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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20년만에 다시 본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그 감동은 더 커지다

by 썬도그 201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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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으로 기억 됩니다. 영화관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가 좋다고 소문이 난 '베를린 천사의 시'를 처음 봤습니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인 빔 벤더스는 1984년 '파리, 텍사스'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고 베를린 천사의 시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파리, 텍사스는 제가 본 영화 중 10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이고 이 영화도 TOP20에 올라 있는 영화입니다.
20년 전 20대에 본 '베를린 천사의 시'는 큰 느낌을 주었지만 20년이 지나니 기억이 희미하네요. 

 

독일영화 - 빔 벤더스와 안드레아스 드레젠

2014.07.18.(금) ~ 07.27.(일)

현재 상암동 영상자료원 KOFA에서는 어제부터 7월 27일까지 독일 영화감독인 빔 벤더스와 안드레아스 드레젠 영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어제 '베를린 천사의 시'를 20년 만에 다시 봤습니다. 필름 보관 상태가 좋지 못해서 비가 내리고 자체 점프컷이 있긴 했지만 그 감동은 부패되지 않고 오히려 더 숙성 되어 저에가 다가 왔습니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지 못한 현재의 20대 분들이 참 많이 찾아 왔더군요. 에어콘도 잘 나오고 시설도 좋고 무엇보다 무료 관람이 가능한 영상자료원 지하에 있는 상영관에서 이 감동의 명작을 다시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네요

영화가 시작 되면 천사 다니엘 천사(브루노 간츠 역)과 카시엘 천사(오토 샌더역)가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내려다 보는 듯 80년대 베를린 도시를 내려다 보는 영상으로 시작 됩니다. 그리고 그 위로 시가 흐릅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란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라는 돌림 노래 같은 이 시는 영화 내내 흐르는데 이 시 자체가 참으로 감동입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은 천사와 공존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천사가 설자리가 사라집니다. 이런 모습은 성선설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악을 습득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한데 이 모습은 제가 나이들어보니 더 명징한 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수 많은 부정축재와 부정한 짓을 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 부정한 짓을 관습이라면서 세상 다 그렇지라는 잘못 된 것을 지적하지 않고 온정주의로 감싸는 수 많은 추악한 어른들을 보면서 적어도 한국에서는 성선설이 맞다고 느껴지네요. 
영화도 이런 비슷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다니엘과 카시엘 천사는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혼잣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사람 옆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그들의 고통을 측은지심으로 도와주고 들어줍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살며시 인도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통 사고로 주마등이 흐르는 사람 앞에서 과거의 기억 찾기를 이끌어 주거나 힘들어도 희망을 가지는 쪽으로 인도를 합니다. 이 그윽한 시선은 어른들은 느끼기만 할 뿐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손가락을 가르키면서 천사들을 봅니다. 이 시선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네요. 아이들에게는 보이는 천사. 그러나 왜 우리 어른들은 보지 못할까요? 그건 아이들이 천사라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영화 중반까지 이렇게 두 천사가 사람들의 고통의 소리를 말없이 들어주기만 합니다. 천사들은 수 없이 많아서 사람들의 속내를 다 듣습니다. 

그리고 20년 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에는 없지만 이 '베를린 천사의 시'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가진 거대한 고통을 옛날 필름 영상을 보여주면서 베를린이라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기억을 가진 유기체로 묘사합니다.2차 대전시 폭격으로 집들의 반은 파괴 된 고통의 시간들을 옛 필름 영상을 통해서 담아냅니다. 특히 주요 배역 중  한 명인 한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면서 평화를 강조하고 흐느끼는 모습은 감동스럽네요. 나이 드니 보이는 것 중 하나가 평화에 대한 내용이자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대한 감독의 따끔하지만 따스한 시선이 잔뜩 느껴지네요

다니엘 천사는 천사라는 신분에 대한 회의를 느낍니다. 천사는 맛도 색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다니엘이 천사이던 시절에는 흑백 영상으로 그가 인간계로 내려가 인간이 되었을 때는 컬러 영상으로 담고 있습니다. 맛도 색도 육체적인 쾌락과 느낄 수 없는 천사 보다 인간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 이유에는 마리온(솔베이크 도마르틴 분)이라는 탄력적인 몸을 가진 20대 서커스 여단원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떠돌이 인생이고 정착하지 못하는 마리온은 불확실한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고통을 말합니다. 또한, 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자신이 정착할 진짜 사랑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마리온 주변에서 서성이죠. 

