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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80년대 우울한 시대상을 형식파괴의 영화로 담은 바보선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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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우울한 시대상을 형식파괴의 영화로 담은 바보선언

썬도그 2015. 1. 18. 11:32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아닙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사람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1번 본 영화를 2번 째 보면 처음에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영화를 연달아서 2번 연속 보는 것도 좋지만 전 10년 단위로 좋은 영화를 다시 찾아봅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영화 <박하사탕>때문이었습니다. 20대에 본 영화 <박하사탕>을 30대가 되어 TV에서 봤는데 그 느낌이 꽤 많이 달랐습니다. 왜 이렇게 영화를 본 느낌이 다를까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영화는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제가 10년 동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쌓여진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변한 나의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과 영화는 10년 단위로 다시 볼 것을 권합니다. 저도 그 말에 절대 공감합니다.
그리고 어제 밤 1983년 개봉한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을 봤습니다. 


어린 시절 코메디 영화로 봤던 바보선언. 다시 보니 슬픈 80년대의 자화상이었다

1983년에 개봉한 그러나 영화관에서는 보지 못하고 추석인가 설날 특선 영화로 80년대 후반 봤던 영화입니다. 당시 초등학생인 동생들과 모여서 집에서 봤는데 바보라는 제목 때문인지 제 기억속으로는 이 영화가 코메디 영화로 기억 되었습니다.

전자오락실의 소리와 초등학생의 나레이션 우스꽝스러운 몸동작 등등 코메디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나이 들어서 다시보니 이 영화 엄청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블랙코메디였습니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난 어제 본 <바보선언>은 그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푸라기처럼 일어났습니다.

영화 <바보선언>은 한국 영화평론가와 영화학자들이 뽑은 한국 영화 100선에 들어갈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입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실험적인 요소들이 꽤 많이 들어간 영화이고 영화라는 형식을 헝클어트린 모습이 많습니다. 그리고 80년 시대상을 가장 일반적인 시선으로 잘 담은 수작입니다. 

먼저 형식적인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초등학생(이장호 감독 아들)이 국어 책을 읽듯 나레이션을 합니다. 나레이션 배경으로는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들이 보여지고 동칠이라는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동칠은 한쪽 다리가 불편한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 다니다가 한 영화감독(이장호 감독 본인)의 투신 장면을 목격합니다. 

영화 감독은 사람들이 스포츠에만 빠져 있어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서 자살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렇게 떠돌아 다니던 동철은 
혜영이라는 가짜 여대생을 만나게 됩니다. 택시기사인 육덕을 꼬셔서 가짜 여대생을 납치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납치한 여대생이 가짜 여대생임을 알게 된 후 영화는 바람에 나부끼는 신문처럼 정처 없는 이야기로 진행 됩니다.


영화 <바보선언>은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마치 80년대의 풍경을 스틸 사진으로 찍은 것을 쭉 이어 붙인 듯한 80년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과 물질 만능주의가 서서히 시작 되는 졸부들의 나라를 신랄하게 묘사하는 이미지가 가득한 영화이니다. 

이렇게 영화 줄거리 자체가 없는 이유는 전두환 정권의 서슬퍼런 검열 때문입니다. 지금도 영화 심의를 하는 꼰대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지만 당시는 더 심했습니다. 영화 시나리오 자체부터 심의를 하던 2중 심의의 시대였습니다. <어둠의 자식들. 1981>을 연출하고 3편까지 시리즈로 만들려고 했던 이장호 감독은 2편 시나리오가 통과 되지 않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바보선언>입니다. 대충 쓴 시나리오로 검열을 통과하고 현장에 나와서 즉흥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영화가 <바보선언>입니다.

어찌보면 홍상수 감독이나 기타노 다케시 같은 즉흥곡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이장호 감독이 이런 즉흥적인 연출을 꾸준하게 추구한 감독은 아닙니다. 이 영화만 즉흥적인 연출과 시나리오라고 만들었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는 연출작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잔뜩 준비하고 찍은 사진보다는 우연히 찍은 스냅사진이 더 선명한 주제의식이 담기듯 이 영화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는데 이장호 감독 최고의 영화로 칭송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참 아이로니컬하죠


<바보선언>은 동철(김명곤 분)과 혜영(이보희 분)과 택시기사 육덕(이희성 분)이 보여주는 블랙 코메디입니다. 
이들은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80년대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화여대라는 지성체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청량리역이라는 청춘의 광장이자 호객행위의 광장 그리고 사창가 같은 양 극단의 공간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런 80년대의 극단의 모습은 동철의 꿈과 혜영의 꿈으로도 보여지죠. 동철은 혜영과의 하룻밤을 꿈꾸지만 혜영은 대저택 마당에서 고기파티를 하는 부유한 삶을 꿈꿉니다. 이렇게 80년대의 경제의 양극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민화 정책인 3S 정책중 스포츠 정책을 펼친 전두환 정권을 영화감독의 자살로 비판합니다. 

