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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강남 1970을 보기 전에 챙겨 봐야할 영화 '비열한 거리

by 썬도그 2015.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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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감독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말하고 싶어 합니다. 기회와 여유와 돈이 되고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된다면 3부작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3부작일 것입니다. 그리고 유하 감독도 <강남 1970>이 개봉하면서 강남 3부작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강남 1970>을 그냥 드셔도 되지만 3부작 영화이니만큼 강남 시리즈 전작을 보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유하 감독의 강남 3부작은 <말죽거리 잔혹사. 2004>와 <비열한 거리. 2006>이 있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너무 재미있게 봤고 지금까지 유하 감독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열한 거리>를 보지 않았습니다. 꽤 평이 좋아서 볼까 했는데 조폭 영화에 질려버려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무척 뛰어난 영화네요. 다 보고 난 후 이 정도의 퀄리티로 뽑아 낸다면 <강남 1970>도 후한 평을 받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게 진짜 조폭 영화다

2천년 대 초 한국 영화는 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처럼 조폭 영화를 자기 복제하고 있었습니다. 툭하면 조폭 코메디 물이 넘치니 짜증이 제대로 났지만 그럼에도 조폭마누라부터 할아버지 아저씨까지 몽땅 스크린으로 뛰쳐들어갔습니다. 조폭이라는 폭력을 베이스로 깔고 코메디 소스를 넣은 조폭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개중에 <친구. 2001>과 같은 코메디를 뺀  조폭을 꾸미지 않고 담은 날 것으로 담는 영화가 있긴 했습니다만 영화 <친구> 자체는 좋게 보지 않습니다. 조폭을 담긴 했는데 있는 그대로를 담기 보다는 조금은 미화 시킨 듯한 느낌도 살짝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조폭의 의리를 미화하는 것은 거의 없어서 좋긴 했습니다. <비열한 거리>는 영화 <친구>와 비슷한 그리고 더 진솔한 조폭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병두(조인성 분)는 조폭입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을 챙기는 장남입니다. 집에서는 든든한 오빠 형 아들이며 집 밖에서는 형님 말이라면 깍듯하게 따르는 의리의 조폭이죠. 그런데 돈을 수금을 해도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 형님에게 서운함이 쌓이게 됩니다. 여기에 조폭은 자존심인데 자존심까지 구기는 일을 당하게 되면서 불만은 더 쌓이게 됩니다. 


멋진 집에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싶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 데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멋진 스폰서 하나 끼고 편하게 조폭 생활 하다가 은퇴하고 싶은 것이 병두의 꿈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여유롭지 못합니다. 

황회장은 병두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딱 2가지만 알면 돼.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이 말을 듣고 병두는 황회장이 고민하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현직 검사를 실종 처리 합니다. 이때부터 병두는 의리의 조폭이 아닌 생존을 위한 삶을 사는 조폭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그 생존을 위한 조폭의 삶에 물들어 갑니다. 
돈은 많이 생겼지만 가족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무섭다는 소리를 듣고 흐느껴웁니다. 

과연 병두는 자신이 원하던 삶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식구들과 번듯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요?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슷한 스타일를 지닌 비열한 거리

전작인 <말죽거리 잔혹사>는 학교라는 x같은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학원물이었습니다. 
학교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고등학생들의 치기어린 주먹질을 잘 녹여 냈습니다. 주인공의 순수함과 폭력성을 첫사랑과 연결해서 꽤 잘 만든 영화입니다. <비열한 거리>도 시대만 달랐지 큰 틀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슷합니다. 조폭 영화를 씨줄로 첫사랑을 날줄로 짜임새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병두는 비록 가진 것이 없어서 조폭 일을 하지만 현주(이보영 분)를 짝사랑하는 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사랑인 현주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자신의 신분 때문에 주저하다가 영화 감독인 민호(남궁민 분)에 이끌려 동창회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현주를 보게 됩니다 병두는 그 선한 눈빛으로 현주를 바라봅니다 이 둘만 앵글에 담기면 로맨틱한 연애물로 느껴질 정도로 병두의 현주에  대한 사랑은 지극정성입니다.

