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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언브로큰] 좋은 스토리를 밋밋한 연출로 재미를 부러트리다

by 썬도그 201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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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로큰>은 할리우드의 대스타인 안젤리나 졸리의 3번째 연출작이자 첫 번째 국내에 소개되는 대작입니다. 
배우들의 이름보다 감독 이름이 전면에 나서는 영화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슈가 개봉 전에 터집니다. <언브로큰>이 일본을 욕보인다면서 일본 우익들이 안젤리나 졸리의 일본 입국금지와 상영금지 운동을 펼쳤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분이 무슨 내용이길래 일본 우익들이 이렇게 광분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출신 미군의 850간의 참혹한 포로 생활을 담은 <언브로큰>

<언브로큰>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미국 육상 국가대표가 되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2차 대전이 발발해서 중폭격기 승무원에 되었다가 850일간 일본군 포로가 되었다 풀려난 루이스 잠페리노(잭 오코넬 분)의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입니다. 

영화 전반부는 부모 속만 썩이는 불량배 같던 주인공이 형의 권유로 육상을 하게 된 후 토렌스의 토네이도라는 애칭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육상 선수가 되어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서 선배들을 제치고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는 잠페리노의 영광과 함께 중폭격기의 폭격수가 되어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쉴새 없는 폭격 명령으로 다 고쳐지지도 않은 폭격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다 기체 고장으로 바다에 불시착을 합니다. 

영화 전반부는 주요 내용은 무려 3,000km나 바다 위에서 표류하면서  47일간 겪는 고생을 담고 있습니다.
생선을 뜯어 먹으면서 구명정 위에서 지내는 모습은 참혹함 그 자체입니다. 상어와 싸우고 태풍을 만나고 지나가는 비행기를 향해 신호탄을 쏘는 등의 죽을 고생을 보여줍니다. 

 

 

초인적인 힘으로 47일간 표류하다가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데 그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입니다. 하필, 일본군이 표류하던 잠페리니와 필을 발견하고 이후 850일간의 긴 포로 생활이 시작됩니다. 정글에서의 포로생활을 지나 일본 열도 내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새라는 별명을 가진 와타나베 상병(미야비 분)과의 악연이 시작됩니다. 이 악연은 탄광이 있는 포로수용소까지 이어지는데 그 길고도 긴 악연이 후반부의 주 내용입니다. 

뛰어난 드라마를 지루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버린 안젤리나 졸리

영화를 보고 나니 더 궁금해졌습니다. 일본 우익들은 어떤 것을 보고 이렇게 흥분했을까요?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 비판이 전혀 없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다루기보다는 새라고 불리는 와타나베 상병이라는 개인의 잔혹성만 중점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일본군 자체는 반인륜적인 행동을 하는 군대가 아닌 평이한 군대로 그려지고 대신 와타나베 상병의 개인적 일탈만 중점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일본 우익들은 소설 언브로큰의 내용을 그대로 다 담는 줄 알았나 봅니다. 소설 언브로큰에는 일본군의 잔혹성이 그대로 다 담겨 있습니다. 생체실험과 인육을 먹는 등의 일본군의 잔혹성을 소설은 담고 있는데 이 부분을 영화에 담는 줄 알았나 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이런 아주 민감하지만 일본군의 잔혹성을 여실히 드러낼 수 있는 요소를 싹 도려냈습니다. 

