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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새롭고 알차게 변신한 한국영화박물관

by 썬도그 201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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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건물 1층에는 한국영화박물관이 있습니다. 한국 영화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곳이죠. 이곳이 리모델링을 한 후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전과 달리 상설관과 기획관을 분리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상설관은 변하지 않는 공간이고 기획관은 수시로 변하는 곳입니다. 


기획관에 이어 상설관을 소개합니다. 입구에는 한국 100년 영화사와 세계영화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른 문화와 달리 영화는 역사가 짧습니다. 또한,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것도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세기 초라서 해외 문물이 빠르게 퍼진 것도 있겠네요. 


초기 영화 시나리오와 필름통이네요.



국내 최초의 영화인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의 사진이 가득합니다. 아쉽게도 아리랑은 필름이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자완장이네요. 저거 차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었어요. 종군 기자 복장도 보이네요. 



초기 영화 촬영 카메라입니다. 안양 촬영 스튜디오가 적혀있는데 예전에 안양에 영화 스튜디오가 많았나 보네요. 지금은 파주에 영화 촬영 스튜디오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드라마도 파주의 허름한 드라마 세트장에서 많이 촬영 되더라고요. 환경은 열라 열악하죠.  겨울에 한 번 놀러가 봤는데 핫백과 컵라면 뒹글 거리던데 정말 드라마를 날림으로 찍는 것 같은데 드라마를 보면 아주 멋지게 나오더라고요. 신기해요



새롭게 변신한 한국영화박물관은 이전보다 인포그래피 같은 정보가 많이 늘었습니다. 이 지도는 정말 반가웠습니다. 
고등학교 때 서울 도심의 개봉관을 쓸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대한극장에서 시작해서 스카라 명보 찍고 국도 아세아 극장 지나서 지금의 서울극장인 세기 극장을 지나서 피카디리와 단성사까지 갔던 것이 기억나네요. 


세기극장은 서울극장으로 이름을 바뀌었고 서울 최초의 복합 상영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기극장과 대한극장 주인은 모두 세기상사입니다. 대한극장은 70mm 영사기가 있어서 해외 유명한 영화를 많이 상영했고 그외의 외화는 서울극장에서 상영했습니다. 같이 상영하기도 했죠. 그래서 그랬는지 저 어렸을 때 영화관을 보면 이상하게 서울극장과 대한극장이 똑같은 영화가 걸리더군요. 

단성사, 스카라 명보, 아세아, 국도극장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인상이 남는 영화관은 국도극장으로 영화관 중간에 큰 난로가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그 큰 난로로 난방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덤으로 쥐도 참 많은 곳이였죠. 지금은 상상도 못하지만 예전 극장들은 쥐들이 참 많아서 영화 보다가 쥐가 튀어 나오기도 했어요.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서울극장 옆 종로 거리에서 대규모 시위를 해서 영화관 안으로 최루탄 냄새가 날아 들어서 콜로거리면서 영화를 본 기억도 나네요. 다 지나고 보니 추억이죠. 



예전의 대한극장이 정말 그립네요. 70mm 대형 필름을 상영했는데 무려 1,900석의 좌석이었습니다. 어마무시했죠. 
영화제 시상식도 자주 했던 곳이기도 했고요. 


서울시청 쪽에는 국제극장, 아카데미극장이 있었는데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한국 영화 1차 붐은 1960년대였습니다. 당시는 박정희 같은 독재자도 없었고 이승만이 하야한 후에 민주화 물결이 흐르던 시절이라서 영화 제작의 제약이 없었습니다. 폭발적인 영화 제작수의 성장과 퀄리티도 높아서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영화 붐이 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을 박정희부터 노태우까지 군인들이 대통령이 되면서 한국 영화는 저질 영화로 전락하게 됩니다. 



시네마스코프 영화 촬영 렌즈입니다. 영화에 보면 시네마스코프 비율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이 애용되고 있는데 그 화면비를 제공하는 카메라 렌즈네요. 

우리가 사용하는 DSLR과 달리 플라스틱이 아닌 금속 경통이 다르죠. 자동초점이 아닌 모든 초점을 수동으로 했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아야했고 그래서 금속 경통을 사용한 듯하네요



영화 촬영 카메라로 촬영한 필름은 영사기로 영사가 됩니다. 거대한 영사기에서 빛이 나오면 그 빛을 받는 스크린에 영화의 꽃이 핍니다. 



한국영화박물관이 이전과 달라진 것은 이전과 달리 영화를 지나서 그 당시의 문화를 아우르는 전시로 변신했습니다.
영화에 초점을 맞추다가 당시 문화 분위기로 확장했네요. 70년대 문화는 청년 문화죠. 통키타로 대표되는 청년 문화. 


그리고 80년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성인 영화에 대한 검열을 느슨하게 하자 성인 영화가 엄청나게 쏟아집니다. 신군부의 3S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성애 영화가 엄청나게 나옵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그리고 영화관에서는 애마부인 같은 성애영화가 어른들의 시선을 정치에서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럼에도 바람불어 좋은날이나 칠수와 만수, 바보선언 같은 사회 비판적인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 시나리오 원고네요. 많은 사람들이 본 어우동 그러나 전 미성년자라서 볼 수 없었습니다. 동룡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볼 수 있었겠지만 제 주변엔 그런 친구는 없었어요



이게 만원사례 봉투군요. 고래사냥이 매진을 기록하자 만원사례금을 넣어서 스태프들에게 제공했던 봉투라고 하네요. 영화 고래사냥은 정말 재미있는 영화에요. 지금도 동해의 고래사냥 촬영지인 남애항은 고래사냥 촬영지라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고 있죠. 그러나 남애항 가봤는데 영화 속 풍경 느낄 수 있는 곳은 싹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항구인 것은 틀림없어요



꼬방동네 사람들도 정말 좋은 영화죠. 이 영화도 80년대 삶을 박제한 영화에요. 이 영화의 콘티인데 요즘 콘티와 다르게 그냥 텍스트로 되어 있네요. 


