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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채피. 로봇만 보이고 사람은 안 보이는 영화

by 썬도그 201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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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는 치솟는 범죄율을 다스리기 위해서 세계 최초로 로봇 경찰 '스카우트'를 투입합니다. '스카우트'들은 경찰 특공대와 한 팀을 이루는데 위험한 일을 앞장서서 해결 합니다. '스카우트'들의 활약 덕분에 요하네스버그의 범죄율은 떨어졌고 이에 시에서는 추가로 '스카우트'를 구매할 의사를 보여줍니다. 

 

'스카우트'는 천재 개발자인 디온(데브 파텔 분)이 만든 

인간 크기의 뛰어난 인공지능을 가진 인간형 로봇입니다. '스카우트' 추가 구매 소식에 같은 회사에 있던 '빈센트(휴 잭맨 분)'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서 디온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빈센트는 인간이 직접 조정하는 거대한 전투 로봇을 제작했으나 경찰 로봇이라고 하기엔 강력한 무장을 하고 있어서 경찰 로봇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한편 디온은 뛰어난 인공지능을 가진 '스카우트'에 인간처럼 자의식과 감정을 가진 새로운 '스카우트'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이 새로운 인공지능을 스카우트 몸에 이식 시켜서 인간처럼 감정과 사고를 하는 로봇이 채피입니다. 채피는 다른 인공지능 로봇 영화의 인공지능체들과 달리 스스로 학습을 하면서 점점 진화하는 독특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입니다. 기존의 로봇 영화들과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대부분의 로봇 영화 속 로봇들은 태어날 때부터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모두 장착하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채피는 마치 아기처럼 하나씩 배우면서 성장을 합니다.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인간처럼 감정을 직접 표현할 수 있어서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아기나 강아지 같은 느낌이 강한 독특한 로봇입니다. 

 

 

채피의 외형은 얼핏 보면 2개의 더듬이로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좀 다를 뿐 일본 애니 '패트레이버'와 비슷합니다.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로봇 디자인은 영화에 대한 강한 몰입감을 줍니다. LED 광고판 같은 눈을 통해서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은 채피가 사람이 아닌 로봇임을 수시로 관객에게 환기를 시켜줍니다. 외형은 로봇임을 강조하지만 갱스터처럼 걷는 모습이나 사람처럼 벽에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서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마치 로봇 탈을 쓴 사람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그 어떤 로봇 영화보다 로봇에 대한 강한 애착감과 몰임감을 주네요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동물입니다. 어떤 친구를 만나고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성격과 삶이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환경은 아주 중요하죠. 

인간과 닮은 채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채피는 디온의 실험실이 아닌 갱스터들에게 디온이 납치 된 후 갱스터의 아지트에서 탄생합니다. 갱스터 밑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IS나 탈레반의 소년병처럼 갱스터 로봇이 됩니다. 껄렁껄렁하게 걸으면서 슬랭어를 쓰면서 총을 쏘는 갱이 됩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처럼 착한 심성도 동시에 보여줍니다. 갱스터들은 채피를 범죄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채피는 돈을 훔치는 범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설계자의 부탁도 있었지만 선의지가 있는 모습으로도 보입니다그러나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채피는 인간다운(?) 선택을 합니다. 영화 <채피>는 환경에 따라 변화해가면서 죽음의 존재와 그 공포를 인식하는 5살짜리 꼬마 같은 채피의 심리 상태를 통해서 우리 인간 세상을 거울처럼 담고 있습니다. 기존 로봇 영화들이 어두운 톤으로 로봇을 통해서 인간을 반추하는 영화들이 많았는데  영화 <채피> 인간과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가진 로봇을 통해서 죽음, 신의 존재, 영혼에 대한 물음과  인간 정체성을 경쾌한 시선으로 담는데 밝은 톤의 시선이 색다르고 흥미롭습니다

채피는 스타워즈의 C3PO처럼 아주 친근하고 유쾌합니다. 액션 장면은 많지 않지만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액션이 곳곳에 있어서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채피 자체는 100점 만점에 85점 정도 됩니다. 문제는 이 영화는 채피 외에는 모든 인간 캐릭터들이 실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빈센트(휴 잭맨)입니다. 질투의 화신인 빈센트는 시종일관 질투심 하나로만 그려지는 평면적인 캐릭터입니다. 오로지 악역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모습은 악당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휴 잭맨의 악역 연기가 보고 싶긴 했지만 이런 싱거운 악역이라면 출연하지 않는 것이 그의 필모그래피에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휴 잭맨의 몸값으로 스토리나 액션 장면을 보강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으로 보이네요

갱스터로 나와서 채피를 가르치는 닌자(닌자 분) 요란디(요란디 비서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아공 힙합 가수인 닌자와 요란디가 연기를 하는 모습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남아공 가수를 위한 간접광고 같은 느낌이 꽤 드네요.  이들은 다른 갱스터에게 돈을 갚기 위해서 채피를 이용해서 범죄를 계획하는 범죄자입니다. 이런 악당을 부모로 둔 채피가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총을 드는 모습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빈센트와 닌자와 요란디라는 두 악당의 싸움을 보면서 친한 악당 또는 덜 악한 악당을 응원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그렇다고 채피에게 감정과 영혼을 심어 준 설계자 디온이라는 캐릭터도 설득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 로봇에 감정을 표현하고 학습하면서 스스로 진화 하는 로봇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이외에도 영화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성겨서 이해가 안 가고 설명  되어지지 않는 장면들이 꽤 많습니다.  휴먼 에러처럼 인간 캐릭터들 모두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채피는 패트레이버 외형에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배우는 모습은 터미네이터와 A.I의 느낌도 납니다. 빈센트가 만든 2족 로봇과의 전투는 로보캅1.2편의 느낌도 나며 빠른 몸동작은 아이 로봇의 느낌도 납니다. 여기에 사람의 뇌를 데이터화하는 모습은 공각기동대의 느낌도 드네요. 기시감이 드는 점이 단점이긴 하지만 수많은 로봇 영화를 섞어서 새로운 맛을 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로봇에게 이렇게 강한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드는 그 자체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디스트릭트9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닐 블롬캠프가 자기복제한 듯한 영화 마지막 장면은 색다른 엔딩이긴 하지만 과욕이 부른 맥락 파괴성 뜬금 없는 한 엔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영화 <채피>를 추천합니다. 분명, 구멍도 틈도 많은 영화입니다. 스토리와 인간 캐릭터들에 많은 허점을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을 채피가 혼자 다 메꾸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로봇이라니. 사랑스러운 로봇 채피가 모든 단점을 덮어버리네요. 로봇을 통해서 인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도 좋고 액션도 적절하게 배치 되어 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킬링 타임용으로 가볍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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