그러나 현주 앞에서 야수적인 날선 모습을 보여주자 현주가 병두를 거부하죠. 폭력과 첫사랑이라는 소재만 보면 전작과 많은 부분 비슷하고 느낌도 비슷합니다만 비열한 거리는 이 사랑 이야기 보다는 조폭의 실제 생리를 적나라하게 담으면서 차별화를 하고 있습니다


비열함이 현실이다

다른 조폭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은 이 영화는 실제 조폭 생활을 스크린에 담고 있는데 이 모습을 다시 스크린에 담습니다. 
병두의 동창인 민호는 병두가 조폭인 것을 알고 접근해서 살갑게 대합니다. 그리고 조폭 생활 이야기를 직접 듣고 보게 됩니다. 
이 실제 조폭의 삶을 영화에 그대로 녹여내서 '남부 건달 항쟁사'라는 영화로 대박을 냅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병두가 평생 숨겨야 할 사건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맛내는 비법을 듣고 같은 동네에 음식점을 낸 행동과 동일합니다. 이에 화가난 병두, 그러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이 일이 예상치 못하게 크게 번집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비열함과 비열함이 부딪혀 내는 파열음을 후반부에 가득 담습니다. 


병두는 감독이자 친구인 민호에게 "이번에는 진짜 의리에 죽고 사는 진한 건달 이야기 말들어 봐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민호는 진한 건달이야기가 아닌 진짜 조폭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는 병두 자신도 압니다. 자신이 생각한 의리에 죽고 사는 건달의 삶이 실제로는 언제 뒤에서 배신의 칼침이 들어올지 모르는 조폭의 삶이라는 것을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알고 있지만 병두는 천상 낭만주의자였습니다. 비록 자신의 하는 일이 의리보다는 배신의 연속이고 실제로 병두도 배신을 하면서 차곡차곡 올라가지만 그럼에도 그게 옳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옳게 살아가는 건달이 없기에 정신 승리법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겁니다. 검사를 죽이고 형님을 배신해도 자신은 착한 일을 하는 아들이라고 말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 칼끝이 드리워졌을 때 왜?라는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왜? 라는 천진무구한 조인성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조인성의 발견

배우 조인성은 그냥 그런 배우로 생각했습니다. 논스톱 출신의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싹 바뀌었습니다. 솔직히 연기는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비열한 거리>에서의 조인성 연기는 다른 배우가 해도 그 정도는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인성의 이미지를 다른 배우에게서 느낄 수 없습니다.

선한 이미지와 강한 이미지가 동시에 보여지는데 이는 권상우에서 발견한 이미지입니다. 
아마 <강남 1970>에서는 이민호가 권상우, 조인성을 잇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을 보여줄 듯 하네요. 
조인성이 또 좋았던 것은 태권도 유단자이자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 했던 조인성의 멋진 발차기가 영화 액션의 크기를 좀 더 크게 해줍니다. 긴 다리에서 나오는 시원스러운 액션은 조인성의 액션 스타로 변신해도 될 정도라고 생각이 들 정도네요. 이런 좋은 하드웨어를 왜 로맨스에만 쓰고 있는지 안타깝네요. 


알란 파슨스 프로젝터의 Old And Wise

영화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자신의 집이 철거가 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아파트를 짓기 위해 동네 주민들을 겁박하는 병두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씁쓸하더군요. 조폭들도 다 가난한 집안 자식들인데 그들이 향하는 각목의 끝이 저소득층으로 향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돈입니다. 병두는 돈이면 행복도 사랑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돈을 쫒는 부나방이었습니다. 
솔직히 병두의 이런 행동을 우리가 욕할 수 없습니다. 모두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요? 다만, 안타까운 것은 병두가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돈 없이도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는 환경이 그런 병두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네요

영화에서는 노래방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철딱서니 없이 물불 가리지 않는 병두는 땡벌을 부르면서 식구들을 챙기지만 
황회장(천호진 분)은 알란 파슨스 프로젝터의 Old and Wise를 부르면서 손에 피 한방울 안 묻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게 됩니다.  나이든 사람들 무시할 수 없는 게 비록 피부는 게껍질처럼 변하지만 뇌는 경험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머리 속에 브레이크와 악셀이 잘 장착 되어 있어서 갈 때와 설 때를 잘 압니다. 그러나 병두 같은 청춘들은 이걸 잘 모르죠

황회장이 부르는 노래 제목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영화 <강남 1970>이 기대되는 이유는 <비열한 거리>에서는 부동산에 얽힌 조폭이야기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남 1970>은 70년대 부동산 광풍을 둘러 싼 영동개발 이면의 조폭들이 이야기가 흥미로울 듯 합니다. 큰 호평은 없지만 그럼에도 유하 감독의 팬으로써 보고 싶네요. 곧 만나러 가겠습니다


40자 평 : 의리와 낭만의 건달이 아닌 비열함이 난무하는 질척 거리는 비열한 거리에 선 병두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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