한국 영화 제 2의 붐의 총성을 알린 것은 1999년에 개봉한 쉬리였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는 저질 영화라는 편견이 심했고 실제로 저질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80년대에는 한국 영화는 외화보다 영화 입장료가 무려 500원이나 쌌습니다. 

겨우 500원이 아닙니다. 외화는 2,500원, 방화라고 하는 한국 영화는 2,000원이었습니다. 엄청난 차이죠
그러다 쉬리 이후에 한국 영화들이 질적 향상이 일어나면서 관객이 크게 늘어납니다. 그리고 올드보이가 그 정점을 찍죠. 
해외 영화제에서도 많은 수상을 합니다.

지금은 한국 영화 등쌀에 외화가 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은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뛰어난 한국 영화 보기가 점점 더 힘드네요. 


1년 영화 관람객이 2억명을 넘었습니다. 한국 사람 1명 당 1년에 영화 4편 이상을 본다는 소리죠.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영화를 봐도 너무 본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비판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영화만 본다는 것이죠. 이는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평론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쇼킹하지만 과감한 발언으로 느껴집니다. 

한국에서 최고 영화 흥행작은 2014년 개봉한 명량으로 1761만 명입니다. 


1천만 관객을 넘긴 첫 영화가 실미도와 바로 태극기 휘날리며였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천만 영화가 2편이 연달아 터졌죠. 



이전에는 친구가 821만 명이었죠. 전 영화 친구를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조폭 영화라서 더더욱 싫었고요



90년대 후반을 보면 1천만이 아닌 100만 단위 그것도 211만명이 최고였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90년대 후반부터 CGV가 강변 테크노마트에 복합 상영관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이후 롯데와 CGV가 전국에 복합상영관을 우후죽순으로 만들어냈고 이후 전국에서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옵니다. 이제는 슬리퍼 신고 영화관을 가는 시대가 되었고 조금만 재미 있으면 500만은 기본으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로지 단일 개봉관 즉 영화관 1곳에서 상영해서 100만을 넘긴 영화들입니다. 1993년 서편제는 영화 보기 힘들었습니다. 예매 안 하면 못 보는 시대였죠. 영화 보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섰던 시대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보고 싶은 영화 못 봐서 발길 돌리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근 10년간 본 영화중 가장 뛰어난 한국 영화는 단연코 이창동 감독의 '시'입니다. 이 영화는 한국의 내새끼리즘과 불의를 참고 사는 한국인들의 저질스러운 습속을 고발한 영화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시'는 한국인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염치가 멸종된 한국 사회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괴물 같은 사회가 되어버렸네요



80년대는 비디오테이프의 시대이기도 했죠.



영화음악 코너도 있네요 


영화가 상영되면 영화 앨범도 함께 출시되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 주제가도 거의 없고 테마곡도 인기를 끄는 테마곡도 없습니다. 영화의 감흥을 길게 끌어주더 것이 영화 주제가였는데 요즘은 한국이나 외국 영화 모두 영화 주제가가 없습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상남자들이네요. 클린틴 이스트우드. 실베스타 스텔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남심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지금은 톰 하디가 21세기 대표적인 상남자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관련 책을 서점에서 뒤적여보면 생각보다 영화 관련 책이 거의 없습니다. 영화 책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런데 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에 영화 관련책이 엄청 많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한국영화 100선을 한 스크린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스크린에 100여편의 한국 영화가 다 보여지네요



영상자료원은 최근에 영화 평론가들에게 의뢰해서 한국 영화 100선을 선정했는데 그 영화들이 저렇게 각인되었네요



한국 영화 제작 편수가 1년에 200편이 넘네요. 외화 수입은 더 많은데 대부분의 외화가 소규모 개봉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재개봉도 엄청나게 많아요. 재개봉은 좋은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한 영화도 있지만 IPTV에서 재개봉했다는 이유로 영화 대여료를 높이 받으려는 꼼수도 있다고 하죠.


영화 스크린숫자는 2천년대 초부터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2009년에 2천개관이 넘어셨죠. 언제 저거 정리될 것입니다. 영화관 텅텅 빈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거든요



바뀌지 않는 곳도 있는데 바로 영화 제작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 원리를 설명하는 곳입니다



영화는 사진을 이어붙인 활동 사진이죠. 1초에 60장이면 60프레임 18장이면 18프레임이라고 합니다. 영화는 24프레임입니다. 영화는 잔상효과를 이용한 매체입니다. 정지된 사진 여러장을 빠르게 돌리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를 이용한 매체입니다. 그런 착시 효과를 이용한 장난감이 프락시노스코프가 있었습니다.



80년대 학교 앞에서 많이 봤던 뷰마스터도 미니 영화관이었죠. 


한국영화박물관에 새로 생긴 코너입니다. 한국 영화상의 트로피를 소개하고 있네요. 유독 한 상만 빛이 나고 있네요. 



바로 청룡상입니다. 대종상이 막장으로 흐르면서 오로지 청룡상만 빛을 내고 있네요. 꼰대들이 대종상을 운영하니 잘 될리가 없죠. 


한국영상자료원은 필름보관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영화 필름들이 가득합니다. 고맙습니다. 영상자료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분들이 고맙습니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어서요.

국내 최고의 관공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네요
한국영화박물관도 들려 보시고 지하층에 있는 시네마테크에서 좋은 영화 무료로 관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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