왜 도려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거대한 영화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을 테고 영화 각본을 쓴 코엔 형제안젤리나 졸리 감독은 그런 거시적인 악을 그리기보다는 잠페리니의 인간 승리라는 미시적인 감동을 거대하게 만들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밑에 깔려 있는 한 인간이 그 수레바퀴를 들어 올린다는 이야기는 감동스럽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울한 포로수용소 이야기만 계속 나와서 지루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다시 고생이 시작되고 그 고생을 딛고 일어서서 달콤한 열매를 따 먹는다는 리듬감이 있어야 하는데 영화 <언브로큰>은 영광의 순간 이후 쭉 내리막길만 갑니다. 47일간의 표류 끝에 일본군 포로 생활을 850일 하는데 포로 생활이 길어질수록 죽을 고생만 계속 해서 보여줍니다. 리듬감이 없는 연출과 큰 사건 사고가 없는 스토리의 진행은 지루함을 많이 느끼게 합니다. 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열등감에 사로잡힌 와타나베 상병과 와타나베 자신보다 더 유명한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였던 잠페리니의  1 대 1 대결로 만들어 버립니다. 후반부에는 버디 무비인가? 할 정도로 두 사람의 대결만 보이고 나머지는 다 병풍이 되어버립니다. 소재는 아주 좋습니다. 185주 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원작 소설이 주는 스토리의 묵직함과 대중성은 검증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드라마를 무채색의 밋밋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버렸네요. 안젤리나 졸리의 연출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와타나베 상병의 연기한 미야비의 뛰어난 연기 

영화에는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잠페리노를 연기한 잭 오코넬의 선한 눈빛과 <어바웃타임>으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폴을 연기한 돔놀 글리슨이 친구로 나옵니다. 얼마 후 개봉하는 <엑스 마키나>에서도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전 이 <언브로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는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일본 비주얼 록그룹 기타리스트인 미야비입니다. 

미야비는 영화 속 유일한 악역으로 등장하는 와타나베 상병을 연기합니다. 삼백안을 들이밀면서 잠페리노를 윽박지르는 모습은 살벌 그 자체입니다.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로 강한 이미지를 선보이는 미야비는 놀라운 연기를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이 미야비의 뛰어난 연기가 없었다면 영화의 후반부도 밋밋하고 무색무취한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열등감에 절어서 눈알을 부라리는 모습은 잊혀지지 가 않네요

초점 나간 사진 같은 주제가 선명하지 않아서 아쉬웟던 <언브로큰>

초반 미군 폭격기와 일본 공군의 제로기와의 전투 장면 등은 꽤 볼만합니다. 폭격기 안의 구조를 보여주면서 폭격기와 전투기가 어떻게 공중전을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액션이 거의 없습니다. 초반 전투기와의 전투 이외에 끝까지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고생담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포로수용소 안에서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와나타베 상병과 잠페리니에게만 초점이 맞춰지고 나머지는 포커스 아웃 되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후반 잠페리니의 불굴의 의지가 담긴 명장면이 나옵니다. 
수 없이 맞아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의지를 갖춘 잠페리노는 "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어"라는 형의 말을 되새기면서 견디고 견딥니다. 이 고통을 견디고 견뎌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본 제국에 대한 복수이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잠페리니라는 꺼지지 않는 촛불 앞에서  "내 눈을 쳐다 보지 마"라고 외치는 공포감에 휩싸인 와타나베 상병의 표정은 이 영화의 압권입니다. 2차 대전은 적군을 많이 죽이고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들만의 전쟁은 아닙니다. 비록 포로가 되었지만, 그 긴 고통을 견딘 사람들도 영웅입니다.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영웅들이죠. <언브로큰>은 2차대전을 겪고 견딘 영웅들을 스크린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 승리의 드라마의 주제는 깊고 멀리 퍼지지는 않습니다. 연출 자체가 너무나 담백하게 그려서인지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는 않네요. 오히려 영화가 끝난 후 잠페리니의 전쟁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자료 영상이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잠페리니의 전쟁 이후의 삶이 더 감동으로 다가오네요. 

영화 자체는 볼만은 합니다. 그러나 꼭 보라고 추천하긴 힘든 영화입니다. 그 이유는 연출도 그렇고 스토리도 너무 맹물 같다고 할까요? 뭔가 자극적인 요소들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자극적인 요소는 구타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변 인물들을 살리지 못하고 이 거대한 드라마를 오로지 와타나베 상병과 잠페리니 두 사람의 대결로만 몰아간 것도 아쉽습니다

좋은 소재의 거대한 전쟁 드라마를 일본과 미국을 상징하는 두 주인공으로 축소한 듯한 시선은 아쉽기만 하네요.

40자 평 : 거대한 전쟁 드라마를 소극장의 2인 극으로 만든 졸리의 아쉬운 연출력이 영화를 부러트리다. 
별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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