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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지루하게 생긴 영화입니다. 누가 봐도 볼 생각이 잘 안 드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입니다. 스토리도 그렇고 유명 배우도 나오지 않습니다. 감독은 좀 유명한데 오히려 아트하우스 영화에서 인기 높은 감독이라서 지루한 영화라고 느껴지네요

그래서 1998년 개봉 당시 안 봤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강렬했습니다. '강원도의 힘'? 강원도의 힘이 뭐지? 그럼에도 안 봤습니다. 왜냐하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재미를 모를 때였죠.

지금은 다릅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 않더라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더라도 홍상수 감독이 만들었으면 무조건 봅니다. 그것도 개봉 첫날. 이렇게 제가 홍상수 영화에 빠진 것은 홍상수 영화에 가득 담긴 식자들의 위선에 대한 조소 때문입니다.



홍상수 영화의 원형질, 강원도의 힘

지숙(오윤홍 분)과 은경, 미선은 강원도로 그들만의 여행을 갑니다. 강릉역, 오색 약수터, 낙산사를 싸돌아 다닙니다. 전형적인 대학생들의 여행이죠. 이 여행길에 한 경찰관이 동행하게 됩니다. 민박을 안내해준 경찰관의 차량에 탑승해서 강원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일행은 오색약수터 앞에서 술을 마시게 됩니다. 술자리에서 미선은 지숙의 불륜을 타박합니다. 유부남과의 사랑을 비난합니다.  지숙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유부남과 사랑을 나누고 있나 봅니다. 

그런 지숙에게 유부남인 경찰관이 빠지게 되고 두 사람은 은경, 미선 몰래 사랑을 나눕니다. 
다음날 세 명의 여대생은 여행을 끝내게 되지만 며칠 후에 지숙은 그 강원도 경찰을 만나러 갑니다. 영화 전반부는 지숙이 주인공이 되어 지숙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이지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대학 강사인 유부남 상권이 나옵니다. 상권은 시간 강사 생활 보다 안정적인 대학 교수가 되고 싶어서 강원도의 한 시립대학교에 응모를 합니다. 상권은 유부남이지만 제자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헤어졌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제 막 교수가 된 후배와 강원도 여행을 갑니다. 

영화 '강원도의 힘'은 홍상수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만든 첫 작품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데뷰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여러 명이 시나리오를 씁니다. 그러나 '강원도의 힘'은 홍상수 감독 혼자 쓴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홍상수 스타일의 영화로써는 데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먼저 '강원도의 힘'부터 최근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까지 어떤 영화를 꺼내 봐도 내용이 비슷합니다. 유부남의 불륜, 식자들의 위선 이 2개가 모든 영화의 소재로 등장합니다. 주제도 거의 비슷합니다. 우리들의 일상 속의 위선적인 행동을 블랙 코미디로 담기 때문에 어떤 영화를 봐도 내용이 비슷하고 느낌도 비슷합니다. 

그럼 왜 비슷한 영화를 계속 보느냐? 네 비슷은 하지만 똑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지만 자세히 보면 그날이 그날 같지만 그날이 그날은 아닙니다. 약간씩 다르죠. 그 비슷한 일상 속의 다른 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홍상수 영화의 재미입니다. 그래서 반복 속에서 차이를 찾는 재미가 홍상수 영화를 끊임 없이 보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영화 '강원도의 힘'은 홍상수 영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작점을 가장 최근에 봤다는 것인데 놀랍게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와 거의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 놀랍네요. 마치, 지난 주에 개봉한 새로운 홍상수 영화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로 영화 작법이나 스토리는 비슷해서 너무 생생하네요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는 불륜을 저지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막장 드라마의 흔한 소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륜을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게 참 신기합니다. 보통, 친구가 불륜을 저지르면 친구니까 따끔하게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이고 그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상처받을 수 있다고 지적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습니다. 미선이 오색약수터 근처의 술집에서 지숙의 불륜을 지적하는 것 같지만 그건 지숙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닌 지숙을 공격하기 위한 말을 하다가 툭 하고 내던집니다. 상처를 주기 위해 유부남과의 사랑을 지적하죠. 

