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고 고등학교는 좋은 친구들을 가장 많이 만났지만 학업에 짖눌려서 살았어요.
저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초등학교에요. 이 애니는 그 꿈 많던 학창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 애니를 보면 그 학창 시절의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을 꽤 많이 느낄거에요. 싱그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애니 전체에 밝은 기운이 가득합니다. 여기에 노래도 엄청 좋습니다. 특히, 테마곡은 정말 많은 영상의 배경음으로 사용되고 있네요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시간 여행자의 정체가 밝혀지고 미래에서 기다리겠다는 귓속말은 심쿵하게 만듭니다. 사랑과 우정의 감정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던 시기의 맑음 마음이 가득한 애니입니다. 정말 아름답고 상큼한 애니입니다.
순수함이 10년이 지나도 이 애니를 다시 찾고 새롭게 찾게 만드는 힘입니다. 학창 시절은 그런 맑음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애니 속 학창 시절은 좀 비현실적이죠. 대학 입학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미래에 대한 꿈을 나누는 장면이 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긴 하지만 그리 깊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인 마코토는 미래를 찾으면서 애니는 끝이 납니다.
내가 뭘 해야 할지를 알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행복할까요? 적어도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있기에 전력투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코토는 그 에너지를 미래에 쏟으면서 끝이납니다. 동시에 우리 주변의 청춘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미래가 밝지도 정해지지 못한 채 바람이 부는대로 휩쓸리고 정착하지 못하는 모습들. 그래서 이 애니가 더 좋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맑고 밝은 타임슬립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학창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당신을 위한 명랑 청춘 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