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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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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다 얼려 버리는 영화 '레버넌트'

썬도그 2016. 1. 18. 14:26

올해 아카데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때문에 흥행에 크게 성공할 듯합니다. 무려 4번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뭐 5번 후보에 올랐으나 못 받은 배우는 또 있긴 하지만 골든글러브에서 남우주연상을 3번이나 받고도 아카데미 남우상을 받지 못한 배우는 디카프리오가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이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벌써 아카데미 시상식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발표한 골든글러브에서 영화 <레버넌트>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디카프리오는 이전과 달리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에는 오스카상을 받을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 봤습니다.


<약육강식의 서부 개척 시대에 사는 인간 군상을 담은 영화 레버넌트>

영화 <레버넌트>의 배경은 19세기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입니다. 총을 쏘는 미국인들과 활을 쏘는 인디언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세력이 함께 미국에서 세력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인디언과 미국 개척자와의 전투도 있지만 미국에 넘치는 모피들을 수출해서 먹고 사는 장사꾼 세력도 있고 프랑스군까지 진출해 있습니다. 인디언 사이에서도 앙숙인 부족 관계가 있어서  같은 민족이라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인디언과 결혼한 미국인으로 인디언 수족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아내까지 죽여 버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과 함께 마을에서 도망친 글래스는 지리를 잘 안 다는 이유로 모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날도 모피를 모으던 중 인디언 수족과 앙숙 관계인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게 되자 보트를 타고 탈출을 합니다.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인해 많은 동료를 잃은 글래스 일행은 인딘언들을 피해서 육로를 통해 기지로 복귀하려고 합니다.

그 복귀 과정에서 글래스가 곰에 물리게 됩니다. 글래스의 심한 부상으로 인해 이동 속도가 지체 되자 리더인 헨리 대위(돔놀 글린슨 분)이 글래스가 죽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묻어주는 조건으로 2명의 동료를 글래스와 함께 남겨두고 기지로 갑니다.

매정할 수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은 피츠제널드(톰 하디 분)과 브리저(월 포터 분)과 인디언 아들이 글래스 곁에 남습니다. 심한 고통을 호소하지만 살려고 하는 의지로 살아 있던 글래스를 피츠제널드가 생매장을 하려고 하자 인디언 아들이 이를 제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츠제널드는 인디언 아들을 죽이고 살아 있는 글래스를 묻고 동료에게 거짓말을 하고 글래스를 남기고 떠납니다.

그러나 글래스는 악전고투를 하면서 기필코 살아 남아서 피츠제널드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 스토리 자체는 별거 없습니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담고 있는 복수극입니다. 스토리도 단순하지만 대사가 거의 없어서 영화가 무슨 드라마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미지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드네요



<살벌한 약육강식의 시대의 다큐멘터리 사진 같은 영화 레버넌트>

먹고 살기 위해 사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혹독한 자연의 환경과 같은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동물의 왕국 같은 느낌입니다. 19세기는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자비란 없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시대였죠. 그래서 미국인들은 원주민을 죽이고 원주민은 미국인들을 죽입니다. 

이 약육강식은 같은 팀내에서도 벌어집니다. 대위가 인간의 존엄성과 군대의 규율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지만 글래스 때문에 인디언들에게 공격 당할 것이 두려워서 글래스의 숨을 끊으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또 등장합니다. 피츠제널드가 브리저에게 글래스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치고 인디언이 쫒아 온다고 하자 함께 도망칩니다.  나중에 인디언이 쫒아 오지 않았단 것을 안 브리저가 피츠제널드에게 총구를 겨누지만  너도 무서워서 도망치지 않았냐는 피츠제널드의 타박에 고개를 돌려 버립니다.

분명, 인간은 평상시에는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합니다. 그러나 내 목숨이 걸린 상황이면 내 목숨을 걸고 동료를 지켜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브리저의 행동은 현재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동과 비슷합니다. 

영화 속 인물 대부분이 이기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이타적인 인물도 등장합니다. 수족 인디언이 상처 입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글래스에게 말의 뒷자리를 양보하며 상처를 치유해줍니다. 

반면, 그런 인디언을 짐승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서양인들도 보여줍니다. 제가 가장 크게 화가 났던 것은 그 부분이었습니다. 인디언을 같은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여기는 모습이 역하게 느껴집니다. 이 19세기는 모던주의 시대였습니다. 아군 아니면 적, 사람 아니면 짐승과 같이 세상을 이분법으로 봤습니다. 다양한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고 내가 주장하는 가치만 선하고 다른 가치는 다 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언은 미개한 족속 또는 짐승으로 여깁니다. 


