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또는 돈 많이 버는 기업들이 큰 건물 1층을 갤러리로 제공하는 곳들이 꽤 있습니다. 포스코 미술관도 그렇고 LIG 아트 스페이스도 그렇습니다. 오인숙 사진작가님이 그룹 사진전을 한다기에 마포구에 있는 LIG 아트스페이스에 다녀왔습니다.
사진전 제목은 (Family Album: Floating Identity)입니다. 가족 앨범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영어로 제목을 정했을까요? 전 이런 식의 제목 짓기가 참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한글로 표현해도 되는데 굳이 이런 식의 영어로 된 전시 제목을 썼어야 했을까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진전 자체는 전시 제목에 대한 불만과 달리 꽤 촘촘하고 보고 들어볼 이야기가 많은 사진전이었습니다.
가족앨범 사진전은 가족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가족애라는 주제를 끌어 내는 사진전입니다. 디지털 사진 시대가 되면서 사진이 아주 다양해졌습니다. 또한, 사진 홍수 시대가 되어서 뭘 이런 것까지 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쓰잘덱 없는 것까지 모두 찍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재료비 전혀 들지 않는 디지털 사진 시대가 만든 풍경이죠
그러나 찍을수록 돈이 들어가는 필름 사진은 꼭 필요한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이 들어가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꼭 필요한 사진인 가족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족이 가장 가치 있다는 것을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우리에게 전해줬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사진전은 사진의 근원적 물음을 하는 전시회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가족과 친구를 주로 사진으로 찍었는데 디지털 카메라 시절이 도래하면서 가장 덜 찍는 게 가족 사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전은 구성수, 김옥선, 쁘리야 김, 오인숙, 이동근, 이상일, 이선민, 전몽각, 최광호, 황선희, 황하영 사진작가의 사진을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Mother as My Being / 쁘리야 김>
쁘리야 김 사진작가는 어머니의 몸을 살며시 끌어 안은 듯한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어머니의 몸에 있는 나이테의 촘촘한 간격에서 나오는 세월이 사진에 가득하네요.
<윤미네 집 / 전몽각>
유일하게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전몽각 교수의 윤미네 집 사진시리즈였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진집인 <윤미네집>은 흥미롭게도 사진작가의 사진집이 아닌 사진을 취미로 찍은 사진 애호가인 전몽각 교수가 딸 윤미씨를 어려서부터 시집 보낼 때 까지 무던하고 유심하게 담은 사진집입니다.
왜 이 사진집이 인기가 있는지는 직접 보시면 단박에 알게 됩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의 가족 앨범 또는 딸의 가족앨범이지만 내 가족과 전몽각 교수의 가족이 링크가 되면서 큰 너울 같은 동질감이 넘실 거립니다. 가장 위대한 사진집은 내 가족을 찍은 가족앨범이라고 하는 소리가 있잖아요.
LIG아트스페이스는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생각보다 갤러리가 꽤 크네요.
<Toy Store. 황선희>
<Night Picnic. 황선희>
사진작가 황선희는 평범한 가족 앨범 같은 사진을 담고 있습니다. 행복한 순간들을 촬영한 것 같은데 가족과 함께 지내는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듯 합니다. 아이가 메고 있는 알록달록한 키치적인 가방과 문방구의 키치적인 학용품들이 마치 보호색을 뒤집어 쓴 모습입니다.
사진작가 이선민은 제 블로그에서 몇번 소개를 해서 잘 알고 있는 사진작가입니다. 사진작가 이선민의 사진들은 가족의 살가운 면 대신에 가족이기 때문에 주는 고통 또는 가족이 함께 하지만 거기서 느끼는 소외감을 담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여자들은 사람 취급도 안해 주는 풍습이나 명절이 되어서 부모님 집에 모였지만 각자 따른 곳을 보거나 멍하니 TV를 보는 가족의 단절을 사진으로 잘 담고 있습니다. 가족이 주는 위로도 많지만 가족이 주는 고통도 크죠.
사진작가 김옥선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남편으로 둔 다문화 가정을 사진으로 촬영 했습니다.