단, 한 명이라도 지숙의 그런 불륜을 지적하고 그러지 말라고 제동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대학 강사인 상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친한 후배가 불륜을 감지하지만 그걸 타박하지 않고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불륜의 사랑의 아픔을 달래 주러 강원도로 여행을 갑니다. 

참 이상하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고 상투적일 정도로 이 풍경이 실제입니다. 보세요. 우리 주변에 수 많은 불륜 남녀들 그 사람들에게는 수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걸 알고도 모른 척하고 뒷담화나 술안주로 활용할 뿐이죠. 한 번은 제가 친구의 불륜을 지적했다가 술자리 분위기가 엉망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 5명의 친구 중에 나만 불륜이 나쁜 것이라고 지적하는 모습에 제가 놀랬네요. 친구들이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한 참을 생각했던 시간이었네요. 그리고 내가 별난 놈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다들 그렇게 모른척 하고 위선을 떨면서 사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식자들의 위선에 구역질이 나다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유부남입니다. 그것도 먹물을 꽤 들이킨 대학 교수나 유명한 영화 감독 등의 식자층이 많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인격이 높을까요? 아닙니다. 하버드 대학 나온 강용석 변호사 같은 사람을 보면 지식의 높이가 인격의 높이가 될 수 없습니다.

어제 대학교수들의 [단독] '남의 책 표지만 바꿔 출간'..교수 200여명 사법처리(종합) 를 보면서 한국의 대학 교수라는 사람들의 평균적 인격이 참으로 궁금해졌습니다. 사회 지도층 같은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아주 추접한 짓들을 많이 하죠. 인분 교수는 말을 할 것도 없고 수 많은 악행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릅니다. 제자라는 을의 고혈을 빠는 교수들 또 얼마나 많습니까. 


대학 강사인 상권은 전형적인 식자들의 위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부남이면서 몸 파는 여자들을 돈을 주고 사고 불륜도 저지릅니다. 성에 대해서 아주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설악산에서 한 여자를 꼬시려고 하는 등 발정난 개 마냥 여색에 취해있습니다. 이런 인간이 무슨 사랑을 논하겠습니까. 그냥 몸이 낄낄거리는 여자의 몸을 쫒을 뿐입니다. 

이런 인간들은 인간이 발정기가 없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죠. 

그런데 성에 대해 관대하고 문란한 이 인간도 세상 부조리에 대한 분노심은 높습니다. 가장 웃겼던 장면은 설악산에서 지나가다 만난 여자와 커피 한 잔 할 자리를 마련 했는데 여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먼저 가버립니다. 그 여자를 설악산 리조트 입구에서 만났는데 어떤 남자와 함께 있습니다. 보통 모른척하고 지나치는 데 상권은 오지랖이 넓은 건지 여자에게 다가가서는 아까 왜 약속을 안 지켰냐고 타박을 하죠. 

더 웃긴 것은 그 여자가 설악산에서 변사체로 발견 되었다는 것을 신문에서 보고, 공중전화로 함께 있었던 남자 이름을 제보합니다. 자신의 위선은 안 보이고 남의 위선에는 참지 못하는 모습이 딱 우리들 모습입니다. 물론, 제 모습이기도 하고요.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권금성에서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곳에 올라간 남녀 한 쌍을 보던 상권과 후배는 저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이 왜 그 사실을 모르나 몰라"라고 후배가 말하자 상권은 "저런 사람들은 몰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육체적으로 우리와 다른 것 같아. 그 다른 뭔가가 그렇게 해도 괜찮다라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타박하는 후배와 상권. 그러나 이 말은 자신들에게 대입할 수 있습니다. 상권은 불륜이라는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삐긋하면 가정이 파탄나는 것을 알면서도 육체적으로 다른 사람인지 그렇게 해도 괜찮다라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런 위선덩어리들의 향연이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요 소재이고 그 위선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매일 위선과 가식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SNS라는 새로운 거울이 등장하면서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는 행동들을 하죠. 

