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유난히 나이 들어가는 것을 오류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어려보인다는 것이 극칭찬으로 생각하는문화가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예전엔 안 그랬습니다. 예전엔 어려보인다는 것이 칭찬이라기 보다는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으로 여길 때도 있었습니다. 동안이라고 하면 그냥 하나의 묘사였지 칭찬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동안이 칭찬이 되어버렸네요. 아마도 이런 변화는 우리 몸을 개조할 수 있기 시작하면서 시작 된 듯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몸에 대한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무례한 행동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우리 몸을 우리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성형 선진국인 한국은 몸을 찰흙 인형처럼 형태를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은 몸에 대한 멸시와 과시가 흔해졌습니다. 이 몸에 대한 과시와 멸시가 자연스워진 가운데 늙어가는 것을 죄스러운 문화까지 생겼네요
나이든 사람을 옛날 사람이라고 말하는 농담을 보면 그 기저에 깔려있는 젊음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젊어지길 원합니다. 하지만 전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너무나 어리숙하고 미숙한 것이 많았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왜 죄스러워 해야 할까요? 나이 들어가는 것이 좋은 점이 많습니다. 경험이 많기 때문에 어리숙한 판단을 하지 않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자만감이 너무 넘칠 정도로 세상에 대한 깊은 관조가 생깁니다. 물론, 여기서 오만이 함께하면 개저씨가 될 수 있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게 아닙니다.
늙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종교가 된 한국 사회에서는 늙어가는 것을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이런 늙어가는 것에 대한 괄시를 한 방에 날려주는 영화를 봤습니다.
70살의 늙은 인턴의 재취업 이야기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 분)은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의 부사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정년 퇴임을 하고 아내와 사별한 후 흔하디 흔한 여유로운 그러나 지리멸렬한 은퇴의 노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일주도 하고 새로운 것을 해보지만 그것도 잠시 뿐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지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잘나가는 인터넷 쇼핑몰 회사인 '어바웃 더 핏'에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인 '시니어 인턴'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면접에 응시를 합니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회사에서 오랜 근무를 한 점이나 면접에서도 꽤 좋은 점수를 받은 벤은 '어바웃 더 핏'에 입사를 합니다. 복장은 자유복이지만 휴일도 면도를 하는 깔끔한 회사원의 삶이 지문처럼 몸에 베어버린 벤은 양복을 입고 출근을 합니다.
이런 '시니어 인턴'프로그램을 얼떨결에 허락한 젊은 여사장인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은 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6주만 운영하고 폐기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이 은퇴자들의 재취업 프로그램인 시니어 인턴들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정중히 대하고 내보낼 생각입니다. 줄스 여사장의 일을 돕는 인턴이 된 벤은 줄스가 편한 부서로 옮겨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렇게 벤과 줄스는 사장과 인턴이라는 독특한 관계로 회사 생활을 합니다.
18개월 만에 250명의 사원을 이끄는 잘나가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게 된 줄스는 하루 하루가 바쁩니다. 그러나 이 나이 많은 인턴에게는 일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벤은 주변의 젊은 동료들과 함께 부동산 상담이나 이성 문제 상담을 해주면서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면서 인기를 끕니다. 여기에 일을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사장이 싫어하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처리하거나 사장의 운전기사가 술을 먹는 모습을 보자 조용히 타일러서 운전을 못하게 합니다.
이런 벤의 솔선수범과 뛰어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상황 대처 능력을 줄스가 알아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인터과 사장의 관계를 돈독하게 쌓아갑니다. 영화 자체는 역동적인 스토리가 있지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잘나가는 인터넷 쇼핑몰 여사장이 된 줄스가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하는 갈등이 가장 주된 갈등입니다. 이 갈등을 벤이라는 70살의 노인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포근한 마음씨와 자신의 어깨를 빌려주면서 복잡 미묘한 상황에서 진퇴양난이 된 상대적으로 어린 여사장을 다독여주는 내용입니다.
노인의 품격을 보여주는 영화 '인턴'
1분마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어여쁜 여배우의 곱디 고운 자태가 휘날려서 감탄을 하면서 본 적은 있지만 영화 인턴에서는 '앤 해서웨이'도 아름답긴 하지만 70살 노인의 품격에 감탄을 하면서 봤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인 벤은 자상함과 너그러움과 카리스마와 신사의 품격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노인입니다.
