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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같은 사람과 장소라도 우연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by 썬도그 2015.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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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수 감독 영화는 미드처럼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습니다. 매번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담고 있어서 1편의 영화만 봐도 홍상수 영화를 다 봤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하나의 확고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한 마디로 정의하면 거울과 같은 영화들입니다. 특히 먹물들이 여자 앞에서 펼치는 허세 작렬의 쇼잉의 추태스럽지만 낯설지 않은 우리의 술자리의 허세를 관찰 카메라를 설치해서 보는 듯한 낯부끄러움과 함께 실소가 가득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의 블랙코미디를 홍상수 감독은 아주 잘 만듭니다. 추석에 개봉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도 이전 홍상수 영화와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입니다만 그럼에도 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게 하는 것은 같은 듯 하면서 다른 그 약간의 차이점 때문에 다시 발길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하네요.

 

사람과 장소가 같아도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수원에서 영화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를 하기 위해 예술영화 감독 함춘수(정재영 분)은 수원에 도착하고 난 후 하루 일찍 도착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하루 전체가 비어버린 함춘수 감독은 수원 화성 행궁을 거닐다가 '참 예쁘신' 윤희정(김민희 분)라는 화가를 알게 됩니다.

보통의 먹물 꼰대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계급을 노출하죠. 함춘수 감독도 영화 감독이라고 자연스럽게 소개를 하면서 윤희정의 경계심을 누구러뜨림을 넘어서 윤희정과 함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그렇게 친해진 두 사람은 윤희정의 아틀리에에 방문해서 함 감독의 윤희정의 그림에 대한 평을 듣고 일식집에서 소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선약이 있는 것을 깜박했다면서 윤희정이 선배가 운영하는 카페에 함 감독과 함께 방문해서 2차로 막걸리를 마십니다.  그 다음날 함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상영 한 후에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서울로 올라갑니다.

 

 이전 영화들도 많은 장소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영화 촬영 장소가 10곳도 안 됩니다. 주요 장소는 화성 행궁, 커피숍, 윤희정의 아틀리에, 선배의 카페와 윤희정의 집 앞, 강당 이렇게 10개가 되지 않는 장소만 나옵니다. 따라서 연극과 같다는 느낌이 더 확고하게 듭니다. 이렇게 장소를 제한한 이유는 이 영화가 사람과 장소라는 공통 소재라는 재료를 넣지만 그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어떻게 다른 맛의 음식이 나올 수 있는 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1장과 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되고 2장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제목을 달고 1장과 2장이 동일한 인물과 동일한 장소와 비슷한 대사를 넣어서 소개합니다. 마치 틀린그림찾기 같이 1장과 2장은 비슷하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그 인물의 성격이나 대사는 살짝씩 다릅니다. 이는 홍상수 영화의 미덕인 '반복과 차이'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화 작법입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죠 매일 똑같은 루틴으로 살지만 그 똑같은 루틴 안에서 작은 변화에서 삶을 느끼고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죠. 이번에는 아에 대놓고 2개의 비슷한 그림을 펼쳐 보이고 어디 어디가 틀린지 맞춰보라는 식으로 구성을 했네요. 그렇다고 뭐가 똑같고 다른지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그 다름만 알면 많을 것을 발견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운칠기삼? 우연 7, 계획 3으로 이루어진 삶

 인생은 우연의 연속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우연에 의미를 꼭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필연이라고 느낄 뿐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이번 영화에도 먹물들의 꼰대짓과 허세 작렬의 술자리는 보는 관객의 마음을 오글거리게 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윤희정을 보고 참 예쁘다만 남발하는데 그걸 또 받아들이면서 교태를 부리는 윤희정의 모습을 보면 오글거림을 넘어서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이 실소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실소이기도 합니다. 어쩜! 나랑 똑같아라는 공감에서 오는 실소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 이성을 꼬시는 과정 자체가 고도의 기만술이기도 합니다. 1장에서는 함춘수 감독은 유부남인 것을 숨기고 윤희정에게 접근합니다. 이는 보통의 유부남이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 접근하는 방식이죠. 2장의 함춘수는 술자리에서 자기가 유부남인 것을 밝힙니다.