영화에는 들짐승과 사람이 나오지만 모두가 짐승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주인공 글래스부터 피츠제널드까지 모두 살기 위해서 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디언은 서양인의 머리가죽을 벗기고 서양인인 인디언들을 노리개로 삼습니다. 이는 마치 먹고 살기 위해 들소를 사냥하는 늑대의 무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아들의 죽음을 복수하는 강한 부성애 또한 거대한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가끔 자신의 것을 나누는 이타적인 사람이 등장해서 피비린내 나는 스크린에 잠시 온기가 돋게 합니다.



<혹독한 자연과 사투를 버리는 디카프리오>

디카프리오 혼자 등장하는 장면도 많고 대사도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겨울철에 만신창이가 되어 혼자 살아 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디카프리오의 연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서서히 몸이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을 이겨내는 모습은 눈물겹기 까지 합니다. 

자연의 추위도 이겨야 하지만 자신을 쫒는 인디언들도 피해하 하는 이중고를 물고기를 날 것으로 뜯어 먹고 들소의 간을 먹고 말의 배를 갈라서 추위를 피하는 등의 혼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다만, 보통의 영화라면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많은 대사나 회상씬으로 칠했겠지만 이 영화는 대사도 없고 있는 대사도 인디언 대사이고 회상씬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또한,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 보다는 군대 혹한기 훈련하는 식으로 담다 보니 '정글의 법칙'이나 '진짜 사나이'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또 하나 비판을 하자면 이 영화는 작년에 아카데미 감독상과 촬영상을 받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감독과 엠마누엘 루베츠키 콤비가 다시 합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연출력과 촬영술은 기가 막힙니다. 초반 인디언의 습격 장면을 롱테이크로 담는데 놀라운 장면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메라가 정지해 있다가 배우가 말을 타자 말과 같은 속도로 카메라로 이동하다가 배우가 말에서 떨어지자 다시 배우를 카메라가 비춥니다. 마치 3D 액션 게임의 자유도 높은 카메라 워크를 보여줍니다. 이런 놀라운 촬영술과 함께 광할한 풍광을 고즈넉하게 담는 모습은 무척 좋습니다. 그러나 너무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한 모습은 좀 눈쌀을 지푸리네요.

예를 들어 디카프리오를 시종일관 클로즈업으로 담습니다. 자연 풍광은 광각으로 담고 주인공 얼굴은 클로즈업과 익스트립 클로즈업으로 담다 보니 좀 부담스럽다는 느낌도 강하게 드네요. 덕분에 디카프리오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많이 봐서 좋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클로즈업으로 담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대단했고 무난하게 오스카상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다만, 너무 오스카 상 받을 수 있는 연기일까?라는 잡음이 머리 속에 있다 보니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있네요


<짐승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노려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글래스는 죽은 아내의 환상과 만난 후 서서히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뜨끔했습니다. 그가 관객을 바라보는 눈이 저에게는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인가?"라는 원망의 눈빛으로 보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짐승과도 같은 세상.  육식동물의 터 싸움과 미국인들과 인디언 그리고 프랑스인과의  영토 싸움이 마치 늑대들의 영역 다툼으로 보여졌습니다.

글래스는 그런 영역 다툼의 짐승의 시대에 가족을 잃은 상처 입은 짐승의 눈빛을 관객에게 향합니다. 그리고 대답을 요구합니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인가?"  이원주의 근대사회 아래서 파괴된 인간성을 영화는 차분한 어조로 잘 담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는 다원주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착한편, 인디언은 나쁜편이라는 단순한 논리가 아닌 세상인 착함도 악함도 다 상대적이고 한 사람 안에서 착함과 악함이 공존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한국사회는 과연 다원주의 세상일까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조선족이라서 싫고 외국인 노동자라서 싫고 동성연애 한다고 싫고 내 의견과 다르면 다 빨갱이라는 이원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레버넌트>가 담고 있는 19세기와 21세기 한국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서 디카프리오의 원망어린 눈빛에 뜨끔했습니다 

영화 자체는 큰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짐승과 같은 생각을 가진 근대 사회의 부조리와 살벌함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모습은 꽤 볼만하네요. 물론 톰 하디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무척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눈이 계속 내리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마음까지 얼어버린는 느낌이네요. 

별점 : ★★☆

40자평 :  몸과 마음까지 얼려 버리는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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