제가 감탄한 이유는 내가 그렇게 찾던 그렇게 늙고 싶은 노인의 롤모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나이드는 것을 추하게 여기게 하는 못된 생각들에 대한 혼구녕을 내는 노인의 품격을 영화 내내 품어내고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을 우리는 쾌쾌한 냄새가 나고 꼰대짓이나 하면서 "내가 니 나이 때는" "왕년에 내가 말이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지리멸렬하고 씨알도 먹히지 않는 교장 훈화 같은 지청구를 읊어되는 속물들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의 노인들을 보면 이런 노인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벤은 다릅니다. 벤은 품격 그 자체입니다. 오랜 시간의 직장 생활에서 나온 몸에 벤 약속 관념과 상관에 대한 예의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일처리 뿐 아니라 젊은 동료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는 인자한 할아버지 이상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우는 여사장에게 손수건을 빌려주는 신사다움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우리 주변에 거주하는 슈퍼히어로입니다. 벤이 이렇게 여유롭고 너그럽고 이해심 많을 수 있는 이유는 벤의 환경이 여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긴 사회 생활을 통해 은퇴 자금이 넉넉하다는 것과 함께 직장 생활을 돈을 벌 목적이 아닌 잉여 인간이 아닌 아직도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채우는 기회로 생각하기 때문에 해고에 대한 공포심이 전혀 없습니다.
벤 자체가 여유롭기 때문에 회사 생활도 여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벤은 여유로움 속에서도 상사에 대한 의전이나 매너는 철저하게 잘 지킬 줄 아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어른다운 어른입니다. 이런 '어른다운 어른'을 통해서 저를 포함한 많은 관객은 벤의 매력에 푹 빠집니다. 저렇게 늙어야 해!라는 생각이 영화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미래의 모습을 벤에게서 찾아겠다다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벤이라는 캐릭터에 푹 빠졌습니다.
대화가 단절된 한국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 '인턴'
영화는 케익 같이 달달하기만 했습니다. 유머라는 시럽이 잔뜩 뿌려진 단맛만 나는 영화라서 다이나믹함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인턴은 영화 외적인 쓴맛이 뿌려집니다. 그 영화 외적인 맛은 바로 한국 사회라는 쓴맛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사장과 70살의 인턴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수평적 관계라고 해서 서로에게 반말하는 게 수평적 관계는 아닙니다. 수평적 관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줘야 합니다.
줄스는 여사장이지만 이 나이 많은 인턴을 깎듯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반면 나이 많은 벤은 여사장이 퇴근하지 않자 자신도 같이 여사장과 함께 회사에 남아서 근무를 합니다. 이런 서로에 대한 존중감을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힘듭니다. 나이도 많고 계급도 높은 상관은 명령 내리기 바쁘고 자기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아랫 사원들은 상사 눈치만 보다 퇴근도 못하고 주말에도 상사와 함께 등산을 하는 등의 고충을 겪죠. 물론, 많이 바뀌었다고 말들을 하지만 아직도 한국은 수직적인 군대문화가 학교, 직장, 모임에 모두 박혀있습니다.
인턴은 수평적인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에 치어서 사는 여사장에게 비행기 1등석에서는 노트북을 덮고 즐기라는 조언을 해주고 그 조언을 아무 꺼리김 없이 젊은 여사장은 받아 들입니다.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쿨한 모습들입니다. 나이 많다고 퇴물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나이든 사람의 지혜를 요청하고 그런 요청에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를 내세우지 않고 성심성의껏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줍니다.
이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를 2시간 내내 보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서글퍼지네요. 왜 우리는 저런 관계를 만들 수 없을까? 왜 우리는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살까? 왜 한국 사람들이 끼리끼리 동년배끼리 놀겠어요. 나이 차이가 나면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나이 많다는 별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대접 받으려고 하고 젊은 사람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금전 지출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내야 한다고 으레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서로의 목적이 맞아야 만나지 아무 목적 없이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들과 길고 진솔한 대화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 이 달달한 아이스크림 같은 영화를 한국 분들이 꼭 봤으면 하네요
낸시 마이어스의 따뜻한 시선이 가득한 영화 인턴
낸시 마이어스 여성감독은 따뜻한 영화 만들기의 선수입니다. 2003년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과 2006년 '로맨틱 홀리데이'라는 달달하고 따뜻한 영화를 잘 만들죠. 이 영화 '인턴'도 여성 감독 특유의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아주 잘 잡아냈습니다. 이런 섬세함이 영화 인턴이 크고 복잡한 이야기를 전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두근 두근 뛰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이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을 봐도 별 느낌이 없는 감수성이 발달하지 않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짝이는 찰나를 영원히 간직하고 기억하는 섬세한 감성을 가진 분들이 보면 2시간 내내 훈훈한 기운이 감돌 것입니다. 영화관에 가끔 오는 듯한 옆자리에 아주머니는 졸면 어떻하냐면서 아무 영화나 골라서 본듯한데 2시간 내내 연신 감탄사를 내면서 보시네요.
여자분들이 참 좋아할 영화이자 저 같이 사회 문제로 까지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분들에게도 좋은 영화입니다.
곱게 늙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희망이 담긴 영화라서 전 어떤 영화보다 좋았습니다. 나이 차이가 실제로도 많은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의 환성적인 캐미도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는 나이들수록 더 잘 생겨져 가는 것 같네요. 오래 오래 사셔서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해 주세요.
별점 : ★★★☆
40자평 : 늘어가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노인의 품격이 가득한 영화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