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미팅을 갔었지
뚱뚱하고 못생긴 얘 있길래 와 재만 빼고 다른 얘는 다 괜찮아
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내가 맘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 여자 친구이거나
우리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꼭 동성동본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
언제쯤 내게도 기가 막힌 그런 눈부신 여자친구 하나 생길까
세상 모든 게 다 내 뜻과 어긋나 힘들게 날 하여도
내가 꿈꿔온 내 사랑은 널 위해 내 뜻대로 이루고 말테야
<DJ DOC의 머피의 법칙 가사 중에서>
재수 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 우리는 그걸 '머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머피의 법칙'은 미국의 항공 분야 엔지니어였던 '에드워드 A 머피'가 1949년에 항공기 추락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참여했다가 조수의 잦은 실수에서 나온 말입니다.
머피의 조수는 실수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꼭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머피는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 일은 꼭 실수를 한다"면서 핀잔을 줍니다. 이후 이 말은 하나의 용어가 됩니다.
'머피의 법칙'은 '잘못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잘못된다'는 불운, 또는 재수 없음을 대표하는 심리학 용어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왜 나에게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냐"며 하늘에 삿대질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쁜 기억을 더 오래 강력하게 기억하는 인간의 심리>
컴퓨터는 기억하라고 명령하면 무조건 기억합니다. 그게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무조건 기록합니다. 컴퓨터는 감정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모든 기억을 담은 기록을 다 기록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감정이 있는 동물입니다. 같은 사실도 그 사람의 상황과 감정 상태와 맥락에 따라서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도 사람에 따라 달리 기억되어집니다.
특히나 감정에 따라서 어떤 기억을 더 오래 깊게 과장되게 기억하기도 하며 어떤 기억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럼 어떤 기억을 더 오래 깊게 기억할까요? 극강의 기억 그러니까 일생 일대의 희노애락은 모두 강력하게 기억합니다만 순간 순간의 행운과 불행의 기억은 행운 보다 불행의 기억을 좀 더 강력하게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차를 운전하다가 목적지를 향하는 갈래 길에서 내가 선택한 길이 막히면 사람들은 자신은 불운하다면서 우울해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수록 자신의 불운을 오래 깊게 기억합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안좋은 것과 공포에 대한 감각이 발달해서 그런 안 좋은 것들을 애초부터 피하게 해서 사고나 사건을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 내가 선택한 길이 뻥뻥 뚫리면 앗싸!라는 쾌재를 부르고 신나게 질주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신의 행운을 깔끔하게 잊어 버립니다. 실제로 제가 하루 종일 행운과 불행을 의식하고 체크를 해보니 행운이었던 경우, 예를 들어 건널목에 서자마자 신호등이 파란 불이 켜지거나 지하철 역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이 도착하는 것은 앗싸! 땡큐라고 느끼고 바로 잊었지만 평소에도 좀처럼 오지 않는 수원행 열차가 10분 이상 기다려도 안 오게 되자 기분 자체가 우울해 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안 좋은 기억을 좀 더 오래 깊게 기억하다보니 자신에게만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카운팅을 해보면 불행의 출현 빈도는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기억을 저장할 때 가치를 심어서 저장하기 때문에 불운을 더 크게 가치를 둡니다.
또한, 차가 꽉 막히면 그 차에 탄 사람들이 뻥 뚫린 길을 달라는 사람보다 많기 때문에 불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사는 확증 편향
나이들면서 많이 느끼지만 나이 40살 이상 넘어가면 새로운 지식을 넣길 거부하고 40살 이전의 경험을 하나의 경전처럼 만들어서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가 머리 속에 들어오면 머리 속에 있는 기억과 경험을 꺼내서 대조를 해봅니다. 그래서 이전에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면 바로 버려버립니다. 문제는 처음 경험하는 지식이고 지혜인데 이전에 경험한 것과 동일하다면서 그냥 버려버리죠.