묘하게 흐르는 우리와 다른 외모가 주는 이질감과 긴장감이 사진에 흐르고 있습니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국제 결혼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는 못합니다.
사진작가 이동근은 이 전시회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진작가입니다.
사진들은 한국에 사는 동남아시아나 중국 동포 등의 국제 결혼한 가족을 보여주는데 그 외국인 신부의 부모나 가족 그리고 다문화 가정을 사진으로 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점점 동남아시아나 중국 동포와의 국제 결혼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다문화 가정을 카메라에 담아서 보여줍니다. 사진들은 이게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이라고 보여주는 듯 유형학적인 스타일로 담고 있네요. 최근에 한국에서 유사인종주의자들이 늘고 있는데 그분들은 여전히 단일민족국가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문화 가정은 많은 편견 속에 살고 있는데 그런 편견들을 정부가 적극 나서서 해소하려고 하지만 사람들 마음을 쉽게 될리기는 힘들겠죠. 그러나 건강한 한국이 되려면 그런 편견들은 줄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분들도 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런 사진들은 우리 안의 편견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의성 있게 잘 하고 있습니다.
구성수 사진작가는 가족 중에서도 무촌이라고 하는 아내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정말 무뚝뚝함이 철철 넘치는 차렷자세의 아내를 증명사진 찍듯 찍어 냈는데 이 포즈가 사진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합니다.
아내를 저렇게 무뚝뚝하게 찍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사진이 더 튑니다. 그리고 더 기억되게 하네요
그리고 저를 이 전시회로 이끈 그리고 아주 다양한 사진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알게 해주신 오인숙 사진작가의 사진입니다. 작년에 <서울 염소>라는 사진전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요
서울 염소라는 사진전 제목이 특이한데 그 이유는 이 글로 소개합니다.
남편을 10년 동안 사진으로 담은 오인숙 사진작가의 '서울염소'
남편을 10년 동안 사진으로 담았는데 10년 간 남편을 관찰한 관찰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 생활에 하얗게 타 버리는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과 스스로 복구해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서울 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덜 경쟁적이고 덜 자극적이며 건물보다 자연이 더 많은 곳에서의 치유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누군가가 날 바라봐준다는 그 시선 만으로도 가족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화수분입니다.
황하영 사진작가의 사진도 꽤 흥미롭습니다. 어린 꼬마가 뛰어 노는 사진인데 모자이크처럼 보입니다. 해상도 낮은 사진을 억지로 크게 인화하면 모자이크처럼 입자가 다 보이죠
사랑의 크기라는 사진 시리즈인데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들이 가득 보이네요. 그러나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서 모호성을 띄고 있습니다. 의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스니다. 아니면 그냥 10년 전 초기 폰카로 찍은 해상도 낮은 사진 또는 해상도 낮은 디카로 찍은 사지늘 크게 인화 해서 이런 모습이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빛 바랜 기억, 희미해지는 기억을 시각화 한 듯한 느낌이 좋네요.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왜곡도 쉽게 되고 흐릿해지잖아요. 그때마다 사진이라는 불변 할 것 같은 매체가 기억을 교정 시켜줍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사진의 교정 기능을 거세했네요. 흥미로운 사진입니다.
아버지의 서재를 전시하고 있는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퍼와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저 빛바랜 사진들이 빛이 바래질수록 사랑은 명확하고 더 또렷해질 듯 하네요.
전시장 밖으로 나와 왼쪽 카페에 가도 사진들이 더 있습니다. 전몽각 교수의 윤미네 집 사진들이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탄 자전거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우리 집에 있는 가족 앨범과 다른 가족 앨범 사진전입니다. 다르다고 한 이유는 우리의 가족 앨범에는 내 가족만 있고 즐거운 순간만 촬영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전 가족 앨범에는 가족과 함께 해서 즐겁고 행복한 모습도 있지만 가족 안에서의 아픔과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도 가득합니다. 따라서 좀 더 입체적인 시선으로 가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진전이기도 합니다.
아주 쉬운 사진전이고 꽤 좋은 사진전입니다. 시간 되시면 들려보세요
사진전은 3월 5일부터 4월 11일까지 LIG 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