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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권위주의의 참혹함을 담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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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의 참혹함을 담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

썬도그 2015.12.16 12:45

스탠리 큐브릭 전시회와 함께 상암동 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전을 상영했습니다. 이중에서 이전에 보지 못한 스탠리 큐브릭 영화를 몇편 봤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풀 메탈 자켓'과 함께 '영광의 길'은 군대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두 영화에 흐르는 기조는 비슷합니다. 군대라는 권위주의의 최첨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시선이죠. '풀 메탈 자켓'이 인간성 말살의 현장을 훈련소라는 장소를 통해 보여준다면 '영광의 길'은 최전선의 참혹스러운 인간성 실종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광의 길은 1957년 제작 상영된 영화로 고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흑백 영화이고 87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의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도 복잡하지 않지만 무게는 묵직합니다.

1차 세계대전은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참호전이라고 하는 이 전쟁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서로의 참호에서 무의미한 돌격만 하다가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총 사령관 브롤라드는 프랑스군에게 자신의 승진을 위해서 무모한 것을 알지만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개미고지를 탈환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닥스 대령(커크 더글라스 분)은 교착 상태인 이 개미고지에서 돌격 명령을 내리면 병사들의 50%이상이 사망한다고 말하지만 총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병사들의 목숨은 중요하긴 하지만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총 사령관의 행동을 부관인 소령이 부축입니다. 모든 책임은 총 사령관이 지겠다는 말에 마지 못해 닥스 대령은 공격 명령을 받아 들입니다. 


밤새 고민을 하던 닥스 대령은 중위를 불러서 야간 정찰을 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렇게 3명의 병사가 철조망을 뚫고 적진을 살펴보러 정찰에 나갑니다. 그런데 이 정찰 과정에서 중위가 던진 폭탄에 아군이 죽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상병은 대령에게 보고하려고 하지만 눈치를 챈 중위가  전쟁에서 장교와 사병의 말 중에 누구 말을 믿겠냐면서 허튼 짓 하지 말라고 찍어 누릅니다.

전형적인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모습이죠. 


그렇게 정확한 시간에 맞춰서 무모한 돌격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아군이 쳐 놓은 철조망도 넘지 못하고 후퇴합니다. 
이에 화가 난 브롤라드 총 사령관은 전화를 걸어서 아군 진지를 향해서 폭격을 하라고 요청압니다. 이에 포병들은 아군 포격이 맞냐고 재차 묻고 정 포격을 하고 싶으면 규정대로 서면으로 명령하라며 명령을 거부합니다.


전쟁은 대패하고 이 개미고지 패배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합니다. 이에 브롤라드 총 사령관은 돌격 명령을 거부한 부대 및 모든 부대에서 가장 나태하고 겁쟁이 같은 아무나 차출해서 보내라고 합니다. 이에 각 중대들은 제비 뽑기를 하거나 정찰 나갔다가 부하를 수류탄으로 죽인 중위가 있는 중대에서는 목격자인 상병을 선발하거나 별 이유 없이 선정 된 3명을 차출해서 보냅니다. 



이들은 별 이유도 없이 또는 악의적으로 지목되어서 차출된 병사로 무고한 병사입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군사 재판을 열고 풀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이들에게 이번 개미고지 탈환 실패에 책임을 아주 진중하게 묻습니다. 이에 변호인 격으로 나선 닥스 대령은 이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 항변을 하지만 검사와 판사는 이를 무시합니다. 

이 재판 장면은 블랙코미디 그 자체입니다. 아니! 이들은 그냥 부대에서 제비뽑기 등으로 차출된 것이 죄라면 죄지만 무모한 공격 명령을 내린 총 사령관에 책임을 묻지 않고 애먼 말단 사병에게 그 죄를 묻습니다. 


어떤 변론도 인정 못하고 니들이 죄가 없음을 스스로 증명함을 넘어서 어떠한 변론도 필요 없다는 식의 군사 재판장은 상식이 전혀 없는 인간성 제로의 현장으로 비추어집니다. 그렇게 이들은 총살형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냥 형식적인 재판인 줄 알았던 3명은 총살형이 선고되자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이런 사형수에게 신부가 찾아오자 한 사형수가 주먹으로 신부를 팹니다. 이에 다른 사형수가 말리면서 신부를 팬 사형수가 크게 다칩니다. 그러나 아랑곳 하지 않고 사형 집행은 진행됩니다. 부상을 당한 사형수는 사형 직전에 뺨을 때려서 깨운 후에 사형을 시킵니다. 

영화를 보면서 황당하더군요.
그런데 이 황당한 사건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험프리 코브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로 프랑스군에서 일어났던 일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총 사령관은 말합니다. 이게 관행이야!


이런 몰상식이 지배한 잔혹한 세상에도 선한 사람은 있습니다. 닥스 대령은 사형수를 변호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목격자 상병을 선택한 살인마 중위에게 사형 집행을 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자신의 손으로 선택한 학교 친구이자 말단 사병을 직접 쏘게 해서 양심이라는 최후의 인간성의 마지노선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브롤라드 총 사령관의 아군 폭격 명령을 내부 고발한 포병들의 서명이 담긴 것을 다른 사령관에게 보여주면서 브롤라드 총 사령관의 무책임함과 무능력을 고발하죠. 



전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을 되돌아 봤습니다. 상관이 명령한 것이 명명백백한데 그 책임을 말단이 지고 물러나거나 자살하는 모습을 숱하게 봤습니다. 국정원의 천인공노할 정치 공작들과 내부 사찰 등에서 책임을 잘 지지도 않지만 책임이 질 일이 있으면 말단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책임을 지는 것을 봤습니다.

어디 이게 한 둘이겠습니까? 한국의 수 많은 기업과 학교 군대 모두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곳이 많죠. 
희생양!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양!을 통해서 자란 나라일까요? 그 희생양들이 흘린 피 비린내가 언젠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귄위주의라는 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 주변에 희생양이 흘린 피가 흘러야 하나 봅니다. 

이런 잔혹한 시스템이 다시 견고해지고 있는 한국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영화 '영광의 길'은 액션 장면이 주가 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참호에 나와서 공격하는 장면을 달리샷으로 촬영했는데 한 번도 편집하지 않고 롱테이크로 담은 장면은 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명장면입니다.



그렇게 사형집행이 끝나고 무거운 마음으로 부대로 돌아온 닥스 대령은 술집에서 시시덕거리는 병사들을 봅니다. 무대에 여자라도 올라와서 쇼를 할 기세 같습니다. 그렇게 적군인 독일 여자가 무대에 올라오고 술집은 휘파람 소리가 가득합니다. 

그렇게 독일 여자는 눈물이 그렁거린 상태에서 독일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그 노래를 모든 병사들이 따라 부르면서 같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 한 장면은 이 영화가 지향하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짐승 이하의 삶을 살고 그런 시스템을 운영하는 군대지만 그 군대를 구성하는 것은 짐승이 아닌 사람, 그것도 적군도 사람임을 인정하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지루한 영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귄위주의가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 지를 똑똑히 목격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귄위주의는 희생양의 고혈을 빨아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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