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이 인기 있기 전부터 서촌의 터줏대감이었던 사진 갤러리 류가헌을 들렸습니다.
어떤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들렸다가 좋은 사진전을 보고 나오는 습관이죠. 지난 주 토요일에는 정택용 사진전인 '잠의 송(頌)' 사진전을 하네요. 송이라는 한자는 기릴 송이네요. 잠을 기리다?
부제를 보니 고공부터 농성천막까지 우리 시대의 '한뎃잠'들이라고 써 있네요. 사회다큐 사진전인가 봅니다.
이런 사회 다큐는 서문을 읽어 봐야 합니다. 사진만 가지고 그 사진이 무엇을 담은 건지 어떤 맥락인지 알기 힘들죠. 그래서 어떤 상황이고 어떤 상태인지를 서문을 통해서 읽어 보는 것이 좋죠.
예술 사진들은 주례사 같은 현학적인 서문이라서 대충 읽거나 사진을 다 보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다큐는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기에 서문에 메시지를 명확하게 담고 있습니다.
잠의 송 전시명은 루쉰의 풍자문 '밤의 송'에서 밤을 잠으로 바꾼 것이네요. 잠을 기릴 수 없는 사람들의 불편한 현실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전이네요.
문을 열고 들어가 봤습니다. 전국 수많은 곳의 농성장을 찾아가 그들의 농성 현장과 잠을 기록했습니다.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는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2003년 10월 22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오프닝 멘트>
시사 보도 라디오 DJ도 아닙니다. 영화 음악 DJ의 오프닝 멘트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현실의 도피처이고 판타지이지만 그 근간은 현실입니다. 요즘은 뉴스보다 현실을 더 올곧게 담는 모습에 영화가 언론이 되어 버린 느낌도 많이 드네요.
언론이 자기 역할을 못할 때 비언론인들이 언론 역할을 하게 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마치고 골리앗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정택용 사진전은 이 고공 농성 현장을 담은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최근 사진도 있고 10년이 지난 사진도 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왜 우리는 농성을 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건 낮은 곳에서 농성을 하면 사람들이 보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시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 목소리를 널리 멀리 알려야 시위의 효과가 더 커지죠. 그래서 많은 시위들이 도심에서 합니다. 주목 효과가 크니까요.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 올라가면 주목 효과가 큽니다. 특히, 중과부적으로 어려운 싸움이 될 때 높은 곳에서 시위를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는 거대한 광고판이 있습니다. 그 광고판 위에는 노동자가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서울시청에 들렸다가 몇 번을 봤습니다. 이 분들이 목숨을 걸고 고공 농성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세상에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죠.
언론이 자기 역할을 하고 이런 분들의 하소연을 잘 반영한다면 이런 위험한 시위는 좀 더 줄어들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시위할 시간에 다른 직장 알아 보는 게 더 현명하지 않아?"
이게 현명한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아니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말이죠. 이런 분들이 부당함에 저항하기 때문에 다른 수 많은 노동자들이 작게나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경영자 입장에서 문자로 해고 했다가 수년 간 저항하는 기륭전자 시위를 보고 덜컥 겁을 먹게 됩니다.
정작 기륭전자 해고자들에게는 수년 간 고통의 세월을 겪기만 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한국과 미국과 일본은 노동 유연성이 높아서 쉽게 해고 하지만 반대로 쉽게 고용 되기도 합니다.
분명, 양쪽의 목소리가 존재할 것입니다. 기업가의 목소리, 노동자의 목소리 모두 존재하지만 이 노동 문제가 일반인들에게 다가오는 이미지는 시위 현장의 사진만 덩그러이 놓여 있습니다. 자초지종은 안 보이고 이미지만 다가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진의 맹점이 그겁니다. 이 이미지만 봐서는 저 시위가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나 이 사진 한 장 한 장이 마음에 와 닿지. 보통 사람들은 시위를 했구나 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사진과 함께 기사로 많이 알려야 하는데 우리 언론들이 어디 그럽니까? 광고 때문에 기업가 입장만 전하거나 그냥 모른척하죠. 돈 되는 연예인 사진만 잔뜩 올리고요. 이는 포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사진으로 노동 시위 현장을 기록하는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이 분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시위 현장에서 쪽잠을 자는 분들의 고통은 순응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요즘은 "넌 왜 나처럼 순응하고 살지 쓰잘덱 없이 저항하냐"고 타박하는 세상입니다. 순응하는 게 자랑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죠. 염치가 사라진 세상에 도둑이 왜 도둑질 당하냐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세상이 되었네요.
몰염치의 세상 염치를 가진 분들이 저항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다큐 사진가들을 그래서 존경합니다. 이분들이 진정한 이타주의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