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친구들에게 추천했다 욕먹은 열혈남아. 25년 후 다시 보니 러브 스토리가 눈에 들어오다

by 썬도그 2014. 8. 10.
반응형

VHS와 PC가 막 보급 되던 1989년은 VHS와 PC가 있는 집과 없는 집으로 구분 했습니다. PC는 워낙 고가여서 없는 집이 많았지만 VHS 비디오데크는 꽤 많은 집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주변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비디오로 나온 최신 영화가 있어도 볼 방법이 없으니 랜덤하게 틀어주는 TV극장인 주말의 명화나 토요 명화로 때웠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VHS비디오데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집도 부자였습니다. 부자여서 공부를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여러모로 부러운 것들이 많은 친구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유아적인 치기였지만 어린 나이의 저는 그 친구의 많은 것이 부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같이 잘 사는 것을 으스되는 시기가 아닌 그냥 넌 잘 사는 친구구나라고 생각했을 뿐, 차별과 괄시도 없었습니다. 지금 같이 볼꺼리 놀꺼리 많지 않던 1989년의 고등학생에게는 시험 끝나고 즐길 여흥꺼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가장 건전한 것이 영화 관람이나 친구네집에 모여서 보는 비디오 정도가 대부분이었죠.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고2때 중간고사를 끝나고 비디오 가게에 가서 2편의 영화를 골랐습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영화 매니아를 자칭하는 저는 한 편은 천녀유혼으로 고르고 또 한편은 평이 굉장히 좋고 유명 배우가 나온 영화를 골랐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열혈남아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영화 자체가 너무 졸립고 액션이 거의 없어서 우리가 예상하고 원하는 홍콩느와르가 아니였습니다. 유덕화 장만옥이 나오긴 하지만 액션 활극이 거의 없다보니 조는 친구가 태반이었고 저도 어!!!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을 기대했는데 홍콩 영화 답지 않게 드라마를 찍고 있으니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결국은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네요. 

호르몬이 분수처럼 쏟는 청춘들에게 수면제 같은 영화를 추천하고 봤으니 그때의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혈남아는 미안함으로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25년 만에 다시 본 열혈남아 미안한 감정을 싹 지우게 하다

열혈남아(몽콕하문)은 왕가위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입니다. 1987년 제작된 이 영화는 당시 빅 히트를 치던 홍콩 느와르 영화와 많이 다릅니다. 당시는 서극 감독의 홍콩 무협 영화와 오우삼 감독으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 영화가 홍콩 영화의 양대 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룡의 쿵후 아니면 주윤발의 권총에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열혈남아는 다릅니다. 홍콩 느와르라는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속을 까보면 이 영화는 홍콩 느와르의 문법을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부유하는 한 청년의 청춘과 사랑과 의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홍콩 영화는 김보성이 의리를 외치게 한 의리라는 허리우드 영화에서 보기 힘든 주제를 가진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지존무상 등의 영화들이 대부분 남자끼리의 강한 우정인 의리로 무장해서 당시 한국 관객들을 많이 홀렸습니다. 열혈남아도 의리가 담겨 있긴 하지만 좀 더 복잡하고 차분하며 스타일리쉬 합니다.

25년 만에 다시 본 열혈남아는 미안한 감정을 사라지게 하고 거기에 이 영화가 당시부터 지금까지 왜 영화 매니아들에게 사랑을 받는 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소화에게 찾아온 아화

영화가 시작 되면 소화(유덕화 분)에게 숙모가 잠시 후에 사촌이 병 치료 때문에 잠시 소화의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합니다. 
소화는 자신에게 사촌이 있었냐고 반문하죠. 이에 숙모는 자신과 친한 사람의 딸이니 사촌과 다름없다면서 잠시 묵게 해달라고 합니다. 

잠시 후 도착한 아화(장만옥 분)는 소화 혼자 사는 집안에 적응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에 일을 나가는 소화를 물끄러미 쳐다 봅니다. 그런데 소화가 저녁 사 먹으라며 100달러를 주고 가는 모습 속에서 소화의 착한 성품을 보게 됩니다.  그날밤 소화는 애인의 낙태 소식과 함께 실연이라는 아픔을 안고 집에 들어와서는 집기를 던지고 괴로워합니다. 

소화는 조폭입니다. 사채 놀이를 하는 조폭으로 자신의 삶이 내일이 없는 삶임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인에게 결혼하자고 말을 하지 못합니다. 부초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내일을 함께하자고 말을 못합니다. 이에 애인은 소화의 아이를 지워 버리고 소화를 떠납니다.

