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는 항상 청춘이자 봄 같은 곳입니다. 만물이 연한 녹색의 생기를 머금은 봄과 같은 활기가 있는 곳입니다. 이 대학로가 활기가 있는 이유는 2가지가 있습니다. 수 많은 음식점과 술집 그리고 공연장 때문입니다. 점점 먹고 마시는 장소로 변질 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럼에도 곳곳에 있는 소극장과 공연장이 이 대학로를 정체성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대학로는 대한민국 연극의 메카입니다. 연극과 뮤지컬 공연이 참 자주 많이 공연되고 있습니다. 비록 대형 공연장은 많지 않다고 하지만 배우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소극장들이 아주 많은 곳입니다. 수 많은 공연이 흐르고 있는 이 곳은 문화지대입니다.
이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연극, 뮤지컬 공연도 있지만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도 꽤 많이 합니다. 요즘은 걸그룹, 보이그룹 같은 보는 시대가 되어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노래는 귀로 듣는 가수의 라이브 공연도 꽤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90년대에는 고(故) 김광석의 라이브 공연이 한 없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김광석의 라이브 공연은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계속 되었습니다. 그 공연 횟수가 무려 1천외가 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가객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가수였습니다
그가 떠난 학전 소극장은 학전블루 소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수 많은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6월 25일부터 8월 10일까지 학전 소극장에서는 제 2회 한국여성극작가전에 열리고 있습니다.
제2회 한국여성극작가전
연극계에는 여자분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성 배우, 여성 작가, 여성 연출자가 많죠.
이런 여성 연극인들의 모임이 바로 여성연극협회입니다. 몇몇 남자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죠. 왜 한국은 여성단체나 여성가족부 같은 여성에 대한 단체가 많을까?
그 이유는 아마 한국에서 여성들이 그 만큼 차별을 받고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에 반발하는 남자 분들 많겠죠. 몇몇 사안 즉 군가산점 문제에 대한 여성들의 태도는 저도 참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군대에 의무 복무를 했으면 그에 응당한 사회적 혜택을 줘야 하지만 이게 위헌 결정이 나면서 여성단체나 여성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 같은 남존여비 시대는 거론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한국은 유교문화가 남아 있고 남성이 가진 강력한 권력과 기득권을 쉽게 부셔버릴 수는 없습니다.
지난 2014년 3월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는 '유리천장 지수'가 100점 만점에 15.5점으로 OECD 27개국 중 꼴찌를 차지 했습니다. 유리천장 지수는 직장에서 여성의 승진과 공평한 처우를 나타내는 지수로 한국의 직장 내 여성의 대우가 고스란히 반영 되었네요.
한국은 여성문제가 크게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남자 사원보다 여자 사원이 월급을 적게 받거나 승진 기회에서 탈락하거나 직장내 성희롱도 여전히 많습니다. 물론, 좋아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성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지만 여성에 대한 처우 개선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네요
그렇다고 이 여성문제를 남자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의 문제는 여자가 문제라는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사는 여자 분들의 각성도 크게 필요합니다. 남성 의탁형 삶을 마치 표준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분들도 있고 자신의 삶의 주체를 남성에게서 찾는 여자분들도 많습니다. 이는 훈육의 효과일 것입니다. 자라면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산 노하우를 어머니가 딸에게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단체가 많아져야 하고 올바른 소리를 해야하며 동시에 자기 비판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여성 문제가 공론화 되고 공감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좀 다른 소리를 했네요
각설하고
여성연극협회가 20주년이 되었고 이를 기념에서 2013년에 제1회 여성극작가전이 열렸습니다.
이 한국여성극작가전은 한국 1세대 여성극작가와 1,5세대 여성연출가들이 만나서 여러 개의 공연과 돌아가신 여성연극인의 추모도 합니다.
그리고 2014년 6월~8월까지 제2회 한국여성극작가전이 대학로 일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제가 관람한 연극공연은 제2회 한국여성극작가전 공연 중에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하는 '히스테리카 파쇼'입니다. 학전 소극장은 처음 방문하게 되네요. 공연장은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서 촬영 하지 못했지만 여느 연극공연장처럼 작고 알찹니다.
제2회 한국여성 극작가전은 6월 25일부터 8월 10일까지 학전 블루 소극강과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열립니다. 공연은 수~일요일까지 열리며 수,목요일은 오후 8시 금요일은 오후 4시 8시, 토요일은 오후 3시, 오후 6시, 일요일은 오후 3시 공연만 있습니다.
공연은 한 공연이 장기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닌 한 공연이 1주일 씩 합니다.
이번 주인 7월 2일부터 6일(일요일)에는 이지훈 작, 정안나 연출의 '히스테리카 파쇼' 공연이 펼쳐집니다.
다음주에는 '이런 노래'가 공연 예정이며 '설치극장 정미소'에서는 연인, 수인의 몸 이야기,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일들 공연이 예정 되어 있습니다.