또한, 일상에서도 수 많은 위선적 행동들을 합니다. 남을 손가락질 하는 잣대를 그대로 자신에게 대입하면 부끄러운 행동들을 참 많이 합니다. 다만, 그걸 우리는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일탈의 강원도에서 다시 일상의 도시로 돌아오다

두 사람은 불륜에 힘들어하며 헤어지게 되고 그 쓰라림을 치유하기 위해 일탈의 공간인 강원도로 향합니다. 요즘은 예전만큼 못하지만 강원도의 일탈의 공간이었습니다. 각박한 일상이 펼쳐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떠나서 자연의 향을 담뿍 느낄 수 있는 곳이 강원도입니다. 

그래서 지숙과 상권은 강원도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넓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흔한 강릉에 기점을 두고 설악산과 오색약수터 낙산사 등을 지나갑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비슷한 시기에 있었지만 만나지는 못합니다. 다만, 상권이 지숙이 쓴 낙산사의 기와에 쓴 글을 보고 짐작을 할 뿐이죠. 

스포일러 같아서 안 적었지만 알아도 큰 지장이 없기에 밝히자면 지숙과 상권은 제자와 스승으로 불륜 관계입니다. 지숙은 상권을 잊으려고 노력하는지 유부남 경찰관도 만나고 기와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어머니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일탈적인 강원도를 떠나 서울에서 다시 만납니다.

마치 어항 속 금붕어처럼 아무리 발버둥치려고 해도 다시 불륜이라는 어항으로 회귀합니다. 
다만, 지숙은 자신의 사랑에 힘겨워 합니다. 불륜이라는 것도 알고 그 피해가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 오는 것도 알기에 벗어나려고 어항을 탈출하지만 결국 다시 어항으로 돌아옵니다.

어항에서 탈출한 금붕어를 설악산 길가에서 만난 지숙은 그 금붕어를 잘 묻어줍니다. 
그리고 지숙의 영혼은 사멸 되어버립니다.  상권은 옆집이 주고 간 2마리의 금붕어 중에 
강원도 여행을 갔다 온 후 1마리만 남은 금붕어를 들여다 보면서 영화는 끝이납니다. 1마리 밖에 남지 않는 금붕어를 보면서 상권은 자신을 돌아 보게 될까요?

제 삶의 경험으로는 한 번 바람핀 놈은 평생 핍니다. 반성이나 자신을 돌아보는 인간이 아니기에 그냥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영화 자체는 금붕어를 메타포로 사용하고 같은 공간을 두 불륜 남녀가 함께 하는 모습은 유려하지만 다른 홍상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다른 홍상수 영화들이 이 영화의 자기 복제 영화들이죠. 

첫 홍상수표 영화라서 그런지 에너지는 아주 강하네요. 그리고 너무나도 상투적이지만 그 상투성이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담은 상투이기에 거울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주인공을 손가락질 하면서 나의 위선을 돌아보게 되네요.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의 위선을 수시로 떠올리면서 낯 부끄럽게 하네요
그게 바로 홍상수표 영화의 힘입니다. 그 홍상수 영화의 시작점이자 원형질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영화가 '강원도의 힘'입니다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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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5.11.26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위선은 애써 모른척하고 합리화 시키나 남의 위선에는 분노하는..
    저도 가지고 있는 부끄러움입니다...

  2. BlogIcon 알란파커 2015.12.25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봉17년이 지난 방금 봤어요.
    인간은 그냥 그런 존재인거 아닐런지
    위선도 일부분이죠.
    식자층이라 구분할 필요는 없을듯.
    대부분의 사람들 얘기네요.

  3. BlogIcon 2016.02.05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살인자보다 위선자를 더 싫어하는 우리 와이프의 마음, 저도 닮아가는 중이네요.

  4. 홍상수팬 2019.07.22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은 홍상수 영화에 평가 중 가장 좋은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식자층이 갖는 위선의 강도가 더 쎄다는 글쓴이 분의 댓글은 더욱 적절한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