이런 소화에게 아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들렸던 아화는 이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사는 소화에게 큰 신경을 써주면서 떠납니다. 깨진 컵 대신에  새 컵을 사고 몇 개는 다 깨지면 사용하라고 숨겨 두웠습니다.  전화로 물어보면 숨겨둔 곳을 알려주겠다며 다시 대만으로 떠납니다



의형제 같은 창파 때문에 마음이 아픈 소화

소화는 이 조폭계에서 잔뼈가 굵고 날카로운 사람입니다. 내일이 없는 사람답게 모든 일에 목숨을 걸고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사리판단은 잘 하고 이쪽 생리를 잘 압니다. 문제는 소화가 데리고 있는 동생인 창파(장학우 분)가 사리 분별력이 떨어지고 객기만 있어서 참으로 문제입니다. 여기에 쓸데 없는 명예욕만 많아서 유명해지고 싶어 합니다.

창파는 조폭으로써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항상 소화가 뒷처리를 해줘야 합니다. 
이런 창파를 종교와 같은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것이 소화입니다. 솔직히 좀 이해가 안가더군요. 친동생도 아니고 조직의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라고 해도 저렇게 삽질 하고 다니면서 명예욕과 돈 욕심만 많으면서 능력은 떨어지고 노력하지도 않는 동생을 왜 감싸주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설명은 크게 없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형제애 이상의 의리를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좀 많이 아쉽더군요. 친동생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일을 그리치고 정신 없는 행동을 한다면 따끔하게 다그치고 크게 혼을 내야 하지만 크게 혼을 내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그건 아마도 창파가 소화에게는 자신의 과거이자 자신의 유일한 뿌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 되어지네요. 나와 닮았다고 무조건 좋아하는 동생들 있잖아요. 부유하는 소화에게 있어 창파는 유일한 지구에 뿌리를 두는 이유이기 때문에 끝까지 창파를 위해서 고군분투합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뿌리가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아화입니다. 아화라는 여자를 알게 되면서 소화는 갈등하게 됩니다.


25년이 지난 후 다시 본 열혈남아, 러브스토리가 눈에 들어오다

8,90년대 홍콩 느와르는 남녀의 애정을 싹 제거하고 남자끼리의 의리 주요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열혈 남아는 의리도 강하게 나오지만 러브 스토리도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이 열혈남아가 친구들을 졸게 했던 것이 바로 이 사랑 이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고 진중하며 곰삵은 애틋함이 있고 아주 매혹적이었지만 당시 사랑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고등학생들에게는 그냥 뜬구름 쳐다보는 느낌이었죠. 

25년이 지나서 40대에 들어서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당시 보이지 않았던 사랑 이야기가 눈에 확 밟히네요
열혈남아 자체는 사랑 보다는 의리에 관한 이야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많은 시간을 의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속 썩이는 창파와 못난 조폭 두목이라고 놀림 받는 소화의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전 이 영화를 의리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소화의 사랑 이야기라고 느껴지네요.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진 소화를 아화는 어둠속에서 지켜보고 이 남자가 어떤 남자라는 것을 잘 압니다. 외형적으로는 조폭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인 것을 잘 알죠. 그렇게 아화는 편지 한 통을 쓰고 대만으로 떠나버립니다. 

아화가 떠난 후 소화는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아화가 자꾸 그립습니다. 아화가 숨겨 놓은 컵을 찾아서 배를 타고 아화가 사는 섬에 도착한 소화. 그런데 그런 이화 옆에는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의사라서 결혼 한 후에 편한 마나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아화를 본 소화는 그냥 지나가다가 들렸다면서 애둘러 자신의 마음을 추려서 떠나려고 합니다. 이때 삐삐가 울립니다. 아화는 소화에게 터미널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부리나케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이때 소화가 아화를 먼저 발견하고 끌듯이 근처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서 결력한 키스를 합니다. 이건 기억나네요. 이 키스씬이 상당히 길어서 많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같은 말을 두번 하면 약속이 되기 때문에 두번 말하지 않던 소화에게 아화는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아화와 섬에서 살려고 했던 소화. 그러나 이 사랑도 의리가 끼어들면서 깨집니다


