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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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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미술작품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사회참여작가들

썬도그 썬도그 2007. 9. 20. 14:02



세계적인 화가인 피카소도 암울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치점령기간에 피카소는
감시를 받고 있었죠.  나치특히 히틀러는  표현주의와 추상주의 미술들을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히틀러는 어렸을때 화가를 꿈꾸는 청년이었구 실제로 히틀러가 그린 그림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가  독재자가 되고나니  자신이 추구한 미술인  고전주의 미술 즉  남성은 근육질에 여성은 풍만한
곡선을 내세우는 고전주의 미술이 아닌 이상한 풍들의 그림들을 경멸했죠

그게 바로 추상주의와 표현주의 미술이었습니다. 1937년 히틀러는  그런 추상주의 표현주의 작품들을
독일 전역에서 모아서 퇴폐미술전을 개최합니다. 
 이런게 퇴폐라고  히틀러는 국민들에게 알릴려고 했습니다. 참 유치한
발상이죠. 하지만 그게 먹혀 들어갔을지는 모릅니다. 오히려 관객은 미어터지도록 왔으니까요.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힌 추상미술 미술가들의 작품을  히틀러는  압수하고  불태워집니다.
그의 집에는 항상 게수타포(비밀경찰)이  그를 감시했습니다.

그때   게수타포가  탁자위에 올려진  엽서한장을 발견하죠,

그 엽서에는    스페인 내전때  프랑코 총통이라는 독재자가 독일 나치에 요청해서  바스크민족이 사는
게르니카를 공중폭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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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게르니카





이 그림을 본  게수타포는 피카소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한거요?

피카소는 대답하죠.  아니 당신들이 한거지.




정말 명대답입니다.  피카소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불의와 사회의 잘못된점을 그림으로
표현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도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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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한국에서의 대 학살




한국전쟁은 양민들의 살육장으로 변한것을 피카소가 그림으로 표현한듯 합니다.



피카소말고  사회의 격변기를 그림으로 그린 사람들은 많습니다.
피카소의 위의 그림은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그림을  채용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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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 1808년 5월 3일


고야는 우리에게 마야라는 그림으로 잘 알려진 화가입니다.  스페인 사람이였던 그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대에 무참히 죽어가는  스페인 사람들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흰옷을 입고 노란 바지를 입은 사람의 두팔을 올리고 서 잇는 모습에 두려움과 동시에 강한 저항의식을
묻어 납니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을 모른척하며   총구만 노려보는 프랑스 군인들
고야에겐 그 프랑스군대란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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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의 모티브가 된  들라크루아의 1830년 작품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입니다.

절대왕정이 시민혁명으로 무너진 프랑스는  시민이란 새로운 계급이 국가를 이끌어가는데   샤를10세가
다시 왕권정치를 선언합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다시 한번 봉기하여 샤를 10세를 몰아냅니다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을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함꼐 싸우지 못했어요. 그래서 조국을 위해 적어도 그림이라도 그려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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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씨가 그린  이 걸개 그림 하나로 87년 6월의 거리는 뜨거워집니다.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신문사 사진기자가 찍었구 신문에 나온 그 사진 하나를 들고 미술학우들과 함께 밤새
그려냅니다. 

6월항쟁의 거리로 나온 그림들 - 전승보


미술은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하며  혹은 또 선도하기도 하는 힘도 있습니다.
군사정부시절에 미술을 비롯한 예술은  자기안위를 지키기만 바뼜죠.  하지만 지금은 군사독재시대도 아니고
대통령도 마음대로 씹을수 있는 시대이지만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그림들을 쉽게 볼수가 없네요.
뭐 필요가 없으니까 그럴수도 있습니다.  개그프로에서  시사코메디가 전무하다는것에서  이 시대의 모습을
투영하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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