여기에 80년대 PC방처럼 많았던 전자오락실을 직접 보여주고 영화 음악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80년대 풍경을 뒤죽박죽으로 담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는 이제 막 공산품을 소비하기 시작한 개발도상국인 한국의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한 모습이 꽤 많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공안정권을 비판하기 힘들고 그 경제 호항기였던 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강남 땅부자 또는 영혼의 성장은 없고 물질만 성장한 졸부 문화를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습니다. 혜영이 죽는 이유도 이 소비 지상주의적인 문화 돈이면 뭐든 다 살 수 있다는 현재 한국의 종교가 된 돈에 대한 비판 의식이 영화 전면에 깔려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물 배를 채우던 동철과 육덕과 함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졸부들이 쉽게 사랑을 사고 파는 모습 등을 동철의 슬픈 눈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어렸을 때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이 보이네요. 동철과 육덕의 모습도 찰리 채플린의 느낌도 나면서 동시에 브루스 브라더스를 연상케 합니다. 아마도 이장호 감독이 브루스 브라더스의 영화에 큰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두 광대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국회의사당 앞에서 육덕과 동철이 탈춤을 추면서 항의하는 듯한 모습은 80년대 공안정권에 대한 울분 같아 보였습니다. 



영화 속 내용을 넘어서 이 <바보선언>은 실험 영화가 아닐까 할 정도로 영화의 형식도 상당히 난해할 정도로 다양한 시도가 시도 되어 있습니다. 먼저 영화 음악이 일관성이 없습니다. 전자오락 소리를 적극 활용하는데 국악과 팝송을 넘어서 성악까지 넣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다 집어 넣어 버리는데 이게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여기에 이장호 감독 아들의 국어책 나레이션도 센세이션 합니다.

여기에 영화 자체는 초반에 대사 한 마디 없이 초등학생 변사가 읽어주는 나레이션만 들리는 무성 영화 형식을 보여주고 있스빈다. 찰리 채플린 영화의 느낌이 나는 이유도 이 무성 영화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영화 전체가 무성 영화로 보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짜 여대생이 들통난 후부터는 대사가 나오다가 끝 무렵에는 다시 무성영화가 됩니다. 

마치 3인이 보여주는 80년대라는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3인극이라고 할 정도로 영화 형식은 뒤죽박죽이고 난해하지만 놀랍게도 이게 묘한 조화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여백이 많은 영화라서 관객의 생각을 유도하는 힘이 큰 영화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재미있는 것은 이대 앞 촬영 장면을 자세히 보면 행인들이 영화 촬영 장면을 구경하는 장면이 보입니다. 지금은 CG로 구경꾼을 지우거나 완벽하게 통제를 하지만 당시는 구경하던지 말던지 신경 안 쓰고 영화 촬영을 한 모습이 많아서인지 그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네요. 

아마도 제가 느끼기에는 영화 속에 나오는 엑스트라 중 대부분은 몰래 촬영한 장면이 아닐까 할 정도로 엑스트라들이 아닌 다큐 영상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80년대는 바보들의 시대

80년대는 바보들의 시대였습니다. 바보 같이 일만 하던 국민들과 바보 같이 모든 반대 의견을 묵살하던 전두환 정권과 바보들이 TV에 나와서 국민들을 웃겼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바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지만 80년대는 유행어가 될 정도로 바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했습니다. 

바보라는 말은 욕이 될 수도 있지만 귀여운 애칭이 되기도 했던 묘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영화 제목만 보고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후속편인가 했지만 전혀 상관 없는 영화입니다. <바보선언>이라는 영화 제목은 영화 검열관이 이장호 감독이 제시한 여러가지의 제목 중에 <바보선언>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화천공사는 자신들이 제작한 <바보들의 행진>과 연계 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했다는 소리도 있네요. 

아무튼 그 검열관이 선택한 제목이 바보 같이 너무 잘 어울리네요. 그 바보 검열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남자들을 바보로 만든 이보희의 빼어난 미모도 이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저런 예쁜 여배우가 한국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예뻤던 배우였습니다. 지금은 일일 드라마에서 아줌마로 나오지만 리즈 시절에는 홍콩 여배우 못지 않게 예뻤습니다. 

동철과 육덕 혜영이 80년대라는 기차를 타고 두서 없이 여행을 다니는 듯한 <바보선언>, 80년대 시대상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망칠 작정으로 만든 영화 <바보선언>은 후한 평을 받았지만 제대로 만들어 보려고 했던 바보선언의 후속작인 천재선언(1995)는 쫄딱 망한 것도 흥미로운 모습입니다. 

바보선언은 유튜브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바보선언 보러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K4djhhewV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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