서커스에서 천사의 날개 옷을 입은 마리온을 만나기 위해서 다니엘은 과감하게 인간이 됩니다
이 영화는 예상과 달리 몇몇 장면에서는 웃음을 짓게 합니다. 예를 들어 마리온이 천사 날개를 달고 서커스장을 나가자 다른 단원이 "천사가 나가시네"라고 말하자 뒤에 있던 다니엘 천사가 깜짝 놀란다거나 천사를 알아보는 인간의 정체 등 약간은 흥미로운 요소를 넣고 있습니다

신호등 색을 볼 수 있는 마리온을 만나기 위해서 지상으로 떨어진 다니엘은 길거리 벽화의 색을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보면서 인간의 세계에 감탄해 합니다. 색을 보고 신문을 읽고 커피 맛을 보면서 감격과 감탄해 하는 다니엘, 그러나 인간계에는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마리온을 만나가 위해서 내려온 세상에서 마리온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랑의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는 다니엘 옆에 친구 카시엘이 어깨를 잡고 감싸줍니다. 
사랑의 고통과 인간의 고통을 느끼지만 사랑이라는 마취제 또는 삶의 이유로 그 고통을 잊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만나게 됩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나는 왜 나이고 네가 아닌가?
영화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면서 말합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고 우울한 관조를 보여줍니다. 빌딩에서 고통의 혼잣말을 하다가 자살한 청년이나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의 모습, 락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하는 부모 대체적으로 고통의 소리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울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끔 웃고 항상 힘들어 하는 존재들이니까요. 마리온의 공중그네처럼 떨어지기 전까지 견디는 것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또한, 인간의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 그 고통이 무뎌지는 과정이니까요. 

언젠부터 이렇게 우리가 고통스러웠을까요? 아이는 왜 항상 쾌할할까요? 저는 그 그 구분점이 책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지지 않지만 어른은 자신의 삶은 물론 아이의 삶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이런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들은 힘든 현실에서도 웃을 수 있고 잘 모르는 사람은 항상 쓰러지고 힘들어하죠. 이런 사람들에게 천사들은 곁에서 어깨에 손을 올려주면서 도움을 줍니다. 

20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은 이 부분입니다. 당시는 제가 어른이 아니여서 그런지 왜 사람들이 힘들어 할까? 라는 생각을요.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사랑이라는 것을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은 고통스럽고 힘든 인간 세상이지만 또 다른 나를 찾는 그 기나긴 여정과 또 다른 나와 함께 같은 방향을 보면서 걷는 사랑이야 말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다양한 카메라 워킹도 참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이런 명작을 허리우드는  맥 라이언과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씨티 오브 엔젤'이라는 졸작을 만들었습니다. '씨티 오브 엔젤'은 남녀간의 흔한 러브 스토리로만 담고 있는데 원작인 '베를린 천사의 시'는 천사와 인간의 사랑과 함께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기억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더 풍부하고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20년 전에는 잘 몰랐는데 영화 음악이 참 다양하게 쓰였네요. 클래식, 전위음악 그리고 락까지 다양한 음악이 참 많이 쓰였네요. 천사가 나오지만 진화론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안 보신 분들은 한 번 쯤 보셔서 괜찮은 영화입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란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 다니기도 하고
머리가 엉망이었고
사진찍을 때도 
억지표정을 안지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됐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꿈이 아닐까?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단지 환상이 아닐까?

악이 존재하나?
정말 나쁜 사람이 있을까?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나?

언젠가는 나란 존재는
더이상 내가 아닐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사과와 빵만 먹고도 충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딸기만 손에 꼭 쥐었다.
지금도 그렇다.

덜익은 호두를 먹으면
떨떠름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산에 오를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고
도시에 갈땐
더 큰 도시를 동경했는데 
지금 역시 그렇다.

버찌를 따러 높은 나무에 오르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도 그렇다.

어릴땐 낯을 가렸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항상 첫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서
나무에 던졌는데
창은 아직도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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