장만옥은 아주 예쁜 배우는 아닙니다만 상당히 매력이 넘치는 배우입니다. 창파 때문에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는 소화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화의 모습은 평생 기억 될 장면입니다. 아화는 알고 있습니다. 이 남자가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알기에 한 줄기 눈물을 떨굽니다. 장만옥의 행동 하나 하나가 토끼 같다고 할까요? 요즘에 견주어도 장만옥 같은 매력을 가진 여배우는 보기 힘듭니다. 제가 오래된 사람이라서 그런지 80년 당시 홍콩 배우들은 정말 아우라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스토리 자체도 아주 신선하거나 새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흔한 조폭의 사랑이야기죠.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을 매끄럽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두 배우인 장만옥과 유덕화의 매력미와 영상미 그리고 음악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왕가위 감독은 음악 선곡을 무척 잘 합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은 많아도 영화 주제가나 배경음악을 잘 아는 분들이 있죠.  대표적으로 '아비정전'을 대부분이 보지 못했지만 맘보 춤을 추는 장국영과 음악은 잘 압니다.

영화 색계도 마찬가지고요.

 이 열혈남아에서는  허리우드 영화 탑건의 배경음악 중 하나인 베를린의 take my breath away가 사랑의 세레라데로 쓰입니다. 여기에 주제가인 忘了你忘了我도 정말 멋지죠. 다만 이 노래는 오늘 영상자료원에서 본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 엔딩송이라고 알고 있는데 노래가 안 나와서 좀 당황스럽더군요.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이렇게 바로 공유해서 볼 수 있죠. 방금 검색을 해서 보니 이 열혈남아와 몽콕하문은 조금 다른 영화네요. 국내 개봉은 열혈남아로 했는데 열혈남아는 영화 엔딩곡인 왕걸의 忘了你忘了我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나왔군요. 몽콕하문은 오리지널 버전인데 엔딩이 조금 다르고 忘了你忘了我가 나옵니다. 저는 지금까지 두 영화가 같은 영화인 줄 알았네요. 이 忘了你忘了我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이 노래가 엄청난 이미지를 제공하거든요. 아마도 국내 수입업자가 노래를 잘라서 소개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감독판과 배급판 차이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몽콕하문이 더 좋네요.




독특한 영상미 그리고 음악 그리고 왕가위 식의 연출

스토리는 크게 뛰어나지는 않습니다만 당시 홍콩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은유가 꽤 있습니다. 액션이 적은 대신 많은 은유로 부유하는 청춘의 갈등과 괴로움을 잘 담고 있습니다. 몽콕이라는 야시장 뒷골목에서 잡초처럼 자라서 미래도 과거도 없는 현재가 과거이자 미래이고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거는 소화의 삶이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의 미래와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핸드핼드와 끊어찍기를 시도한 스타일리쉬한 영상도 꽤 흥미롭습니다. 조폭 액션과 러브 액션에서 사용된 끊어찍기 스타일은 90년대 초중반 많은 한국 영화가 따라해서 질려버릴 정도가 되었는데 그 시조가 바로 왕가위 감독입니다. 여기에 음악 선곡력은 정말 탁월합니다.  영화 배경 음악 잘 고르는 것도 감독의 역량이라고 치면 왕가위 감독은 탑 클래스입니다. 


한줄기 소나기 같았던 영화 열혈남아

소화는 청춘 그 자체입니다. 소나기처럼 몰아부치는 무서움이 있습니다. 적진 한 가운데서도 절대 꿀리지 않고 다수의 적을 장악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내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속 같은 것도 하지 않습니다.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데 약속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하루 하루 때우면서 살죠. 

그러나 그에게 세상에 정착하게 만든 힘이 있습니다. 그건 동생과의 의리와 사랑입니다. 
특히 사랑부분은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옛사랑과 우연히 비오는 처마 밑에서 만난 소화, 그런 소화는 옛사랑이 반갑지만 옛사랑은 소화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이 물불 안 가리는 조폭이 그 부담스럽다는 말에 빗길을 뛰어가는 뒷모습이 참으로 처량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소화는 정착하지 못하고 항상 떠나고 떠나고 떠납습니다. 80년 당시의 홍콩 영화 같지 않아서 더 기억에 남는 영화 '열혈남아' 이 영화의 매력은 두 주인공의 매력적인 외모와 연기와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와 함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영상과 음악이 참 기억에 남게 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정말 평생 기억될 명장면입니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춘이야기의 출발 총성이 가득한 영화 '열혈남아'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