연극 히스테리카 파쇼
히스테리카 파쇼
연출 : 정안나
작 : 이지훈
출연 배우 : 김세동, 오아랑, 김지은, 박경옥, 이요성
연극 히스테리카 파쇼는 제목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제목입니다. 이 제목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의 한 대목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KING LEAR
O, how this mother swells up toward my heart!
Hysterica passio, down, thou climbing sorrow,
Thy element's below! Where is this daughter?
히스테리카 파쇼는 자궁이 느끼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그 어원이 자궁이죠. 그런데 리어왕은 남자입니다. 남자는 자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궁이 느끼는 고통을 느낄까요? 물론, 이는 어원 때문이지 리어가 자궁이 있어서 저런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울화통 정도로 번역이 가능 하겠네요
연극 '히스테리카 파쇼'를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풀어서 설명하자면 울화통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만 여성이 느끼는 울화통입니다. 연극의 주인공은 대학교수입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어린 자녀를 둔 대학 여교수입니다. 대학 교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 주인공은 수 많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술꾼인 남편
아이들을 키우는 불안감
대학 교수라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이 많은 역할을 흔들리지 않고 소화하기에는 삶이 벅찹니다. 이런 모습은 이 연극의 주인공인 대학 여교수의 모습을 넘어서 한국 사회에서 사는 여성들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엄마 역할과 함께 직장에서는 중간 간부가 되어서 위에서 아래에서 찍고 치 받는 것을 견디어야 합니다. 여기에 남편에게는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로 남아야 하죠.
이런 팔방미인을 요구하는 사회가 한국 사회입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여자들이 직장을 안 다녔지만 요즘은 기본이 맞벌이입니다. 저는 맞벌이 하면 삶이 더 윤택해지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맞벌이를 해야 겨우 먹고 살고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왜 이럴까요? 둘이 버는데 혼자 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삶입니다. 여자들은 육아와 가사 부담만 전담하는 시대를 지나서 이젠 직장 생활까지 하고 있습니다.
연극 속 주인공은 가사 도우미 아줌마를 통해서 육아와 가사를 떠 넘기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 켠에 있는 '히스테리카 파쇼'(울화통)을 게워내지를 못합니다. 이런 고통을 연극은 2명의 자아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연극은 흥미롭게도 한 여교수가 느끼는 여자의 고통을 리어왕의 이야기를 곁들여서 소개합니다.
연극 속의 연극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액자 구성을 통해서 리어왕의 이야기를 살짝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리어왕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연극을 보기 전에 리어왕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깊게 다루고 있지는 않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전체 줄거리를 알고 보면 좀 더 깊이 있게 들어볼 수 있습니다.
리어왕 이야기를 살짝 담아보면
리어왕에는 첫째 딸 거너릴과 둘째 딸 리건 그리고 막내 딸 코델리어가 있습니다. 리어왕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냐고 세 딸들에게 물어봅니다. 첫째 둘째 딸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국토의 일부를 불하 받습니다. 그러나 막내 딸 코델리어는 왕으로써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 그 자체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버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닌 직언을 해버립니다. 이에 노한 리어왕은 막내 딸 코델리어를 추방합니다.
그러나 리어왕은 첫째 둘째 딸에게 배신을 당하고 히스테리카 파쇼의 고통을 느낍니다.
연극 '히스테리카 파쇼'는 주인공인 여교수가 리어왕의 히스테리카 파쇼의 강의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느끼는 히스테리카 파쇼(울화통)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은 연극입니다.
이 연극에는 가사도우미 아줌마도 나옵니다. 대학 여교수 집에서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는 가사도우미 아줌마는 이 히스테리카 파쇼를 느끼지 못합니다. 알콩달콩 트럭 운전을 하는 남편가 잘 삽니다.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하나의 대답이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그러나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네요. 그건 하나의 대안일 뿐이고 하나의 최면제 같기 때문입니다.
많은 엄마들이 결혼해서도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살지만 아기를 낳으면 자신의 이름을 잃고 누구 누구 엄마로 삽니다. 전 이런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아이의 이름으로 살까요? 이런 모습은 세대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누구누구 엄마에서 누구 누구 맘으로 변했을 뿐이죠. 전 한국의 엄마 그리고 아빠들의 불행과 행복의 근원을 너무 자식에게서 찾기 때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아이가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하고 아이가 불행해하면 엄마도 불행해하는 모습은 자식과 부모의 삶이 하나로 연결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개체적인 삶이 아닌 서로 삶을 공유하고 합집합의 삶을 사니 행복도 고통도 자식과 함께 합니다.
연극 '히스테리카 파쇼'의 핵심은 자기 찾기입니다. 엄마, 아내, 직장인으로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찾는 여정을 차분하게 담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던 1시간 20분 공연이었습니다. 연극이 영화보다 좋은 점은 작은 공간에서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생동감 때문입니다. 앞으로 좀 더 자주 연극 공연 관람해야겠어요.
공연 정보는 학전 홈페이지 http://hakchon.co.kr/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