이 차이가 1장과 2장의 차이를 극명하게 바꾸어버립니다. 같은 사람, 같은 장소이고 대사도 비슷하지만 삶은 태도라고 했나요? 어떻게 상대를 대하느냐에 따라서 결말은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솔직한 태도가 해피엔딩을 가져오느냐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리 같은 사람, 같은 장소, 같은 말을 해도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감정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전 요즘 인생도 운칠기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삶이라는게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닫고 무계획으로 살자도 좋은 모습은 아닌 듯합니다. 계획대로 안 된다고 해도 계획을 짜 놓고 진행하다가 틀어지면 틀어지는대로 진행하면 되니까요. 플랜B까지 짜놓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계획만 하다가 인생을 허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행은 1박 2일인데 여행 계획은 3일을 짠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도 들거든요.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이야기가 중반 까지 진행 될 때는 잘 안풀릴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어이없는 사건으로 오히려 잘 풀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석을 할 것입니다. 왜 저런 비논리적인 행동을 할까? 왜 윤희정은 저런 미치광이 행동을 이해하고 오히려 웃어버리고 감독에게 호감을 가질까? 라는 분석을 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분석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순간순간의 감정에 휘둘려서 비논리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죠.

이 비논리적인 모습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세상이 루틴대로 흘러가면 그것만큼 지루한 세상이 어딨나요? 바로 그게 지옥이 아닐까요? 이 비논리성과 우연이 가미되어서 좀 더 할 이야기가 많은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영화 제목도 그렇습니다. 띄어쓰기가 전혀 없는 이 독특한 제목에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분석 좋아하는 분들은 홍상수 감독의 의도를 분석하겠지만 정작 홍상수감독은 그냥 제목이 길어서 띄어쓰기 안 했다고 하더군요. 감독은 아무 의도가 없지만 관객들이 분석하면서 의도를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삶이란 아무 의미 없는 우연의 연속체인데 그걸 저 같이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홍상수 영화 감독 영화가 좋습니다. 그냥 거울 하나 딱 갖다 놓고 너를 들여다 보라고 말하는 영화들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입니다.  난 그냥 내 방식대로 이야기를 담을테니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라고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많은 한국 영화들이 관객에게 객관식 해석을 요구하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은 주관식 해석을 할 수 있게 문제 제기만 하고 공란으로 해놓습니다. 그리고 체점도 하지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삶에 맞게 해석하면 되니까요

 

이번 영화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2장의 틀린 그림을 찾는 재미를 통해서 삶이라는 것이 살아지고 싶은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삶에 대해서 정직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보다 현명하다고 말하는 듯하네요. 동의 하지 않는 관객도 있겠지만 전 홍상수 감독의 그 시선에 동의합니다.

너무 솔직한 게 민폐인 세상에서 때로는 솔직한 감정 표현과 태도가 좀 더 바르고 옳은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위안을 얻게 되네요. 세상의 수 많은 기만술. 앞에서 최곱니다. 멋지세요. 참 예쁘세요라는 사탕발림을 소주라는 독하고 진솔한 맛으로 날려 버린 느낌이네요. 이래서 또 한 잔의 홍상수표 소주 같은 영화를 봤네요. 정재영과 김민희의 일식집에서의 술자리에 동석한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네요. 정재영 김민희 참 연기 잘하고 최화정의 출연도 너무 반가웠습니다. 다만, 사건 사고가 많지 않아서 좀 지루할 수는 있습니다.

아줌마! 홍상수 영화 한 편 더요!!

별점 : ★★★★
40자평 : 인생은 우연의 연속, 지금도 그때도 틀린 게 아닌 항상 오류라는 엇나감이 보여주는 삶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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