그래서 40살 넘은 사람들이 잘 하는 말이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또는 "안 해도 뻔해" "내말이 그말이야" "내말이 맞지?"라는 식의 자신의 경험을 우쭐거리는 꼰대스런 말을 참 자주합니다. 물론, 저도 가끔 하는 편입니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사는 동물입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좋은 정보와 안 좋은 정보가 동시에 도착하면 사람은 자신이 감정 상태에 따라서 또는 이미 판단 내려진 결론에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부합하는 정보를 좋은 정보로 인식하고 그 정보를 좀 더 확대 해석합니다. 반면, 자신의 주장과 다른 주장이 도착하면 그 정보를 깔아 뭉개 버리고 무시합니다.
믿고 싶은 정보만 믿고 나머지는 폐기해버리죠. 특히 나이든 분들이 이 확증 편향에 걸린 분들이 많습니다.
머피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뭘 해도 안 돼"라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정보를 받으 들이니 행운은 가볍게 무시하고 조그마한 불행이 터지면 분통을 터트리고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을 주시나이까?"라고 하늘에 주먹질을 합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딸 머피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왜 내 이름을 머피로 지었어 머피의 법칙이랑 관련이 있는거야?" 딸 머피는 불행을 담은 '머피의 법칙'의 머피와 자신의 이름이 동일한 것에 심드렁해 하면서 묻습니다.
아빠는 이런 대답을 하죠
"머피의 법칙이란 나쁜 일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야. 그냥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의미지."
아빠는 0.1%라도 일어날 확률이 있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을 뿐이지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건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의미 부여를 해야 세상을 이해하기 편하니까요
세상은 이해 못하거나 설명되어지지 않는 일이 꽤 많습니다. 그럼 그렇게 설명 되어지지 않는 것은 설명되지 지지 않는 채 받아 들이면 됩니다. 내가 건널목에 도착하니 빨간 불이 된 것은 그냥 빨간 신호등이 켜질 시간에 내가 도착한 거지 신호등이 날 미워해서 너! 재수없어 거기 좀 서 있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날 세상이 싫어하는거야! 난 재수 옴 붙은 인간이야 식으로 스스로 설명을 하고 해석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집에 가고 미래를 보고 현재의 일어나는 일을 설명 받고 싶어합니다. 그 미욱한 마음을 미신이 파고듭니다.
얼마 전 방영한 '무한도전'에서 미국으로 입양간 분의 사연은 한국의 저질적인 미신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현재를 사는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심풀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혈액형 별 성격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걸 미신이라고 인정하고 심심풀이로 한다면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지만 그걸 맹신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거봐! A형이니까 소심한 것봐!라는 말은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머피의 법칙을 맹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영화 마지막에 머피가 샐리의 법칙을 깨닫게 되면서 끝이 납니다. 자신의 저주스런 운명을 벗어버리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니 '머피의 법칙'의 반댓말이 '비비드 바비드 부(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주문처럼 행운이 펼쳐졌습니다.
그렇다고 '샐리의 법칙'이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맹목적 긍정주의자들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죠. 분명, 저 앞에 벼랑이 있는 게 분명한데도 "괜찮아! 내 말 믿어 저 앞에 벼랑 없어. 왜! 넌 매사 그렇게 부정적이니?"라고 말하면서 공멸의 길로 가는 맹목적 긍정주의자들이 더 큰 문제죠.
긍정의 힘은 분명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입니다. 어차피 내 소관도 내가 바꿀 수 없는 선택이라면 긍정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안달복달 하면서 마음 조리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보단 낫죠.
다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세상 운칠기삼이라면서 운빨에 맞기고 사는 삶은 필시 망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차이를 내고 조금 더 내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노력 30%라는 그 기삼을 좌지우지하니까요.
인간은 참으로 감정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확증 편향을 가리는 능력만 있다면 좀 더 평온한 삶이 기다릴 것입니다. 그렇다고 객관이 무슨 정답인양 사는 줏대 없는 삶을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주관을 가지돼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면 그 주관은 강력한 추진이 되고 자신을 객관화 시키는 브레이크가 달리게 되면 삶을 좀 더 편안하게 운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